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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문제제기를 해봅니다. 어떤 포르노, 이를 테면 여성을 강간하는 내용의 포르노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일은 가능할까요?

살인은 물론 범죄지만 살인 장면을 담은 영화를 규제할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영화 배우들이 실제로 서로 죽이거나 죽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영화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살인인가 아니면 연기일뿐인가 가릴 수도 없고 가릴 필요도 없습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오히려 죽는 연기가 실감날수록 더 훌륭한 영화가 됩니다.

강간 장면을 담은 영화는 어떻습니까.

저도 포르노 영화를 많이 봤고 그 가운데는 강간 장면도 꽤나 많습니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 배우들이 실제로 강간을 하거나 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영화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강간인가 아니면 연기일뿐인가 가릴 수도 없고 대부분 관심도 없습니다. 그냥 영화일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직접 사람을 죽이면서 찍는 스너프 영화처럼, 실제 강간 장면을 담은 포르노 영화도 있다고 하지만 얼마나 많은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영화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논의의 핵심이 아닙니다.

폭력을 강조하거나 조장하는 영화, 심지어 살인의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어떤 영화를 법적으로 규제할 수 없는 것처럼 심지어 강간이나 잘못된 성 관념을 조장하는 영화라도 법적으로 규제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그것은 살인이나 강간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과 다른 문제입니다.

폭력을 조장하거나 강간을 조장하는 나쁜 영화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영화를 법적으로 규제할 방법도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건강한 상식을 가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영화를 보고 폭력이나 강간의 충동보다는 거부감과 불쾌감을 느끼기 마련이니까요. 쓰레기 같은 영화는 마음대로 만들거나 말거나 보고 싶은 사람은 찾아가서 보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두면 됩니다.

그러나 쓰레기 같은 영화가 미치는 해악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법적으로 규제하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비판하고 바로 잡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건강한 포르노 영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모든 포르노 영화가 아니라 어떤 포르노 영화입니다.)

저는 포르노 영화의 해악을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자본주의는 흔히 사회적 약자를 합법적으로 착취합니다. 이를테면 매춘은 자발적 금전 거래로 가장된 강간입니다. 포르노 영화의 여성은 매춘하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입니다. 포르노 영화에서도 여성은 남성 관객의 성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착취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몇푼 안되는 돈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철저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유린합니다. 그런 포르노 영화를 보면서 당신은 양심에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까.

포르노 영화의 또 다른 더 뿌리 깊은 해악은 포르노 영화가 심어주는 잘못된 성 관념에서 비롯합니다. 억눌린 성 담론과 맞물린 삐뚤어진 시각의 포르노 영화 덕분에 우리 사회 남성들은 여성들이 어떻게 성적 만족을 얻는가 알지 못합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대부분 여성들은 포르노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섹스에서 아무런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남성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포르노 영화를 비판할 때 포르노 영화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 말하고 있는가, 이 부분이 제대로 지적돼야 합니다. 포르노 영화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고 남근 중심적인 성 관념을 확산시킵니다. 수많은 여성들은 성적 만족에서 소외되고 억눌리고 착취 당합니다. 잘못된 성 관념에서 비롯한 남녀의 억압과 착취 관계는 가정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됩니다. 포르노 영화는 우리 사회 성적 이데올로기의 문제입니다.

포르노 잡지 '허슬러'의 편집장이었던 래리 플린트는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습니다. 미국 법원은 이놈이 진짜 나쁜 놈인 건 맞지만 이런 나쁜 놈의 표현의 자유까지도 인정하고 보장해줘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런 놈의 자유가 보장될 때 비로소 이 사회에 자유가 구현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 나는 강준만에게는 관대하면서 진중권에게는 인색하다. 내용을 떠나서 나는 진중권의 글쓰는 방식이 싫다. 가끔 신랄하고 재치가 넘치는 글도 눈에 띄지만 나머지는 기교의 과신이거나 과잉이다. 결국 내용은 비켜나고 얄팍한 기교만 남는다. 아래의 글도 마찬가지다. 딱히 이 글이 문제가 아니라도 나는 오래전에 진중권의 글쓰기에 질렸다. 내용을 떠나서 일단 진중권의 글쓰기 방식이 싫다. (진중권 비판은 다시 하겠다. 해야할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나는 노무현 비판에 좀 지나치게 예민하다. 딱히 노무현을 열성적으로 지지해서는 아니다. 그러나 이를 테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거나 정치가 엉망이 됐다거나 노무현이 저럴줄 몰랐다거나 지지자들을 배반했다거나 그래서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거나 하는 감정적인 비판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그런 비판 가운데 상당수는 임금이 덕이 없으니 홍수가 잦다거나 전염병이 돈다는 이유 없는 비난처럼 감정적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경제는 딱히 어렵지 않다. 정치는 늘 이랬고 앞으로도 한동안 이럴 수밖에 없다. 홍수나 전염병이 노무현의 탓이 아닌 것처럼 노무현 비판, 상당 부분의 원죄는 노무현에게 있지 않다. 변화는 점진적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노무현에게 기대를 거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합리적인 비판은 물론 필요하고 받아들여야겠지만 나는 사람들의 조급증과 호들갑이 안타깝다.

나는 사안에 따라 노무현을 지지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나는 맹목적으로 지지하지도 맹목적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안타깝지만 나는 현실을 생각하고 노무현의 현실적인 판단을 이해하고 힘을 실어주려고 노력한다.

서프라이즈와 진보누리에 가끔 들어가 보면 정말 우리 세대의 정치적 관심이 놀랍기만 하다. 그야말로 백가쟁명의 시대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에 힘을 실어준 서프라이즈와 서프라이즈에서 갈라져 나와 노무현을 비판하기 시작한 동프라이즈, 다시 동프라이즈에서 갈라져 나와 아예 노무현에게 등을 돌리고 민주당을 감싸고 도는 남프라이즈. 그리고 이들과 별개로 처음부터 노무현을 신뢰하지 않았던,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만든 진보누리.

그러나 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의 관심이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고 개별 사안과 사건에만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지극히 정치적인 사안과 사건에 대한 관심과 논쟁일뿐 방향과 전망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지는 않는게 아닐까.

노무현이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이야기하거나 유시민이 평상복 차림으로 국회에 나가거나 한발 더 나아가 특검법이 통과되거나 최병렬이 단식을 하거나 민주당과 우리당이 분열하거나. 다들 해석과 판단이 다르겠지만 모두 소모적인 논쟁의 대상일뿐 정치의 본질은 아니다. 사람들은 왜 이념과 대안으로 싸우지 않고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려고 싸우는 것처럼 다만 논쟁에서 이기려고 싸우는 것일까. 왜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쉽게 판단하고 흥분하는 것일까.

가뜩이나 더 큰 문제는 최근 그런 소모적인 논쟁의 바탕에 지역감정을 둘러싼 뿌리깊은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는데 있다. 심지어 조장되거나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 어수선한 난장판은 물론 한심한 상황 탓이다. 민주당과 우리당이 갈라져서 싸우더니 결국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손잡고 노무현 죽이기에 나섰다. 열띤 논쟁의 와중에 결국 민주당은 전라도 정당이 되고 열린우리당은 전라도에 배신을 때린 정당이 된다. 민주당이 전라도 정당으로 주저앉기 바라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논리겠지만 그런 감정적인 주장은 쉽게 먹혀들기 마련.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는 강준만은 아예 전라도 기득권을 옹호하는 호남 패권주의자로 매도 된다.

나는 노무현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노무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실수가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노무현을 끌어내릴 수는 없지 않은가. 합리적인 비판은 물론 필요하고 받아 들여야겠지만 자칫 너무 빨리 노무현을 레임 덕으로 몰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진중권의 비판에 98% 정도 동의하지만 민주노동당이 노무현을 적으로 삼아야 하는 현실이 나는 안타깝다. 싸워야 할 외부의 적이 아직 많다. 사안에 따라 부분적으로 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민주노동당의 노무현 비판은 그래서 더욱 아프다.

현실은 상상에 못미친다. 책을 옮겨놓는 영화도 마찬가지다. '열정과 냉정 사이'는 두권인데, 각각 준세이와 아오이가 주인공이다. 두권은 따로따로면서 하나의 제목과 줄거리를 갖는다. 츠치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 두명의 작가가 한 묶음씩 번갈아 가면서 쓴 소설, 읽을 때도 그 순서를 따라 읽는 게 좋다.

가장 아쉬웠던 건, 아오이가 내가 생각하는 아오이가 아니었다는 거다. 뭐랄까, 나는 아오이가 수선화 같은 여자일줄 알았다. 미우라 아야꼬 '양치는 언덕'의 주인공 나오미처럼, 무너져 내릴듯 깊은 아름다움을 담은.

아오이 배역은 홍콩 배우 천후이린이 맡았다. 한자로 '陳慧琳'이라고 쓰는데 모든 신문이 '진혜림'이라고 쓰고 있다. '진혜림'이 아니라 '천후이린(陳慧琳)'이다. '장국영'이 아니라 '장궈룽(張國榮)'이고 '주윤발'이 아니라 '저우룬파(周潤發)', '장자이'가 아니라 '장쯔이(章子怡)'.

그것은 우리가 이제 '모택동'을 '마오쩌둥(毛澤東)'이라고 고쳐 부르고 '주용기'를 주룽지(朱鎔基)라고 고쳐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예인 이름이라고 결코 예외는 아니다. 기회가 있으면 다시 이야기하겠다.

천우이린은 예쁘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오이는 아니었다.

줄거리를 모두 알고 나니 영화를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잘 만든 영화는 큰 줄거리 안에 작은 줄거리, 이른바 서브 플롯이 탄탄하게 엮여있다. 책으로 읽을 때는 무심하게 넘겼던 작은 줄거리 하나가 영화에서는 큰 줄거리보다 더 마음에 남았다.

준세이는 오래된 그림을 복원하는 일을 한다. 실력도 제법 인정받고 있다. 화가인 할아버지는 복원 따위는 그만두고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지만 준세이에게 그림을 복원하는 일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되살려내는 일이다. 준세이는 10년이나 지난 약속을 잊지 못한다. 준세이는 과거에 매여있다.

그러던 어느날 준세이가 복원하고 있던 치이고리의 그림이 갈갈이 찢긴채 발견된다. 그림의 변상도 변상이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을 망가뜨린 공방의 신용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1년이 넘던 복원 작업도 물론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도대체 누구에게 이런 원한을 산 것일까. 곧 공방은 폐쇄된다. 준세이는 일본으로 돌아와 백수로 지낸다.

그리고 얼마 뒤 준세이는 조반나 선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놀랍게도 그림을 찢은 사람이 조반나 선생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조안나 선생은 준세이를 사랑한만큼 준세이의 재능을 질투했을 수도 있다. 가슴 아프고도 쓸쓸한 일이다. 도대체 무엇을 되돌이킬 수 있단 말인가. 한번 찢어진 그림처럼 말이다.

이 영화에서 아오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이런 준세이와 달리 아오이의 설명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 책과는 달리 준세이와 아오이가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는 장면이 끼어들었는데, 좀 어색하다. 설마 아오이는 그때까지 준세이를 잊고 있었던 것 아닐까. 영화의 상황설정은 그렇게 밖에 안보인다.

마지막 대사. "기적 같은 건 쉽게 일어나지 않아. 우리들에게 일어난 기적은 단지 네가 혼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야. 끝까지 냉정했던 너에게 난 뭐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가슴속의 빈공간을 채울수 있을까. 나는 과거를 뒤돌아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돼."

가끔은 연애 소설도 괜찮다. 제대로 된 연애 소설을 읽고 싶다면 '열정과 냉정 사이'가 좋다. 때마침 가을 아닌가.

대북 송금의 단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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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징역 12년에 추징금 147억5215만원을 선고 받았다.

내 생각은 그렇다. 진중권 같은 사람들은 철거민들이 목숨을 걸고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는 마당에 수백억원씩 불법 자금을 "해쳐먹고 지랄하고 자빠진" 놈들을 변명할 이유가 뭐가 있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두루뭉술 엮고 싸잡아서 비난할 일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박지원은 돈을 받지 않았거나 설령 받았더라도 개인적으로 해쳐먹은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배달사고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적어도 이 재판은 상식적으로 볼 때도 돈을 줬다는 주장은 있는데 받은 사람은 철저히 부인하는 상황인데다 돈을 받았다는 정황 근거도 없다. 공소 사실에 대한 증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유죄에 대한 입증을 하지 못한채 구속 만료기한을 몇일 앞두고 12년 징역과 추징금 147억5215만원이라는 무거운 선고가 내려졌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이나 대북송금에 대한 평가다. 대북정책은 결국 초법적인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공과는 물론 따져야겠지만 나는 김대중 정권의 이른바 햇볕정책, 지속적으로 이어온 화해와 이해의 노력을 섣불리 평가절하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른바 좌파를 자청하는 진중권 같은 사람들까지 나서서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을 모조리 싸잡아 '보수 정치인들이 수백억원씩 해쳐먹고 지랄하고 자빠진 사건'으로 축소 매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민주당이고 민노당이고 좌파고 우파고 떠나서 생각해보자. 대북송금의 단죄는 아직 이르거나 적어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자칫 두고두고 잘못된 재판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대북사업의 성과는 십년이 지나서 나타날 수도 있고 백년이 지나서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여기서 짓밟아버린다면 성과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앞뒤 못가리는 대책없는 비난은 수구 언론의 레드 컴플렉스에 놀아나는게 아니고 뭐냔 말이냐. 똥하고 된장은 가려가면서 비판해라.

로또의 당첨 비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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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당첨자수 : 199명
총 판매금액 : 3조2311억원
총 판매매수 : 15억249만장
주당 평균 판매금액 : 621억원
주당 평균 판매매수 : 3107만장
주당 평균 1등 당첨금액 : 46억8934만원
1등 당첨비율 : 0.000000123174920

여섯자리 숫자만 맞추면 되는 로또는 금방이라도 행운을 가져다 줄 것처럼 보인다.

2002년 12월부터 2003년 11월까지 1년, 52회 동안 팔린 로또는 15억249만장, 모두 3조2311억원어치에 이른다. 그러나 그 가운데 1등 당첨자는 199명에 지나지 않는다. 당첨 비율은 0.000000123174920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통계가 가져오는 환상에 쉽게 빠져든다. 15억249만장이 팔려서 그 가운데 딱 199장이 당첨됐다. 그 허황된 확률에 사람들은 주마다 평균 3107만장씩 기꺼이 621억원을 쏟아붓는다. 사람들은 15억249만이라는 숫자는 무시하면서 199라는 선택된 숫자에 열광한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터무니 없는 가능성에 요행을 기대하지 않는다.

814만5060분의 1이면 쌀 두가마니, 우리가 끼니 때마다 밥 한공기씩 꼬박꼬박 먹는다면 1629끼니, 하루 세끼씩 543일 동안 먹을 쌀 가운데 어떤 한톨을 골라낼 비율이다.

814만5060톨의 쌀은 가마니로 치면 두가마니가 넘고 무게로 치면 162킬로그램이 넘는다. 1센티미터 간격으로 바닥에 한층으로 늘어놓으면 가로세로 2854줄, 28.54미터의 정사각형. 넓이는 814평방미터, 평으로 치면 246평이 된다. 그 가운데 어느 쌀 한톨.

사람들은 로또를 사면 일주일이 즐겁다고 한다. 버리는 셈치고 그냥 재미로 해보는 거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터무니 없는 확률에서 어떤 의미도 재미도 찾을 수 없다.

(쌀 한톨의 무게는 20밀리그램 정도다. 80킬로그램 한가마니에는 400만톨 정도가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밥 한공기에 들어가는 쌀은 100그램, 5천톨 정도의 쌀이 들어간다. 쌀 한가마니면 800끼를 먹을 수 있다는계산이 나온다. 쌀 한톨의 크기는 가로 3밀리미터 세로 6밀리미터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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