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이발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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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를 꽤나 비슷하게 흉내냈는데 어딘가 언짢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따뜻한 이야기니까 그냥 보고 감동만 느끼라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감동을 느끼기에는 상황이 너무 어설프고 억지스럽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발사 성한모는 얼떨결에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다. 이발사가 본 대통령은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냥 대통령이고 그냥 마냥 두려울 뿐이다. 대통령이 곧 법이던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그런 대통령의 이발사라는건 이발사에게는 최고의 명예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통령이 어떤 대통령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대통령은 설사병을 하는 사람을 잡아가둔다. 북쪽에서 내려온 간첩들이 설사병을 옮겨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사병을 하는 사람이 모두 간첩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간첩을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이쯤되면 웃어야 할까 언짢아 해야 할까 갈피를 잡기 어렵다. 설사병을 하는 사람들은 어딘가로 끌려가서 지독한 고문을 당하고 재판을 받고 결국 죽는다. 1974년 10월 유신 무렵이다.

그런데 이발사의 아들이 그 설사병에 걸린다. 이발사는 괜한 충성심에 아들을 파출소로 데려간다. 이제 겨우 10살인데 누가 이 아이를 보고 간첩이라고 하겠어? 게다가 나는 대통령의 이발사잖아.

아이는 끌려가서 어른들처럼 전기 고문을 당한다. 여기서 우리가 견딜 수 없는건 아이를 고문하는 권력의 잔인함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고문하는 영화 감독의 상상력의 결핍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냥 따뜻한 이야기니까 그냥 보고 감동만 느끼라고 한다. 몇달만에 돌아온 아이는 고문 끝에 결국 다리를 못쓰게 된다. 이발사 아버지는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들쳐업고 전국 방방곳곳을 떠돌며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다닌다. 이쯤해서 감동의 눈물을 한번쯤 흘려줘야 된다.

온갖 약을 다 써도 아이는 걷지 못하고 돌아온 이발사는 다시 대통령의 머리를 깎기 시작한다. 이발사는 어린아이에게 전기고문을 하는 무자비한 권력과 대통령을 연결시키지 못한다. 그는 분노할줄도 모른다. 아픔을 모두 끌어안고 다만 견뎌낼 뿐이다.

‘효자동 이발사’에서 우리나라 현대사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나열되기만 한다. 언뜻 권력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제대로 부딪히지도 제대로 들여다 보지도 않는다. 지나간 역사를 툭툭 건드리고 있을 뿐이다. 아이가 전기 고문을 당하는 장면마저도 마치 동화처럼 그려낸다. 아이가 입에 전구를 물면 파란 불이 들어오고 고문 기술자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쇼란 말인가.

5월 5일 개봉 예정. 상상력의 결핍과 강요된 감동, 빈약하고 무책임한 역사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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