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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몽크.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7, 2008

에이드리안 몽크는 사랑하는 아내 트루디가 죽고 난 뒤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잘 나가던 강력반 형사였던 그는 3년 동안 집밖에 나오지 않다가 지금은 탐정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고의 탐정이지만 누군가의 셔츠에 얼룩이 묻어 있거나 테이블 위에 놓인 연필의 길이가 다르거나 하면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한다. 경찰 복직을 희망하지만 거부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악수를 할 때마다 물수건으로 손을 닦아야 하고 엘리베이터가 무서워 30층 건물을 걸어 올라간다. 길을 걸을 때면 모든 기둥을 한번씩 꼭 만져줘야 한다.

몽크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 드라마가 강박증 환자들을 희화화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금방 바뀌었다. 에피소드마다 사람이 잔혹하게 죽어 나가지만 몽크는 따뜻하고 유쾌한 드라마다. ‘몽크’를 보면 누구나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몽크’는 단순히 안도감을 심어주는 것을 넘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트루디가 죽은지 10년이 다 돼 가지만 몽크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괴팍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언뜻 짜증스럽거나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몽크의 주변 사람들은 몽크를 아끼고 끌어안고 세심하게 보살펴 준다. 그의 놀라운 재능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가 가진 진실과 정직의 힘을 믿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시즌 6, 에피소드 9, ‘Monk is up all night(몽크 밤을 꼬박 새다)’는 모든 시즌을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에피소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아직 못 본 사람은 읽지 말 것.)

몽크는 조수 나탈리와 길을 걷다가 뚱뚱한 여자를 마주치고 쫓아가는데 결국 놓치고 만다. 그 뒤로 몽크는 사흘이나 잠을 이루지 못한다. 뚱뚱한 여자는 아무래도 몽크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언뜻 로멘틱한 분위기로 갈 것 같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다. 몽크는 저녁마다 나탈리에게 전화를 걸어 괴롭히고 나탈리는 산책을 하면 잠이 올 거라며 전화를 끊는다.

산책을 하던 몽크는 그 뚱뚱한 여자가 택시를 모는 걸 발견하고 쫓아가다가 어두침침한 골목길에서 한 식당 주방 창문을 통해 살인 현장을 목격한다. 신고를 하고 경찰이 출동하지만 막상 경찰이 와서 살펴보니 현장은 말끔히 치워져 있고 핏자국도 없다. 스토틀마이어 경감은 몽크에게 술집에 가서 스카치나 한잔 하고 들어가서 푹 자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다음 장면에서 몽크는 술집에서 사기꾼 남자를 만나 시시콜콜한 잡담을 늘어놓는다. 트루디가 장기 기증을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택시 기사 때문에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 등등. 사기꾼은 기차역 앞에 가서 배차원에게 물어보라고 말하면서 몽크의 지갑을 슬쩍한다.

몽크는 기차역에 가서 택시 기사의 이름을 확인하고 4시 반쯤 오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 순간 몽크는 방금 전에 총에 맞아 죽었던 남자가 기차역으로 들어가는 걸 발견한다. 몽크는 스토틀마이어에게 다시 전화를 하고 다시 경찰이 출동하지만 그 남자는 발뺌을 한다. 몽크는 계속 우기고 관객들은 이쯤해서 약간 혼란스러움과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 거야.

몽크와 스토틀마이어, 그리고 디셔 경위는 그 남자가 휴지통에 버린 종이 상자에 적힌 주소를 찾아간다. 옛날 동전을 수집하는 가게였는데 자다 깨서 나온 가게 주인은 귀찮은 투로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총을 맞은 남자가 살아나서 기차역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 움찔하는 눈치다. 몽크는 동전 진열대 한쪽이 모두 비어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몽크는 기차역으로 택시 기사를 만나러 가고 스토틀마이어와 디셔는 몽크가 갔던 술집을 찾는다. 디셔는 사기꾼과 대화를 시작하고 몽크는 간발의 차이로 택시를 또 놓친다. 그리고 그때 기차역 안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한 남자가 총에 맞았는데 바로 아까 처음에 총을 맞았던 그 남자다.

몽크는 대걸레 자루로 남자를 툭툭 건드린다. “저를 믿으세요. 이 남자는 밤새 이 짓을 했다니까요. 배우 양반, 일어나요. 이제 안 속을 거야.”

몽크는 이 남자가 정말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사건의 실마리를 푼다. 첫 번째 사건은 연극이었다. 마약을 사기 위해 모르는 사람들을 따라 나섰던 동전 수집상은 우연히 살인에 말려들게 되고 입막음을 하기 위해 희귀 동전을 내준다. 그런데 몽크의 방문으로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동전 수집상이 기차역으로 찾아와 죽은 척 했던 남자를 진짜로 죽인 것이다.

이제 사기극에 동참했던 공범들을 죽일 차례다. 몽크는 첫 번째 살인 현장인 식당으로 달려가고 그 순간 스토틀마이어도 식당에서 집어들었던 냅킨과 동전 수집상이 줬던 냅킨이 같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스토틀마이어는 몽크 행세를 하는 사기꾼에게 몽크의 지갑을 빼앗아 들고 택시를 잡아탄다. 이 택시는 당연히 몽크가 밤새 찾던 바로 그 택시다. 이 드라마는 개연성 보다는 우연에 의존하지만 관객들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

택시비가 없어 신문배달 트럭을 잡아 탄 몽크와 몽크가 찾던 택시를 탄 스토틀마이어가 동시에 도착하고 동전 수집상이 다른 공범들을 죽이기 직전에 체포에 성공한다. 그리고 다음 장면, 택시 기사가 도대체 택시비는 누가 줄 거냐고 묻자 몽크가 다가선다. “밤새 당신을 찾아다녔어요.”

택시 기사의 팔뚝에는 “1997년 12월 14일”이라고 적혀있다. 몽크가 중얼거린다. “제 아내가 죽은 날이에요.” 그러자 택시 기사가 대답한다. “제가 다시 태어난 날이죠. 전 눈이 멀고 있었어요. 그런데…”

몽크가 말을 끊고 묻는다.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았군요? 트루디에게?” 택시 기사가 대답한다. “맞아요. 트루디 몽크요.” 몽크가 다시 대답한다. “제 아내에요.” 택시 기사가 “정말 미안해요”라고 말하자 몽크가 다가가 그를 껴안는다. 아무리 메마른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 대목에서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에피소드는 몽크 시리즈의 여러 매력을 단적으로 그리고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몽크의 괴팍한 성격을 큰 불평 없이 다독거리며 보듬는 친구들, 엉뚱하고 이상한 사건과 충분히 예측 가능한 복선들, 그리고 예측을 뒤엎는 산뜻한 반전, 사건을 횡단하는 몽크의 직관적인 추리, 시리즈 전반에 깔리는 트루디에 대한 몽크의 변함없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낳는 기적 같은 마법. 40분의 간결한 해피엔딩은 ‘프리즌브레이크’나 ’24시’ 못지 않은 심각한 중독과 금단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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