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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에릭슨.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29, 2004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고 난리다. 1분기 석달 동안 순이익이 무려 3조1300억원에 이른다. 이 엄청난 이익은 과연 누구의 몫일까. 이건희 회장의 몫일까. 아니면 삼성전자 주주들의 몫일까. 삼성전자 직원들의 몫일까.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14조4천억원, 순이익은 3조1300억원에 이른다. 영업이익은 4조89억원으로 그야말로 사상 최대 규모다. 반도체와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휴대전화 등이 불티나게 팔린 덕분이다.

삼성전자의 이번 실적은 세계 1위의 반도체 기업 인텔보다도 앞섰다. 순이익을 달러로 환산하면 27억2천만달러, 인텔의 순이익은 17억3천만달러 밖에 안된다. 다른 굴지의 정보기술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IBM의 순이익은 16억달러, HP는 8억달러, 델은 6억달러에 그쳤다. 그야말로 삼성전자가 세계 최우량 기업이라고 떠들어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삼성전자의 수익모델은 크게 반도체와 TFT-LCD, 정보통신으로 나뉘는데 각각 영업이익률이 43%와 35%, 26%에 이른다. 이만큼 짭짤한 장사를 하는 회사는 세계를 통털어 몇군데 안된다.

실적발표를 하던 날 삼성전자 주우식 상무는 “이 놀라운 실적은 모두 지난 몇년 동안 과감한 선행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주 상무는 “반도체의 수요가 안정적으로 늘고 있는데다 TFT-LCD도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고 휴대전화도 확실한 제품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다”며 “2분기에도 실적 호조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과연 삼성전자는 이렇게 긁어들인 돈 다발을 도대체 어디에 쓰는 것일까. 삼성전자는 지난해 모두 5조5989억원의 순이익을 냈는데 이 가운데 8866억원이 배당으로 주주들에게 빠져나갔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분은 48.9%, 외국인 투자자들이 챙겨간 몫은 모두 4335억원에 이른다. 물론 임직원들에게도 화끈한 돈 잔치를 했다. 삼성전자 등기 임원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기준으로 29억4천만원에 이른다. 성과급도 푸짐하다. 지난 2002년 월 기본급 기준으로 500%의 특별 상여금을 전체 직원들에게 지급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150%의 생산성 인센티브와 50%의 초과이익분배금을 지급했다.

그렇게 펑펑 쓰고도 현금은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은 7조9900억원에 이른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올해도 16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릴 전망이다. 그야말로 돈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7조92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저런 차입금을 충분히 갚고 나도 14조원 이상이 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마땅히 쓸데도 없어 그냥 움켜쥐고 있는 돈이 그렇게 많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하나 엉뚱한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기업이 펑펑 쓰고도 남을만큼, 마땅히 더이상 쓸데도 없을만큼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도 되는 것일까. 기업의 목표는 과연 이윤 창출일까. 그렇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스웨덴의 에릭슨이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흥미로운 비교는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에릭슨도 삼성전자만큼이나 큰 회사다. 에릭슨의 모회사 발렌베리 그룹은 에릭슨뿐만 아니라 사브와 ABB, 일렉트로룩스 등 굴지의 대기업을 거느린 재벌그룹이다. 발렌베리 그룹 14개 계열사의 시가총액 비중이 스웨덴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40%를 넘어설 정도다.

삼성전자와 에릭슨은 크게 두가지에서 다르다. 먼저 스웨덴은 연대임금제를 도입해서 에릭슨에 다니는 노동자나 조그만 중소기업에 다니는 노동자나 임금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생산직과 사무직의 임금도 거의 비슷하다. 연대임금제는 어떤 회사를 다니든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삼성전자 노동자의 임금을 지금보다 3분의 1 이상 많게는 절반 가까이 깎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돈이 넘쳐나는 회사에서 노동자들 임금을 깎으라니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스웨덴은 1950년대에 연대임금제를 처음 도입했는데 그때 취지는 대기업들 임금을 깎아서 대외 경쟁력을 갖추자는데 있었다. 대기업들은 절감된 인건비만큼 고용을 늘리거나 신규 투자를 해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연대임금제를 도입하면 대기업 노동자들은 임금이 깎이겠지만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임금이 늘어난다. 당연히 기업의 부담도 늘어나고 경쟁력 없는 기업은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대기업만 신나는 제도다.

삼성전자와 에릭슨의 두번째 차이는 이익의 사회환원에 있다. 스웨덴에서는 모든 소득의 50% 이상이 세금으로 나간다. 에릭슨처럼 돈을 잘 버는 회사는 당연히 세금도 엄청나게 낸다. 스웨덴에서는 삼성전자처럼 쓰지도 못할만큼 엄청난 이익을 내는 회사가 나올 수 없다.

여기에 중요한 해답이 있다. 연대임금제를 도입하는 대기업은 임금을 깎는만큼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은 문을 닫아야겠지만 대기업은 더욱 규모를 키워나간다. 그리고 그 기업의 이익은 사회에 환원된다. 사회는 기업을 믿고 기업은 사회의 복지를 떠받친다. 그게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기본 모델이다. 핵심은 조금 공허하게 들리지만 연대와 화합이다.

정부는 그렇게 거둬들인 엄청난 세금을 아낌없이 복지에 투자한다. 스웨덴에서는 2~6세 아이의 80% 이상이 공공 탁아소에서 자란다. 탁아소 요금은 거의 무료에 가깝다. 진부하긴 하지만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부가 모든 걸 책임진다.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은 기본이다. 이렇게 하는 일이 많다보니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이 넘을 정도다. 정부가 앞장 서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좋은 회사에 다니면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삼성이 해마다 직원들에게 수천만원씩 성과급을 주는 것도 부럽기만 할뿐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모든 노동자들이 비슷한 임금을 받는다. 에릭슨에 다니는 노동자나 이발사나 청소부나 은행원이나 임금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잘버는 회사의 노동자들은 못버는 회사의 노동자를 위해 임금의 일부분을 기꺼이 희생한다. 그들이 임금이 깎이는만큼 사회는 더 평등하게 되고 복지는 더 향상된다.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한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넉넉하고 여유롭다는 이야기다. 스웨덴에서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조건의 평등이다.

기업의 이익은 그 기업 회장이나 사장의 몫도 아니고 그 기업 주주들의 몫도 아니다. 그 기업 노동자들의 몫이기도 하고 그 기업이 딛고 서있는 사회의 몫이기도 하다. 삼성전자가 쓰지도 못할 돈을 짊어지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의 탓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탓이다. 스웨덴의 관념으로 보면 삼성전자의 이익은 사회에 환원돼야 한다. 기업도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사회와 무관하게 기업은 성장할 수 있지만 스웨덴은 연대와 화합의 길을 찾았다. 기업이 사회를 걱정하지 않으면 대안은 없다.

노조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기업에게 노동자와 사회의 복지를 책임지라고 주문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핵심은 미국의 자본주의는 결국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데 있다. 스웨덴이 무작정 미국의 자본주의를 따라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는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만 자칫 삼성전자만 살아남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스웨덴은 특히 발렌베리 그룹 대주주 일가의 주식 의결권을 1000배까지 인정해줬다. 그렇게 그룹의 지배를 인정해주는 대신 이들은 이익을 기꺼이 사회에 환원한다. 발렌베리 그룹의 대주주들은 배당 이익의 50% 이상을 재단을 통해 교육과 여성, 아동 복지에 기부한다.

물론 스웨덴이 최선의 대안은 아니다.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많은 문제와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스웨덴이 스웨덴 나름의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온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현실에 맞는 자본주의를 모색해야 한다.

* ‘HR프로패셔널’에 보낸 아르바이트 원고. 취재 좀 하고 공부도 하고 좀더 제대로 써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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