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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노무현 비판을 생각함.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5, 2003

왜 그럴까. 나는 강준만에게는 관대하면서 진중권에게는 인색하다. 내용을 떠나서 나는 진중권의 글쓰는 방식이 싫다. 가끔 신랄하고 재치가 넘치는 글도 눈에 띄지만 나머지는 기교의 과신이거나 과잉이다. 결국 내용은 비켜나고 얄팍한 기교만 남는다. 아래의 글도 마찬가지다. 딱히 이 글이 문제가 아니라도 나는 오래전에 진중권의 글쓰기에 질렸다. 내용을 떠나서 일단 진중권의 글쓰기 방식이 싫다. (진중권 비판은 다시 하겠다. 해야할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나는 노무현 비판에 좀 지나치게 예민하다. 딱히 노무현을 열성적으로 지지해서는 아니다. 그러나 이를 테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거나 정치가 엉망이 됐다거나 노무현이 저럴줄 몰랐다거나 지지자들을 배반했다거나 그래서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거나 하는 감정적인 비판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그런 비판 가운데 상당수는 임금이 덕이 없으니 홍수가 잦다거나 전염병이 돈다는 이유 없는 비난처럼 감정적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경제는 딱히 어렵지 않다. 정치는 늘 이랬고 앞으로도 한동안 이럴 수밖에 없다. 홍수나 전염병이 노무현의 탓이 아닌 것처럼 노무현 비판, 상당 부분의 원죄는 노무현에게 있지 않다. 변화는 점진적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노무현에게 기대를 거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합리적인 비판은 물론 필요하고 받아들여야겠지만 나는 사람들의 조급증과 호들갑이 안타깝다.

나는 사안에 따라 노무현을 지지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나는 맹목적으로 지지하지도 맹목적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안타깝지만 나는 현실을 생각하고 노무현의 현실적인 판단을 이해하고 힘을 실어주려고 노력한다.

서프라이즈와 진보누리에 가끔 들어가 보면 정말 우리 세대의 정치적 관심이 놀랍기만 하다. 그야말로 백가쟁명의 시대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에 힘을 실어준 서프라이즈와 서프라이즈에서 갈라져 나와 노무현을 비판하기 시작한 동프라이즈, 다시 동프라이즈에서 갈라져 나와 아예 노무현에게 등을 돌리고 민주당을 감싸고 도는 남프라이즈. 그리고 이들과 별개로 처음부터 노무현을 신뢰하지 않았던,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만든 진보누리.

그러나 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의 관심이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고 개별 사안과 사건에만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지극히 정치적인 사안과 사건에 대한 관심과 논쟁일뿐 방향과 전망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지는 않는게 아닐까.

노무현이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이야기하거나 유시민이 평상복 차림으로 국회에 나가거나 한발 더 나아가 특검법이 통과되거나 최병렬이 단식을 하거나 민주당과 우리당이 분열하거나. 다들 해석과 판단이 다르겠지만 모두 소모적인 논쟁의 대상일뿐 정치의 본질은 아니다. 사람들은 왜 이념과 대안으로 싸우지 않고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려고 싸우는 것처럼 다만 논쟁에서 이기려고 싸우는 것일까. 왜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쉽게 판단하고 흥분하는 것일까.

가뜩이나 더 큰 문제는 최근 그런 소모적인 논쟁의 바탕에 지역감정을 둘러싼 뿌리깊은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는데 있다. 심지어 조장되거나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 어수선한 난장판은 물론 한심한 상황 탓이다. 민주당과 우리당이 갈라져서 싸우더니 결국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손잡고 노무현 죽이기에 나섰다. 열띤 논쟁의 와중에 결국 민주당은 전라도 정당이 되고 열린우리당은 전라도에 배신을 때린 정당이 된다. 민주당이 전라도 정당으로 주저앉기 바라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논리겠지만 그런 감정적인 주장은 쉽게 먹혀들기 마련.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는 강준만은 아예 전라도 기득권을 옹호하는 호남 패권주의자로 매도 된다.

나는 노무현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노무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실수가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노무현을 끌어내릴 수는 없지 않은가. 합리적인 비판은 물론 필요하고 받아 들여야겠지만 자칫 너무 빨리 노무현을 레임 덕으로 몰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진중권의 비판에 98% 정도 동의하지만 민주노동당이 노무현을 적으로 삼아야 하는 현실이 나는 안타깝다. 싸워야 할 외부의 적이 아직 많다. 사안에 따라 부분적으로 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민주노동당의 노무현 비판은 그래서 더욱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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