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03 Archives

"밥하기 귀찮은데 우리 햇반이나 먹을까요. 생각보다 먹을만 하던데요."

"아니, 이 여편네가…. 남편은 재테크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밥도 안해주겠다는 말이야? 신문 좀 봐. 수출주가 다시 뜬대잖아. 이번에는 수출주를 사야겠어." 이 투자자는 아내가 밥 대신 햇반을 먹자고 할 때도 정작 햇반과 CJ의 주가를 함께 생각하지 못한다. 뜬 구름 잡는 신문 기사를 파고 들면서 수출주를 살 궁리를 하느라 바쁠 뿐이다. 그는 딸 아이가 마시고 있던 2% 부족할 때를 여러번 얻어마시고도 롯데칠성의 주가에는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다. 친구들과 날이면 날마다 백세주에 취하면서도 국순당이라는 회사가 뭐하는 회사인지도 모른다. 담배를 끊으려고 자일리톨을 날마다 한통씩 씹고 있으면서도 담배인삼공사나 롯데제과의 매출에는 관심이 없다.

2003년 한해 동안 햇반을 포함한 이른바 즉석밥은 1천억원어치가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즉석밥 시장은 해마다 40% 이상 성장하고 있다. 햇반을 만들어 파는 CJ의 주가는 2001년 9월 3만2600원에서 2003년 9월 5만4천원까지 올랐다. 2년만에 1주에 2만원남짓, 70%의 엄청난 수익률이다. 이렇게 확실한 주식을 놔두고 수출주 타령이나 하고 있는 당신은 주식 투자를 할 자격이 없다.

2% 부족할 때는 더 기가 막힌다. 1999년 7월에 처음 나온 뒤 2년만에 무려 10억캔이나 팔렸다. 가장 잘 나가던 때인 2000년에는 한해 1700억원을 벌어다 줬다. 그해 우리나라에서 팔린 생수가 모두 합쳐 1600억원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뒤이어 우후죽순처럼 여러 회사에서 이른바 미과즙 음료를 내놓았으나 아직도 2% 부족할 때의 시장 점유율은 90%에 이른다. 일본에서 유행하던 걸 모방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제대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롯데칠성은 저력이 있는 회사다. 1980년대 중반 밀키스의 선풍적인 인기를 생각해 봐라. 롯데칠성은 그뒤로도 잊을만하면 대박을 터뜨리는 신제품을 내놓았고 지난 몇십년동안 탄탄하게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물론 주가도 그에 걸맞게 올라줬다.

최근에는 이효리가 광고하는 델몬트 망고가 대박을 터뜨렸다. 다른 음료수보다 1~200원씩 비싼데도 2003년 1월에 첫선을 보인 뒤 5개월만에 5000만캔이 팔렸다. 롯데칠성은 2003년 델몬트 망고의 매출 목표를 200억원에서 1400억원까지 높여잡았다. 국내 음료시장이 1조6500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음료수는 한번 성공하면 적어도 5년은 먹고 산다고 한다. 롯데칠성의 주가는 2001년 1월 15만원에서 2002년 5월에는 76만6천원까지 올랐다. 그뒤로 한참 빠지기는 했지만 2003년 9월 현재 60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2년 남짓한 동안 네배로 오른 셈이다. 누가 봐도 롯데칠성의 성공은 분명했지만 롯데칠성의 주가를 눈여겨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백세주도 마찬가지다. 백세주는 2002년 한해동안 1400억원어치나 팔렸다. 오십세주의 유행이 조금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잘 나간다. 국순당의 주가는 2001년 9월 1만4914원에서 2002 5월 4만원까지 올랐다. 역시 빠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3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담배를 끊겠다는 독한 결심을 하면서도 KT&G(옛 담배인삼공사)의 주가가 얼마나 빠지는지 관심이 없었다. 담배 대신 자일리톨을 씹으면서도 롯데제과 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모른다. 한동안 유난히 거셌던 금연운동 탓에 담배인삼공사의 주가는 한참 맥을 못추다가 레종이나 클라우드 나인, 더원 같은 고급 담배를 잇따라 내놓고 매출이 늘어나면서 주가도 따라 올라갔다.

한편 롯데제과 자일리톨은 2002년 한해동안 1800억원어치나 팔렸다. 우리나라 껌 시장은 한해 3400억원 규모, 이 가운데 자일리톨 껌이 70%에 이르는 2400억원 규모를 차지한다. 롯데제과는 여기서 다시 75%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눈치빠른 사람들은 일찌감치 자일리톨의 인기를 보고 롯데제과의 주가에 주목했을 것이다. 롯데제과의 주가는 2001년 1월 9만9900원에서 2002년 5월 69만9천원까지 뛰어올랐다. 무려 699%의 놀라운 수익률이다. 역시 다시 빠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60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동네 구멍가게에만 나가봐도 이런 변화들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경제 전문가나 주식 전문가가 아니라도 충분하다. 멀리 나가지 마라. 구멍가게에 나가보면 돈 되는 주식 정보가 널려있다. 밥 대신 햇반을 먹으면서도, 담배를 끊고 자일리톨을 씹으면서도 왜 햇반이나 자일리톨 만드는 회사의 주가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가. 알지도 못하는 수출주를 살 바에야 저녁마다 마시는 백세주 만드는 회사 주식을 사라.

수많은 주식 투자자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행을 좇아 말도 안되는 주식을 사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달만에 두배로 뛰어오르는 주식을 보면 눈이 뒤집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주식은 복권이나 마찬가지다. 대개 그런 주식들의 주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뒤늦게 뛰어든 사람들은 오히려 반토막이 나기 쉽다.

세계 2위의 부자 워렌 버핏이 가장 좋아한 주식은 코카콜라와 질레트였다. 그는 평생동안 고집스럽게 10개 정도의 주식만 사고팔았다. 마이크로소프트니 인텔이니 정보기술 주식이 마구 뜰 때도 그는 고집을 지켰다. 한번 좋은 주식을 고르면 오를 때까지 1년이고 2년이고 무작정 기다렸다. 오를 만큼 오른 뒤에도 더 좋은 주식이 없으면 계속 들고갔다. 그런 고집스러운 투자원칙이 지난 40년 동안 연평균 26.5%의 수익을 그에게 안겨줬다. 1956년의 100달러가 2002년에는 자그마치 350억달러(43조7500억원)까지 불어났다. 그는 빌 게이츠의 뒤를 이어 세계 2위의 부자가 됐다.

우리도 이제 불확실한 일주일 앞을 내다보지 말고 확실한 10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 주식시장도 이제 장기투자가 뿌리내릴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 잔 파도에 흔들리지 말고 큰 흐름에 올라타는 것, 이 원칙이 성공적인 투자의 기본이다.

주식으로 돈을 벌고 싶으면 결코 대박을 바라지 마라. 여기저기서 쏟아내는 온갖 추천종목에도 관심을기울이지 마라. 핵심은 분명하다. 일주일 뒤나 한달 뒤를 내다볼 수는 없지만 일년 뒤나 3년 뒤는 내다볼 수 있다.

이른바 가치투자의 원칙은 세가지다. 첫째, 저평가된 종목을 사놓고 기다려라. 둘째, 시장이 아닌 회사를 사라. 셋째, 잘 아는 회사를 사라.

우리나라에서는 한일투자신탁운용 이해균 팀장이 워렌 버핏 같은 가치투자로 성공한 경우다. 2000년과 2001년 정보기술 주식의 폭락으로 전세계 증시가 망가지던 와중에 이 팀장은 꿋꿋이 수익을 내 주목을 받았다. 많은 펀드매니저들이 주가가 빠지면 주식을 허겁지겁 털어내고 채권으로 옮겨타거나 아예 현금을 들고 가는 얄팍한 전략을 쓰는데 이 팀장은 시장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식을 그대로 들고 갔다. 그리고 그 주식들이 수익을 올려줬다. 엄청난 대폭락의 와중에 말이다.

이 팀장이 들고 있던 주식은 앞서 예로 든 구멍가게에서 고른 주식들, 롯데칠성과 태평양, 국순당, 금강고려화학 등이었다. 이 팀장은 이를 테면 삼성전자가 아무리 좋은 주식이라도 비싸다고 생각되면 사지 않는다. 남들이 모두 삼성전자가 뜬다고 외치면서 난리법석을 쳐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보다 더 싼 주식이 얼마든지 있는데 뭐하러 비싼 삼성전자를 사냐는 이야기다.

그는 아예 시장을 보지 않는다. 주식시장의 유행이나 테마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미국에서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거나 말거나 환율이나 물가가 오르거나 떨어지거나 신문과 방송에서 뭐라고 떠들어 대거나 그의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주식 하나 하나를 깊게 파고들어 싼가 비싼가를 가려낼 뿐이다. "흔히 말하는 가치주니 성장주니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무의미합니다. 오직 싼 주식과 비싼 주식이 있을 뿐이죠. 우리는 싼 주식을 골라내 비싸다고 느껴질 때까지 그대로 들고가는 전략을 씁니다."

싼 주식은 어떻게 골라낼 수 있을까. 롯데제과가 지난해 자일리톨껌을 얼마나 팔았는가 알고 싶으면 인터넷으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 http://dart.fss.or.kr 에 들어가서 롯데제과를 두들겨 보자. 품목별 매출액은 물론이고 수량과 영업이익, 원자재 단가 등 모든 정보가 공개돼 있다. 지난해 실적을 살펴볼 수도 있고 올해도 분기마다 따져볼 수 있다. 최근 판매 동향이 궁금하면 뉴스를 검색해보거나 직접 회사에 전화를 걸어 투자자 홍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물어보면 된다. 좋은 회사는 주주들에게 친절할 수밖에 없다. 핵심은 지난해보다 올해, 실적에 비춰 주가가 싼가 비싼가를 판단하라는 이야기다.

자일리톨껌이 지난해보다 올해 더 훨씬 많이 팔리는데 주가는 더 낮다면 롯데제과는 아직도 관심을 가져도 좋다. 올해 새로 나온 델몬트 망고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그 열기가 좀처럼 식을 것 같지 않다면 롯데칠성의 주가는 아직도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주식투자는 타이밍(timing)이 아니라 타임(time)의 예술이다. 사고팔 때를 잘 고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주식을 골라 오를 때까지 들고가는 뚝심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오르고 있는 주식을 골라서 사는 것은 도박이다. 좋은 주식인데 아직 뜨지 않고 있는 주식을 골라서 오래 들고 가라는 이야기다. 돈을 벌고 싶으면 나무를 가꾸는 심정으로 자손 대대로 물려줄 종목을 골라야 한다. 언젠가는 그 주식이 대박을 터뜨려준다. 좋은 주식, 오를 주식은 한번 사두면 언젠가는 오른다. 그게 남들따라 유행처럼 아무거나 따라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 확신을 갖자.


상자 기사. / 피터 린치가 말하는 가장 어리석은 생각 12가지.

마젤란 펀드의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는 1977년 2천만달러로 마젤란 펀드를 인수해 13년 동안 무려 660배에 이르는 132억달러를 만들어 낸 전설의 영웅이다. 피터 린치가 말하는 주식 투자의 가장 어리석은생각 12가지를 아래에 소개한다. 사자 마자 오르는 주식을 골라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건 대부분 환상이거나 착각이다. 그런 욕심을 가진 투자자들은 모두 나가떨어진다. 주식에 손을 댈 생각이라면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1. 떨어질만큼 떨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떨어질 리 없다.
2. 바닥 시세로 잡을 수 있다.
3. 이미 오를만큼 올랐는데 어떻게 더 오를 수 있겠는가.
4. 고작 3달러짜리 주식인데 손해봐야 얼마를 보겠어?
5. 언젠가는 결국 회복된다.
6. 어두운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온다.
7. 10달러까지 회복되면 팔겠다.
8. 걱정할 거 없어. 안정주는 가격변동이 심하지 않으니까.
9. 무엇인가 터지기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지겹다.
10. 그 주식을 샀더라면 떼돈을 벌었을 텐데.
11. 이번에는 놓쳤지만 다음번에는 꼭 잡고야 말겠다.

공부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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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서비스 회사, 한국하이네트에 다니는 현유진씨는 화요일과 수요일은 6시만 되면 칼 퇴근을 한다. 수업을 들으러 가기 때문이다. 현유진씨는 지금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 대학원 석사과정 4학기를 다니고 있다. 수강 과목은 모두 세과목, 각각 2학점씩이다. 일주일에 이틀만 나가면 되니 별 부담이 안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동료들이 한창 일하고 있는데 털고 일어서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직장생활 3년차니 그럴만도 하다.

그래도 어렵사리 이번 학기만 마치고 나면 논문 과정만 남는다. 빠듯한 직장생활에 ㅄㅉㅗㅈ기다 보면 학교에 가서 수업 듣기 전에 강의실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잔이 가장 여유롭다. 그럴때면 대학 시절 기억도 떠오른다.

처음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대학교 때 배운 밑천이 바닥나고 있다는 위기감이 들면서 부터였다. 대학교 때 워낙 공부를 게을리 한 탓이기도 하지만 이쪽 바닥이 좀 넓은가. 체계적으로 기초를 닦아 놓지 않으면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데도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다.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은 정말 무섭다. 대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끼고 살아서일까. 뭘 시켜도 척척해내는 것은 물론, 참신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곧잘 내놓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최신 흐름을 모두 꿰고 있다. 선배들이 오히려 갓 들어온 신참들에게 배우는 판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언젠가 이 후배들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현유진씨를 대학원으로 내몬 셈이다.

회사 일에 치이는 한편으로 시험과 리포트에 쫓기면서 온갖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4학기에 들어선 지금은 이제야 비로소 누구 못지 않게 이쪽 바닥의 전문가가 됐다는 자신감이 든다. 아무렴, 400만원씩 납부금을 네번이나 쏟아부었는데 이 정도는 돼야지 않겠는가.

현유진씨가 다니고 있는 정보통신대학원을 비롯해 언론정보대학원, 행정대학원, 국제통상대학원, 과학기술대학원, 국가전략대학원, 사회복지대학원, 정보통신대학원, 노동대학원, 정책대학원 같은 특수대학원의 학생들은 대부분 직장인들이다. 물론 최근에는 학부 졸업생들이 곧바로 오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강의가 야간에 진행되고 일반 대학원보다 수업의 진행속도가 훨씬 느리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위를 따는데 큰 무리는 없다. 크게 뒤쳐지지 않고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어느정도 다듬어진 논문을 제출하면 대부분 학위를 받을 수 있다.

특수대학원이고 또 야간대학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학위에 있어 사회에서 차별은 거의 없다. 열정과 의지만 있으면 2년을 투자해 자신의 실력과 몸값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공부는 더 늦기 전에, 가능하면 빠를수록 좋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참고로 최근 교육인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주5일 근무제의 확대를 위해 야간대학원의 수업은 단계적으로 주말로 옮기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조만간 야간대학원이 아니라 주말대학원이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현유진씨처럼 주마다 고정적으로 시간을 내기 어렵거나 학비가 부담되는 직장인이라면 사이버 대학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최근에는 학사과정은 물론이고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개설하는 대학도 있다. 아직 대학원 과정을 개설하고 있는 사이버 대학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운영하는 사이버 카이스트를 비롯해 아주대가 운영하는 사이버 MBA가 있고 성균관대와 숙명여대, 세종대, 중부대 등 4개 대학이 인터넷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사이버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 대학의 온라인 학위 과정도 매력적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중국 북경대학 등 상당수 외국 대학들도 우리나라에 온라인 대학원 과정을 개설해 놓고 있다. 서울 강남구청은 스탠포드대학과 제휴를 맺고 2003년 9월부터 의료정보학을 비롯해 반도체, 정보 통신등 모두 7개 온라인 석사 학위 과정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강남구청이 학생 모집에서 시작해 마케팅을 총괄하는 형식이다. 스탠포드 대학은 학생 수요 등을 고려해 200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온라인 대학 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굳이 우리나라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 대학의 온라인 과정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 퍼듀 대학교는 2003년부터 6년제 약학사 학위 과정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약대를 졸업한 뒤 2~3년 정도 온라인 과정을 이수하면 미국의 약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굳이 학위에 욕심이 없다면 사이버 대학에서 학사 과정을 전공을 바꿔서 공부해보는 것도 좋다. 사이버 대학이 아직 인지도는 낮지만 졸업하고 나면 일반 대학과 같은 학사학위가 인정되니까 말이다. 물론 이미 대학을 졸업했으면 편입을 할 수도 있다.

사이버 대학은 대부분 수능성적 대신 자기소개서와 지원동기, 학업계획서만으로 학생을 선발해 입학이 쉽고 수업료도 한 학기당 100만원 안팎으로 사립대의 3분의1 수준이다. 입학 정원도 거의 무제한이라고 봐도 좋다. 2003년 기준으로 총 2만3603명을 모집했는데 이 가운데 4년제 대학이 14개대 2만1603명, 2년제 대학이 2개대 2000명이다. 2003년 정시 모집에서 등록률은 50% 정도에 그쳤다. 심지어 20%도 채우지 못한 사이버 대학도 많았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도입하기는 했지만 사이버 대학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졸업하고 나면 정식 학위를 주기로 돼 있지만 산업인력관리공단 같은 경우는 사이버 대학을 대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산업인력관리공단의 일부 자격증은 대학 졸업자에게만 응시자격을 부여하는데 고등교육법이 아니라 평생교육법에 따른다는 이유로 사이버 대학 졸업장은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물론 조만간 해결될 수도 있는 절차의 문제지만 그만큼 아직도 사이버 대학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신입생의 3분의 2가 도중하차하는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설립 3년째를 맞고 있는 사이버 대학은 아직 제대로 졸업생을 배출해 내지 못했다. 사이버 대학이 자리를 잡기까지 좀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사이버 대학은 학위에 대한 욕심보다는 그야말로 직장 때문에 학교 다닐 시간은 없는데 공부는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하다. 게다가 디지털디자인이나 인터넷정보, 게임애니메이션, 사이버무역, 사이버NGO 등 일반 대학에는 없는 다양한 학과가 개설돼 있어 관심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일반 대학처럼 사이버 대학도 졸업하려면 140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한학기에 18학점까지 들을 수 있지만 직장인들에게는 아무래도 좀 무리다. 첫학기에는 9학점 정도 신청해서 들어보고 상황을 봐가면서 다음학기부터 학점을 늘려 듣는게 좋다.

학비는 학점당 4만~8만원으로 한 학기 등록금은 보통 100만~150만원 안팎이다. 한국싸이버대학교는 특별전형으로 입학하는 신입생 전원에게 소정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경희사이버대학교의 경우 특별전형에서 수능 4등급 이상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고 있다. 서울디지털대학교는 재학생 2400명중 612명이 장학생일 정도로 장학금 수혜폭이 넓다.

방송통신대학교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요즘은 대학을 나온 직장인들이 전공을 바꿔 입학이나 편입학하는 경우도 결코 낯선 현상이 아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 03학번 학생이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84학번인 남 의원은 미국 예일대 경영학 석사와 뉴욕대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른바 최고의 엘리트. 그런 그가 새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래서 찾은 곳이 방송통신대학교였다. 남 의원은 전공인 사회복지학과 이제 새로 배우는 경영학에 접목해 복지 전문 정치인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남 의원 뿐만이 아니다. 방송통신대에 편입학하는 명문대 졸업자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2003년 기준 2, 3학년 과정에 편입학한 학생은 6만4379명, 이 가운데 1550명(2.4%)이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 상위권 대학 졸업생이다. 서울대가 442명으로 가장 많고 고려대 429명, 연세대 314명, 서강대 85명, 이화여대 280명이다.

5개대 출신의 방송대 편입학은 1997학년도만해도 683명에 그쳤는데 2001학년도에는 1535명, 2002학년도에는 1550명으로 꾸준히 늘어나 5년만에 두배가 됐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방송통신대학교도 졸업이 결코 쉽지는 않다. 재학생은 20만명을 훌쩍 넘어서는데 2003년 기준으로 입학생은 신입생 6만6400명에 편입생은 8만5985명이나 되는데 졸업생은 재학생의 10분의 1 수준인 2만1346명에 지나지 않는다.

방송통신대 수업은 인쇄교재와 방송대학 위성TV(OUN, 채널 47)와 라디오 등을 통한 방송강의와 함께 한 학기에 3과목, 8시간씩 지역학습관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출석 수업으로 진행된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학기마다 치르는데 왠만큼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결코 만만치 않다.

입학에 시험은 따로 없고 고등학교 학력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2, 3학년 편입은 전문대학 졸업자나 일반대학에서 1년 이상 학업을 마치고 일정 학점을 취득하거나 이와 동등한 학력을 지닌 사람이면 된다. 해마다 12월20일 무렵 원서를 교부해서 새해 첫 일주일 동안 접수한다. 등록금은 50만원 안팎, 책 값도 6000~7000원 정도로 매우 싸다.

새벽 시간을 이용해 학원에 다니고 있다면 노동부 지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좋다. 2003년 9월부터 종업원 150인 미만 중소기업 직원은 학원에서 수업을 들을 때 최대 100만원까지 수강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 직무 관련 학원은 수강료의 80%까지 외국어 과정은 50%까지 지원된다.

수강료 지원과는 별개로 고용보험료를 환급받는 방법도 있다. 환급을 받으려면 과정을 끝까지 이수해야 한다. 몇번 이상 결석하면 환급 자격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강좌가 종료된 분기의 다음달까지, 이를 테면 5월에 강의를 들었으면 7월까지 수료증과 세금계산서를 노동부에 제출하면 수강료의 최대 90%에 해당하는 고용보험료를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아예 처음부터 고용보험 환급이 가능한 강좌를 골라 듣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학원 강좌 뿐만 아니라 이캠퍼스 http://www.ecampus.co.kr 같은 온라인 강좌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강의를 모두 듣고 시험을 쳐서 8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이캠퍼스는 삼일회계법인과 손잡고 회계관리사 과정을 비롯해 300여개 전문회계과정을 개설했다. 이밖에도 정보기술과 경영, 어학, 모의시험 등 250여 부문의 교육과정이 개설돼 있다. 수강료는 강좌에 따라 5만원에서 300만원까지 다양하고 고용보험 환급혜택을 받을 수 없는 강좌도 섞여 있으니 주의할 것.


상자 기사 / 의학 전문대학원은 어떨까.

조만간 도입될 것으로 보이는 의학 전문대학원도 관심거리다. 4년 과정을 마치면 비전공자도 의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 전문대학원 체제를 도입하려는 대학은 학부과정을 폐지하고 2년간의 준비 작업을 거쳐 신입생을 뽑는다. 의학 전문대학원을 졸업하면 일반 의과대학 졸업생과 달리 석사학위를 받는다.

빠르면 2005년에 첫 신입생을 뽑게 되는데 경쟁이 치열할 걸로 예상되니 지금부터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화학이나 생물, 수학 등의 과목의 시험을 치러야 하고 의학교육 입문시험(MEET)을 통과해야 한다. 물론 4년 과정 대학원이 부담스럽다면 일반 의과대학에 학사편입학하는 방법도 있다.

의학교육 입문 시험은 전문대학원에 참여하는 대학들이 공동으로 위원회를 만들어 시험과목과 운영방식을 정한다. 여러번 응시해 좋은 점수를 사용할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나이제한은 없지만 대학마다 규정을 둘 수도 있으니 미리 알아보는 게 좋다.


상자 기사 / 부동산학 대학원도 뜬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양성준씨는 내년에 국회를 떠나 다시 공부를 시작할 생각이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직업의 전망이 불투명한 탓도 있지만 뭔가 새로운 일,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일을 시작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양성준씨가 생각하고 있는 대학은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대학원. 외국 유학가서 그럴듯한 박사 학위를 따와도 시간 강사 자리 하나 얻기 어려운 세상이 됐지만 부동산학과는 아직 국내에서 딴 학위가 충분히 먹혀든다. 게다가 이 학과 대학원 학생들이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이 많고,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공부 목적에서 배우는 사람들이니 상대적으로 양성준씨 같은 경우는 유리한 입장이다.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마음만 먹으면 지방대학 교수 자리라도 하나 꿰찰 수 있지 않을까, 양성준씨의 계산은 그렇다.

물론 새롭게 주목받는 분야라 벌써부터 경쟁이 만만치는 않다. 2003년 정시 모집 때는 100명 모집에 774명이 몰려들었다. 게중에는 변호사 9명을 포함해 회계사와 세무사, 건축사, 감정평가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모두 18명이나 됐다.

부동산 대학원은 건국대와 한성대 등 2곳 뿐인데 이밖에도 한양대와 성균관대, 동국대 등 일부 대학의 야간대학원에 부동산 전공 과정이 개설돼 있다. 부동산학과를 신설하는 대학이 더 늘어날 거라고 본다면 양성준씨의 계산은 일리가 있다. 굳이 교수자리를 노리지 않더라도 뜨는 학문에 일찌감치 뛰어드는 것도 남보다 한발 앞서가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모처럼 연극을 봤다.)

"만년에는 더욱 황음하고 패악(悖惡)한 나머지 학살을 마음대로 하고, 대신들도 많이 죽여서 대간과 시종 가운데 남아난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포락 (烙: 단근질 하기), 착흉(胸: 가슴 빠개기), 촌참(寸斬: 토막토막 자르기), 쇄골표풍(碎骨瓢風: 뼈를 갈아 바람에 날리기) 등의 형벌까지 있어서…"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일기' 가운데.


뒤늦게 정현왕후라는 제대로 된 이름을 얻기는 하지만 연산군의 어머니는 그동안 내내 폐비 윤씨라는 치욕스러운 이름으로 불렸다.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냈다고 궁궐에서 ㅐㅉㅗㅈ겨나 결국 사약을 받고 죽어야만 했던 비운의 왕비. 연산군이 뒤늦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피비린내 나는 복수는 어쩌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음모였다. 연산군의 어머니가 억울하게 죽은 것부터 연산군이 어머니를 죽인 신하들을 찾아 죽이는 것까지 모두 권력을 둘러싼 어두운 음모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연산군은 조금도 저항하지 못하고 음모에 휘말려 들고 결국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복수를 한다고 한들, 잘못된 역사가 바로 잡힐까.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는데 몇사람 목숨만으로 어머니의 복수를 할 수 있을까.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수선했던 정치 상황이나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 탓으로 돌리기에도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당신은 누가 뭐래도 한 나라의 왕 아니었던가.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온통 적의에 둘러싸여 있었던 당신에게 역사는 가혹하기만 했다. 당신은 왕이었으면서도 너무 가볍고 너무 무력했다. 조선의 국운은 아마 당신의 대에서 굴절되고 크게 기울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500년이나 지난 뒤에 이 연극이 과연 당신의 서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을까. 당신을 용서하지는 않지만 이해하고 기꺼이 동정하려는 이 연극이 말이다.

연산군 즉위 12년 되던 해, 1506년 9월 성희안과 박원종, 유순정 등의 주동으로 연산군 폐출운동이 일어나고 성종의 둘째아들 진성대군이 왕에 오른다. 이른바 중종반정이다. 연산군은 어머니처럼 궁궐에서 쫓겨나고 그해 병으로 죽는다.


(대본에서 몇 문장을 발췌합니다. 정말 신나는 부분.)

연산 = 흥, 내가 왜 공자 말을 따르느냐. 내가 중국놈이냐?!
대신5 = (통곡) 아이고. 나라를 망치는 말을 어찌 그리 함부로 합니까.
연산 = 유감스럽게도 내 말이 나라를 망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6 = (울면서) 유감스럽게도 신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하의 성품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학문이 완성되지 못했으니 허물이 있을 것은 당연한 이치. 신등의 말을 따르십시오!
연산 = 그래, 나는 아직 어린 몸으로 선대의 왕업을 이어받고 조정대신들의 이해와 백성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어야 할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내 덕이 원만치 못하고 행실이 수양되지 못하여서인지,아니면 나와 신들의 심정이 막혀서 그런지, 아니라면 어린 임금의 기세를 미리 꺾어 자네들 손아귀에 쥘려는 더러운 힘의 논리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 권세 있는 자들이 그 권세를 잃기 싫어 내 정사를 고의로 방해하려는 의도인지 알 수 없지만, 나와 자네들은 이렇게 적대적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미 죽어 시샘도 질투도 수렴 청정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내 어머니, 그런 어머니 재 한번 올려주겠다는 것이 그리 큰 문제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다른데 있는 것 같다!

무대는 일시에 긴장의 기운

대신1 = 전하, 지금 전하의 말씀은 일일이 사초에 기록되고 만대에 보존되옵니다. 말씀을 조심하소서!
연산 = (버럭) 너네들이야 말로 세치 혀를 조심해라! 입은 화가 들어오는 문이오, 세치 혀는 언젠가 자신의 목을 베는 칼이 될지니라.

싸늘해진다.

나는 어떤 형태로든 이 세상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 비판할 줄만 알고, 정작 책임지지 못하는 혓바닥들이 난무하는 세상은 바람직하지 못하지. 이 나라는 공자도 죽은 임금도 더 이상 책임지지 않는다. 내가 책임진다. 이 말을 사초에 기록해라. 나는 더 이상 공자의 제자가 아니다. 나는 조선의 왕이다.


연산 = 그래, 굿을 하자. 누구 보란듯이 여기서 떡 벌어지게 대왕굿을 한판 벌여 보자. 사헌부에 가서 일러라. 임금 볼기 칠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자원 = 무당을 불러 올깝쇼?
연산 = 무당은 필요없다. 내가 왕 무당이다.
처선 = 아이고, 임금 그건 아니되옵니다. 임금께서 천한 무당노릇을 하시면.
연산 = 그것도 다 공자 아들놈들이 꾸민 수작이지. 언제부터 무당이 천한 인생이 되었느냐. 조선을 창세하신 단군왕검 할아버지가 무당이셨다. 신라 성골, 진골도 무당이요, 글 배운 놈들은 고작해야 그 밑구녕 육두품이 아니었더냐. 고구려 동명왕 신라 혁거세, 백제 온조대왕 모두 무당이셨고, 미륵이셨다!

글 배우고 칼찬 놈들이 설치면서 이 세상은 타락했다. 하늘의 기운을 가리고 저승의 통로를 막은 놈들이 아웅다웅 헐뜯고 씹고 뒷통수를 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자, 내가 무당이고, 내가 미륵이다. 자원아, 저기 어전 뒷뜰 대밭에 가서 푸른 대 하나 뽑아 오너라.


연산 = 풍악을 울려라. (자원에게 대를 받는다.) 내 오늘 죽은 귀신들 원도 한도 없이 극락가도록 다 풀어주마. (인수대비와 정귀인, 엄귀인이 나인들을 대동하고 나온다.) 아이구, 저기 산 귀신들도 왕림하시는구나. 어서 오십시오, 할망마마. 오늘 소자가 굿 한판 올리겠습니다. (대신들도 힐끔힐끔 고개를 내민다.) 궁궐 강아지에서 쥐새끼들까지 다 나와서 구경해라. 오늘이 바로 단군 할아버지 왕도를 회복하는 날이다.


동전 던지기를 생각해보자.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은 딱 50%다. 물론 10번을 던져서 10번 모두 앞면이 나올 수도 있고 모두 뒷면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동전을 100만번 던진다면 앞면은 얼추 50만번 가까이 나온다고 보면 된다. 동전 던지기 내기를 하면 한두번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겠지만 100만번씩이나 내기를 한다면 결국 비슷하게 이기고 비슷하게 지게 된다. 1만원 내기의 기대수익과 기대손실은 모두 5천원이다.

만약 확률을 조금만 높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앞면이 나올 확률이 51%라면 앞면에 걸었을 때 기대수익은 5100원, 기대손실은 4900원이 된다. 한번 내기를 할 때마다 100원씩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내기를 100번하면 수익률은 100%, 수익은 1만원이 된다. 1%의 확실한 확률만 있어도 수익은 엄청나게 늘어난다.

선물 투자는 동전 던지기와 비슷하다. 시장이 망가지면 주식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망가진다. 둘러보면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들이 꽤만 많은 것 같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피 같은 돈을 주식에 쏟아붓고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다. 복권 당첨을 기다리듯 주가가 오르기를 마냥 기다릴뿐이다. "요즘 주식이 좋다던데." 생각없이 덤벼드는 사람들 정말 도시락 싸서 쫓아다니면서 말려야 한다. 주식으로 돈벌기는 결코 쉽지 않다.

선물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물을 들고 있는 사람은 시장이 아무리 망가져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 주가가 떨어지면 떨어지는대로 오르면 오르는대로 선물은 돈을 벌어준다. 한발 앞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선물(先物, futures)은 그야말로 선물(膳物, present)이다. 선물 투자는 위험천만하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머니 게임이다. 주식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만 기다리는 천수답이라면 선물은 이길 확률이 많은 동전 던지기다. 벌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지만 벌 때가 조금 더 많고 오래 버티기만 하면 이익이 크게 늘어난다.

여기서 잠깐 선물의 기본 개념을 짚고 넘어가자. 쌀 한가마니가 20만원인데 한달 뒤에는 쌀 값이 크게 오를 것 같다고 하자. 그럴 땐 미리 쌀을 사두면 돈을 벌 수 있다. 당장 돈도 없고 쌀을 사도 쌓아둘 데가 마땅치 않다면 어떻게 할까. 그럴 땐 적당히 계약금을 걸고 한달 뒤에 한 가마니에 20만원씩 주고 쌀을 사겠다는 계약을 맺으면 된다. 한달 뒤에 쌀 값이 한 가마니에 25만원까지 오르면 당신은 한 가마니에 5만원씩 챙길 수 있다. 20만원에 사서 25만원에 팔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쌀 값이 떨어질 것 같을 때는 어떻게 할까. 거꾸로 하면 된다. 쌀 값이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서 한달 뒤에 쌀 한 가마니를 20만원에 팔겠다는 계약을 맺으면 된다. 쌀 값이 한 가마니에 15만원으로 떨어지면 당신은 한 가마니에 5만원씩 챙길 수 있다. 15만원에 사서 20만원에 팔면 되니까 말이다.

선물의 기본 개념은 그렇게 간단하다. 주가가 오르거나 떨어질 거라고 미리 내다볼 수 있으면 선물을 사거나 팔면 된다. 예측이 맞으면 돈을 번다. 주식은 주가가 올라야 돈을 벌 수 있지만 선물은 주가가 빠져도 돈을 벌 수 있다. 주가가 오를 것 같은가. 그럼 선물을 사면 된다. 주가가 빠질 것 같은가. 그럼 선물을 팔면 된다.

선물 투자는 그래서 동전 던지기와 비슷하다. 다만 동전은 아무래도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딱 절반씩이지만 선물 투자는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크게 욕심을 낼 것도 없다. 1%의 확실한 확률만 있으면 충분하다.

잠깐, 깜짝 놀랄만한 표를 하나 살펴보자. 전업투자자 조봉제씨의 지난 1년간 선물 투자 성적표다. 2002년 7월 1억원이 1년 뒤인 2003년 8월 딱 네배로 불어났다. 달마다 벌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지만 이익은 꾸준히 쌓이고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늘어난다.



조봉제씨는 선물 시스템 트레이딩의 이른바 재야 고수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을 낸다. 물론 그 시스템의 원칙을 모두 털어놓지는 않지만 핵심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확실한 1%를 찾는 원칙은 간단하다. 이를 테면 월초 효과를 생각해보자. 달마다 1일은 주가가 오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있다. 월말이면 여기저기서 돈을 빼나갔다가 월초가 되면 다시 들어오기 때문이라는데 실제로 그럴까. 과거 선물 데이터를 살펴보면 2000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42개월동안 28개월이 1일 주가가 올랐다. 무려 66.7%의 확률이다. 만약 1천만원을 집어넣고 달마다 1일 아침 9시에 선물을 1계약 사들였다가 오후 3시에 내다판다면 그것만으로도 137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놀랍지 않은가. 주가가 왜 이런 규칙을 따를까. 투자자들의 심리라든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규칙이 맞아 떨어지고, 실제로 상당한 수익을 올려준다는데 있다.

간단한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밀고 나갈 뚝심과 최소한의 기본 투자자금만 있으면 충분하다. 과거의 수많은 데이터에 여러 아이디어를 집어넣어봐라. 과거에 수익을 냈다면 앞으로도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다. 수익 대비 위험의 비율이나 최대 손실, 최대 연속손실 등을 잘 살펴봐야 한다.

신기한 통계 결과를 하나 더 살펴보자. 보통 금요일이 되면 주말에 무슨 일이 터질까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투자자들은 일단 주식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별일이 없으면 월요일 아침에 그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경향이 있다. 결국 월요일 아침 투자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한주의 움직임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월요일 아침 시초가가 금요일 종가보다 높으면 그날은 무조건 오른다, 낮으면 무조건 떨어진다"는 가정을 세워보자.

조건 :
금요일 오후 끝난 가격과 월요일 아침 시작한 가격을 비교한다.
월요일 시작한 가격이 더 높으면 사고 더 낮으면 판다.
월요일 오후 마지막 가격에 털고 빠져 나온다.

이 조건을 과거 데이터에 집어넣고 돌려봤다. 2000년 1월부터 2003 5월까지 모두 204일의 일요일과 공휴일을 살펴봤더니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손절매 기준을 안줬을 때)
총 거래회수 : 204회.
이익난 거래회수 : 116회.
손실난 거래회수 : 88회.
승률 : 56.8%
총이익금 : 182.75포인트, 9137만5천원.
총손실금 : 119.8포인트, 5990만원.
순이익금 : 3147만5천원.

투자원금을 1천만원으로 잡고 한번 거래할 때마다 평균 이익거래 금액은 78만8천원, 평균 손익거래 금액은 71만3천원으로 나왔다. 최대 이익금액은 310만원, 최대 손실금액은 302만5천원이다. 3년 반 동안 수익률이 300%가 넘는다.

만약 여기에다 손절매 조건을 덧붙인다면 수익은 훨씬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손절매 기준을 50만원으로 주고 계산을 다시 해봤다. 손해가 50만원까지 늘어나면 더 큰 손해를 보기 전에 무조건 털고 나오라는 이야기다.

(손절매 기준을 줬을 때, 손절매 기준 50만원)
총 거래회수 : 204회.
이익난 거래회수 : 109회.
손실난 거래회수 : 95회.
승률 : 53.4%
총이익금 : 176.65포인트, 8832만5천원.
총손실금 : 85포인트, 4250만원.
순이익금 : 4582만5천원.

이제 평균 이익거래 금액은 81만원, 평균 손실거래 금액은 44만7천원이 된다. 최대 이익금액은 310만원이지만 최대 손실금액은 50만원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한번 거래할 때마다 평균 기대수익은 22만5천원이 된다.

승률을 눈여겨 보자. 53.4%. 50%를 넘어선 +3.4%가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 준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리하면 벌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지만 벌 때 크게 벌고 잃을 때 적게 잃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수익률 곡선 그래프)

물론 이 계산에는 수수료와 오차가 빠져 있다. 선물 수수료는 0.08%로 그리 크지 않지만 오차는 중요하게 다시 살펴봐야 한다. 주문을 낸다고 해서 바로 그 가격에 체결되는 건 아니고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결과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이 방법을 그대로 따라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처럼 과거의 통계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방금 살펴본 통계 결과는 이러이러한 조건을 놓고 돌려봤더니 과거에 이렇더라, 지난 3년5개월 동안 이렇게 움직여왔더라 하는 결과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방법을 통해 시장의 흐름을 찾아내고 과거에 이렇게 움직였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시장을 예측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날그날 감정에 따라, 오를 것 같으니까 사자, 떨어질 것 같으니까 팔자, 그런 투자 방법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다는 데 있다. 실제로 조사 결과를 보면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기관 투자자들 가운데 70% 이상이 이런 시스템 매매를 하고 있다. 물론 이보다 훨씬 변수도 많고 훨씬 복잡한 전략을 세우겠지만 기본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그 가운데서 흐름을 찾아내고 흐름에 올라타라는 이야기다.

더 간단한 방법도 있다. 20일 이동평균선을 따라 주가가 20일 이동평균선보다 위에 있으면 아침에 사고 오후에 팔면 된다. 거꾸로 20일 이동평균선 밑에 있으면 아침에 팔고 오후에 사들이면 된다. 20일 이동평균선이란 지난 20일 동안 주가를 평균한 값을 이은 선이다. 지수가 20일 이동평균선을 밑돌고 있다면 주가가 빠지는 흐름을 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고 웃돌고 있다면 주가가 오르는 흐름을 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시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오르는 흐름을 타고 있을 때는 선물을 아침에 샀다가 저녁에 팔아라. 빠지는 흐름을 타고 있을 때는 선물을 아침에 팔았다가 저녁에 사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결과는 정말 놀랍다. 벌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지만 결국 벌 때가 훨씬 많다.

선물 투자에서 기억해야할 준칙은 딱 두가지다. 첫째,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아라. 둘째, 한번에 크게 먹기 보다는 여러번에 나눠 조금씩 나누어 먹어라. 흐름에 가볍게 올라타면 벼락부자가 되는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더 싸게 살 수 있고 더 비싸게 팔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결국 원칙을 깨고 때를 놓치게 되고 가능성 없는 어려운 모험에 뛰어 든다.

욕심과 조바심을 버려야 돈을 번다. 잔 파도에 흔들리지 말고 큰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 벼락부자의 꿈, 일확천금의 꿈은 그렇게 꾸는 것이다.

이명박의 스물네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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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살의 이명박은 오갈데 없는 신세였다. 그럭저럭 학교는 졸업했지만 학생운동으로 한차례 감방 신세까지 진 터라 여기저기 원서를 내봐도 매번 미끄려지기만 했다.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마찬가지였다. 현대건설의 인사담당자는 아예 대놓고 전과자를 뽑을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명박은 청와대에 편지를 썼다. "한 개인의 앞날을 국가가 막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국가는 그 개인에게 영원한 빚을 지게 된다." 협박아닌 협박에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이 마음을 바꿔 먹었고 그 편지 덕분에 이명박은 현대건설에 입사할 수 있었다.

면접 자리에서 정주영 회장은 물었다. "건설이 뭐라고 생각하나."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말은 잘하는구만." 정 회장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정 회장은 당당하고 당돌한 이명박에게 마음이 갔다.

신입사원 환영회에서도 빙둘러 앉아 술을 돌리는데 이명박은 끝까지 버텼다.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면서 원이 쪼그라들고 나중에는 정 회장과 이명박 둘만 남았다. 이명박은 그렇게 정 회장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태국 공사 현장에서 일할 때 이명박은 말단 경리였다. 이명박이 보기에 그 공사는 적자가 날 게 뻔했다. 그런데 아무도 이명박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중에 일이 터졌을 때 경리부 사람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책임을 뒤집어 쓰게 된 이명박은 정 회장에게 그동안 준비해 왔던 자료를 내밀었다. "이 공사는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적자가 났다. 괜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지마라. 적자가 난다고 이야기했는데 아무도 내말을 듣지 않았다."

이명박은 그날 태국 공사현장의 경리 책임자가 됐다. 깐깐하고 원리원칙만 고집하는 이명박을 정 회장은 깊이 신뢰했다. 입사 3년째 되던 해, 이명박은 중기사업소 과장으로 전격 승진한다. 본사 경리과로 가기를 기대했던 이명박은 실망도 잠깐, 정 회장의 뜻을 눈치챈다. 고속도로 건설 현장의 인부들과 부대끼면서 이명박은 현장의 험한 분위기를 몸으로 익혀 나갔다. 이명박은 출근 시간을 한시간 앞당기고 아침마다 직원들에게 맨손체조와 구보를 시켰다.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작업능률이 좋았다. 이명박은 1년 반 뒤 부장으로 승진하고 그 6개월 뒤 다시 이사로 승진한다. 입사 4년째, 28살되던 해다. 이명박은 일찌감치 시장을 내다보고 현대건설이 아파트 공사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의 예측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뒤 현대건설은 아파트 공사에서도 제법 재미를 봤다.

이명박의 초고속 승진은 계속된다. 입사 7년만에 관리담당 상무, 9년만에 전무, 그리고 10년째 되던해 마침내 부사장을 거쳐 12년째 되던해 나이 서른다섯에 현대건설의 사장이 된다. "당신은 사람을 다룰줄 알아. 나를 위해서, 아니 현대건설을 위해 사장을 맡아주게." 정 회장은 이명박을 친아들보다 더 깊이 신뢰했다.

그뒤 이명박은 현대건설 회장을 거쳐 1992년 정 회장의 정계 진출과 함께 현대를 떠난다. 정 회장과 다른 길로 정치에 입문해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1998년에는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이명박이 눈부신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건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문제에 부딪히면 이명박은 망설이지 않고 정면돌파했다. 과장 무렵 때는 굴삭기를 몰고가 남의 공장 앞 도로를 파헤쳐 놓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사장 때는 서슬퍼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도 끝까지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기도 했다. 운이 좋았겠지만 이명박은 무슨 일을 시켜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고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사람을 재빨리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이명박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간에서는 나를 신화의 주인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신화는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만 신화일뿐, 안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겹겹의 위기와 안팎의 도전으로 둘러싸인 냉혹한 현실이다. 시련이라는 험한 파도 앞에서 나는 우회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이 작은 용기를 사람들은 신화라고 부르는 것 같다."

스물네살의 당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 뿐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당신 편으로 만들어라. 작은 일에 매이지 말고 늘 남보다 멀리 내다봐라. 보다 큰 꿈을 꾸고 기꺼이 무모하게 덤벼들어라. 도전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자칫 묻힐 뻔 했던 마태 수난곡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가 죽고 난 뒤 80여년만의 일이었다. 1829년 요하네스 멘델스존의 지휘로 처음 연주된 마태 수난곡은 이른 바 바하 르네상스를 불러왔다. 사람들이 바하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마태수난곡은 이제 바하의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마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의 마태복음 26장과 27장을 가사로 쓴 78개의 노래 모음, 연주에 모두 세시간 반 이상이 걸린다.

아, 나의 하느님이여.
나의 눈물로 보아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앞에서 애통하게 우는 나의 마음과 눈동자를
주여, 보시옵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지금 듣는 노래는 39번째 노래, 알토 아리아,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다. 영화 '이중간첩'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왔던 음악이기도 하다. 마태수난곡은 필리페 헤레베헤의 지휘로 콜레기움 보칼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1999년에 녹음한 음반을 가장 최고로 친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번 부인하고 곧 닭이 운다. 베드로는 예수의 말이 떠올라 밖에 나가서 통곡한다. 뒤이은 40번째 노래는 합창이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떠났습니다. 당신 앞에 돌아왔나이다. 아들의 희생, 고뇌와 죽음의 고통이 당신과 화해시킨 것입니다. 나의 죄를 부정하지 아니하나 당신의 은총과 자비는 끊임없는 나의 죄보다 크나이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 마태 수난곡 가운데 39번째 노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축해서 1억 모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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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환씨의 연봉은 3천만원, 정기환씨 아내의 연봉은 2천만원이다. 빈털터리로 결혼한 두사람은 연리 6%에 5천만원의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했다. 한해 내는 이자만 300만원이다. 두사람의 용돈은 합쳐서 월 100만원으로 한정한다. 한해 1200만원. 교통비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생활비를 한달에 30만원씩 한해 360만원, 그리고 나머지 140만원은 예비비로 떼둔다. 가끔 두사람이 특별한 외식을 하거나 갑자기 냉장고를 바꿔야 하거나 병원에 가봐야 하거나 특별한 경비는 여기서 해결한다. 보너스는 포함하지 않는다. 보너스는 말 그대로 보너스, 계획에 따라 정장을 맞춰 입거나 휴가 여행을 가거나 아낌없이 지출해도 좋다.

그렇게 쓸만큼 실컷 쓰고도 정확히 한해 2천만원을 지출하고 나머지 3천만원은 고스란히 저금할 수 있게 된다. 3년 남짓한 동안 뚝딱 1억원을 모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1억원, 생각만큼 큰 돈 아니다.

정기환씨 계획의 핵심은 절제와 철저하게 계획된 지출이다. 예비비가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그렇다면 아르바이트를 하든가 용돈이나 생활비를 더 줄이든가,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는 것도 한 대안이다. 교통비는 물론 시간과 열정까지 크게 아낄 수 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 키스 자렛, 골드베르크 변주곡 1번 아리아.

내려 받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합니다. 1999년 작품, 의외로 단정하고 정확한, 그야말로 클래식한 연주입니다. 쳄발로로 연주하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마치 축제 날 아침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지금 이 곡은 골드베르크 변주곡 가운데 1번 아리아.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모두 32곡인데, 1번과 32번은 같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30곡은 모두 이 아리아의 변주입니다. 같은 주제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모두 새롭고,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있습니다. 듣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참고 : 글렌 굴드와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정환닷컴)

돈을 벌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독을 품어야 한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대학교 다닐 때부터 그럴듯한 술집이나 하나 차려서 놀고 먹는게 꿈이었던 서동욱씨는 지난해 드디어 꿈을 이뤘다. 그러나 생맥주집을 하나 내기는 했지만 사장이랍시고 놀고 먹는 건 결코 아니다. 서동욱씨는 이른바 투잡스족이다. 낮에는 정보기술 회사에서 일을 하고 퇴근하고 나면 생맥주집 사장으로 변신한다. 퇴근해서 곧바로 가게에 도착하면 한창 바쁠 때인 저녁 여덟시에서 아홉시. 이때부터 새벽 두세시까지 줄창 일을 하다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면 새벽 네시. 잠깐 눈을 붙이고 일곱시면 다시 출근을 서둘러야 한다. 놀고 먹기는커녕 하루 세시간도 못자고 이게 왠 고생이냐 싶다. 어디서나 틈만 나면 조금씩 눈을 붙이지만 늘 잠이 부족하다.

"투잡스, 말은 그럴 듯하지만 정말 사람할 짓이 못됩니다. 막상 뛰어들려고 보면 뭘 할까 마땅치 않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도 몸이 힘들어 왠만큼 돈독이 오르지 않으면 버텨내지 못할 겁니다."

투잡스족, 서동욱씨는 너스레를 떤다. 그도 그럴 것이 몸 피곤한 건 둘째치고 회사에서 꾸벅꾸벅 졸다보면 눈치도 보이고 이래저래 남는 시간도 전혀 없다. 야근이라도 닥치면 가게 걱정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인간 관계도 하나둘씩 끊기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요즘 그 어느때보다도 신바람이 났다. 생맥주집은 인건비와 재료비, 기타 고정 비용을 모두 빼고도 남는 이익이 매출의 40%를 넘어선다. 서동욱씨 가게의 경우는 한달에 1천만원 가까이 고스란히 순이익이 남는다. 그야말로 돈을 긁어들이는 재미에 요즘 서동욱씨는 피곤함을 잊는다.

그나마 아내가 듬직하게 버텨주니 이 짓도 할 수 있다. 음식점이나 다른 가게와 달리 생맥주집은 저녁 나절에만 잠깐 문을 열면 되니까 투잡스로는 정말 딱이다. 생맥주집이라지만 퇴폐적이거나 음침하지는 않다. 인테리어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서동욱씨의 생맥주집은 오히려 밝고 즐겁고 기운이 펄펄 넘치는 젊은 공간이다. 아내도 가게 일을 즐거워 한다.

생각 같아서는 회사를 아예 그만두고 이 길로 나설까 싶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회사 일도 재미있다. 게다가 아직 꿈도 있다. 서동욱씨는 이 생맥주집이 잘 돼서 돈을 어느 정도 모으면 직접 정보기술 아이템을 잡아 창업을 할 생각이다. 벤처 거품은 썰렁하게 꺼졌지만 아이템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밤늦게까지 북적거리는 손님들을 보면 그 꿈이 조금씩 이뤄지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만 하다.

서동욱씨는 올해 서른 다섯살이다. 10여년의 직장 생활 동안 모아둔 돈이 있으니 2억원 가까이 쏟아부어 선뜻 생맥주집을 차릴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사실 20대 직장인이라면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굳이 생맥주집이 아니라도 투잡스는 얼마든지 열려있다.

자기가 즐기는 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스키를 좋아하고 잘 탄다면 밤과 주말을 이용해 스키 강사로 나서는 건 어떨까. 대한스키지도자협회에서 발급하는 스키 강사 자격증도 따면 손쉽다. 한사람 놓고 가르치면 4시간에 3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평일 밤에는 20만원, 휴일이면 100만원까지 벌 수 있다. 겨울 한철을 지내고 나면 왠만한 월급쟁이 연봉만큼은 번다. 이 정도면 어찌 투잡스를 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대한스키지도자연맹에서는 해마다 2월말 정도에 스키강사 자격시험을 치른다. 신체 건강하고 고등학교 졸업 학력 이상이면 누구나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먼저 준지도자 자격 시험을 합격하면 2년 뒤에 정지도자 자격 시험을 볼 수 있다. 자격증을 따면 스키 가게 등에 부지런히 명함을 뿌려두면 손님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스키도 못타고 가진 건 튼튼한 몸 하나, 할줄 아는 건 운전 밖에 없다면 밤 시간에 대리 운전을 해보면 어떨까. 만만찮은 일이지만 그야말로 아르바이트 아닌가. 눈 딱 감고 버티는만큼 돈이 들어온다.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한번 나갈 때마다 보통 2만원 정도 받는다.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나가면 4~5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차를 몰고 손님 집까지 데려다 주고 나면 돌아올 때는 택시나 버스, 지하철 등을 타고 와야한다. 다행이 다음 일거리하고 거리가 맞는 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다.

이래 저래 택시비 등으로 빠져 나가고 한번 주문을 받을 때마다 회사에 5천원씩을 따로 떼줘야 한다. 그렇게 저녁 10시부터 새벽 2~3시까지 대여섯탕 뛰고 나면 어렵사리 하루 5만원 정도 남는다. 꾸준히 모으면 그나마 한달에 100만원 벌이는 된다. 돈 벌이가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대리운전이 고달파 보이는가. 그렇다면 인터넷 쇼핑몰을 생각해 보자. 그나마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병행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투잡스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소호(Small Office Home Office) 사업이다. 간단히 사업자 등록만 내면 되고 개설 비용이나 유지 비용이나 크게 돈들 일도 없다.

올해 스물여섯살의 우체부 신현철씨는 퇴근하고 나면 인터넷 쇼핑몰의 사장이 된다. 만들기도 쉽다. 신현철씨는 소호마트(www.sohomart.co.kr)에서 쇼핑몰을 하나 임대받아서 운영하고 있다.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모두 132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여기서 판매되는 상품이 무려 4만5천가지나 된다.

제조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제품을 진열하고 물건이 판매되는만큼 판매 수익의 일부를 나누기로 계약을 맺으면 된다. 제조업체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고 소개비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신기하게도 내가 만든 사이트에서 내가 물건을 사도 수익금이 남는다. 친구들과 친척들까지 아름아름 끌어들이면 그만큼 매출이 부쩍 늘어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컴맹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신현철씨가 인터넷으로 돈을 벌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인터넷 쇼핑몰은 신현철씨처럼 그야말로 인터넷 검색 정도만 할 수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인맥이 넓으면 그만큼 훨씬 유리하다.

중요한 건 아이디어다. 헌책을 인터넷에서 팔겠다는 생각을 한 고물북(www.gomulbook.com)의 사장은 놀랍게도 고등학생이다. 올해 열아홉살인 이부호씨는 문화관광부 주최 청소년 벤처 창업 게임에서 이 아이디어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헌책을 쌓아놓고 판매하기 보다는 헌책을 팔 사람과 살 사람을 연결시켜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애들 장난 같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앞으로 지켜볼 회사 가운데 하나다.

인터넷 전문가가 아니라도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난리 법석을 피울 필요도 없다. 신현철씨가 입주해 있는 소호마트를 비롯해 와이즈카트(www.wisecart.co.kr)나 인토어(www.intore.com) 등에 가면 아주 싼 가격에 인터넷 쇼핑몰을 뚝딱 만들 수 있다. 한달에 10만원 정도 임대료를 받는 곳도 있다.

당신이 전문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면 굳이 몸으로 떼워 고생 고생해가면서 돈을 벌 필요는 없다. 가장 손쉬운 아르바이트 가운데 하나는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평소에 당신의 전문성을 입증받아야 한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에 매주 증권 시황을 기고하는 대우증권 김영호 연구위원은 원고지 8매에 10만원을 받는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도 1년이면 500만원이 된다.
매체는 정말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 잡지든 신문이든 매체에 실리는 외부 기고는 보통 200자 원고지 1매에 1만원에서 2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글자 하나에 50~100원 정도 한다는 이야기다. 짭짤하지 않은가.

아예 책을 묶어서 내는 방법도 있다. 당신이 저명한 작가가 아니라면 출판 인세는 보통 매출의 10% 정도다. 한권에 1만원 잡고 1만권 정도 팔려준다면 당신에게는 1천만원 정도가 떨어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영역에서는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당신의 그런 경험과 전문성은 충분히 출판의 가치가 있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글을 좀 쓸 줄 안다면 시나리오나 소설을 써보는 것도 좋다. 씨네21에서 해마다 공모하는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에 응모해서 당선되면 2천만원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5천만원까지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다. 영화 감독이 되는 방법은 세가지가 있는데, 조감독부터 시작해서 현장에서 발판을 다져서 감독이 되는 수도 있고 영화 아카데미 같은 전문 교육기관을 나와 제작비를 지원받아 감독으로 나서는 수도 있다. 비 전문가들이 그나마 뚫어볼만한 가능성이라면, 먼저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하고 난 다음 그 명성에 힘입어 영화감독으로 나서는 방법이다. 영화에 뜻을 두고 있다면 틈틈히 시나리오를 구상해보는 것도 좋다.

소설도 제대로 터뜨리기만 하면 제법 돈이 된다. 언론사마다 주최하는 신춘문예는 당선 상금이 300만원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현상 문예 공모는 국민일보 문학상의 경우 1억원까지 고료를 지급하기도 한다.

외부 기고든 시나리오든 소설이든 핵심은 그만큼 삶의 깊이를 갖춰야 한다는데 있다. 당신에게 남다른 경험과 지식과 통찰력, 또는 상상력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돈벌이가 된다는 이야기다.

잡스러워 보이지만 자동판매기 사업도 제법 짭짤한 아르바이트가 된다. 커피 자동판매기는 이미 어느정도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너무 잔손이 많이 간다. 그나마 최근에 많이 나가는 건 무인 휴대전화 충전소다. 크게 유지비가 들 일도 없고 자리만 잘 잡으면 착착 돈이 들어오니까 말이다. 자동판매기는 위치 선정이 가장 중요하다. 안된다 싶으면 재빨리 장소를 옮기는 게 관건이다.

한대 구입비가 65만원인데 1회 충전 비용이 1천원이고, 고객 1인당 평균 이용시간은 20분이다. 자리만 잘 잡으면 한달에 90만원까지 벌린다. 물론 안되는 데는 5만원도 벌기 어렵다. 보통 PC방이나 만화방, 편의점이나 식당 등에 설치하는데 임대료로 매출의 30% 정도를 떼줘야 한다. 여유 자금으로 몇대를 깔아두면 제법 돈벌이가 된다.

노점상 아르바이트는 어떨까. 트럭을 받쳐놓고 오뎅이나 떡볶이를 팔아도 좋고 겨울이라면 군고구마 손수레를 끌어도 좋고 말이다.

학교 앞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1천원짜리 햄버거 손수레는 하루 평균 500개 정도 팔린다고 한다. 창업비용은 기계 구입비 230만원이 전부다. 매출은 하루 50만원, 수익은 50% 정도 된다. 호떡이나 오뎅을 파는 손수레도 비슷하다. 창업 비용은 500만원 정도 든다. 하루 평균 매출액이 30만원 정도, 수익은 19만원 정도 된다. 물론 하루종일 자리잡고 죽치고 있어야 하는 이런 노점상은 투잡스로 하기에는 그리 적당하지 않다.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노점상이라면 즉석 원두커피 판매 차량을 꼽을 수 있겠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초기 투자 비용이 제법 된다. 먼저 1천만원 정도 주고 트럭을 한대 사고 역시 1천만원 정도 주고 원두커피 기계를 들여놓는 건 기본이다. 이밖에도 인테리어와 물품 구입 등에도 1천만원 넘게 든다.

매출은 어떨까. 커피 한잔에 1500원에서 2500원 정도를 받는데 컵과 커피 등 재료비만 대략 600원 정도 된다. 한잔 팔면 대략 1200원 정도 남는다고 보면 된다. 출퇴근 시간을 노려 잠깐 하루 100잔을 판다고 보면 매출이 20만원 순이익이 12만원 정도 된다. 물론 차량 유지비 등을 빼고 나면 얼마되지 않지만 부지런히 뛰면 한달에 150만원은 충분히 벌 수 있다. 원두커피 노점상은 사람들이 커피 한잔 생각이 날 때 잠깐 동안 매출을 크게 올릴 수 있다. 군고구마나 오뎅 장수처럼 하루종일 버티고 서있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트럭을 타고 다니니까 여차하면 재빨리 자리를 뜨거나 잘 팔리는 곳으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고달프기는 하지만 조금만 둘러보면 직장인들도 얼마든지 아르바이트 삼아 할 수 있는 일이 널려 있다. 물론 손쉬운 돈벌이는 세상에 없다. 아르바이트도 마찬가지다. 다만 주의해라. 거꾸로 돈에 먹히지 않도록. 당신은 왜 돈을 벌려고 하는가. 돈을 버는게 마지막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싶은가 늘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 돈을 벌고 다른 모든 것을 잃지 않도록 주의할 것.

돈 없이 유학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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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해마다 40명 정도 국비 유학생을 선발한다. 그런 제도가 있다는 건 다들 알고 있고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문, 사회, 이공계를 두루 걸쳐 분야는 관계 없고 나라의 세금으로 외국 대학원에서 석사나 박사 과정을 밟을 수 있다. 4월말에 공고가 나고 5월과 6월에 2차례의 필기와 면접 시험을 치른다. 1차 시험은 영어나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해당 국가 언어, 듣기와 독해 각각 40문제와 국사 객관식 50문제가 출제된다. 2차는 전공 과목 논술 시험이다.

영어는 평소 TOEFL이나 GRE를 성실하게 준비한 사람이라면 큰 어려움 없이 풀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국사는 의외로 까다롭다. 세세한 부분에서도 출제되므로 문제은행 형식의 기출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것이 좋다. 합격자는 1차 시험에서 각 과목 40점 이상 득점자 가운데 고득점자순으로 선발 예정 인원의 3배수를 선발한 뒤, 2차 시험을 거쳐 최종 결정된다.

기출문제는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www.kice.re.kr)에서 볼 수 있다. 문제도 평이한 수준이다. 평균 경쟁률은 4 대 1 정도인데 2003년에는 7 대 1을 기록했다. 합격하면 2~3년까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는 1만8200달러, 영국은 1만5500파운드, 일본은 185만5400엔 정도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만 해도 어딘가.

지원하려면 학점이 4.5점 만점에 3.6점 이상이 돼야 한다. 출신 대학 총장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문의 : 국제교육진흥원(02-3668-1375)

이밖에도 정보통신부 지원 국비 유학도 듬직하다. 2002년에 처음 시작했는데 정보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봄과 가을로 나눠 70여명씩 장학생을 선발해 지원하고 있다. 석사나 박사 과정을 다닐 경우 처음 2년동안은 해마다 2만달러, 그 다음 2년동안은 해마다 1만달러씩을 받을 수 있다. 경쟁률은 4 대 1 정도다.

미국이나 유럽은 토플이 CBT 기준 250점 이상이면 되고 영국은 IELT로 7.0점 이상, 일본은 일본어능력점수 I급 300점 이상을 맞아야 한다. 학점은 4.5점 만점에 3.6점 이상이 돼야 한다. 연령 제한은 없고 학업 계획서와 교수 추천서 등을 기준으로 선발 예정 인원의 2배수를 선발해 면접 평가와 종합 심의를 거쳐 최종 선발한다. 문의 :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IT인력개발단(02-2141-5673)

외국 정부 초청 장학생도 상당히 많다. 일본과 캐나다, 중국, 그리스, 러시아, 루마니아, 멕시코, 베트남, 불가리아, 스위스, 싱가포르, 이스라엘, 이집트,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해마다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에게 일정 장학금을 지급하고 자기네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대개 서류전형과 영어 또는 해당국의 언어 시험을 거쳐 장학생을 선발한다. 어학이 왠만큼 뒷받침 되고 성적이 어느 정도만 되면 크게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 초청 장학생 같은 경우는 2004년에 인문계 70명, 자연계 50명을 선발할 계획인데 2년동안 학교 등록금은 물론이고 달마다 18만300엔의 학비를 지원하는 것을 비롯해, 왕복 항공권, 2만5천엔의 초기 정착금, 등록금, 기숙사와 의료비까지 지원된다.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35세 미만이면 되고 200점 만점의 일본어 시험과 100점 만점의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977년부터 2002년까지 국비 유학을 다녀온 사람은 모두 1752명에 이른다. 서울대학교 졸업생이 전체의 66%인 1158명, 한국외국어대학교가95명,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가 각각 81명과 63명씩이다.

이 자료에서 문제가 됐던 것은 기껏 국비로 유학까지 보내줬더니 학위 취득률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1977년부터 1989년까지 학위 취득률은 95.1%에 이르렀으나 1990년에는 83.3%, 1991년에는 74.5%로 낮아지다가 왠걸, 1998년에는 13.6%, 1999년에는 2.6%로 줄어들었다. 물론 공부가 힘들고 2년만에 학위를 따는게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제때 학위를 따지 못하면 자비를 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국비 유학생에 합격해 학술 특기자로 등록되면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데 있다. 대신 학위를 마치면 돌아와 국내 기업에서 5년 이상 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면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제도다. 사실 정부는 학위를 마치고 미국에 눌러사는 국비 유학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기도 하다.

살펴본 것처럼 국비 유학 시험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고 경쟁률도 그다지 높지 않다. 일찌감치 준비하고 시험을 치른다면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다. 게다가 국비로 유학을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이력이 된다.

국비 유학생이 되는데 실패했다면 장학금을 받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왠만큼 사는 집이 아니고서야 1년에 5천만원씩 쏟아부으면서 공부를 할만큼 형편이 좋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아예 입학 원서를 낼 때부터 장학금 신청을 하면 된다. 장학금을 줄 거면 너네 학교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못가겠다고 분명하게 의사 표시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장학금을 신청하면 입학이 더 어려워진다. 학교 마다 장학금 재원이 정해져 있고 그 범위 안에서만 장학생을 뽑기 때문이다. 장학금을 신청하지 않았으면 합격할 학교도 합격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 조금 눈높이를 낮춰 학교를 골라 원서를 집어넣되 앞날을 생각해서 지망하는 학과의 순위가 높은 학교를 찾는게 관건이다.

하버드나 예일, 프린스턴, MIT 등 최상위 학교들은 장학금 신청 여부를 입학 사정 기준에 포함하지 않고 있지만 이 학교들은 장학금과 무관하게 입학이 굉장히 까다로우니 이야기가 또 다르다. 이 정도 학교에 합격했다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있고 또 졸업 후 취업을 조건으로 기업체에서 지원을 받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장학금을 받는데 실패했더라도 방법은 또 있다. 장학금 혜택이 많은 몇군데 학교를 골라 장학금 신청을 하고 상황을 봐서 몇군데는 그냥 원서를 집어넣어라. 장학금 신청을 한 학교는 모두 떨어지고 그냥 집어넣은 학교만 몇군데 합격했다면 합격증을 들고 유학생을 지원하는 재단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삼성과 LG, SK, 현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많지는 않지만 얼마정도 기금을 운영하고 있는데 알려지지 않은 탓에 신청자는 거의 없다.

그래도 어렵다면 아예 학비 부담이 덜한 독일이나 프랑스 유학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모든 대학교를 세금으로 운영하는 이들 나라들은 등록금이 30만원 정도 밖에 안된다. 외국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비행기 삯과 책 값, 생활비 정도만 있으면 학위를 마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프랑스는 물가가 워낙 비싸 생활비도 만만치 않게 든다. 그나마 독일이 프랑스보다는 훨씬 싸다. 베를린 같은 경우는 서울보다 더 적은 생활비로도 버틸 수 있다. 또 공부하기에도 독일에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학제가 까다롭기는 하지만 기초과학부터 시작해서 공학, 심리학, 의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선 분야가 많다. 게다가 독일에서는 외국 유학생들에게 1년에 90일 정도 아르바이트를 허용하고 있다. 물론 주마다 조금씩 다르다.

독일 유학생들의 경험담을 모아 얼추 계산해보면 독일에서는 1년에 1천만원 안팎이면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 구체적으로는 건강보험료 200마르크, 기숙사 방세 300마르크, 책값과 학용품 100마르크, 생활비 300마르크, 용돈과 기타 200마르크. 합계 1100마르크 정도다. 환율 600원 기준으로 한달에 66만원 정도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학비도 거의 거저고 입학도 쉽지만 공부가 만만치 않다는데 있다. 대부분 10학기 과정인데 4학기가 되면 중간 평가를 치러야 한다. 중간 평가를 잘못보면 4학기를 다시 들어야 한다. 또 졸업 논문을 앞두고도 자격 시험을 치러야 하고 그 시험을 합격하더라도 까다로운 논문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담당 교수와 오랜 시간 인터뷰를 거쳐야 한다. 물론 어차피 작정하고 공부할 생각으로 떠난 유학이니 크게 부담가질 이유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독일 대학에서 학위를 받는 비율이 10%도 안된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어학 실력 등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좋다. 또한 아무래도 미국 유학보다는 평가가 낮을 수밖에 없다. 독일 유학의 당위성을 뒷받침할만한 전공 선택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인기가 좋은 의학과 같은 경우는 인원 제한이 있어 입학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두자.

신분 상승의 지름길, 해외 유학을 가자.

지금부터 10년 뒤를 생각해보자. 같이 학교를 다닐 때는 아무 허물없는 친구들이지만 졸업하고 나면 서로 갈 길은 제각각이다. 졸업하고 5년쯤 지나고 나면 신분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때쯤이면 안타깝게도 아예 연락을 끊고 도무지 만날 수 없는 친구들도 많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잘 놀고 인기도 좋고 자신만만했던 친구들까지 말이다.

졸업하고 몇년씩 지나도록 취업을 못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이름을 밝히기 쑥스러운 별볼일 없는 회사에 들어가 겨우 밥벌이나 하는 친구도 있다. 그리고 이른바 잘 나가는 친구, 성공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인 친구들도 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졸업하고도 연락이 되고 어쩌다 동기들 모임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은 모두 잘 나가는 친구들뿐이다.

해마다 몇천만원씩 성과급이 떨어지는 그럴듯한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 사법 시험에 합격해서 의젓하게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돼 있는 친구, 바득바득 의대를 가서 온갖 고생을 다 하더니 이제는 제법 의사 티가 나는 친구, 남들 취업할 때 고집스럽게 대학원에 남더니 이제는 학위를 따고 지방 대학에 강의까지 나가는 친구. 그 친구들은 더이상 막걸리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던 지난 날 대학 시절의 친구가 아니다. 신분과 계층, 환경이 이제는 서로 다르다.

해외 유학은 분명히 신분 상승의 한 방법이다. 신분 상승이라는 말이 듣기 껄끄럽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마냥 흘러가는대로 살기 보다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개척하고 싶은가. 전 세계에서 몰려온 똑똑한 젊은이들과 맞부딪히면서 스스로의 역량을 시험해 보고 싶지 않은가. 당신이라고 최고가 되지 말라는 이유가 있나. 당신도 누구에게나 실력을 인정받고 남들 열배 스무배에 이르는 엄청난 몸값을 받고 싶지 않은가. 세계를 무대로 뛰고 싶지 않은가.

기껏 유학까지 다녀오고 나서도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우울한 이야기도 많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오해가 있다. 쉽게 생각하면 고등학교만 나온 사람과 대학교를 나온 사람이 찾는 일자리는 다른 것과 같다.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찾는 일자리는 또 다르다. 일자리가 마냥 넘쳐나지는 않겠지만 하는 업무나 연봉이나 기대 수준도 높고 실제로 그만큼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당신이 지금 순수 학문을 공부하고 있고 졸업한 뒤 그쪽으로 계속 나가고 싶다면 해외 유학은 필수다. 언제까지나 허겁지겁 남들 뒤를 쫓아가면서 주워담기에 바쁠 수는 없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의 물에서 놀아야 하지 않을까.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왔다는 건 물론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 받는 기준, 이른바 간판이 된다. 적어도 외국의 학생들과 어울려 몇년 동안 영어로 수업을 들었다는 이야기니까. 일단 영어 회화 실력을 인정 받을 수 있을 테고 학교를 잘 나와야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나라 학교와는 다른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어설픈 학교를 대충 나와서는 별볼 일 없다. 미국도 우리나라 못지 않게 학벌을 쳐준다. 동문들끼리 서로 밀고 당기는 건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노골적이다.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을 쳐주는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의 최상류 주류 사회, 이른바 이너 써클에 합류할 수 있는 방법은 같은 학교를 나오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전 세계의 금융 기관은 물론이고 컨설팅이나 정보 기술, 무역 회사 등에서 그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주류 사회에 선을 대려고 하는 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미 우물의 영역은 오래전에 무너져 내렸다. 아직도 우물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맴도는 사람에게 우물 밖의 세상은 낯설 수밖에 없다. 우물 안의 사람과 우물 밖의 사람들에게는 주어진 일은 따로 정해져 있다. 해외 유학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당신의 삶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21살이면 아직 가능성은 충분하다. 더 늦기 전에 우물 밖으로 눈을 돌려라.

선택의 가능성은 두가지다. 아예 미국 대학 학부과정에 1학년으로 입학해 다시 다니는 것과 우리나라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대학원 과정을 미국에서 다니는 것. 둘 다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면 대학원 과정을 노리는 게 시간이나 경비를 생각할 때 효율적이다. 어차피 학부 과정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라면 일짜감치 대학원을 목표로 하고 준비를 하는 것도 좋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좀 변변치 않은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그래서 이력서를 처음부터 다시 쓰고 싶다면 재수하는 셈치고 무리를 해서라도 학부 과정부터 다시 시작하는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등학교 성적이 크게 좋지 않더라도 미국의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SAT만 잘 보면 되니 오히려 더 쉬울 수도 있다. 상위권 대학은 1600점 만점에 1500점 이상을 맞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렇게 어려운 시험은 아니다. 수학만 해도 우리나라 고등학교 1학년 수준밖에 안된다.

요즘은 미국에도 편입 바람이 불어서 최상위 몇몇 대학을 빼고는 대부분 대학에서 편입학 시험을 치르고 있다. 학점이 4.5점 만점에 3.5점 이상 정도면 충분하고 유학생들은 토플 점수가 왠만큼 돼야 한다. 대학원을 두드리기 앞서 손쉽게 미국에 뿌리를 내리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을 기준으로 대학원 과정 유학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학점과 토플(TOEFL, Test of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그리고 대학원 진학 시험인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 점수다. 학점은 4.5점 만점에 3.5점은 넘어야 하고 아무래도 4.0점 정도는 돼야 한다. 토플은 외국인이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수업을 들을만한 실력이 되는가 평가하는 시험. 300점 만점에 250점은 맞아야 한다. 과거 기준으로 하면 680점 만점에 620점 정도된다. GRE는 미국 대학원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시험이다. 일반 시험과 과목 시험으로 나뉜다. 일반 시험은 다시 어휘와 수리, 분석 능력 시험으로 나뉜다. 대부분 학교에서 일반 시험 점수만 있으면 되는데 몇몇 학교에는 과목 시험 점수를 내야 한다. 어느 학교든 장학금을 받고 다니려면 과목 시험까지 봐야 한다. 경영 대학원에 가려면 GRE 대신 GMAT(Graduate Management Admissions Test)를 치러야 한다.

주의할 부분이 있다. 토익이야 마음 내키는 대로 보고 가장 잘 나온 점수를 내면 되지만 GRE는 점수가 꾸준히 누적된다. 장난 삼아 봤다가 점수를 망치면 정말 대책이 없다. 공부를 충분히 하고 이제 됐다 싶을 때 두번 정도 시험을 치르는 게 좋다. 각 부문별 만점은 800점씩인데 석사 과정은 어휘와 수리 시험에서만 합계 1200점 정도, 박사 과정이라면 1300점 정도는 맞아야 한다. 최소 커트라인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GRE는 모든 영어 시험 가운데 가장 어려운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단어도 많이 알아야 하고 독해 실력도 충분히 갖춰져 있어야 한다. 가뜩이나 미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어휘 시험이 꽤나 어렵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쉬운 수리와 분석 능력 시험에서 점수를 건질 수 있다. 고등학교 수학만 제대로 들었어도 700점은 맞을 수 있다.

설령 GRE 점수가 낮다고 해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GRE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GRE가 높다고 무조건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GRE 하나에 목숨을 걸 필요도 없다. GRE는 6~7가지 입학 사정 기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굳이 성적이 아니라도 자기 소개서나 봉사활동, 추천서, 면접 등 부진한 성적을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가장 확실한 것은 GRE 성적이다.

토익과 GRE는 최근에는 모두 컴퓨터를 놓고 CBT(Computer based Toefl) 방식으로 치러진다. 특히 GRE는 처음 몇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문제의 난이도가 달라지고 점수도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처음 다섯문제를 내리 틀리고 나면 문제의 난이도가 확 낮아지게 되고 거기서 나머지 문제를 아무리 잘 푼다고 해도 500점을 넘기 어렵다.

선배들이 추천하는 최고의 GRE 교재는 빅북이다. 기출 문제 중심으로 된 이 책을 세번만 제대로 보면 800점 만점에 500점 이상은 맞을 수 있다는 게 통설이다. GRE 전문 학원을 다니기도 하고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공부하는 경우도 효율적이다. 학원 수업은 대략 3개월 과정으로 짜여져 있다.

등록금은 명문대학교일수록 비싸다. 하버드나 예일, 프린스턴 등 이른바 아이비리그라고 불리는 학교들은 3만달러를 훌쩍 넘는다. 환율 1200원 기준, 우리 돈으로 3천만원 정도다. 주립대도 영주권이 없다면 1만5천에서 2만5천달러는 된다. 유학생들은 학비가 비쌀 뿐만 아니라 장학금 혜택도 거의 받을 수 없다. 게다가 아르바이트도 금지돼 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기준으로 하숙을 하려면 한달에 1200~1500달러는 줘야 한다. 역시 하숙 보다는 자취가 훨씬 낫다. 마음에 맞는 룸메이트를 찾는다면 비용도 꽤나 줄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파트를 빌린다면 월세가 700~1200달러 정도, 차를 한대 장만한다면 보험료를 포함 400~700달러 정도, 그밖에 식비가 300~500달러 정도, 용돈이 100~200달러 정도. 결국 학비를 빼고도 한달에 1500~2600달러 정도는 든다는 이야기다. 환율 1200원 기준, 우리 돈으로 180만~320만원 정도다. 한해 3천만원이면 결코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물론 로스엔젤레스가 아니라 중남부 지역이라면 조금 덜 들 수도 있지만 아파트 임대료에서 차이가 날 뿐 생활비는 최대한 아껴쓸 테니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된다. 역시 기를 쓰고 학교 기숙사를 들어가는게 비용을 최대한 아끼는 방법이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4인실은 300~500달러 정도, 2인실은 500~800달러 정도 생각하면 된다. 결국 학비를 포함해 적어도 한해 5천만원은 든다고 봐야 한다.

재정적인 문제는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유학을 가려면 이밖에도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언어. 일상 생활에서는 대충 말이 통한다고 하지만 수업을 듣는 것은 또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한자를 모르면 깊이 공부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라틴어의 밑바탕이 잡혀 있지 않으면 자꾸 수박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친구들이 전공에 파고들 동안 영어 공부부터 다시 해야한다는 건 정말 까마득한 일이다. 유학을 준비하기 앞서 충분히 어학 실력을 다져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유학생들 가운데는 향수를 넘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체력이 좋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체력이 달려서 공부 못한다는 말은 못들어 봤겠지만 몇일씩 밤을 새고도 끄덕없는 애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왠만한 체력으로는 버텨내지 못한다. 가뜩이나 객지에서 먹는 것도 부실하면서 말이다.


상자 / 토플 시험 바뀐다.

토플 시험이 2004년 7월부터 전면 개편된다. 현재 토플 시험은 CBT(Computer based Toefl) 방식, 변경되는 토플은 회화 테스트가 포함되는 IBT(Internet based Toefl)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문법과 영작, 독해, 듣기 등 문제만 잘 풀면 됐지만 앞으로는 듣기와 말하기, 듣기와 작문, 독해와 말하기, 독해와 작문 등 복합적인 문제가 많이 출제된다. 독해 평가와 듣기 평가도 지문이 현재보다 크게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토플 시험을 주관하는 ETS가 시험유형을 바꾸기로 한 것은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대만 등 주로 아시아 지역 학생들이 토플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고도 실제 영어 실력은 형편없다는 미국 대학들의 항의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아직 구체적인 개편안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토플 시험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78 년 4월 어느날 오후 야구를 보러가 외야쪽 스탠드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타자가 첫 볼을 2루타로 쳐냈습니다. 외야를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쭉 뻗은 야구공을 보면서 그때 문득 소설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갑작스러운 계시 같았습니다. 이유도 설명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왜 작가가 됐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뒤바꿔 놓을 순간은 그렇게 운명처럼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그런 이유에서 가끔은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다. 틀에 박힌 갑갑한 일상을 벗어나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를 찾고 싶다면 말이다.

조용철(성균관대학교 4학년)씨는 지난해 1년 동안의 필리핀 어학 연수를 마치고 한달 남짓한 동안 동남아시아 배낭 여행을 다녀왔다. 필리핀 어학 연수가 워낙 비용이 조금 들기도 했지만 배낭 여행을 가려고 허리띠를 졸라매가며 비용을 조금씩 아껴둔 덕분이기도 했다.

조용철씨가 필리핀에서 출발해 베트남과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을 거쳐 40일 동안 여행하면서 쓴 경비는 비행기 삯과 교통비, 숙박료 등을 포함해 딱 55만원. 배낭 하나 들쳐매고 그야말로 거지 몰골을 하고 골목 골목을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최대한 비용을 아껴쓴 덕분이다. 돈을 아끼느라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빵 한조각으로 끼니를 떼우기도 하고 대학교 운동장 벤치에서 침낭을 뒤집어 쓰고 자기도 했다.

낯선 곳에 혼자 떨어져 있으니 오히려 더 거리낄 게 없다. 조용철씨는 가는 곳마다 가장 먼저 대학교를 찾았다. 운동장과 강의실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동아리 방에 들어가 그곳의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경계심을 갖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자기들 또래의 배낭 여행자라는 걸 알고 나면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영어는 잘 통하지 않지만 손짓 발짓을 섞어 이야기하다 보면 대충 뜻은 통한다. 가끔 밥도 공짜로 얻어먹고 태국에서는 명상을 배우기도 했다.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그동안 듣고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미개한 나라일 거라는 선입견은 금방 무너졌다. 무심한듯 이끼를 뒤집어쓰고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건축물들은 묵묵하게 지나간 세월을 웅변하고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깊이와 무게가 있었다. 길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고 즐거워보였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조용철씨는 그동안 소심하게 움츠려들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세상이 이렇게 크고 넓은데 너무 갇혀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을 하나로 가다듬기는 어렵지만 40일의 짧은 여행은 조용철씨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머지 않아 대학을 졸업하고 어디든 직장을 얻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 정말 딱 일주일도 마음놓고 쉴 틈이 없다.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다. 배낭 여행은 대학생들만 즐길 수 있는 정말 짜릿한 특권이다. 돈이 부족한가. 방학 내내 막노동이라도 해서 다음 방학 때 가면 된다. 300만원이면 유럽에 충분히 한달은 다녀올 정도는 된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 배낭 여행을 떠날 거라면 성수기인 7월19일 전에 출발하는 게 좋다. 아니면 아예 8월 20일 뒤로 늦추는 것도 좋다. 적어도 20만~30만원 이상 싸게 비행기 표를 살 수 있다. 몇 군데 경유를 해도 좋다면 얼마든지 더 싼 표도 있다. 항공사와 여행사 홈페이지를 꼼꼼히 뒤져볼 필요가 있다. 투어익스프레스(www.tourexpress.com)에서는 전 세계 60개 항공사 650개 도시 항공권을 실시간으로 예약할 수 있다. 온라인투어(www.onlinetour.co.kr)와 트래블OK(travelok.okcashbag.com) 등과 비교해봐도 좋다.

유럽은 짧은 시간 동안 여러나라들을 돌아다닐 수 있어 단연 인기다.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거라면 철도 할인권, 유레일 패스는 필수다. 유레일 패스는 유럽에서는 살 수 없다. 또 정가 보다 싸게 살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한때 여행사 직원에게 할인 발급되던 유레일 패스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최대 40%까지 할인 판매되자 유레일 본사에서 2003년 5월부터 할인 판매가 적발 되면 상품 판매 금지하겠다는 경고를 내보내기에 이르렀다. 결국 10%의 안팎에서 벌어지던 관행적인 할인도 없어졌다.

유레일 패스는 프랑스와 스위스, 독일, 이태리, 오스트리아, 스페인, 헝가리, 네델란드, 벨기에,룩셈브르그,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스, 덴마크, 노르웨이, 핀랜드, 스웨덴 등 17개 나라에서 쓸 수 있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대략 2003년 9월 기준으로 한달 동안 쓸 수 있는 1등석 가격이 756달러, 2등석은 623달러 정도다. 비싸보이지만 유럽 기차 요금을 생각하면 굉장히 싼 편이다. 출발하기 전에 꼭 챙겨야 한다.

왕복 항공권은 70만∼110만원 정도. 직통보다는 동남아와 일본을 경유하는 항공편이 훨씬 저렴하다. 유럽 배낭여행은 흔히 런던에서 출발해 파리로 나와 시작하는 게 정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굳이 남들하는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남들과 거꾸로 움직이면 항공료 등을 크게 아낄 수 있다. 비법은 런던을 맨 마지막 코스로 남겨두는 것. 런던과 파리를 오가는 비용을 한번으로 줄일 수 있고 항공료만 20만원 정도가 더 싸다.

비용은 보통 교통비로 하루 5천∼6천원, 숙박비로 1박에 2만∼2만5천원, 세끼 식사로 1만원 내외, 또 여기저기 입장료로 1만5천∼2만원 정도 든다. 이밖에 화장실 사용료나 화물 보관료, 기념품 구입비 등으로로 하루 1만원 정도는 잡아야 한다. 하루 12만원 정도는 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비행기 표와 유레일 패스를 사고 나면 배낭 여행에서 경비를 아낄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덜 먹고 더 불편하게 자는 것 뿐이다. 아예 조용철씨처럼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거나 밤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최대한 비용을 아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출발하고 나면 꼭 써야될 때는 계획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과감하게 쓰도록 한다. 박물관도 비싸서 못들어가고 여행 내내 빵 조각만 먹고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도 한번 먹어보지 못한다면 주객이 바뀐 셈 아닐까.

배낭 여행은 크게 자유 배낭 여행과 단체 배낭 여행, 패키지 여행으로 나눌 수 있다. 자유 배낭 여행은 말 그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떠돌아 다니면 된다. 물론 비행기 표부터 여행 일정까지 모두 직접 챙겨야 한다. 단체 배낭 여행은 인솔자와 함께 떠나 20명 정도의 인원이 함께 움직인다. 인솔자가 도시간 이동과 기차표 예약, 간단한 여행지 안내까지 책임진다. 비용은 좀 비싸지만 마음 든든한 여행을 할 수 있다. 다만 틀에 박힌 여행이 되기 쉽고 우연과 낯선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

패키지 여행도 여러가지다. 호텔과 항공편만 지정해 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챙길 수 상품도 있고 유레일 패스까지 포함된 상품도 있다. 국제 학생증까지 여행사에서 모두 챙겨주는 상품도 있다. 같은 여행사 상품으로 함께 출발하는 사람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발길 닿은대로 가고 싶다면 숙소를 미리 챙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첫날 도착하는 곳의 잘 자리는 예약을 해둬야 허둥지둥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네오비즈21(www.hrskorea.com)에 가면 전 세계 9만여개 호텔을 실시간으로 예약할 수 있다. 가격이 부담된다면 유스호스텔을 이용하는 게 좋다. 한국유스호스텔연맹(www.kyha.or.kr)을 들러보면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민박집 정보를 모아놓은 스네일홈(www.snailhome.com)이라는 곳도 있다.

비용이 문제라면 가까운 동남아시아나 일본, 중국도 좋다. 중국도 요즘은 물가가 만만치 않게 비싸졌지만 배낭 여행이라면 하루 200위안, 3만원 정도면 경비로 충분하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배낭 여행이 아니라도 출장이든 신혼 여행이든 앞으로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수 있다. 특별하고 새로운 여행을 바란다면 인도나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해 보자.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여행사에서는 인도 거지 여행이라는 상품을 135만원에 팔고 있다. 숙소와 교통편만 예약돼 있고 나머지는 직접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8박 9일 동안 바라나시를 비롯해 아그라, 타지마할, 아즈메르 등 왠만한 유명한 여행지는 다 둘러볼 수 있다.

'굿아프리카'라는 여행사에서는 아프리카 여행 상품을 내놓았다. 24박 25일에 298만원. 좀 비싸긴 하지만 비행기를 워낙 많이 타야하니 어쩔 수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 타운을 비롯해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 보츠와나의 아카방고델타,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폭포 등을 샅샅이 훑고 올 수 있다. 일주일 동안 렌트카를 타고 초원을 가로지르는 사파리 여행도 계획돼 있다. 원주민들과 어울려 사막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원주민들의 음식을 실컷 맛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알뜰 상식 하나. 팔뚝 힘이 좋다면 우리나라 은행에서 외국 동전을 잔뜩 바꿔가자. 신기하게도 1달러 동전을 800원 정도면 구할 수 있다. 외환은행과 농협 등에서 취급하는데, 처음에 사들일 때부터 반값만 쳐주고 받았다가 되팔 때는 20% 정도 이익을 남겨받고 70% 정도에 팔기 때문이다. 너무 잔돈이면 무겁기만 하고 곤란하겠지만 미국 돈 1달러나 일본 돈 500엔 동전 정도는 잘만 바꿔가면 오히려 돈을 버는 셈이다. 몇군데 은행을 돌면서 동전을 모아다가 미국이나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지폐로 바꾸면 된다. 30% 정도 비용이 줄어든다.

"1년 동안 어학 연수를 다녀오겠어요." 지난해 1월, 갑작스러운 선언과 함께 황수경(숭실대학교 4학년)씨가 가족들 앞에 내놓은 것은 1천만원 가량이 저금된 은행 통장. 대학 생활 3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가면서 용돈을 아끼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악착같이 모은 비자금이다.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몰래 일을 꾸밀 수 있었을까. 가족들은 놀라움과 함께 배신감까지 느꼈다. 황수경씨는 그렇게 지난 3년 동안 어학 연수를 준비해왔다.

황수경씨에게 어학 연수는 영어 공부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제 남은 1년을 더 다니고 졸업하면 어디든 들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아마도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면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쉰살 무렵까지는 쉴새 없이 직장에 얽매이게 된다. 어학 연수는 황수경씨에게 아직 가보지 않은 길, 지평의 저 너머,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했다.

우리의 사고는 늘 우리의 지평을 넘어서지 못한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건너 지평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게으른 우리는 여기 딱딱한 바닥을 딛고 서서 가보지 못한 바다를 마냥 그리워할 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두려움을 넘어 기꺼이 바다에 뛰어들어 파도를 가르고 헤엄쳐 나가야 한다. 그때 우리의 지평은 비로소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고 우리의 사고는 그 지평의 너머까지 넓어진다.

어학 연수는 더 큰 세상으로 가는 통로다. 그리고 어른이 되기 앞서 마지막으로 주어진 짧은 유예 기간이기도 하다. 굳이 영어 공부를 핑계로 대지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나를 벗고 나와 나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익숙한 일상을 떠나 기꺼이 낯선 문화적 충격에 온몸을 내던질 필요가 있다.

사회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영어는 폼으로 배우는 게 아니다. 영어가 당신의 발목을 잡게 될 날이 언젠가 반드시 온다. 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해둘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언젠가 반드시 하게 된다. 그럴 때면 영어 잘하는 직장 동료가 무척 부럽고 그만큼 질투도 부글부글 솟아 오른다. 영어 공부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황수경씨는 지난해 꼬박 1년 동안 뉴질랜드로 어학 연수를 다녀왔다. 눈이 시릴만큼 새파란 뉴질랜드의 하늘 아래서 황수경씨는 1년 동안 아무런 부담 없이 마음놓고 영어 공부만 했다. 황수경씨는 이제 간단한 회화는 물론, 왠만한 외국 영화는 자막 없이 볼 정도가 됐다.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생각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황수경씨는 졸업하고 나면 외국계 정보 기술 회사에 들어가 해외 영업 업무를 맡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목표가 분명하면 전략도 분명한 법. 지난 1년 동안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역시 이제는 어디에도 꿀리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영어로 이야기할 때 황수경씨는 자신이 자랑스럽다. 누구 못지 않게 당당할 수 있고 그만큼 상대에게 호감도 줄 수 있다. 발음도 맑고 정확하다. 영어 회화는 황수경씨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경쟁력이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과 한국무역협회 추산에 따르면 2002년 한해동안 해외 유학이나 어학 연수를 떠난 사람은 모두 34만3842만명, 어학 연수만 따로 떼놓고 보면 16만3280명에 이른다. 3년전인 1999년 8만여명보다 무려 두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들이 쓴 비용은 평균 8400달러, 환율 1200원 기준으로 1008만원 정도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2002년 4월 1일 기준으로 전국 169개 4년제 일반대학의 전체 재적생 180만8794명 가운데 30.6%인 55만4117명이 휴학 중이다. 휴학 사유로는 군 입대가 32만2297명, 일반 휴학이 23만720명이다.

앞의 두 통계를 모아보면 전체 휴학생 가운데 얼추 절반 가량인 50.7%가 해외 어학 연수를 떠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2004년을 기준으로 취업 희망자는 취업 재수생을 포함, 68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얼추 세명꼴에 한명꼴로 어학 연수를 다녀왔다고 보면 된다. 이제 어학 연수는 대세다. 큰 흐름에 뒤쳐지고 싶지 않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어학 연수는 한번쯤 다녀오는 게 좋다.

삼성그룹은 2004년부터 신입사원 공개 채용에 영어 면접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제 영어 못하는 사람은 아예 지원할 엄두도 내지 않는 게 좋다. 취업 전문 업체인 잡링크가 대졸 구직자 78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성 대졸자가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직장은 삼성전자였다. 전체 응답 남성 구직자의 16.2%가 삼성전자를 취업 희망 1순위 업체로 꼽았다. 삼성전자에 들어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영어 회화는 기본이다.

삼성전자 뿐만 아니다. 삼성물산과 제일기획 등은 면접 때 아예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시킨다. 영어로 된 기획서를 읽고 면접관을 영어로 설득해 수주를 받아내야 한다. 영어가 자연스럽게 입에 붙지 않으면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다.

취업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LG필립스LCD는 2004년부터 모든 간부급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기로 했다.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구본준 사장이 주재하는 영어 회의에 영어가 달리는 임원들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GM대우나 대우인터내셔널처럼 해외 업무가 많은 회사들도 일찌감치 영어 회의가 일상화됐다.

해외 출장이라도 가는데 통역을 달려주는 경우는 거의 모든 직장에서 없다. 상당히 쪽팔리는 일이기도 하다.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도망이라도 다닐 건가. 미국에 전화 한통 못걸어 직장 후배들 보는 앞에서 우물쭈물 개망신을 당할 건가. 회사를 대표해서 나간 협상 자리에서 말귀 잘못 알아듣고 일을 그르칠 생각인가. 이제 영어는 기본이고 영업 일선에서 뛰는 사람들은 일본어나 중국어까지 왠만큼 할 줄 알아야 인정과 대접을 받는 사회가 됐다. 아무리 똑똑하고 일을 잘한다한들 정작 필요할 때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뒤로 엉거주춤 물러난다면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학 연수에서 얻는 것은 영어 회화 실력 뿐만이 아니다.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로 훌쩍 떠나 1년 동안 다른 나라 아이들과 함께 부딪히면서 생활한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먼 여행을 떠나 높디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선 것처럼 더 큰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산 아래 있는 사람들은 결코 그 기분을 알 수 없다.

굳이 취업 때문이 아니라도 이제는 그야말로 글로벌 시대 아닌가. 사회에 나가 당신이 무엇을 하게 되든 영어는 당신의 훌륭한 경쟁력이 된다. 또 지금 차가 없어도 앞날을 생각해 운전 면허를 따 두는 것처럼, 그리고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수영을 배워두는 것처럼 영어 회화는 생존의 무기가 된다. 어학 연수는 그렇게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피할 수 없는 통과 의례다.


상자 / 어학연수 어디로 갈까.

남들 다 가는 어학 연수를 혼자서 버티고 안갈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없이 따라나섰다가는 시간과 돈만 버리고 마는 수도 있다. 주위에 둘러보면 1년씩 어학 연수를 다녀오고도 도통 실력이 늘지 않는 경우도 꽤나 흔하다.

어학 연수를 가는 곳은 대개 미국과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비용이나 환경이 제각각 다르고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이 있다.

어학 연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역시 비용이 얼마나 드느냐는데 있다. 비용은 천차 만별이다. 3주 프로그램에 1200만원이나 하는 호화판 어학연수가 있는가 하면 필리핀 같은 경우에는 비행기 삯 등을 빼고 한달에 50만원 수준, 1년 내내 500만원 조금 넘는 수준에서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과과정은 어느 나라나 대부분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대학 부설이나 사설 학원이나 요즘은 거의 모든 어학 연수 프로그램이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로 표준화 돼 있다. 다만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내용과 난이도가 조금씩 달라진다. 돈 탓을 할 게 아니라, 얼마든지 공부하기 나름이라는 이야기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학비는 한달 기준으로 학비와 숙박을 포함해 최저 85만원에서 최고 220만원 수준, 상대적으로 학비는 뉴질랜드가, 숙박은 호주가 비싸다고 보면 된다.

호주나 뉴질랜드의 또 한가지 장점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호주에서는 어학 연수를 온 외국인들에게도 일주일에 20시간까지 아르바이트가 허용된다. 학교의 소개를 받거나 현지 지역신문 또는 잡지의 구인 광고를 보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1년 이상 정규 어학 연수 과정을 듣는 외국인들에게 방학 때만 아르바이트가 허용된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다. 미국이나 영국보다 비용도 적게 들면서 영화 속에서나 보던 물 맑고 공기 좋은 그림 같은 곳에서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다.

영어를 정말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영어의 본 고장 영국을 선택하는 게 좋다. 영국의 사설 어학기관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외국 생활을 계속하거나 외국에서 대학원 등에 진학할 생각이라면 사설 학원보다 비용은 더 많이 들지만 종합대학 부설 교육기관을 선택하는 것도 좋다. 대학의 여러 부대시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또 전문대학 부설 교육기관은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생각만 있으면 여러 자격증 과정을 함께 수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영국의 교육기관은 일정 정도 수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입학 시기가 정해져 있어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비용은 한달 기준 100만~200만원 수준.

비용이 부담된다면 가까운 필리핀도 좋다. 허리띠를 졸라매면 왕복 비행기 삯을 포함, 600만~700만원 정도에 어학 연수를 마칠 수 있다. 비용도 저렴하고 게다가 필리핀에서는 소수 정예의 개인 지도까지 받을 수 있다. 물론 가격이 저렴한만큼 생활 환경은 열악하지만 미리 작정하고 간다면 아주 못견딜 정도는 아니다.

아래는 어학 연수를 떠날 때 주의해야할 부분이다.

- 친구들끼리 몰려가지 마라. 우리나라 학생들이 많은 곳을 피해라. 자칫 몰려다니는 재미에 영어 공부는 뒷전이 될 수도 있다. 그럴 거면 뭐하려 비싼 돈 들여 외국까지 가나. 절대 우리나라 사람과 같이 방을 쓸 생각은 하지 마라. 이왕 영어 배우러 간 거 전혀 도움이 안된다.

- 언어는 곧 문화다. 하루 아침에 뚝딱 되는 게 결코 아니다. 적어도 6개월 이상, 1년 정도는 돼야 두려움을 털어내고 영어 회화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 저절로 영어가 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외국에 나가 영어를 듣고 말하면서 생활하더라도 안느는 사람은 도통 안느는 수도 있다. 꾸준히 단어를 외우고 읽고 쓰고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 영어 회화와 토익은 또 별개다. 문법과 독해를 중심으로 토익 공부도 따로 해야 한다.

- 정말 유창하게 말하고 싶으면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건 우리나라말을 비롯해 어느 언어나 마찬가지다.

- 어학 연수를 가기 앞서 어느 정도 실력을 다져 두는 게 좋다. 자칫 1년 내내 기초반만 듣다 오는 수도 있다.

- 철저한 준비는 기본이다. 덜렁 어학 연수 과정만 듣고 오기보다 계획을 세워 여러 단기 과정을 함께 수강하는 것도 좋다. 어학 연수 과정만 듣다 보면 도저히 지겨워서 견딜 수가 없다. 비즈니스 영어 과정이나 영어 교육 자격증 과정, 여러 영어 시험 준비 과정 등을 들으면 긴장감을 늦추지 않을 수 있어 좋다.

해야할 일이 잔뜩 쌓여있지만, 잠깐 음악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 넘어가야겠다.

저녁 늦게 씻고 들어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다가 깜짝 놀랐다. 혼자 음악을 듣고 있는데 어디선가 누군가 뭐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가 설마 누가 있을까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는데 역시 아무도 없다.

글렌 굴드였다. 글렌 굴드는 피아노를 치면서 끊임 없이 무엇인가 중얼거리고 있다.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따라라라"라거나 "딥딥딥", " 투루루루", 음악이 빨라지면 "빰빠라빰빰"이라거나 "우르르르르", 그 밖에 알아 들을 수 없는 낮은 속삭임. 오디오 시스템이 왠만큼 좋지 않거나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꽤나 오랫동안 글렌 굴드를 들어왔지만 처음이다. 새로 산 엠피스리 플레이어 덕분이지만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오늘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간단히 소개하는데서 그칠까 한다. 언젠가 글렌 굴드 이야기를 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로 시작해 30개의 변주를 거쳐 다시 아리아로 끝난다. 같은 주제에서 출발했지만 모두 새롭고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가 있다. 듣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린다.

1. 1955년 6월, 녹음 기술자의 증언. "6월이라고는 하지만 찌는듯한 날씨였는데 굴드는 두터운 코트에 머플러를 두르고 베레모에 장갑을 끼고 나타났다. 그리고 식수로 사용할 두개의 물병과 그 유명한 굴드의 의자까지 들고 왔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굴드의 의자는 다리가 모두 고무로 만들어져 연주할 때 몸의 각도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였다. 녹음이 진행되는 동안 굴드는 도취된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노래를 불렀으며 몸을 앞뒤로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녹음기술자들은 굴드의 흥얼거림을 녹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2. 굴드는 1932년 9월 25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세살 때 이미 악보를 읽고 다섯살 때는 직접 작곡을 하고 연주까지 했다.

3. 캐나다의 소설가 로버트 풀포드의 증언. "어린아이인데도 굴드는 고독했다. 그는 미친듯이 연습했다.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는 음악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그는 자신이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하는가 잘 알고 있었다."

4. 굴드는 10살 때 토론토의 로얄 콘서바토리에 입학해 정식으로 알베르토 게레로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졸업한 뒤 15살 때 첫 연주회를 열었다.

5. 굴드의 스승 게레로의 증언. "새로운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워낙 개성이 강하고 천재적인 아이라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당황할 때가 많다."

6. 굴드의 증언. "게레로와 나의 스타일은 완전히 반대였다. 그는 음악을 가슴으로 느꼈지만 나는 머리로 이해했다."

7. 스물두살, 1955년 6월 굴드는 첫 음반을 녹음한다. 바하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이었다.

8. 굴드는 황홀한 표정에 눈을 지긋이 감고 있다가도 갑자기 온통 얼굴을 찌푸리고 입을 크게 벌리기도 하고, 몸을 계속 흔들어 대면서 끙끙거리는 소리로 계속 곡을 흥얼거리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연주 모습을 보여줬다. 중얼중얼 속삭이기도 하고 한손만으로 연주하는 부분에서는 지휘를 하는 듯이 손을 높이 쳐들고 흔들기도 했다.

9. 그가 흥얼거리는 소리는 녹음 기술자들에게는 골치거리였지만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심지어 굴드의 끙끙거리는 콧소리와 삐걱대는 의자 소리는 오디오 시스템의 상태를 판별하는 기준으로까지 활용되기도 했다.

10. 스물네살, 1957년에 굴드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토벤의 3번 협주곡을 연주한다. 1960년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그때만해도 낯설었던 TV에 출연한다.

11. "여러분, 음악이 너무 늘어진다고 느끼셨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굴드가 바라는 템포에 맞추다 보니 그렇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1960년 카네기홀 연주회에서.

12. 굴드와 번스타인은 루드비히 폰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을 협연하면서 템포 문제를 놓고 말다툼을 벌였다. 결국 힘차고 역동적인 연주를 좋아하는 번스타인이 마냥 느려터진 굴드의 연주에 맞추기로 했다. 번스타인은 불만에 가득차 있었지만 청중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13. 굴드의 연주 여행은 가는 곳마다 큰 인기를 끌었다. 소련에서는 그의 음반을 구하느라 사람들이 난리법석을 떨기도 했다. 곳곳에서 그의 음악을 모방하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14. 그러나 굴드는 청중을 싫어했다. "음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청중일수록 연주자에 대해 가학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5. "콘서트를 할 때면 나는 희극배우처럼 느껴진다." "콘서트는 고통으로 가득찬 속임수일뿐이다."

16. "나는 수많은 꾀병을 생각해두고 있어요. 콘서트를 취소할 핑계로 써먹을 생각입니다." 번스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17. 굴드는 식성도 까다로웠다. 고기는 물론 야채도 즐겨먹지 않았고 거의 크래커와 오렌지 주스 같은 것들로 끼니를 떼웠다.

18. 음악의 취향도 분명했다. 굴드는 쇼팽과 슈베르트를 연주하지 않았다. 브람스도 녹음을 몇일 앞두고 못내키는 듯 성의없는 연습을 조금했을 뿐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시들했다. 실제로 연주도 별볼일 없었다. 가끔 쇤베르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윌리엄 버드와 오를란도 기본스를 연주하기도 했지만 굴드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열심히 연주했던 음악은 바하뿐이었다. "모짜르트가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다는 세간의 말은 옳지 않다. 오히려 그는 너무 늦게 세상을 떠났다."

19. 굴드는 서른두살, 1964년 4월 10일 LA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가진다. 그때부터 그는 녹음 작업에만 매달렸다. 그 뒤로 그는 죽을 때까지 결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지 않았다.

20. 굴드는 같은 음악을 여러차례 되풀이해서 녹음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최상의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굴드는 짜집기를 전혀 거북해하지 않았다. 굴드는 연주회의 청중을 떠나 녹음실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수많은 음반을 만들어냈다. "테크놀로지야말로 나와 음악과 바깥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고리다."

21. 토론토 대학 철학과 교수 제프리 페이전트는 글렌 굴드 평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굴드의 모든 레코딩은 그의 에세이, 필름, 작곡, 기고문, 다큐멘터리가 모두 그러하듯이 다양한 차원의 미학을 공유하기 위한 굴드 자신의 예언자적 노력의 결실이다. 굴드야말로 철학자와 시인, 그리고 음악가를 한몸에 지녔다는 옛 전설의 재현인 것이다." 굴드는 이 평전에 대한 서평을 썼다. "페이전트 교수가 이 책에서 쓰고자 했던 것은 한 피아니스트의 전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때때로 건반을 통하여 이야기되는 일련의 음악적 사고일 것이다."

22. 굴드의 연주는 가끔 지나치게 빠르거나 어이없을만큼 느리다. 다른 연주자들이 4분 남짓한 동안 연주하는 음악을 10분이 넘도록 늘여 연주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남들의 절반밖에 안되는 시간에 연주를 마치기도 한다. 굴드는 늘 독특한 해석을 내놓았다.

23. "혼자 있으십시오. 은총이라고 할만한 명상 속에 머무르십시오." 1964년 토론토 왕립 음악원 강연에서.

23.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늘 혼자서 보냈다. 그건 내가 비사교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예술가가 창조자로서 작업하기 위해 머리를 쓰기 바란다면 자아 규제, 바로 사회로부터 자신을 절단시키는 한 방식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 작품을 산출하고자 하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사회 생활면에서 다소 뒤떨어진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글렌굴드, 피아노 솔로' 가운데.

24. 굴드는 에어컨이 켜진 식당은 결코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잘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전화 통화를 하다가 상대방이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굴드의 노이로제 증세는 꽤나 심각했다. 연주를 하기 전에는 뜨거운 물을 세수대야에 붓고 20분 가까이 손을 담그고 있었다.

25. 나중에는 악수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손을 내밀면 "올해는 악수 안하는 해로 정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26. 피아노를 고치러 온 스타인웨이의 조율사가 등을 가볍게 툭 쳤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도 했다. 굴드는 왼팔과 등에 통증이 있고 왼손 넷째 손가락과 다섯째 손가락이 마비되었다며 스타인웨이를 상대로 30만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7. 굴드는 스타인웨이에서 나온 CD318 피아노를 썼다. 굴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피아노 연주라고 보기 어려울만큼, 마치 쳄발로 연주처럼 가볍고 맑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하의 건반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굴드의 연주는 충격과 함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8.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때만 해도 지루하고 변화없는 음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이 음악을 연주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굴드가 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됐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이제 가장 바하의 대표 작품 가운데 하나 꼽힌다.

29. 굴드는 1981년 한번 녹음한 음악은 다시 녹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26년 전에 녹음했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다시 녹음한다. 새로운 해석을 새로운 기술로 담아낸 굴드 최고의 음반이었다. 굴드는 수많은 음반을 남겼지만 시작과 끝은 모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30. 굴드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세번 녹음했다. 첫번째는 1955년 굴드의 첫번째 녹음. 굴드는 반복되는 부분을 과감하게 빼고 남들이 한시간 가까이 연주하는 음악을 33분만에 끝냈다. 두번째는 1958년 잘쯔부르그 페스티발에서 연주한 실황 녹음. 두번째는 첫번째와 거의 같다. 세번째는 1981년 굴드의 마지막 녹음. 모두 51분, 첫번째 녹음보다 무려 두배 가까이 길다.

31. 굴드는 마지막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한 다음해 1982년, 50세 되던 해 10월 4일 심장발작으로 죽는다.

32. "음악은 내 안에 있고, 나는 음악 안에 있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부에서 외부로, 내면이 된 외부로 나아감이다. 마치 내면에 외부가 존재하는 양. 음악은 신의 자질들을 지니고 있어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보존하면서 채운다. 그것은 에워싸고 조여 온다. 그러면서도 귀로 올라오는 기쁨, 혹은 첨예한 고통으로서, 아주 작은 부분이 되어 내부에 머문다."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가운데.

참고 : 글렌 굴드의 홈페이지.

글렌 굴드는 많은 글을 썼다. 홈페이지에 가면 '글렌 굴드가 본 글렌 굴드'라는 재미있는 인터뷰 기사도 있다. 시간이 나면 옮겨볼 생각이다.

다시 돌아봐도 깜짝 놀랄만한 끔찍한 통계가 있다. 2002년 11월 우리은행은 150명의 신입 행원을 채용했다. 응시자는 모두 1만2994명, 무려 86.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의 토익 성적이다. 900점 이상이 무려 1200명이고 이 가운데 990점 만점을 받은 사람도 10명이나 된다. 이밖에도 해외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포함한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가 1366명, 국내 공인회계사 자격증 소지자가 151명,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 소지자가 193명에 이르렀다.

다른 자격증이 없다면 토익 900점 밑으로는 그야말로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상황이다. 토익(TOEIC, Test Of English for International Communication), 해마다 전 세계를 통털어 160만명 이상이 이 시험을 치른다. 200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110만명이 토익 시험을 봤다. 1999년만해도 36만명에 지나지 않았는데 3년만에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왜 이렇게 다들 토익 시험에 목을 매는 것일까.

2003년 4월 채용정보업체 리크루트가 대학생 127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자. 취업을 방해하는 요소가 뭐냐는 질문에 응답자 10명 가운데 4명 정도(44%)가 '어학실력 부족'을 꼽았다. 다음으로 학벌(19%)과 전공분야(10%), 자격증 부재(9.6%) 등이 꼽혔으며 나이(5%)와 외모(4%) 등을 꼽는 응답자들도 있었다.

영어 공부에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2%가 '아주 많이 받는다', 27%는 '조금 받는다'고 대답했다. '받지 않는다'는 대학생은 4%에 지나지 않았다.

왜 영어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32%가 '핵심인재로 성공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대답했고 31%는 '글로벌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30%는 '채용시 기업에서 중요 항목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가장 정확하고 솔직한 대답은 세번째일 것이다.

기업이나 학생들이나 왜 다들 토익 시험에 목을 매는 것일까. 차마 실명을 밝힐 수 없는 어떤 기업 인사 담당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수천통의 입사 원서가 들어왔는데 면접을 보려면 어떻게든 추려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놓고 소팅을 시켰어요. 학교 등급에 따라 한번 자르고 학교 성적으로 한번 자르고, 토익 성적으로 한번 더 자르고 그래도 너무 많길래 그냥 남은 원서 가운데 홀수번만 가려서 뽑았어요. 그러고 나니까 200명 정도 되더라고요."

기업 입장에서는 수천명의 입사자들을 가려낼 변별 기준이 마땅치 않다. 수천통의 입사 원서 가운데 그나마 변별력을 갖춘 지표는 토익 점수밖에 없다. 토익 950과 750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영어를 얼마나 잘하고 못하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토익 점수는 그 사람의 성실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토익 점수를 950 맞을 정도라면 다른 어떤 일을 맡기더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문제는 결국 토익이다. 출신 학교를 바꿀 수도 없는 일이고 학교 성적이야 하루 아침에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나마 토익 성적은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짝 올릴 수 있다. 게다가 학교 성적은 변별력이 별로 없다. 4.5 만점에 3.3이나 3.6이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학교 성적은 그야말로 하한 기준일 뿐이다. 성적이 너무 안 좋으면 문제겠지만 많은 기업들에서 어느 정도 이상만 되면 학교 성적은 더이상 크게 눈여겨 보지 않는다. 3.0 이상이면 무난하고, 3.5 정도만 넘으면 성적이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고 봐도 좋다.

2001년 기준 우리나라 토익 시험 응시자들의 평균 성적은 990점 만점에 558.7점이다. 그러나 558.7점은 참담한 점수다. 2002년 기준으로 대기업 공개채용에서 지원자들의 토익 점수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앞서 살펴봤듯이 우리은행은 2002년 150명 모집에 1만2994명이 몰려들었고 이 가운데 토익 성적 900점 이상이 무려 1200명이나 됐다. 990점 만점을 받은 사람도 10명이나 됐다.

산업은행은 35명을 뽑는데 8850명이 몰려들었고 이 가운데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외국대학 출신 지원자가 100명이 넘었다. 토익 만점을 받은 사람이 11명, 900점 이상을 받은 사람은 2000명을 넘어섰다.

조흥은행도 만만치 않다. 모두 1만1340명 가운데 토익 900점 이상이 1000여명, 해외 MBA(경영학 석사) 78명, CPA(공인회계사) 114명, CFA(미국 재무분석사) 33명, FRM(금융위험관리사) 38명, AICPA(미국 공인회계사) 149명, 감정평가사 4명, 세무사 21명, 국제변호사 1명 등이 몰려들었다. .

신용보증기금은 50명 모집에 1만1810명이 몰려들었다. 토익 900점 이상이 1033명, 대학 평균학점 4.0이상이 1013명이나 됐다.

합격자의 토익 점수를 밝히는 기업이 거의 없지만 토익 점수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리바트가구는 2002년 서류전형 합격자의 토익 점수 평균을 내본 결과 850점으로 전년보다 100점 이상 올랐다고 밝힌 바 있다.

채용정보업체 휴먼피아가 2003년 5월 구직자 1245명을 대상으로 취업을 위한 적정 토익점수를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절반 가량이 800점 이상이라고 답했다. 정적 점수가 얼마냐는 질문에 31%가 '800점 이상'을, 16%는 '900점 이상'이라고 대답했다. '700점 이상'은 19%, '600점 이상'은 6%에 지나지 않았다.

취업난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02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대학 졸업생 10명 가운데 4명만 취업에 성공했다. 거꾸로 살펴보면 10명 가운데 6명은 졸업하고 백수로 나앉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온라인 채용정보 업체 잡코리아가 2003년 3월 대학 졸업생 29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6.7%인 1072명만 취업을 했다. 남학생(39.4%)이 여학생(31.9%) 보다 많았고 4년제 대학 졸업생(37.0%)이 2년제 대학 졸업생(34.4%) 보다 많았다.

2002년말 기준으로 20~29세 청년 실업자 수는 모두 27만1000명에 이른다. 전체 실업자 67만6000명의 40%를 넘어선다. 평균 실업률도 전체 실업률(3.0%)의 두배가 넘는 6.4%를 기록했다.

냉정하게 따져 말할 때 토익 성적은 영어 실력과 직결되지 않거나 무관하다. 문제만 보면 답이 탁 튀어나오지만 기껏 토익 900점을 넘고도 직접 외국인을 맞닥뜨릴 때 버벅거리는 사람들이 둘러보면 수두룩하다. 그러나 토익 공부는 이제 우리 시대 사회화의 한 과정이다. 토익 성적은 성실성과 표준화의 척도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어디를 가든 상당한 토익 점수를 보여줘야 한다.

대기업이라는 큰 우산 아래 들어가 비를 피하고 싶은가. 혼자서 모든 비를 맞고 험난한 길을 직접 헤쳐나갈 자신이 없다면 토익 점수는 필수다. 4학년 무렵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듯 쫓기면서 공부하기보다는 일찌감치 꾸준히 영어 실력을 기르는 게 좋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시험을 여러번 치를수록 성적이 올라간다는데 있다. 처음 시험 본 사람들의 평균 성적은 481점, 두번째 치른 사람들은 533점, 세번째는 563점, 네번 이상 시험을 치른 사람의 평균 성적은 622점으로 꾸준히 올라갔다. 전체 응시자 98만여명 가운데 4회 이상 시험을 치른 사람이 무려 39.1%에 이르렀다. 물론 4번이나 시험을 치르고도 622점 밖에 받지 못한다면 꽤나 심각한 상황이다.

유밀레의 스물한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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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살의 유밀레(본명 남윤정)는 제멋대로였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2학년이었던 그는 난데 없이 미국 유학을 보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대학만 들어가면 뭐든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우기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생떼를 부린 끝에 허락을 받아냈다.

학교를 자퇴하고 미국에 건너간 유밀레가 찾은 곳은 네바다 주립대학 호텔경영학과.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때만해도 유밀레는 머라이어 캐리 같은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되는게 꿈이었고 일단 미국의 문화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어, 프랑스어, 일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읽고 쓰고 말할 줄 알고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발레와 힙합, 재즈댄스에 요가와 킥복싱까지 뭐든지 자신 있었으니 뭐든 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뒤 1년반 동안 유밀레는 온갖 오디션을 쫓아다녔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무도 유밀레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동양인의 한계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외모나 재능의 한계였을 수도 있다.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유밀레의 미국 생활은 실패였다. 학비를 버느라 내내 아르바이트에 매달렸고 시간은 훌쩍 흘러갔다. 참담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돌아온 유밀레는 벤처 사업가로 변신했다. 2000년 4월 영화감독 출신인 유영진 사장과 손잡고 만든 회사가 밀레21. 몇군데 벤처캐피털이 모여 100억원의 자본금을 댔고 밀레21의 야심만만한 실험이 시작됐다.

밀레21의 첫 사업은 이른바 문화 공동체의 실험이라고 불렀던 밀레카드였다. 180만명의 회원이 1년에 1만원씩 회비를 내면 그걸 모아 문화 산업에 투자를 한다. 1만원이면 애인과 영화 한편 볼 돈도 안되지만 180억원이 모이면 영화 대여섯편을 거뜬히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든 영화를 회원들은 물론 무료로 볼 수 있다. 영화가 성공하면 이익금은 다시 다른 영화에 재투자된다.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콘서트와 음반 등 가능성만 있다면 어디든 투자할 수 있다. 이른바 문화의 확대 재생산인 셈이다. 밀레카드는 분명 새롭고 의미있는 시도였다.

그리고 유밀레는 2000년 1월 드디어 첫 음반 '동풍'을 내놓았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감독 박칼린씨와 사진작가 김중만씨, 디자이너 진태옥씨 등 쟁쟁한 멤버들이 이 '동풍' 프로젝트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참담했다. 밀레카드는 생각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고 '동풍' 또한 전혀 팔리지 않았다.

그뒤로도 밀레21은 꾸준히 새로운 사업 계획을 만들어냈고 그 가운데 몇몇은 눈에 띄게 성공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있는 유밀레 공화국에 가면 밀레21의 야심을 읽을 수 있다. 유밀레 공화국은 흔한 옷 가게와 다르다. 이곳에서는 옷과 함께 새로운 사고와 자기표현, 생활방식 등 그야말로 유밀레의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팔려나간다.

유밀레는 지난해 램페이지를 찾아가 래리 핸슨 회장을 만나 아시아 독점 판매권을 따냈다. 램페이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헐리우드의 내노라하는 가수와 배우들이 가장 즐겨 입는 굉장히 야한 의류 브랜드다.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핸슨 회장은 어느날 배꼽티에 구멍뚫린 청바지 차림으로 회장실을 치고 들어온 유밀레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유밀레는 서양 브랜드가 동양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우리나라 여자들의 성향을 논리 정연하게 설명했고 핸슨 회장은 이 정도면 독점 판매권을 줘도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밀레21은 램페이지 뿐만 아니라 스티브매든, 스티비스, 머드진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독점 판매권을 확보하고 백화점에도 납품을 시작했다. 밀레21의 사업영역은 이제 패션과 문화 산업을 망라한다. 밀레21은 독특하고 위험한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다.

유밀레의 성공을 이야기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유밀레는 여러차례 실패를 겪으면서도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멀리 내다보고 한발 앞서 크게 생각했다. 그런 자신감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기꺼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유밀레가 만약 스물한살에 우물을 벗어나 미국으로 떠나지 않았어도 지금의 밀레21이나 유밀레 공화국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남들은 적당한 대기업에 들어가 월급쟁이 생활을 시작할 나이에 유밀레는 벌써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다. 유밀레는 일찌감치 모험을 선택했다. 험난한 모험이었지만 지금 유밀레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다. 그리고 일을 사랑하고 기꺼이 즐기고 있다. 스물한살, 지금은 모험이 필요할 때다.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라. 머물지 말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라. 기꺼이 자신을 험한 파도에 부딪혀도 좋을 때다.

엠피스리 플레이어를 가진 사람들은 음악의 소유를 넘어 음악을 공유할 수 있다. 음악은 오디오와 컴퓨터를 벗어나 일상의 영역까지 젖어든다.

온 세상을 통털어 가장 비싸고 가장 훌륭한 엠피스리 플레이어를 선물로 받았다. 애플 컴퓨터에서 만든 아이포드는 엠피스리 플레이어라기보다 차라리 예술품에 가깝다.

은은한 보라빛의 크고 시원한 화면과 손끝으로 가볍게 툭툭 건드리는 것만으로 움직이는 터치 버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메뉴 구성, 완벽한 디자인과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음질. 게다가 저장용량이 무려 10기가바이트(= 10만메가바이트). 4000개가 넘는 음악 파일을 한꺼번에 집어넣을 수 있다. 손바닥에 놓으면 그럴듯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음악을 듣는 출퇴근 길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다만 전철 안에서 꺼내서 듣고 있으면 옆사람이 사팔뜨기가 되거나 목뼈를 삐끗할 위험이 있으니 왠만하면 찾고 싶은 음악만 찾고 얼른 호주머니나 가방에 집어넣는게 좋다. 아이포드는 그만큼 매력적이다.

200여곡에 이르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의 칸타타 모음을 마음먹은대로 골라 들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커다란 즐거움이다. 칸타타 뿐만 아니다. 마태 수난곡이나 부란덴부르크 협주곡, 골드베르크 변주곡, 마니피카트, 미사, 오라토리오, 무반주 첼로 모음곡, 토카타와 푸가, 프랑스 모음곡, 인벤션, 평균율 클라비어까지.

왜 클래식을, 그것도 바하를 듣느냐고 물어도 딱히 대답할 말은 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바하는 음악을 작곡했다기 보다 발견한 것이 틀림없다. 완벽한 수학적 균형과 엄격하면서도 틀에 얽메이지 않는 변주.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주관하는 조물주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요즘은 팻 매쓰니와 로리나 맥케닛, 키스 자렛 같은 음악도 즐겨 듣는다. 사실 길을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정말 답답해 보인다. 바깥 세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안에 갇힌 사람들처럼. 그러나 놀랍게도 어떤 음악은 어떤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길 위에서 듣는 음악은 늘 걷는 똑같은 거리에 새로운 빛깔을 입혀준다. 그리고 문득 축복처럼 새로운 영감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끊임 없이 새롭게 발견하고 새롭게 깨어난다. 스스로 안에 갇힐지언정 음악의 매력은 정말 치명적이다.

최신 모델은 터치 버튼이 따로 위로 올라와 있고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맥킨토시 뿐만 아니라 윈도우 피시에도 바로 연결해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파일을 옮겨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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