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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증권의 비극.

Written by leejeonghwan

May 1, 2004

외국계 투기자본의 횡포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30일 오후 서울 을지로 입구 브릿지증권 11층, 플래카드와 대자보가 어지럽게 나붙은 가운데 노조원들이 40일째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회사는 지금 매각 또는 해체의 수순에 직면해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다.

브릿지증권의 대주주인 BIH(브릿지인베스트홀딩스)는 지난 22일 을지로 사옥과 여의도 사옥을 GE부동산에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714억1천만원에 이른다. 브릿지증권은 멀쩡한 건물을 팔아넘기고 그 건물에 세를 들어사는 신세가 됐다. 브릿지증권 노조는 외국계 투기 자본이 회사의 자산을 빼돌리려 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BIH는 미국의 위스콘신연기금과 홍콩의 리젠트그룹 등이 세운 투자 펀드로 말레이시아의 조세회피 지역 인 라보안에 본사를 두고 있다. BIH의 지분은 전체 주식의 70.88%에 이른다. 자사주를 포함하면 사실상 90%가 넘는다. 브릿지증권의 이사는 모두 7명인데 이 가운데 윌리엄 다니엘 사장을 비롯한 5명이 BIH에서 임명한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노조는 지난해 11월 우리사주 조합을 결성해 올해 3월까지 1% 가량의 지분을 확보했으나 정면 대응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급기야 29일 브릿지증권 이사회는 6월15일 주주총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대규모 유상감자 안건이 논의될 전망이다. 유상감자는 무상감자와 비슷하지만 회사가 주주들에게 돈을 주고 주식을 사들인다는데서 다르다. 회사의 자산이 줄어든만큼 주주들은 돈을 챙긴다. 그러면서도 주주들의 지분 비율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에 앞서 지난 4일 BIH는 노조에 이같은 계획을 통보한 바 있다. BIH는 이번에 1200억원을 회수하는 조건으로 올해 11월까지 구조조정 및 추가 자본 감소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BIH는 이번에 들어온 건물 매각대금으로 대규모 무상증자를 실시한 다음 유상감자를 통해 자본금의 상당부분을 회수할 계획이다. BIH는 이같은 계획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상장폐지나 매각, 대규모 구조조정 등을 단행할 수도 있다는 엄포를 늘어놓기도 했다.

노조는 사실상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다. 파업에 들어갔으나 비정규직이 많고 노조 가입율이 낮아 회사에 큰 타격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강승균 노조 부위원장은 “주주총회까지 가면 표 대결로 BIH를 이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회사의 자산을 1200억원이나 빼돌리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노조는 BIH가 이번 유상감자를 통해 자산을 빼돌린 다음 회사를 헐값에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미 농협 등이 증권사 인수에 관심이 있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노조에 따르면 브릿지증권의 자산은 모두 36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여기에 400억원 규모의 증권거래소 회원권을 포함하면 모두 4천억원 규모다. BIH가 브릿지증권에 투자한 원금은 모두 2200억원 규모. BIH는 이미 대규모 배당과 주식매수 청구 등으로 이 가운데 647억원을 회수한 상태다. BIH는 결국 1500여억원으로 90%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고 4천억원 규모 회사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노조는 투자자금 회수가 여의치 않을 최악의 경우 BIH가 회사를 청산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BIH로서는 청산을 하면 오히려 돈을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

BIH의 이같은 횡포에 대해 정부 또한 속수무책이다. 금융감독원 증권감독국 이원관 팀장은 “주주총회를 통한 유상감자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BIH의 전신인 KOL(코리아온라인)은 1998년 대유증권을 인수한데 이어 2000년 일은증권을 인수했다. 뒤에 대유증권은 리젠트증권으로 이름이 바뀌고 두 회사는 2002년에 합병되면서 다시 브릿지증권으로 이름이 바뀐다. 약탈은 1999년부터 시작됐다. KOL은 주주총회에서 70%의 고배당을 결의했다. KOL은 초기 투자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이때 회수해 갔다.

이어 2002년 7월 BIH는 이사회를 개최하고 자본 감소와 자진 상장 폐지를 결의한다. 이같은 결정은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주식 매수청구가 쏟아졌다. 브릿지증권은 회사 자산을 쏟아부어 그 주식을 사들였다. 이렇게 사들인 주식은 지난해 5월과 6월에 거쳐 대부분 무상소각된다. 그 결과 회사의 자본은 크게 줄어들었고 대주주인 BIH의 지분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

주목할 부분은 BIH의 지분이 51%에서 90%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BIH가 직접 주식을 사모으지 않았다는사실이다. BIH는 이사회를 통해 회사 돈으로 자사주를 사도록 결의하고 자사주가 모일만큼 모이면 자사주를 소각하도록 했다. 결국 그만큼 BIH의 지분비율은 올라간다. 사실상 회사의 자산이 BIH에게 그대로 빠져나간 셈이다. 그렇게 2002년 11월부터 2003년 8월까지 9개월 동안 4차례에 걸쳐 805억원이 빠져나갔고 브릿지증권의 자본금은 1164억원에서 688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최정식 사무금융연맹 사무처장은 “브릿지증권의 자본 약탈은 외국계 투기자본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최 처장은 “브릿지증권 뿐만 아니라 만도나 OB맥주 등에서도 외국계 투기자본이 유상감자를 통해 회사의 자산을 약탈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찬근 인천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헐값 매각과 탈세, 고배당, 감자를 통한 회사 자금 탈취 등 외국계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유출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감자 조치를 인허가 사항으로 규제하고 회사의 자산 탈취에 대한 법적 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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