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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이 깨서 시계를 보려던 나는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시계를 들여다봤지만 시계에 시계바늘이 없었다. 몇 시일까.
오늘부터 미디어오늘로 출근합니다. 미디어오늘은 1995년에 창간한 언론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주간 신문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경제팀장으로 일하게 됩니다. 경제신문 모니터링과 비평은 물론이고 주류 언론에서 다루지 않거나 다루지 못하는 경제 이슈들을 취재하고 기사를 쓸 계획입니다.
비타민 이야기를 하면서 1740년 영국 해군의 아메리카 대륙 원정을 빼놓을 수 없다. 조지 앤슨 제독이 이끌었던 이 함대에는 선원 1955명이 타고 있었는데 4년 뒤 귀항했을 때는 634명만 살아 돌아왔다. 전투로 죽은 사람이 4명, 열병과 이질로 죽은 사람이 320명, 나머지 997명은 모두 괴혈병으로 죽었다. 절반 이상이 괴혈병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다.
아침형 인간이 열풍이더니 이제는 점심형 인간까지 나왔다. 이래저래 시간에 쫓기고 그나마 그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직장인들은 고달프다.
저는 지금 베트남 하노이에 와 있습니다. 날씨는 선선하고 딱 좋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3일 머무르고 5일에는 싱가포르로, 거기에서 이틀 머무르고 다시 7일에는 태국 방콕으로, 그리고 9일에는 캄보디아 시엠립으로 넘어갔다가 10일 저녁 비행기로 돌아갑니다.
7박 8일 일정으로 스웨덴에 갑니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인데요. 좀 더 깊이 있는 취재를 하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반도체 경기가 곧 바닥을 칠 것으로 보인다. 2년 넘도록 계속된 불황이 마침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장밋빛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크게 D램(RAM)과 낸드플래시로 나눌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D램의 전망이 더 좋다. 낸드플래시는 아직 공급 과잉 문제가 남아있지만 수요와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반도체 업계의 경기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좋다.
철도 공사는 왜 늘 적자를 내는 걸까. 철도공사의 적자는 10조원, 해마다 1조원씩 더 늘어나고 있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탓일까. 민영화와 구조조정이 해답이 될까. 영국 철도 민영화 실패 사례를 다룬 '탈선'은 이 문제를 파고 든다. 철도가 결국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산업이고 민영화시켜 시장에 맡겨 두었을 경우 어떤 비극이 초래하는지 이 책에 잘 나와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의 오건호 보좌관이 번역한 책이다.
인터뷰 / 구권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의장.
12월 여의도의 칼바람은 뺨을 에이는 듯했다. 구권서 의장은 이곳에서 70일 가까이 천막농성을 계속 해왔다. 천막 앞에서는 드럼통 난로가 활활 타고 있었지만 얼어붙은 손을 잠깐 녹여줄뿐 매서운 칼바람을 막지는 못했다. 천막 안은 그나마 바람은 피할 수 있었지만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구 의장은 이 정도 추위는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고 말했다. 추위보다 견디기 어려운 건 따로 있다는 이야기다.
월요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틀어놓은 TV에서 뉴스 끝물, 오늘의 교통 정보가 흘러나온다.
"오늘 오후 여의도에서는 1만5천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근처 지나시는 차량들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서 현지 시간 토요일 오후 1시 10분 비행기로 출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현지 시간 오후 5시 50분 비행기로 환승. 인천 공항에 일요일 오후 1시 10분에 도착.
현지 시간 기준으로 꼬박 24시간이 걸린 셈이지만 교수님들과 토론하느라 잠은 서너시간 밖에 못잤다. 5일쯤 지나면서 겨우 시차에 적응했는데 다시 낮과 밤이 바뀌었다. 서울은 스톡홀름보다 훨씬 따뜻했다. 더 시끄럽고 공기의 밀도도 더 높다. 시간도 훨씬 다급하게 흐른다.
스톡홀름의 11월은 늘 흐리다. 있는 동안 내내 하루에 한번씩 짧게라도 비가 내렸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틈을 내서 감라스탄에 들렀다. 스톡홀름 한 가운데 왕궁이 있는 섬이다. 왕궁 앞 벽돌길을 걸어서 다리 건너 시청앞까지 갔다. 모처럼 날씨가 좋았다.
북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이곳은 겨울이면 오후 4시에 해가 저문다. 왕궁이 있는 섬을 둘러싸고 운하가 도시를 가로지르고 새벽이면 물 위로 아득하게 안개가 피어난다. 할 이야기는 많지만 나중에.
인천에서 2시45분에 출발해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새벽 2시15분, 프랑크푸르트 현지 시간으로는 오후 6시15분이었다. 2시45분에 출발해서 6시15분에 도착했으니 실제로는 3시간 30분밖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상대적으로는 3시간 30분인데 절대적으로는 11시간 30분이 지났다. 시간이 거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속도로 느리게 흘렀다는 이야기다.
일주일 동안 출장 갑니다. 다녀와서 뵙죠.
연락은 top@leejeonghwan.com.
Wallin hotel, Wallingatan 15, Stockholm.
46-8-506-161(00).
근로빈곤층의 복지를 지원한다는 근로소득보전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EITC)의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2007년 시행을 목표로 현재 당정협의가 진행 중이고 늦어도 11월에는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이 시점에서 EITC의 실효성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연 EITC가 최선일까.
대포항과 설악산. 설악산은 정말 오랜만인데 단풍 들 때 다시 오면 정말 좋겠다. 지리산과는 느낌이 정말 다르다. (사진 크게 보려면 클릭.)
믿기지 않아. 꿈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그래, 깨어나면 된다. 그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혹시나 싶어서 볼을 꼬집어 보았는데 정말 느낌이 없다. 마취 주사를 맞고 이빨을 뽑고 난 뒤처럼 신기하게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때서야 나는 이게 꿈이란 걸 확신하게 됐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그 거인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면서 최대한 거만하게 말했다. 이봐, 장난 그만치라고. 이건 꿈이란 말이야. 음하하핫.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인력 구조조정에서 빛을 발한다. 경영여건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협력업체로 쫓겨나거나 강제로 희망퇴직을 당해도 삼성의 노동자들은 아무런 저항할 수단이 없다. 노동자들은 조직화에 실패했거나 조직화할 의지가 없고 회사는 철두철미하게 이를 방해해왔다. 월간 '말'이 입수한 '인력구조조정에 따른 시나리오 및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내부문서는 삼성 무노조 경영의 실체를 드러낸다.
때는 1998년 7월이다. 삼성코닝은 경영악화를 이유로 직원 3062명 가운데 706명을 구조조정하는 계획을 세운다. "하반기 이후 극심한 경영여건의 악화로 손익구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였다. 구체적으로는 553명을 협력회사로 분사화하고 153명을 희망퇴직 시키기로 했다.
삼성코닝은 1997년에 417억원의 순이익을 냈고 구조조정의 덕분인지 1998년에도 179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경영여건의 악화라는 핑계가 무색할 정도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삼성의 치밀한 노조와해 공작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가상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라는 문서를 보면 예측가능한 사안마다 문제점 및 대응방안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아이팟에 리눅스를 깔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굳이 필요를 못 느꼈다. 그러다가 리눅스를 깔면 녹음 기능을 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솔깃해졌다. 아이팟 리눅스는 다음 주소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자본주의 읽기 모임을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참여의사를 밝힌 사람은 고준성, 김호준, 이정환, 정윤호, 최우성, 한이정희, 황지희 (가나다순). 관심있으신 분들 참여를 바랍니다. 일단 '혁명의 시대'부터 읽고 1월 마지막주에 첫번째 모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언젠가 이야기했던 정치경제학 모임은 조금 더 미룹니다. 들뢰즈 읽기 모임은 지금 이진경의 '노마디즘'을 읽고 있습니다.)
아래는 우성이 형의 제안서 또는 발기문. 우성이 형은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경제학사를 공부했습니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책을 펴드는 순간, 천둥이 치고 회오리 바람이 불고 우박이 쏟아졌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책에 빠져든다. 푸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고개를 드는 순간 다시 세상은 고요해진다. 그리고 일상적인 소음이 그 자리를 파고들어 메운다. 들뢰즈를 읽는 일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일이었다.
"원래 얼굴이 이렇게 까맣지는 않아요."
"아, 그래요?"
가을 볕에 얼굴이 까맣게 탔다. 지난 일요일, 마라톤 대회 때문이다. 21.0975킬로미터. 여의도에서 둔치를 타고 마포대교와 서강대교, 당산철교, 양화대교, 성산대교, 가양대교를 지나 다시 여의도로 돌아오는 하프 마라톤이다. 썬 크림을 잔뜩 발랐는데도 땀 때문에 흘러내리고 결국 얼룩덜룩 까맣게 탔다. 달릴 때는 얼굴 타는 것 따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이왕 말 꺼낸 것, 공식적으로 공지를 하겠습니다. 대내외적으로 말이죠.
월간 '말' 이종태 편집장의 사회과학 강의를 시작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2명 이상만 되면 강의를 시작하겠다고 하는데 저뿐만 아니라 관심있는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좌는 매주 1회, 다만 월간 '말' 편집 일정에 따라 다소 유동적일 수 있습니다. 수강료는 없습니다. 다만 모임의 운영을 위해 따로 회식비 정도를 조금 모금할 생각입니다.
재중씨나 권일씨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수도 있고 정은씨나 새로 들어온 선영씨는 기본 교육 차원에서 함께 듣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다 같이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고 이론적 바탕을 쌓아나가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월간 '말' 구성원 뿐만 아니라 이왕 하는거 주위에 관심 있는 분들을 많이 초청하셔도 좋습니다.
저처럼 대학교 내내 수학 문제만 풀다가 졸업한 사람에게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두루 접하고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좋습니다. 누구라도 부담없이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공부해 봅시다.
커리큘럼은 수강생 모집 현황에 따라 조정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김수행의 '정치경제학원론', 정운영의 '가치이론', 이진경의 1990년대 논문들과 '격암유록'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강생이 모이면 당장 8월부터라도 시작하겠습니다. 장소는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 댓글을 달아 주시거나 top@leejeonghwan.com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강좌의 질은 걱정하시 마세요. 편집장이 큰소리를 치니까 믿어 봅시다. 필요하다면 따로 강좌 안내 게시판 만들겠습니다. 잘만하면 수유연구실 못지 않은 사회과학 연구모임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무엇보다도 월간 '말' 안에 학습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것부터 굉장한 변화고 큰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프 코스를 뛸 계획이었는데 동생이 대회를 몇일 앞두고 10킬로미터 코스로 바꿨다. 신청이 다 끝나서 변경이 안된다는데도 동생이 "우리 형 뛰다가 죽을지도 몰라요"라고 엄살을 부렸다고 한다. --; 처음에 나는 하프, 동생은 10킬로미터를 신청했는데 결국 같이 10킬로미터를 뛰게 됐다. 10킬로미터라니 이거 아무래도 폼이 안난다.
예정에 없던 태풍 민들레 때문에 토요일 저녁부터 비가 많이 왔다. 대회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아침 7시 정도 되니까 빗방울이 가늘어졌다. 결국 비를 맞으면서 달렸다. 뛰는 동안 내내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얼굴에 빗물이 흘러 내렸다. 옷도 흠뻑 젖었다.
10킬로미터 코스는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출발해 원효대교와 한강철교, 한강대교 밑을 지나 동작대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다. 하프 코스는 동작대교를 지나 반포대교, 한남대교, 동호대교까지 가야 한다. 하프가 어렵지 10킬로미터 정도는 정말 가볍다. 동생보다 5분 이상 빨리 들어왔다. 연습도 거의 못하고 처음 뛰는 것치고는 잘 뛰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동작대교를 지나 반환점을 돌면서 반환점을 돈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한 고비를 넘어섰다는 것, 언젠가 윤종연 학강님의 편지가 생각났다. 나에게 반환점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우리는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지치지 않을 속도를 찾는 것이다. 당장 몇사람을 앞지르거나 또는 뒤쳐지거나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우리의 목표는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잠깐 빨리 뛰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느리더라도 끝까지 지치지 않고 뛰는게 결국 더 빠른거다. 지치지 않을 나만의 속도를 찾아야 한다.
10월 3일 서울시 주최로 마라톤 대회가 있다. 그때 하프 마라톤을 완주할 계획이다. 연습을 더 해야겠다.
한치윤이 쓴 '해동역사'에는 "녹차가 수입되기 전부터 우리 민족은 백산차를 널리 마셨다"고 적혀있다.
기록에는 남아있지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전설의 차를 남봉우씨는 20년 동안 찾아다녔다고 한다. 백산차의 역사는 단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산차의 백산은 백두산의 옛말인 장백산에서 나온 말이다. 백산차는 백두산에서 나는 석남과나 철쭉과의 나뭇잎을 따서 만든 차다.
남봉우씨는 수없이 고전문헌을 뒤진 끝에 2000년 6월 직접 백두산에 올라 백산차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남봉우씨는 처음 맛본 백산차의 맛을 "백두산 천지의 물맛이었다"고 설명한다. 수백년 동안 묻혀있던 우리 고유의 맛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백산차는 솔잎과 박하 냄새가 짙게 난다. 기관지염과 감기, 피부병, 생리불순, 위궤양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그물망이 있는 찻잔에 끓인 물을 붓고 짧게 우려낸다. 첫잔은 너무 진하니까 그냥 버려도 좋지만 감기에 걸렸거나 코가 막혔다면 그냥 마셔도 좋다. 찻잎은 조금만 넣어도 된다. 한번 마시고 나서도 뜨거운 물을 부어서 열번 정도 더 마실 수 있다.
마시고 난 찻잎은 말려서 모아 두었다가 목욕이나 세수할 때 우려내서 써도 좋다. 여드름에 특효가 있고 피부 미용에도 좋다고 한다.
값은 50그램에 4만원으로 꽤나 비싸다. 목이 꽤나 아팠는데 덕분에 한결 가벼워졌다.
자료 참고 : 남봉우의 차 이야기. http://www.teastory.co.kr
정은임은 발음부터 특별했다. 'ㅅ' 발음을 할 때면 'ㅊ' 비슷한 'ㅊ' 보다는 좀 가벼운 파찰음이 났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은 더욱 특별했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은 전혀 다른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를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지난해 10월, 청취율이 낮다고 폐지됐던 이 프로그램이 8년 6개월만에 부활됐을 때 잊혀진 영화와 지나간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은 특별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6개월만에 이 프로그램이 다시 폐지된다고 한다. '정·영·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8년 6개월 동안 이 프로그램을 기다려왔다. 그 사람들에게도 이번 개편은 어이가 참 없을 것 같다.
엠비시 홈페이지에 실린 개편안의 내용은 이렇다.
접촉도 낮은 프로그램 통폐합, 와이드화
-『정은임의 영화음악』+『송기철의 월드뮤직』→ 『박소현의 All That Music』
아래는 월간 '말' 4월호 기사 가운데. 이오성 기자.
과거의 정영음이 그랬듯 방송과 사회의 모순이 첨예할수록 그의 목소리도 함께 떨리곤 한다. 복귀한 뒤 두 번째 방송을 하던 날의 오프닝 멘트를 듣고 기자는 가슴이 떨렸다.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고공 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주익씨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는 스스로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겨우 매달린 기분으로' 청취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최신유행의 피곤한 수다로 점철되는 FM 방송에서는 물론, 여느 개혁적이라는 매체에서도 이처럼 애틋한 멘트는 듣기 힘들다. 단순히 싸구려 감수성으로 포장할 수 있는 깊이가 아닌 탓이다. 적지 않은 양의 방송 멘트를 써내려가는 일도 때때로 그의 몫이다. 그런 만큼 그에 따른 부담도 함께 돌아온다.
"오늘은 이 이야기 안 하면 목구멍에 가시가 돋힐 것 같다는 날은 꼭 직접 써요. 영화도 시선이 다르면 달리 보이듯이 어차피 방송을 진행하는 제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굉장히 비난 많이 받았어요. 나더러 노동자에 대해 뭘 아느냐. 육체노동자로서의 노동자계급에 대해 뭘 아느냐고 이야기하더군요. 거기에 방송이나 언론의 허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이 세상은 마이크나 펜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계급적 기반에 따라 모든 것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거야말로 정말 무시무시한 SF 영화 같은 세상 아닌가요. 모든 것이 나의 물적 좌표에 따라 바둑판처럼 이미 짜여진 세상. 너는 중산층이고, 한 달에 얼마 버니까 얼마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하라는 거죠. 그들을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게 아니라 주위에 손배가압류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보면 괴롭고, 고민되고 그런 걸 이야기하고 다른 세상을 꿈 꿀 수 있는 거잖아요.
난 비록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할 수 없나요? 왜 '8학군 기자들' 이야기가 나오겠어요. 방송국에도 정말 8학군 출신 기자들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점점 뉴스에서도 시선이 한쪽으로만 흐르게 돼요. 노동자, 농민 이야기는 그들의 생리나 환경과 맞지 않아서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눈도 돌리지 않고. 말은 심각하지만, 그게 일상으로 돌아가면 전혀 심각한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 옆에서 투명인간화되어 버리는 청소하시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뿐인데."
(영화 평론가 정성일씨 홈페이지에 가면 '정은임의 영화음악' 가운데 정성일씨 출연 부분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my.dreamwiz.com/dorati1/film-index.htm)
설마 이런 아줌마가 있을까요. 출처 불명.
아줌마.
아이스크림은 내 옷에 흘렀는데
엄마는 꼬마더러 말한다.
괜찮아, 새 거 사줄게.
새벽 1시반, 체감온도 영하 20도, 한강 광나루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랍니다.
간달프 작품. 출처 : 줌인라이프 http://www.zoominlife.com 카메라가 좋아서 그런가, 유람선 사진 무척 마음에 듭니다.
새로 온 부장은 악명이 높다. 소문에 따르면 기자들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라고도 하고 그 밑에 있다가 못견디고 회사를 그만둔 기자들이 수두룩 하다고도 한다. 겪어봐야 알겠지만 일단 오늘부터 출근과 아침 정보보고 시간이 30분 앞당겨졌다. 끔찍한 일이다.
첫날부터 지각해서 깨지면 곤란하다. 허겁지겁 뛰어가는데 전철역 앞에 이르렀을 때 담장 너머로 막 전철이 지나가는게 보인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역앞 포장마차에서 모처럼 토스트를 먹기로 한다. 전철이 금방 올 것만 같다. 급하게 먹느라 목이 메인다. 켁켁. 먹고 있는데, 전철이 들어온다. 이거 놓치면 정보보고 시간을 맞추기 어렵겠다. 나는 먹다 남은 우유를 들고 뛴다. 그리고 전철 문이 막 닫히기 직전 가까스로 뛰어 올라탄다. 그렇게 월요일 아침이 시작됐다.
시인통신이 마침내 허물렸다. 딱히 자주 가는 집은 아니지만 양영권 기자랑 종로에 나갈 때면 꼭 시인통신에 들르곤 했다. 종로 1가 뒷골목, 칙칙한 1980년대의 분위기, 우리는 켜켜히 내려앉은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 묵묵히 술을 들이켰다. 그 시인통신이 최근 재개발 바람에 밀려 결국 허물려 사라졌다.
다음에 들어가 찾아보니 '시인통신과 간큰 사람들'이란 카페도 있다. 그런데 회원도 거의 없고 게시물도 없다. 시인통신의 주인이 써놓은 듯한 문패만 덩그라니 걸려 있을 뿐이다. 어디로 옮겨갔을까, 시인통신은.
시인통신은 1980년 교보문고 뒷골목 2평짜리로 시작되었다. 그곳은 주인이 없어도 스스로 커피를 마시고 돈을 놓고 가버릴 정도의 서로의 허물이 없던 곳이었다.
그러나 그 시대상황에 따라서 드나드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면서 많은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80년 계엄의 서슬한 칼날에 광화문으로 사람들은 몰려들고 그 작은 가게에는 30명 아니 40명씩 끼어앉아 이 나라의 울분과 최루탄에 찌든 사람들에 이야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학생, 기자, 시인, 소설가, 화가, 예술인, 노동운동가. 그 틈에 끼어앉아 있는 수상한 눈초리들. 그러나 그들은 그 작은 공간에서 비비면서 서로를 아꼈다.
돈이 조금 있는 사람들은 계산을 더 많이 했고 없는 사람들은 그냥 가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불평과 대꾸조차 없었다. 화장실도 없는 그곳의 철대문 옆은 밤마다 생기는 낙서 투성이였다. 그때 그곳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철대문으로 통했다.
지금은 모두들 50이 넘고 돌아가신 분들도 너무 많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이곳을 다니는 새로운 3040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금은 철대문집에서 쫓겨나 종로1가로 이사했다. 그러나 그곳은 인테리어를 하지 못한다. 왜냐면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냥 벽에 한지로 부치고 수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그곳의 낙서들은 20년 전부터 있던 그들의 글이 있기에.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면 낯설다. 그러나 그곳의 역사를 안다면 자신을 그곳의 흐름에 맡기면 우리의 사라지는 정을 느낄것이다. 지금은 1, 2층으로 나누어져 있고 화장실도 있다. 화장실이 생기자 시인통신을 찾던 모든사람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어린아이처럼.
주말에 사람이 없는것이 시인통신의 특색이다. 평일에 가야 낯익은 많은 사람들을 볼수 있다. 9시가 넘어서 가면 좋다. 이제 모든 분들에게 시인통신의 지나온 이야기들을 하려 한다. 시대를 지나오는 길에 시인통신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음 카페 '시인통신과 간큰 사람들'에서.
"바하가 믿은 하느님과 내가 믿는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다."
일본의 원전연주 지휘자 스즈키 마사아키의 말이다. 원전연주 또는 정격연주는 작곡 당시의 악기와 연주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연주를 말한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해석해서 연주하는 바하와 실제의 바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어느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바하가 생각했던 바하의 음악을 들어보자는 이야기다.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나 존 엘리어트 가디너, 니콜라이 아르농쿠르, 라인하르트 괴벨 등이 원전연주에 가장 앞선 지휘자로 꼽힌다. 여기 크리스토퍼 호그우드가 지휘하고 아카데미 오브 에인센트 뮤직 연주로 엠마 커크비가 노래하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의 '엑술타테 유빌라테(Exutate, Jubilate)'가 있다. 아마도 모짜르트가 생각했던 '엑술타테 유빌라테'를 가장 잘 살려낸 연주가 아닐까 싶다.
http://www.geocities.com/exsultate1/ 여기에 가면 '엑술타테 유빌라테'를 릴리 폰스와 캐서린 배틀, 키리테 카나와 르네 플레밍,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등 13명의 소프라노의 노래로 들을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노래는 역시 원전연주와 함께 듣는 엠마 커크비의 노래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 '엑술타테 유빌라테'는 1773년 1월 작곡돼 테아티노 수도회 미사에서 처음 연주됐다. 2개의 아리아와 그 사이의 레치타티보, 그리고 마지막의 할렐루야로 이뤄져 있다.
소프트웨어 서비스 회사, 한국하이네트에 다니는 현유진씨는 화요일과 수요일은 6시만 되면 칼 퇴근을 한다. 수업을 들으러 가기 때문이다. 현유진씨는 지금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 대학원 석사과정 4학기를 다니고 있다. 수강 과목은 모두 세과목, 각각 2학점씩이다. 일주일에 이틀만 나가면 되니 별 부담이 안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동료들이 한창 일하고 있는데 털고 일어서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직장생활 3년차니 그럴만도 하다.
그래도 어렵사리 이번 학기만 마치고 나면 논문 과정만 남는다. 빠듯한 직장생활에 ㅄㅉㅗㅈ기다 보면 학교에 가서 수업 듣기 전에 강의실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잔이 가장 여유롭다. 그럴때면 대학 시절 기억도 떠오른다.
처음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대학교 때 배운 밑천이 바닥나고 있다는 위기감이 들면서 부터였다. 대학교 때 워낙 공부를 게을리 한 탓이기도 하지만 이쪽 바닥이 좀 넓은가. 체계적으로 기초를 닦아 놓지 않으면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데도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다.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은 정말 무섭다. 대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끼고 살아서일까. 뭘 시켜도 척척해내는 것은 물론, 참신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곧잘 내놓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최신 흐름을 모두 꿰고 있다. 선배들이 오히려 갓 들어온 신참들에게 배우는 판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언젠가 이 후배들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현유진씨를 대학원으로 내몬 셈이다.
회사 일에 치이는 한편으로 시험과 리포트에 쫓기면서 온갖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4학기에 들어선 지금은 이제야 비로소 누구 못지 않게 이쪽 바닥의 전문가가 됐다는 자신감이 든다. 아무렴, 400만원씩 납부금을 네번이나 쏟아부었는데 이 정도는 돼야지 않겠는가.
현유진씨가 다니고 있는 정보통신대학원을 비롯해 언론정보대학원, 행정대학원, 국제통상대학원, 과학기술대학원, 국가전략대학원, 사회복지대학원, 정보통신대학원, 노동대학원, 정책대학원 같은 특수대학원의 학생들은 대부분 직장인들이다. 물론 최근에는 학부 졸업생들이 곧바로 오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강의가 야간에 진행되고 일반 대학원보다 수업의 진행속도가 훨씬 느리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위를 따는데 큰 무리는 없다. 크게 뒤쳐지지 않고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어느정도 다듬어진 논문을 제출하면 대부분 학위를 받을 수 있다.
특수대학원이고 또 야간대학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학위에 있어 사회에서 차별은 거의 없다. 열정과 의지만 있으면 2년을 투자해 자신의 실력과 몸값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공부는 더 늦기 전에, 가능하면 빠를수록 좋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참고로 최근 교육인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주5일 근무제의 확대를 위해 야간대학원의 수업은 단계적으로 주말로 옮기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조만간 야간대학원이 아니라 주말대학원이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현유진씨처럼 주마다 고정적으로 시간을 내기 어렵거나 학비가 부담되는 직장인이라면 사이버 대학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최근에는 학사과정은 물론이고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개설하는 대학도 있다. 아직 대학원 과정을 개설하고 있는 사이버 대학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운영하는 사이버 카이스트를 비롯해 아주대가 운영하는 사이버 MBA가 있고 성균관대와 숙명여대, 세종대, 중부대 등 4개 대학이 인터넷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사이버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 대학의 온라인 학위 과정도 매력적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중국 북경대학 등 상당수 외국 대학들도 우리나라에 온라인 대학원 과정을 개설해 놓고 있다. 서울 강남구청은 스탠포드대학과 제휴를 맺고 2003년 9월부터 의료정보학을 비롯해 반도체, 정보 통신등 모두 7개 온라인 석사 학위 과정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강남구청이 학생 모집에서 시작해 마케팅을 총괄하는 형식이다. 스탠포드 대학은 학생 수요 등을 고려해 200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온라인 대학 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굳이 우리나라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 대학의 온라인 과정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 퍼듀 대학교는 2003년부터 6년제 약학사 학위 과정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약대를 졸업한 뒤 2~3년 정도 온라인 과정을 이수하면 미국의 약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굳이 학위에 욕심이 없다면 사이버 대학에서 학사 과정을 전공을 바꿔서 공부해보는 것도 좋다. 사이버 대학이 아직 인지도는 낮지만 졸업하고 나면 일반 대학과 같은 학사학위가 인정되니까 말이다. 물론 이미 대학을 졸업했으면 편입을 할 수도 있다.
사이버 대학은 대부분 수능성적 대신 자기소개서와 지원동기, 학업계획서만으로 학생을 선발해 입학이 쉽고 수업료도 한 학기당 100만원 안팎으로 사립대의 3분의1 수준이다. 입학 정원도 거의 무제한이라고 봐도 좋다. 2003년 기준으로 총 2만3603명을 모집했는데 이 가운데 4년제 대학이 14개대 2만1603명, 2년제 대학이 2개대 2000명이다. 2003년 정시 모집에서 등록률은 50% 정도에 그쳤다. 심지어 20%도 채우지 못한 사이버 대학도 많았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도입하기는 했지만 사이버 대학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졸업하고 나면 정식 학위를 주기로 돼 있지만 산업인력관리공단 같은 경우는 사이버 대학을 대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산업인력관리공단의 일부 자격증은 대학 졸업자에게만 응시자격을 부여하는데 고등교육법이 아니라 평생교육법에 따른다는 이유로 사이버 대학 졸업장은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물론 조만간 해결될 수도 있는 절차의 문제지만 그만큼 아직도 사이버 대학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신입생의 3분의 2가 도중하차하는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설립 3년째를 맞고 있는 사이버 대학은 아직 제대로 졸업생을 배출해 내지 못했다. 사이버 대학이 자리를 잡기까지 좀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사이버 대학은 학위에 대한 욕심보다는 그야말로 직장 때문에 학교 다닐 시간은 없는데 공부는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하다. 게다가 디지털디자인이나 인터넷정보, 게임애니메이션, 사이버무역, 사이버NGO 등 일반 대학에는 없는 다양한 학과가 개설돼 있어 관심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일반 대학처럼 사이버 대학도 졸업하려면 140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한학기에 18학점까지 들을 수 있지만 직장인들에게는 아무래도 좀 무리다. 첫학기에는 9학점 정도 신청해서 들어보고 상황을 봐가면서 다음학기부터 학점을 늘려 듣는게 좋다.
학비는 학점당 4만~8만원으로 한 학기 등록금은 보통 100만~150만원 안팎이다. 한국싸이버대학교는 특별전형으로 입학하는 신입생 전원에게 소정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경희사이버대학교의 경우 특별전형에서 수능 4등급 이상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고 있다. 서울디지털대학교는 재학생 2400명중 612명이 장학생일 정도로 장학금 수혜폭이 넓다.
방송통신대학교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요즘은 대학을 나온 직장인들이 전공을 바꿔 입학이나 편입학하는 경우도 결코 낯선 현상이 아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 03학번 학생이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84학번인 남 의원은 미국 예일대 경영학 석사와 뉴욕대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른바 최고의 엘리트. 그런 그가 새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래서 찾은 곳이 방송통신대학교였다. 남 의원은 전공인 사회복지학과 이제 새로 배우는 경영학에 접목해 복지 전문 정치인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남 의원 뿐만이 아니다. 방송통신대에 편입학하는 명문대 졸업자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2003년 기준 2, 3학년 과정에 편입학한 학생은 6만4379명, 이 가운데 1550명(2.4%)이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 상위권 대학 졸업생이다. 서울대가 442명으로 가장 많고 고려대 429명, 연세대 314명, 서강대 85명, 이화여대 280명이다.
5개대 출신의 방송대 편입학은 1997학년도만해도 683명에 그쳤는데 2001학년도에는 1535명, 2002학년도에는 1550명으로 꾸준히 늘어나 5년만에 두배가 됐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방송통신대학교도 졸업이 결코 쉽지는 않다. 재학생은 20만명을 훌쩍 넘어서는데 2003년 기준으로 입학생은 신입생 6만6400명에 편입생은 8만5985명이나 되는데 졸업생은 재학생의 10분의 1 수준인 2만1346명에 지나지 않는다.
방송통신대 수업은 인쇄교재와 방송대학 위성TV(OUN, 채널 47)와 라디오 등을 통한 방송강의와 함께 한 학기에 3과목, 8시간씩 지역학습관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출석 수업으로 진행된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학기마다 치르는데 왠만큼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결코 만만치 않다.
입학에 시험은 따로 없고 고등학교 학력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2, 3학년 편입은 전문대학 졸업자나 일반대학에서 1년 이상 학업을 마치고 일정 학점을 취득하거나 이와 동등한 학력을 지닌 사람이면 된다. 해마다 12월20일 무렵 원서를 교부해서 새해 첫 일주일 동안 접수한다. 등록금은 50만원 안팎, 책 값도 6000~7000원 정도로 매우 싸다.
새벽 시간을 이용해 학원에 다니고 있다면 노동부 지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좋다. 2003년 9월부터 종업원 150인 미만 중소기업 직원은 학원에서 수업을 들을 때 최대 100만원까지 수강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 직무 관련 학원은 수강료의 80%까지 외국어 과정은 50%까지 지원된다.
수강료 지원과는 별개로 고용보험료를 환급받는 방법도 있다. 환급을 받으려면 과정을 끝까지 이수해야 한다. 몇번 이상 결석하면 환급 자격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강좌가 종료된 분기의 다음달까지, 이를 테면 5월에 강의를 들었으면 7월까지 수료증과 세금계산서를 노동부에 제출하면 수강료의 최대 90%에 해당하는 고용보험료를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아예 처음부터 고용보험 환급이 가능한 강좌를 골라 듣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학원 강좌 뿐만 아니라 이캠퍼스 http://www.ecampus.co.kr 같은 온라인 강좌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강의를 모두 듣고 시험을 쳐서 8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이캠퍼스는 삼일회계법인과 손잡고 회계관리사 과정을 비롯해 300여개 전문회계과정을 개설했다. 이밖에도 정보기술과 경영, 어학, 모의시험 등 250여 부문의 교육과정이 개설돼 있다. 수강료는 강좌에 따라 5만원에서 300만원까지 다양하고 고용보험 환급혜택을 받을 수 없는 강좌도 섞여 있으니 주의할 것.
상자 기사 / 의학 전문대학원은 어떨까.
조만간 도입될 것으로 보이는 의학 전문대학원도 관심거리다. 4년 과정을 마치면 비전공자도 의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 전문대학원 체제를 도입하려는 대학은 학부과정을 폐지하고 2년간의 준비 작업을 거쳐 신입생을 뽑는다. 의학 전문대학원을 졸업하면 일반 의과대학 졸업생과 달리 석사학위를 받는다.
빠르면 2005년에 첫 신입생을 뽑게 되는데 경쟁이 치열할 걸로 예상되니 지금부터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화학이나 생물, 수학 등의 과목의 시험을 치러야 하고 의학교육 입문시험(MEET)을 통과해야 한다. 물론 4년 과정 대학원이 부담스럽다면 일반 의과대학에 학사편입학하는 방법도 있다.
의학교육 입문 시험은 전문대학원에 참여하는 대학들이 공동으로 위원회를 만들어 시험과목과 운영방식을 정한다. 여러번 응시해 좋은 점수를 사용할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나이제한은 없지만 대학마다 규정을 둘 수도 있으니 미리 알아보는 게 좋다.
상자 기사 / 부동산학 대학원도 뜬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양성준씨는 내년에 국회를 떠나 다시 공부를 시작할 생각이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직업의 전망이 불투명한 탓도 있지만 뭔가 새로운 일,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일을 시작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양성준씨가 생각하고 있는 대학은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대학원. 외국 유학가서 그럴듯한 박사 학위를 따와도 시간 강사 자리 하나 얻기 어려운 세상이 됐지만 부동산학과는 아직 국내에서 딴 학위가 충분히 먹혀든다. 게다가 이 학과 대학원 학생들이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이 많고,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공부 목적에서 배우는 사람들이니 상대적으로 양성준씨 같은 경우는 유리한 입장이다.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마음만 먹으면 지방대학 교수 자리라도 하나 꿰찰 수 있지 않을까, 양성준씨의 계산은 그렇다.
물론 새롭게 주목받는 분야라 벌써부터 경쟁이 만만치는 않다. 2003년 정시 모집 때는 100명 모집에 774명이 몰려들었다. 게중에는 변호사 9명을 포함해 회계사와 세무사, 건축사, 감정평가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모두 18명이나 됐다.
부동산 대학원은 건국대와 한성대 등 2곳 뿐인데 이밖에도 한양대와 성균관대, 동국대 등 일부 대학의 야간대학원에 부동산 전공 과정이 개설돼 있다. 부동산학과를 신설하는 대학이 더 늘어날 거라고 본다면 양성준씨의 계산은 일리가 있다. 굳이 교수자리를 노리지 않더라도 뜨는 학문에 일찌감치 뛰어드는 것도 남보다 한발 앞서가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자칫 묻힐 뻔 했던 마태 수난곡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가 죽고 난 뒤 80여년만의 일이었다. 1829년 요하네스 멘델스존의 지휘로 처음 연주된 마태 수난곡은 이른 바 바하 르네상스를 불러왔다. 사람들이 바하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마태수난곡은 이제 바하의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마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의 마태복음 26장과 27장을 가사로 쓴 78개의 노래 모음, 연주에 모두 세시간 반 이상이 걸린다.
아, 나의 하느님이여.
나의 눈물로 보아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앞에서 애통하게 우는 나의 마음과 눈동자를
주여, 보시옵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지금 듣는 노래는 39번째 노래, 알토 아리아,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다. 영화 '이중간첩'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왔던 음악이기도 하다. 마태수난곡은 필리페 헤레베헤의 지휘로 콜레기움 보칼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1999년에 녹음한 음반을 가장 최고로 친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번 부인하고 곧 닭이 운다. 베드로는 예수의 말이 떠올라 밖에 나가서 통곡한다. 뒤이은 40번째 노래는 합창이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떠났습니다. 당신 앞에 돌아왔나이다. 아들의 희생, 고뇌와 죽음의 고통이 당신과 화해시킨 것입니다. 나의 죄를 부정하지 아니하나 당신의 은총과 자비는 끊임없는 나의 죄보다 크나이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 키스 자렛, 골드베르크 변주곡 1번 아리아.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합니다. 1999년 작품, 의외로 단정하고 정확한, 그야말로 클래식한 연주입니다. 쳄발로로 연주하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마치 축제 날 아침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지금 이 곡은 골드베르크 변주곡 가운데 1번 아리아.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모두 32곡인데, 1번과 32번은 같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30곡은 모두 이 아리아의 변주입니다. 같은 주제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모두 새롭고,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있습니다. 듣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해야할 일이 잔뜩 쌓여있지만, 잠깐 음악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 넘어가야겠다.
저녁 늦게 씻고 들어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다가 깜짝 놀랐다. 혼자 음악을 듣고 있는데 어디선가 누군가 뭐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가 설마 누가 있을까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는데 역시 아무도 없다.
글렌 굴드였다. 글렌 굴드는 피아노를 치면서 끊임 없이 무엇인가 중얼거리고 있다.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따라라라"라거나 "딥딥딥", " 투루루루", 음악이 빨라지면 "빰빠라빰빰"이라거나 "우르르르르", 그 밖에 알아 들을 수 없는 낮은 속삭임. 오디오 시스템이 왠만큼 좋지 않거나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꽤나 오랫동안 글렌 굴드를 들어왔지만 처음이다. 새로 산 엠피스리 플레이어 덕분이지만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오늘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간단히 소개하는데서 그칠까 한다. 언젠가 글렌 굴드 이야기를 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로 시작해 30개의 변주를 거쳐 다시 아리아로 끝난다. 같은 주제에서 출발했지만 모두 새롭고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있다. 듣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린다.
1. 1955년 6월, 녹음 기술자의 증언. "6월이라고는 하지만 찌는듯한 날씨였는데 굴드는 두터운 코트에 머플러를 두르고 베레모에 장갑을 끼고 나타났다. 그리고 식수로 사용할 두개의 물병과 그 유명한 굴드의 의자까지 들고 왔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굴드의 의자는 다리가 모두 고무로 만들어져 연주할 때 몸의 각도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였다. 녹음이 진행되는 동안 굴드는 도취된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불렀으며 몸을 앞뒤로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녹음기술자들은 굴드의 흥얼거림을 녹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2. 굴드는 1932년 9월 25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세살 때 이미 악보를 읽고 다섯살 때는 직접 작곡을 하고 연주까지 했다.
3. 캐나다의 소설가 로버트 풀포드의 증언. "어린아이인데도 굴드는 고독했다. 그는 미친듯이 연습했다.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는 음악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그는 자신이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하는가 잘 알고 있었다."
4. 굴드는 10살 때 토론토의 로얄 콘서바토리에 입학해 정식으로 알베르토 게레로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졸업한 뒤 15살 때 첫 연주회를 열었다.
5. 굴드의 스승 게레로의 증언. "새로운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워낙 개성이 강하고 천재적인 아이라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당황할 때가 많다."
6. 굴드의 증언. "게레로와 나의 스타일은 완전히 반대였다. 그는 음악을 가슴으로 느꼈지만 나는 머리로 이해했다."
7. 스물두살, 1955년 6월 굴드는 첫 음반을 녹음한다. 바하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이었다.
8. 굴드는 황홀한 표정에 눈을 지긋이 감고 있다가도 갑자기 온통 얼굴을 찌푸리고 입을 크게 벌리기도 하고, 몸을 계속 흔들어 대면서 끙끙거리는 소리로 계속 곡을 흥얼거리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연주 모습을 보여줬다. 중얼중얼 속삭이기도 하고 한손만으로 연주하는 부분에서는 지휘를 하는 듯이 손을 높이 쳐들고 흔들기도 했다.
9. 그가 흥얼거리는 소리는 녹음 기술자들에게는 골치거리였지만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심지어 굴드의 끙끙거리는 콧소리와 삐걱대는 의자 소리는 오디오 시스템의 상태를 판별하는 기준으로까지 활용되기도 했다.
10. 스물네살, 1957년에 굴드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토벤의 3번 협주곡을 연주한다. 1960년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그때만해도 낯설었던 TV에 출연한다.
11. "여러분, 음악이 너무 늘어진다고 느끼셨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굴드가 바라는 템포에 맞추다 보니 그렇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1960년 카네기홀 연주회에서.
12. 굴드와 번스타인은 루드비히 폰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을 협연하면서 템포 문제를 놓고 말다툼을 벌였다. 결국 힘차고 역동적인 연주를 좋아하는 번스타인이 마냥 느려터진 굴드의 연주에 맞추기로 했다. 번스타인은 불만에 가득차 있었지만 청중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13. 굴드의 연주 여행은 가는 곳마다 큰 인기를 끌었다. 소련에서는 그의 음반을 구하느라 사람들이 난리법석을 떨기도 했다. 곳곳에서 그의 음악을 모방하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14. 그러나 굴드는 청중을 싫어했다. "음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청중일수록 연주자에 대해 가학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5. "콘서트를 할 때면 나는 희극배우처럼 느껴진다." "콘서트는 고통으로 가득찬 속임수일뿐이다."
16. "나는 수많은 꾀병을 생각해두고 있어요. 콘서트를 취소할 핑계로 써먹을 생각입니다." 번스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17. 굴드는 식성도 까다로웠다. 고기는 물론 야채도 즐겨먹지 않았고 거의 크래커와 오렌지 주스 같은 것들로 끼니를 떼웠다.
18. 음악의 취향도 분명했다. 굴드는 쇼팽과 슈베르트를 연주하지 않았다. 브람스도 녹음을 몇일 앞두고 못내키는 듯 성의없는 연습을 조금했을 뿐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시들했다. 실제로 연주도 별볼일 없었다. 가끔 쇤베르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윌리엄 버드와 오를란도 기본스를 연주하기도 했지만 굴드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열심히 연주했던 음악은 바하뿐이었다. "모짜르트가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다는 세간의 말은 옳지 않다. 오히려 그는 너무 늦게 세상을 떠났다."
19. 굴드는 서른두살, 1964년 4월 10일 LA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가진다. 그때부터 그는 녹음 작업에만 매달렸다. 그 뒤로 그는 죽을 때까지 결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지 않았다.
20. 굴드는 같은 음악을 여러차례 되풀이해서 녹음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최상의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굴드는 짜집기를 전혀 거북해하지 않았다. 굴드는 연주회의 청중을 떠나 녹음실에 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