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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운동, 좌파적 상상력이 필요할 때.

Written by leejeonghwan

April 15, 2004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하루 한가치 이상 담배를 피우는 성인 남성이라면 당신이 폐암에 걸려 죽을 확률은 최소 0.28%다. 성인 남성 흡연자 1천명 가운데 3명 정도가 폐암으로 죽는다는 이야기다. 담배를 더 많이 더 오래 피울수록 이 비율은 높아진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폐암으로 죽은 사람은 모두 1만2587명, 이들 가운데 90%는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 됐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다. 폐암 뿐만 아니라 남성 암 사망자 가운데 30%, 여성 암 사망자 가운데 5%가 담배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밖에도 심장병이나 뇌졸중 등으로 담배가 원인이 돼 죽는 사람이 한해 3만명에 이른다. 이 숫자는 해마다 늘어 2020년이 되면 5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앞으로 20년 동안 무려 87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담배 때문에 죽을 거라는 계산이 나온다. 열집 건너 한집 꼴이다. 놀랍지 않은가.

당신이 하루 두갑씩 20년 동안 담배를 피운다면 당신이 폐암에 걸릴 확률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보다 70배나 높다. 당신 같은 사람 10명 가운데 한명 꼴로 폐암에 걸린다고 보면 된다. 최근 흡연인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데도 폐암 환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의 우리 사회 흡연 문화를 반영한 탓이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서 20년이 지나면 폐암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끊고 난 다음에도 담배의 독성은 15년 이상 체내에 남는다. 전문가들은 2020년까지 폐암 환자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통계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20대 남성의 흡연율은 66.2%에 이른다. 30대와 40대는 각각 61.4%와 55.7%로 20대의 흡연율이 가장 높다. 30대와 40대의 흡연율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지만 20대의 흡연율은 여전히 높다. 청소년들의 흡연율은 더 문제다. 25세 이후 흡연을 시작할 경우 폐암으로 죽을 확률이 비흡연자의 2.5배지만 15세 이전에 담배를 피우면 무려 18.7배로 늘어난다. 지난해 기준으로 남자 고등학생의 흡연율은 22.1%, 남자 중학생은 2.8%에 이른다.

사회구조를 살펴보면 흡연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이제 본격적인 노령화 사회에 접어든다.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8.4%에서 2020년이면 15%로 두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노령화 속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노동력 부족은 물론이고 노인 인구를 부양하는 1인당 부담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사회보장 제도는 이런 급격한 변화를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젊은 세대는 수없이 담배로 죽어나간다. 사회는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데 젊은 세대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병들어 간다. 이 모든 일들이 지난 10년과 앞으로 20년 사이에 벌어질 일이다. 우리나라의 담배의 폐해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정수 박사에 따르면 흡연은 빈곤과도 무관치 않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못배우고 못사는 사람들이 더 많이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세 이상 성인 79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문대졸 이상 남성의 흡연율은 58.2%인 반면 초등학교 졸업 남성의 흡연율은 61.2%로 3%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흡연량도 전문대졸 흡연자가 하루 평균 16.1개피를 피우는 반면 초등학교 졸업 흡연자는 17.2개피로 1.1개피를 더 피웠다. 직업별로도 사무직 흡연자가 16.5개피를 피우는 반면 농어업과 단순노무직 흡연자는 각각 18.4개피와 17.5개피로 흡연량이 더 많았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폐암 환자는 평균 462만원을 치료비로 쓰는데 이 가운데 80%가 3년 이내에 죽는다. 폐암 환자의 생존율은 15%도 안된다. 흡연은 계급의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담배를 피우고 더 많이 병에 걸리고 더 빨리 죽는다. 금연율과 금연 시도율도 저소득과 저학력 계층에서 훨씬 낮다. 담배를 권하는 사회에서는 빈곤이 흡연을 만들고 흡연은 빈곤을 더욱 심화시킨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올해 5월31일 ‘세계 금연의 날’ 주제를 ‘담배와 빈곤’으로 정했다. 선진국에서 담배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담배가 유행이다. WHO에 따르면 한해 7조7천억개피의 담배 가운데 60%가 개발도상국에서 소비된다고 한다. 이들은 식품이나 다른 필수품을 살 돈으로 담배를 산다. 중국에서는 무교육자가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보다 6.9배나 담배를 더 피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담배 구입비로 지출되는 돈의 3분의 2만 식품 구입비에 쓰여도 1천만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가리아의 성인 흡연자는 가계 총 수입의 10.4%를 담배 구입에 쓴다.

가난한 사람들은 건강을 망쳐도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건강을 잃는다는 건 노동력을 잃는다는 걸 의미한다. 폐암에 걸리는 순간 이들의 가족은 곧 생계조차 곤란한 처지로 전락한다. 담배는 저소득 계층의 빈곤을 더욱 심화시키고 고착시킨다.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이들에게 담배의 해악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알려주더라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금연운동은 사치가 아니라 절실한 생존의 문제다. 담배를 끊지 않으면 결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 금연운동의 역사는 짧다. 미국이 일찌감치 1964년 담배의 해악을 인정하고 담배에 대한 규제를 시작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비행기나 기차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병원 복도에서 의사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지난 35년동안 4500만명이 금연에 성공하면서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65%에서 23%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흡연율은 꾸준히 늘어났고 미국에서 건너온 수입 담배도 그런 흡연율에 한몫을 했다. 우리나라의 흡연율이 둔화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7~8년 사이의 일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60%에 육박한다. 세계 최고, 방글라데시나 터키와 비슷한 수준이다.

1994에 발효된 공중위생법과 1995년에 발효된 국민건강증진법은 공중 교통시설이나 공공장소 등에서의 흡연을 포괄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19세 이하 청소년에게 담배 판매가 금지된 것은 1998년 청소년 보호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물론 이 법은 아직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담배 갑 겉면에 “지나친 흡연은 건강을 위해 삼가자”는 경고 문구가 들어간 것은 1976년부터다. 이 문구는 1989년 한국금연운동협의회의 제안에 따라 “담배는 폐암 등의 원인이며 특히 임산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다”는 좀더 직설적인 문구로 바뀐다. 그러나 이 정도 경고 문구는 눈에 잘 띄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경고의 강도도 외국에 비해 크게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TV 드라마에서 흡연장면을 내보내지 않기로 한 것은 2002년부터다. 이 약속도 종종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WHO 192개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담배규제 기본협약은 담배 광고는 물론이고 담배회사의 후원 및 제품 판촉을 앞으로 5년 내로 금지하거나 철저히 규제할 것, 아울러 담배 갑에 경고문을 표기하고 담배 세금을 인상하고 밀수를 근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40개국 이상이 이 협약을 의회에서 비준하면 이 협약은 국제법의 효력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담배회사의 잡지 광고를 허용하고 있다.

담배값 인상 논란은 아직 진행중이다.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은 담배값을 최소 1천원 이상 올라겠다는 입장이지만 재정경제부 등은 물가인상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흡연할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2년 기준으로 미국의 담배가격은 평균 4400원, 일본은 2544원, 영국은 6888원인데 우리나라는 1764원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윤정 연구원은 담배값이 1천원 오르면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60.5%에서 51.4%로, 남자 고등학생의 흡연율은 23.6%에서 14.3%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어른보다 청소년 흡연율 저하에 더 실효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현재로서는 담배값 인상이 흡연율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다. 저소득층에게 부담을 안긴다는 반발이나 흡연권을 앞세운 일부의 주장과 관련해 최진숙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사무국장의 입장은 단호하다. 담배를 독극물로 보면 해답이 분명하다는 이야기다. “흡연은 흡연자 자신에게는 자살행위고 주변 사람에게는 타살행위가 됩니다. 흡연할 권리라는 건 인정될 수 없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담배값을 인상하면 늘어날 4조원의 건강증진 부담금으로 암의 조기 검진과 치료, 금연 프로그램 운영, 암 병원 설치 등의 재원으로 쓰겠다는 입장이다. 국립암센터 서홍관 박사는 한발 더 나아가 금연초나 금연침, 니코틴 패치 등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하고 보건소 등을 통해 본격적인 무료 금연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핵처럼 금연과 폐암 치료를 국가가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서 박사는 군대에서의 흡연도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5분의 1 가격으로 판매되는 면세 담배를 없애야 합니다. 군대는 비흡연자를 흡연자로 불규칙 흡연자를 규칙 흡연자로 만듭니다. 군대가 젊은이들의 건강을 망치고 있습니다.”

김철웅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이제 전교조나 민주노총 등 진보진영도 금연운동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강의 불평등은 결국 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병에 걸릴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살고 있다.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의 환경은 더욱 열악하다. 그들은 더 쉽게 병에 걸리고 병에 걸리면 모든 것을 잃는다. 흡연은 계급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고 질병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좀더 구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 금연운동은 흡연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해왔다. “몸에도 안좋은 걸 뭐하러 피우느냐”, “의지가 약하니까 못끊는다”고 비난하는 식이다. 그에 맞서 “차라리 짧고 굵게 살겠다”는 자학과 냉소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흡연율과 폐암 사망률은 아직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0년까지 87만명이 담배 때문에 죽는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방치해 왔다.

흡연은 문화다. 우리 노동 현장에서는 휴식 시간에 다같이 담배를 찾아무는 게 일상화돼 있다. 학교에서는 담배 피우는 아이들을 나무라기 보다 못본척 눈감아주고 이해하고 다독거리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으로 인정받는다. 우리는 흡연에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무관심하다. 이제 좌파적인 상상력이 필요할 때다. 담배는 민중의 적이다. 금연운동은 건강이나 웰빙 이전에 민중의 생존의 문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작업장에서 담배를 몰아내야 한다. 잘못된 문화라면 바꿔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담배의 생산과 판매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좀더 본질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진보진영이 나서야 한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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