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임의 영화 음악’ 폐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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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은 발음부터 특별했다. ‘ㅅ’ 발음을 할 때면 ‘ㅊ’ 비슷한 ‘ㅊ’ 보다는 좀 가벼운 파찰음이 났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은 더욱 특별했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은 전혀 다른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를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지난해 10월, 청취율이 낮다고 폐지됐던 이 프로그램이 8년 6개월만에 부활됐을 때 잊혀진 영화와 지나간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은 특별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6개월만에 이 프로그램이 다시 폐지된다고 한다. ‘정·영·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8년 6개월 동안 이 프로그램을 기다려왔다. 그 사람들에게도 이번 개편은 어이가 참 없을 것 같다.

엠비시 홈페이지에 실린 개편안의 내용은 이렇다.

접촉도 낮은 프로그램 통폐합, 와이드화
-『정은임의 영화음악』+『송기철의 월드뮤직』→ 『박소현의 All That Music』

아래는 월간 ‘말’ 4월호 기사 가운데. 이오성 기자.

과거의 정영음이 그랬듯 방송과 사회의 모순이 첨예할수록 그의 목소리도 함께 떨리곤 한다. 복귀한 뒤 두 번째 방송을 하던 날의 오프닝 멘트를 듣고 기자는 가슴이 떨렸다.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고공 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주익씨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는 스스로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겨우 매달린 기분으로’ 청취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최신유행의 피곤한 수다로 점철되는 FM 방송에서는 물론, 여느 개혁적이라는 매체에서도 이처럼 애틋한 멘트는 듣기 힘들다. 단순히 싸구려 감수성으로 포장할 수 있는 깊이가 아닌 탓이다. 적지 않은 양의 방송 멘트를 써내려가는 일도 때때로 그의 몫이다. 그런 만큼 그에 따른 부담도 함께 돌아온다.

“오늘은 이 이야기 안 하면 목구멍에 가시가 돋힐 것 같다는 날은 꼭 직접 써요. 영화도 시선이 다르면 달리 보이듯이 어차피 방송을 진행하는 제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굉장히 비난 많이 받았어요. 나더러 노동자에 대해 뭘 아느냐. 육체노동자로서의 노동자계급에 대해 뭘 아느냐고 이야기하더군요. 거기에 방송이나 언론의 허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이 세상은 마이크나 펜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계급적 기반에 따라 모든 것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거야말로 정말 무시무시한 SF 영화 같은 세상 아닌가요. 모든 것이 나의 물적 좌표에 따라 바둑판처럼 이미 짜여진 세상. 너는 중산층이고, 한 달에 얼마 버니까 얼마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하라는 거죠. 그들을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게 아니라 주위에 손배가압류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보면 괴롭고, 고민되고 그런 걸 이야기하고 다른 세상을 꿈 꿀 수 있는 거잖아요.

난 비록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할 수 없나요? 왜 ‘8학군 기자들’ 이야기가 나오겠어요. 방송국에도 정말 8학군 출신 기자들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점점 뉴스에서도 시선이 한쪽으로만 흐르게 돼요. 노동자, 농민 이야기는 그들의 생리나 환경과 맞지 않아서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눈도 돌리지 않고. 말은 심각하지만, 그게 일상으로 돌아가면 전혀 심각한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 옆에서 투명인간화되어 버리는 청소하시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뿐인데.”

(영화 평론가 정성일씨 홈페이지에 가면 ‘정은임의 영화음악’ 가운데 정성일씨 출연 부분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my.dreamwiz.com/dorati1/film-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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