억대 연봉을 넘어 CEO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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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의 천재가 1만명, 10만명을 먹여 살린다.” 이건희 회장의 이른바 천재 육성론은 삼성그룹 제2기 신경영의 핵심 키워드다.

삼성그룹이 신경영을 선언한 것은 1993년 6월.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다소 도발적인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변화를 독려했다. 이 회장은 당시 삼성을 말기 암 환자라고 혹평하며 변화와 개혁을 주문했다. 삼성그룹은 그뒤 지난 10년 동안 D램과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모니터, 휴대전화 등에서 세계 1위 제품을 만들어내면서 1위 기업으로 우뚝섰다.

그런 삼성이 제2기 신경영을 도입하면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이 핵심 인재 확보, 이른바 천재 육성론이다. 세계 일류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성패는 핵심 인재 확보에 달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핵심인재 확보야말로 5∼10년 후를 주도할 성장엔진인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고 세계 일류 제품과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최우선적인 해결책이라는 인식에서다. 핵심인재 영입은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지금은 컨베이어벨트에 수십명, 수백명이 매달려 물건을 만들고 있지만 앞으로는 천재급 인재 한명이 제조공정 전체를 대신할 날이 올 것이다. 실제로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 하나를 개발하면 1년에 수십억달러를 간단히 벌어들이고 수십만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빌 게이츠라는 천재 한사람이 세계 최고의 지식기업을 만들었고, 인류의 생활 판도를 바꾼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2년 기준 등기 임원 14명에게 368억원의 보수를 지급했다. 이 가운데 사외이사 7명에게 지급된 3억4910만원을 빼면 이건희 회장과 윤종용 부회장,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이윤우 사장, 진대제 전 사장 등 대표이사 사장급 CEO 7명이 지난해 받은 급여 총액은 364억 5000만원. 1인당 평균 52억원꼴로, 월평균 4억3000만원씩을 받은 셈이다.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옮겨간 진 전 사장이 포기한 스톡옵션이 무려 100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 임원들의 급여는 그야말로 일반 직원들의 수천배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삼성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에서 이제 핵심 인재 확보는 가장 화두다. 그런 핵심 인재에게 기업은 10배, 100배의 연봉을 아낌없이 지급한다.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쥐꼬리 월급에 시달리며 살다가 이른바 ‘사오정(40, 50대 정년)’ 시대를 못견디고 마흔줄에 퇴직해 내몰리는 가운데 어떤 사람은 탄탄대로를 치고 올라가 남들보다 수백, 수천배를 받는 억대 연봉의 직장인이 된다. 이들의 운명은 어디서 엇갈리는 것일까. 첫직장의 설레임과 야망으로 가슴벅찬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지금은 ‘샐러리맨의 우상’, ’18억원 연봉의 사나이’로 불리는 휠라코리아 윤윤수 사장도 처음에는 해운공사 말단 직원이었다. 운이 좋았다면 1970년 당시는 한창 종합상사가 기업의 꽃으로 불리던 그야말로 수출 중흥 시대였고 믿을 건 영어실력 하나밖에 없었던 그는 전세계를 넘나들며 무역 실무를 배울 수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올라탄 셈이다. 미국 최대의 유통업체 J.C.페니로 옮겨간 윤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만든 전자레인지를 미국에 들여다 팔았다. 삼성전자의 미국 진출 성공 뒤에는 J.C.페니 ‘진윤(윤 사장의 영어이름)’의 숨은 역할이 컸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현장 경험을 쌓은 윤 사장은 1984년 귀국해 운동화 제조업체 화승에서 수출담당 이사를 맡게 된다. 미국에 직접 수출을 하면 이익이 늘어날 거라고 판단한 그는 과감하게 중간 무역상을 없애고 직접 영업을 뛰겠다고 나섰다. 미국 바이어를 만나 수백가지 샘플을 보여주고 설득하는 것은 물론 싫다는 바이어를 공항까지 따라가 샘플을 늘어놓고 공항 로비에서 신발 전시회를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열정이 휠라코리아 사장으로 취임하던 이듬해 매출신장률 274.3%를 기록하게 만들었다. 휠라코리아는 해마다 평균 30% 이상의 매출신장률을 달성했다. 2003년 기준 휠라코리아의 매출은 2074억원, 영업이익은 265억원이다. 전세계 휠라 지사 가운데 가장 높고 외형으로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다.

2000년 9월 호주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서 공동입장하던 남북한 선수들에게 휠라 상표가 선명하게 찍힌 유니폼을 입힌 것도 윤 사장이다. 엔리코 후레쉬 휠라그룹의 전 회장은 “휠라가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지만 휠라가 꽃피운 곳은 한국”이라고 휠라코리아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윤 사장은 2003년 6월 MBO(내부경영자 인수) 방식으로 3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침체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 휠라 본사를 인수했다. 지사가 외국 본사를 인수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특별한 성공 비결이 있는 줄 알지만 별 것 없습니다. 샐러리맨에게 성실만한 성공 요인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물론 행동으로 옮기기 쉽지 않죠. 저는 직장생활할 때나 사업체를 운영할 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성실은 제가 갖고 있는 최고의 무기였죠,” 그는 새벽 5시 기상, 아침 7시30분까지 출근, 8시 각 팀장들과의 회의, 9시30분 주요 회의내용과 각종 정보를 전 사원과 함께 공유하는 오전 일과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킨다. 전날 밤의 숙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거나 외국 출장 중인 경우 전화를 통해서라도 오전 스케쥴만은 철두철미하게 완수한다.

우리나라 주식시장 역사에 한획을 그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과거도 윤 사장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아직 주식시장이 주목받기 전인 1984년, 이승배 당시 동양증권 영업상무(현 한셋투자자문 사장)은 어처구니 없는 입사 지망자를 만난다. 난데 없이 찾아와 날 쓰라고 윽박을 질러대는데 정말 어이가 없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다른 증권사 가면 과장을 준다는데 네 밑에서 배우고 싶어 왔다”는 거다. 관심없어서 가라고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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