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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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잃지 말자. 어디에나 출구는 있다.” 고미숙은 30대 후반이던 5년 전, 수유연구실에서 삶과 지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고 말한다.

“지식과 일상이 하나로 중첩되고, 일상이 다시 축제가 되는 기묘한 실험이 이뤄지는 곳, 도시의 중산층으로 편입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모색되는 곳, 혁명과 구도가 일치하는 비전이 탐색되는 곳,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바로 그런 곳이다.”

배움을 즐거움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는 생계 유지다.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대학에 돌아가 교수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실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벽은 너무 높다. 여자라면 더욱 그렇다.

고미숙이 5년전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40만원을 쏟아부어 수유연구실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대학을 포기하고 나니 딱히 다른 욕심이 없었다. 먹고 사는 거야 어떻게 되겠지. 공부라도 제대로 즐겁게 하자. 한달에 고작 몇십만원을 투자해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그야말로 남는 장사 아닌가. 이보다 더 큰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고미숙은 수유연구실에서 대학 10년 동안 배운 것보다 10배 이상의 지식을 얻었다고 한다. 게다가 연구실이 아니면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었을 뛰어난 스승들과 소중한 친구들도 만났다.

“나를 사로잡은 욕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의무나 강제로서가 아니라 순전히 내적 에너지에 의해 추동되는 앎의 여정을 밟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수유연구실의 첫번째 세미나는 ‘대한매일신보’ 강독이었다. 고미숙은 ‘대한매일신보’를 “근대의 도래 앞에 선 계몽주체들의 이상열기로 가득찬 웅성거림”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대한매일신보’ 강독은 수유연구실이 열린 공간으로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대한매일신보’에 담긴 이질적이고 낯선 목소리들은 근대성의 연구와 맞물리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고미숙은 한발 더 나아가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사람들을 하나씩 연구실에 불러다 강좌를 연다. 푸코와 데리다, 라캉 등 이른바 포스트 모던 철학 강좌가 일주일에 한번씩 열렸다. ‘천의 고원’의 권위자, 이진경이 수유연구실에 합류한 것도 그 무렵이다. 이진경은 강좌 뿐만 아니라 아예 날마다 책을 싸들고 연구실로 출퇴근을 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상근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유연구실은 그들에게 다른 어디보다 공부하기 좋은 공간, 뜻이 맞는 동지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수유연구실에서는 이제 거의 날마다 강좌가 열린다. 이진경의 ‘자본주의를 보는 여섯 개의 시선’을 비롯해 고미숙의 ‘고전평론, 길을 열다’, 이희경의 ‘근대매체 강독’, ‘들뢰즈의 씨네마 읽기’,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종교학 낙수’, ‘동아시아 신화담론의 형성’ 등등. 수강료는 한학기에 과목마다 7~8만원 정도다.

이진경은 ‘천의 고원’ 강좌를 그대로 녹취해 ‘노마디즘’이라는 책으로 묶어 내기도 했다. 강좌를 할 때마다 한편씩 글을 써내는 셈이니 책 한권 쓰기도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유연구실에서는 한 강좌의 선생이 다른 강좌에서는 수강생이 되는 일도 흔하다. 심지어 현대문학 전공자가 푸코 강의를 맡거나 소설가 지망생이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글을 쓰기도 한다. 이른바 지적 공명인 셈이다.

수유연구실은 이제 수유동을 떠나 종묘 공원 뒤 원남동으로 옮겨왔다. 3층 건물을 통째로 쓴다. 모두 130평. 보증금 7천만원에 월세만 700만원에 이른다. 여기에다 상근자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한달에 1천만원의 경비가 소요된다. 그런데도 돈이 넉넉한 적은 없었지만 돈 때문에 뭘 못한 적도 없었다고 한다.

수유연구실의 회원들은 회비를 한달에 3만원씩 낸다. 능력에 따라 더 내는 사람도 있다. 회원들은 수강료가 8만원 정도 되는 강의를 모두 공짜로 들을 수 있으니 분기마다 하나씩만 들으면 손해는 아니다. 수강료 수입은 10% 정도 운영비를 떼고 모두 강사에게 지급한다. 이진경 같은 인기 강사는 수백만원의 강사료를 챙기기도 했다. 흥행에 성공한 강사들은 수입의 일부를 특별회비 명목으로 내놓기도 한다. 일반회비와 특별회비, 그리고 수강료 정도로 이 큰 살림이 얼추 꾸려진다고 한다. 불가사의하고 난해한 일이다. 도무지 계산이 안나오는데 말이다.

수유연구실 1층은 식당이면서 강의실이면서 탁구장이다. 두대의 탁구대는 테이블보만 씌우면 식탁이나 세미나 테이블로 바뀐다. 수유연구실 사람들은 밥도 직접 해먹는다. 밥은 주로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하는데 한끼 밥값은 1800원. 5천원 정도면 하루 끼니를 모두 해결할 수 있으니 가난한 백수들도 부담없이 하루종일 눌러 앉아서 함께 어울릴 수 있다.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번씩 세미나를 해서는 절대 의기 투합할 수 없다. 그런 정도의 만남으로는 생동감 있는 집합적 생산이 불가능하다.” 고미숙의 이야기처럼 일상이 뒤섞여야 명실상부한 배움이 가능한 법. “밥상과 탁구대가 그런 역할을 했다.” “밥 먹고 탁구 치고 세미나 하고 차 마시고 수다 떨고. 연구실에 오는 발검음이 점차 가벼워졌다.”

수유연구실 2층에는 카페와 세미나실이 있다. 카페는 수유연구실이 외부와 소통하는 공간이다. 세미나가 끝나고 뒤풀이를 아예 연구실 안에서 치를 수 있으니 비용이 줄어 좋고 음악이나 영화, 만화 등 온갖 상영과 전시회, 다양한 문화행사가 가능하다. 연구실을 공부와 토론만 있는 딱딱한 공간에서 일상의 공간으로 바꿔놓은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그 옆 세미나실에서는 날마다 수많은 세미나가 열린다. 노마디즘과 푸코, ‘천의 고원’ 강독, ‘열하일기’ 강독, 일본어 강독, 중국어 강독, 동아시아 근대성, 영화, 불교, 정신 분석 등등. 세미나는 누군가의 발의와 함께 몇명의 동조자만 모이면 곧바로 시작된다. 회원들은 처음에는 한두개 정도 세미나를 기웃거리다가 어느순간 5, 6개 세미나에 동시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전공 분야만 파던 사람들도 여기저기 관심분야를 넓히고 기꺼이 배우는 자세로 뛰어든다. 그때 비로소 배움의 기쁨을 깨닫는다.

“공동체는 명분이 무엇이든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는 곳이어서는 안된다. 방식은 다를지언정 구성원 개개인의 삶이 비옥해지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 잘 살자고 하는짓인데 공동체는 더더욱 그래야하지 않는가 말이다.”

수유연구실 3층에는 공부방과 요가방이 있다. 밤 늦게까지 늘 공부하는 사람들이 남아있고 밤샘 작업을 하는 사람도 많다. 수유연구실 4층은 종묘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옥상이다. 이곳에서는 심심찮게 제기차기 대회가 열린다.

회원들은 케포이필리아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달에 서너번씩 주방당번이나 청소 및 정리 당번을 맡아야 한다. 세미나나 강좌를 듣거나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세미나를 만들거나 책을 싸 짊어지고 와서 몇일씩 처박히거나 모두 자유다. 수유연구실은 엄청난 가능성을 당은, 자유로운 배움의 공간이다.

“연구실에서 새로운 지식을 실험하면서 내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그런 전제에 대한 전복이었다. 앎이란 즐거움이다.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천으로서의 지식, 그것은 원초적 본능이다. 연인에 대한 사랑, 섹스에 대한 탐닉은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지만 앎에 대한 것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타고난 능력만으로 사는 건 바보다. 타인의 능력과 제대로 접속하면 내가 지닌 능력의 몇십배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일례로 우리 연구실에는 중국통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들의 존재는 나의 잠재력이기도 하다.”


성광야학은 수유연구실과 조금 다르다. 성광야학의 강학들은 대학을 졸업했거나 아직 다니고 있지만 모두 학문의 영역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학강들은 그나마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근대성과 고전평론, 들뢰즈와 푸코를 이야기하는 수유연구실 사람들과는 꽤나 다르다.

그런데도 성광야학과 수유연구실의 문제의식은 깜짝 놀랄만큼 비슷하다.


– 세미나는 어떤가.
= 세미나는 수업에서 담아낼 수 없는 어떤 종류의 배움과 가르침을 공동학습으로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세미나는 수업의 발전된 단계이기도 하고 수업에서 못다한 목소리들이 오가는 곳이기도 하다. 학습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의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자리다.

– 세미나의 목표는 뭔가.
= 세미나의 일차적인 목표는 강학의 교육과 의사소통이겠지만 멀리 내다보면 세미나는 야학과 민중 운동의 전망을 위해 새로운 교육과 학습의 방법을 실험하고 계속해서 수정, 발전시켜 나가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세미나는 과도기적인 실험이다. 앞으로 야학의 모든 수업이 세미나의 형태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 지금 세미나는 강학들 중심이다. 학강들과 소통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은데.
= 소통의 방법도 문제지만 많은 부분 개념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그런 개념의 차이는 수업을 통해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검정고시 수업도 충분하다. 수업과 세미나는 상호 보완적이다. 조금씩 학강들을 세미나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할 거라고 본다.

– 야학운동의 전망,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
= 스스로 극복하지 않으면 소외는 계속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야학운동은 배움을 통해 민중의 힘으로 변화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 우리는 공동학습의 가능성을 믿는다. 수업이 학강들과 강학들 하나 하나를 깨어나게 만든다면 세미나에서 우리는 사회를 깨어나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밑그림을 조금씩 그려나갈 것이다.

= 우리는 힘들지만 아주 의미 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많은 사회운동이 민중을 이야기하면서도 민중을 빼먹고 있다. 말만 앞서거나 눈에 띄는 단편적인 시위에만 매달릴 뿐 우리가 겪고 있는 힘겨운 실험을 감당하지 않으면 민중의 사회참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이론이든 체계든 우리의 역량을 하나씩 쌓아나가야 한다. 사람들은 계속 나가고 들어오지만 우리의 문제의식은 남아서 이론을 키워나가야 한다. 학습과 사회참여의 방법들을 조금씩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 오늘 야학을 떠나고 몇 년 뒤에 다시 야학을 찾아와서 부쩍 성장한 야학을 보고 깜짝 놀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문제의식을 후배들이 키워나갈 수 있도록 체계를 쌓아야 한다. 우리는 좀더 치열하게 생각하고 좀더 열정적으로 부딪혀야 한다.

= 공동학습은 생각의 공유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이 서로 생각들을 주고 받으면서 그렇게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생각들이 명확해지고 건강하게 커나갈 것이다. 그 가운데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를 넘어 사회와 사람들을 넓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공동학습에서는 서로 가르침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가르침 가운데 대안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나가고 실제로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공동학습은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철저하게 현실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 우리는 실험과 시행착오을 계속하면서 이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끊임없이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 다른 야학과 다른 시민운동단체와 다른 많은 사람들과 문제의식과 해답을 항상 주고받아야 한다. 나는 야학을 넘어 시민학교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학습을 통한 사회참여, 해답을 찾기 위한 공동학습에 뛰어들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공동학습을 위한 이론들을 실험을 통해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민중의 사회참여라는 점에서 야학은 가장 과격한 사회운동이다.

= 야학은 소통없는 사회에 건강한 소통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이다. 그런 배움과 가르침이 결국 변화의 밑바탕이 되고 혁명의 도구가 될 것이다.

성광야학, ‘새 교무에게’ 가운데.


저는 많은 소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훈이와 졸업생들이 일요일에 하고 있는 공인중개사 자격증 모임도 야학의 공식 소모임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밖에도 정호가 클래식 기타 모임을 만들 수 있을 거고, 최근에 이야기 된, 영화 모임이나 풍물 모임, 서예 모임도 사람만 모이면 얼마든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적인 철학 모임도 가능할 거고, 그동안 해왔던 신자유주의 반대 모임이나 철거민 문제 연구 모임, 비정규직 문제 연구 모임 등도 하나의 모임으로 자리잡으면 좀더 깊이있는 논의를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내년 총선을 앞두고 낙선 운동 모임이나 의왕시 총선 시민연대를 만들 수도 있을 거고 의왕시와 관련해서 행정정보 공개운동을 계획하거나 의왕시의 비평준화 문제를 논의하는 모임을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들 모임과 별개로 검정고시 공부 모임이 여전히 존속될 수도 있습니다. 한글 공부 모임이 만들어 질 수도 있고 수능 100일 준비 모임이 만들어 질 수도 있습니다. 야학에서 직접 프로젝터를 구입해서 토요일마다 영화를 보는 모임을 꾸리면 야학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끌어 모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닫혀 있지 않고 누구나 강학이고 학강이고 수많은 사람이 들락날락거리면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곳,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현실을 이겨내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모임을 만들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서로 주장하고 설득하는 곳, 야학이 지역 사회의 열린 배움의 공간, 시민 운동의 인자를 길러내는 곳이 되고 발전적인 담론을 만들어내는 곳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소식지는 각각의 소모임들에서 나온 논의와 성과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매체가 됩니다. 발전시켜서 지역 신문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야학은 지역 사회와 시민운동의 유기적인 네트워크의 중심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습을 통한 사회 변화는 그때 비로소 구현되지 않겠습니까.

성광야학, ‘야학의 위기와 두가지 해법’ 가운데.


성광야학과 수유연구실의 차이는 구성원의 차이에서 비롯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다시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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