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003 Archives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직장은 꿈의 무덤이다. 올해 서른인 장태만씨의 지난 몇년도 그랬다.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서류 작업과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이제 그는 아무런 기대도 없다. 장태만씨의 친구들은 그를 태만한 태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라. 그는 결코 게으른 성격은 아니다. 다만 지치고 의욕을 잃고 체념하고 있을 뿐이다.

3년 전, 스물여섯살의 그는 자신만만한 신입사원이었다. 이른바 명문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모두가 선망하는 최고의 직장이었던 은행에 들어갔을 때만해도 그는 열정에 들떠 있었다. 그는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야야, 은행원들 우습게 보지 마. 창구에 앉아서 돈 계산이나 하고 있으니까 한심해 보이지? 그건 은행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스펙타클하고 사람 사는 재미가 넘치는 곳인가 너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아마도 지나간 과거는 오지 않은 미래 만큼이나 왜곡되고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퇴근하고 나서 동료들과 맥주를 기울이던 기억이나 월말 마감을 앞두고 밤샘을 하던 기억, 실적 목표를 맞추려고 여기저기 조바심 내며 뛰어다니던 기억. 그리고 그는 거기서 첫 사랑을 만났다. 그러나 그의 기억에 남은 첫 직장의 열정은 첫 사랑의 기대와 설레임만큼이나 아쉬움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는 사실 대학교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다. 은행 일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평생 머물기에는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그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더 신나는 일을 하고 더 유명해지고 더 성공하고 출세하고 싶었다. 스스로를 머리좋고 학벌좋고 재능있고 전도유망한 청년이라고 생각했던 장태만씨는 직장 동료들 몰래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고 그해 가을 신문사 수습기자 공개채용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때 은행을 떠난 게 잘한 일인가 아직도 확신은 없다. 다만 그는 부족한 무엇인가를 찾아 떠났고 아직 그 무엇인가를 찾지 못했다.

수습기자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달펐다. 수습기간이 끝나면 연봉 3천만원 정도를 받는다지만 그때까지는 50만원의 활동비로 버텨야 한다. 처음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하면 경찰서 취재를 맡아야 한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서 관할 경찰서를 돌아다니면서 사건을 살펴보고 두시간 마다 한번씩 선배들에게 보고를 해야한다. 선배의 지시에 따라 상가집도 가봐야 하고 영안실에 가서 시체도 살펴봐야 한다. 힘든만큼 재미도 있었지만 한달에 택시비만 100만원, 전화비도 50만원 가까이 나왔다. 매일 같이 새벽 두시에 잠들어 다섯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6개월 가까이 하고 나니 은행 다닐 때 벌어둔 저축도 거의 다 바닥이 났다.

6개월의 힘겨운 수습기자 생활을 마치고 난 장태만씨는 경제부에 배속됐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경제부 기자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무엇인가 아쉬웠다. 몇달 뒤 그는 문득 생각난 것처럼 신문사를 그만뒀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다. 마침 한참 잘나가던 대기업 종합상사에서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했다. 그래서 한번 더 회사를 옮기기로 했다. 오대양육대주를 넘나들면서 돈뭉치를 져 나르는 종합상사는 못다 이룬 야망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은 거뜬히 합격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퇴근 길에 직장 선후배들과 왁자지껄 소주를 걸치는 재미를 빼면 종합상사의 일은 따분하기만 했다. 서류와 서류와 서류와 서류와 서류. 기안과 결재와 무의미한 회의. 틀에 박힌 선배들과 상사들. 평생을 여기서 썩을 수는 없다!!!

장태만씨는 그때부터 이미 무언가 꼬이고 있다는 조바심에 시달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벌써 2년 가까이 지났지만 어디에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옮겨다닌 직장도 벌써 세번째다. 돈도 거의 모으지 못했다. 열정을 잃으니 일도 재미없고 그만큼 성과도 형편없었다.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는 회사에서 천덕꾸러기에 사고뭉치, 투덜이였다. 퇴근 시간과 주말을 기다리면서 버티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이대로 젊음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 장태만씨는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회사를 옮기기로 한다.

장태만씨는 그렇게 두번 회사를 더 옮겨 지금은 조그만 벤처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한때는 어디든 시험만 치면 합격할 자신감도 있었고 그만큼 오라는 데도 많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싫증이 나면 사표를 툭 내던지고 새로운 직장으로 훌쩍 옮겨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옮겨갈 데가 없다. 일에서 아무런 희망을 찾지 못하고 소모적이라고 느끼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 벼랑끝에 선 느낌이다.

그는 이제 적당히 퇴폐적이고 적당히 염세적이다. 욕심도 없고 그날 그날을 고집스럽게 버텨갈 뿐이다. 여기, 장태만씨가 말하는 직장을 옮기는 10가지 원칙이 있다.

1. 사람을 보고 옮기지 마라. (외부에서 볼 땐 그렇게 성격 좋았던 그 사람이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순간부터 끔찍해 질 수 있다.)
2. 조직을 보고 옮겨라. (시스템이 잘 돼 있는 직장과 그렇지 않은 직장은 완연히 다르다. 1과도 일맥상통한다.)
3. 돈이든, 재미든, 하나라도 더 나은 직장으로 가라. (사람은 본전생각이 강한 동물이다. 대부분의 여건이 전직장에 비해 안 좋다면, 심리적으로 굉장한 타격을 받는다.)
4. 이직을 하기 전에 새 직장쪽과 완벽하게 근무조건에 대해 합의를 봐라. (막상 무작정 옮기고 보면, 대우조건이 그 전에 얼핏 보장받았던 내용과 다른 경우가 많다.)
5. 옮기기 전에 그 회사의 간부급, 사원급, 중간계층 등의 사람을 골고루 만나봐라. (새 직장에 대한 취재는 필수적이다. 다만 그 사람들이 거짓을 말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6. 섣불리 옮기지 마라. ("이 상승장에 나만 주식투자에서 빠져있군. 아무거나 사야겠다." 그러면 다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분석을 하든, 내부 정보를 빼내든 신중해야 한다)
7. 과감하게 옮겨라. (6과 상반되는 것같지만 사실 비슷한 내용이다. 섣불리 옮기지는 말되, 과감하게 옮기는 것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다시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다)
8. 이직 후엔 곧바로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이직자들은 대개 동기가 없기 때문에, 본 모습을 보여주거나 자신의 회사생활 패턴을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다. 동기가 있다면 이런 문제는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9. 직장을 옮긴 뒤 아니다 싶으면 빨리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낫다. (대략 한 달 정도 지난 뒤의 감(感)이면 믿어도 좋을 듯하다)
10. 막상 옮기도 나서 실수라고 생각하지만 갈 곳이 없다. 그러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엔 취미 등 다른 꺼리를 만들어야 한다.)

직장은 얼마든지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옮겨갈 수 있을 때는 당신이 가격 대비 품질을 갖춘 20대의 마지막 몇년뿐이다. 조금 더 지나면 당신은 너무 비싸거나 너무 나이를 먹는다. 마음에 드는 직장을 찾기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지만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운도 따라야 하지만 그보다는 직접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하고 기회를 만났을 때 민첩하고 용감하고 단호하게 행동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직장은 열정의 무덤이다. 직장에 당신의 꿈을 묻지 마라. 직장 생활 2년차, 마음에 안드는 직장이라면 빨리 그만 두고 다른 직장을 알아봐라. 경력을 발판 삼아 껑충껑충 뛰어올라갈 수 있는 직장이 아니라면,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보람도 열정도 찾을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만둬라. 직장을 고르는 일이 당신의 20대의 가장 큰 결정이라면 직장 생활 2년차에 직장을 옮기는 일은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남은 기회다. 10년 뒤, 20년 뒤의 당신을 생각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폭력과 공포에 지쳤다면 '고양이의 보은' 같은 기발한 상상력이 넘치는 만화 영화도 좋다. 유치해 보이는가. 우습게 보지 마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은 이런 만화영화에 딱 맞는 말이다. 동화적 상상력, 아득한 그리움.

'고양이의 보은'은 8월 8일에 개봉한다.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과 '28일 후'의 개봉일은 각각 7월 25일과 9월26일이다.

'28일 후'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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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영화라고 다 무서운 게 아니다. 정말 무서운 영화는 영화에 빨려 들어가 정말 나에게 닥친 일처럼 느껴지는 영화, 의자 깊이 움츠려 들면서 제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영화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든 비오는 어느날, 흠뻑 비를 맞고 찾아든 영화관에서 생각없이 봤던 영화, '블레어 윗치'가 그랬다. 소리나 꽥꽥 지르면서 칼이나 곡괭이 따위를 휘둘러 대는 한심한 영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28일 후'도 그만큼 무섭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무섭다기보다는 서늘한 느낌의 영화다.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앞으로 볼 생각이라면 여기까지만 읽으세요.)

몇일동안 병원에 누워있다 깨어났더니 세상이 너무 조용했다. 노을이 지는 거리가 유난히 넓어 보인다. 텅빈 거리에 바람은 황량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자동차들은 다들 어디로 간 걸까.

하나하나 따져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상황 설정은 대충 그럴듯하다.

어느날 실험실에서 끔찍한 바이러스가 쏟아져 나온다. 바이러스는 피나 침으로 전염되고 한번 전염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물어뜯는 못된 증상을 보인다. 감염자에게 한번 물리면 당신도 살아있으되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살아있는 시체가 된다. 감염자들은 낮이 되면 우글우글 햇볕이 안드는 어두운 곳에 숨어들었다가 밤이 되면 원숭이처럼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살아있는 사람을 찾아다닌다. 바이러스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그리고 28일이 지났다.

당신의 사랑하는 친구가 감염자에게 물렸다면 당신은 20초 내에 그를 때려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그에게 물리게 될 테니까.

가장 무서운 것은 어디에서 튀어나올까 알 수 없는 살아있는 시체들만큼이나 혼자 뿐이라는 적막하고 쓸쓸한 느낌이다. 당신은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 '블레어 윗치'처럼 끔찍한 상황이다. 혼자 있을 때보다 많지 않은 몇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더 무섭다. 두려움은 서로를 확인하면서 증폭되니까. 함께 있어도 서로의 두려움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니까.

눈여겨 보면 영화 첫 부분에 우리나라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장면이 실험실의 티비 화면에 잠깐 나온다. 반가운 건 잠깐, 이내 씁쓸해진다.

모두가 죽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다면. 정말 익숙하지만 어딘가 새롭고 끔찍한 상상이다. 사람들이 없는 텅빈 런던을 담아내려고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몇몇 장면은 정말 그림엽서처럼 아름답다.

주말에 참 많은 영화를 봤다. '28일 후'를 시작으로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 '귀를 기울이면'에서 '고양이의 보은'까지.

'터미네이터 3'는 여전히 한심했다. '터미네이터 2'가 나온 뒤 12년만이다. 1억9천만달러나 쏟아부었다고 난리법석을 떨어대는 영화치고는 기대에 못미쳤다. 사실 큰 기대도 없었지만 말이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1편에서 나쁜 놈으로 나온다. 그러다가 2편부터는 난데없이 착한 놈으로 나온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줄거리는 어차피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다만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나와야 영화가 팔릴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3편에도 그대로 나온다. 착한 놈인들 나쁜 놈인들 알게 뭐냐. 선글라스 끼고 나와 멋지게 폼잡고 한바탕 신나게 때려 부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단순함에 나는 경악한다.

1947년생이라는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여전히 무식할만큼 당당하고 그만큼 싸움도 잘한다. 따지지 말고 그냥 즐겨라. 마구 때리고 부수고 신나지 않은가. --; 할 수 있는 한껏 요란하고 난잡한 고속도로 추격 장면을 찍으려고 직접 1억9천만달러를 들여 6km의 고속도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1991년에나 유행하던 문법의 이런 대책없는 액션 영화가 2003년에도 먹혀들까. 뻔뻔하게 12년이나 지나서 거의 똑같은 영화를 다시 내놓은 이유는 도대체 뭘까.

줄거리는 하품이 나올만큼 2편과 거의 똑같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맞상대로 아무리 예쁜 터미네이터가 나온들 마찬가지다.

예쁘지만 나쁜 터미네이터 T-X와 착하지만 구닥다리 기종인 터미네이터 T-800이 2032년에서 2003년으로 날아온다. 인류를 구원할 존 코너와 그의 여자친구, 케이트 브루스터의 운명은 이들에게 달려있다.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앞으로 볼 생각이라면 여기까지만 읽으세요.)

미래에서 온 착한 터미네이터 T-800은 지금부터 30년 동안의 미래를 알고 있다. 2003년 컴퓨터의 반란으로 핵 전쟁이 일어나고 인류는 멸망의 위기를 맞는다. 존 코너와 케이트 브루스터는 컴퓨터에 맞서 싸우면서 인류를 구원한다. 터미네이터는 2003년으로 돌아와 이들을 데리고 핵 전쟁의 위협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멕시코로 도망가는 임무를 맡는다.

마지막 장면이 꽤나 인상적이다. 존 코너는 싫다고 말한다. 이대로 도망갈 수는 없고 미래를 알고 있다면 바꾸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발한다. 결국 터미네이터는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핵무기의 발사를 막으러 돌아간다. 그러나 결정된 미래 또는 지나간 과거를 바꾸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생각없이 가벼운 영화가 뜻밖의 질문을 던지고 끝난다.

나는 이 재판의 끝이 궁금하다. 이해를 돕는 몇가지 설명으로 시작하겠다. 자세한 내막은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겠지만 대략 정리하면 이렇다.

2000년 4월의 일이다. 현대 그룹은 민간 경제협력의 대가로 북한에 3억5천만달러를 보내기로 했다. 정부도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1억달러를 보내기로 했다. 그 1억달러는 정상회담의 대가였을수도 있고 그냥 선물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현대 그룹에 3억5천만달러라는 돈이 없었다는데서 시작한다. 어렵게 북한과 민간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긴 했지만 모두 말짱 도루묵이 될 판이었다. 북한에 보낼 돈은커녕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 유동성 위기에 그룹 전체가 흔들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칫 제 2의 IMF 사태, 제 2의 대우그룹 부도 사태로 번질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돈이 없기는 김대중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한들 어떻게 쥐도 새도 모르게 당장 1억달러를 만들 수 있겠는가. 제대로 절차를 밟아서 남북교류 협력기금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한나라당에서 딴지를 걸게 뻔했다. 문제는 여기서 더 커졌다.

아직 누군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현대 그룹은 그 누군가의 부탁 또는 지시를 받고 정부가 보내기로 했던 1억달러까지 덤태기를 써서 모두 4억5천만달러를 만들어 북한에 보낸다. 현대 그룹은 아마도 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산업은행에서 그 큰 돈을 대출 받는다.

다시 정리해보자. 이 재판의 핵심 쟁점은 이제 정부가 보낸 1억달러의 성격이다. 알려진 것처럼 그 1억달러는 과연 정상회담의 대가였을까. 또 하나의 쟁점은 그 1억달러를 왜 현대 그룹이 떠맡았느냐다. 알려진 것처럼 그 1억달러를 떠맡아주는 대신 정부는 산업은행에 압력을 넣어 말도 안되는 대출을 받게 해줬던 것일까. 이 재판의 열쇠는 일단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쥐고 있다. 박지원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핵심으로 다가갈수록 엇갈린다.

오늘 재판에서 박지원은 "1억달러를 현대에 대신 지급해달라고 요청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느낌이 조금 이상하다. 박지원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기억이 없다"고만 말했다. 박 전 장관이 모르면 아무도 모른다. 재판은 오리무중으로 치닫을 수밖에 없다.


대북송금 의혹사건 재판의 피고는 모두 여덟명이다. 오늘까지 나온 여덟명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해보겠다.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구속) :
임동원이 1억달러를 북한에 보낼 건데 돈이 없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박지원은 국회에 올리면 시끄러우니까 일단 현대보고 내라고 하고 나중에 갚아주겠다고 하라고 했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불구속) :
박지원이 찾아와서 정부의 1억달러를 떠맡아 주면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알고 보면 현대, 참 불쌍하다. 잘못했다. 반성하고 있으니 용서해달라. 너무 미워하지 마라.

김운규 전 현대건설 사장 (불구속) :
시켜서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 원장 (불구속) :
햇볕 정책이 뭐가 문젠가. 햇볕 정책은 통일이 되면 이렇게 해주겠다는 걸 보여주는 정책이다. 잘못한게 있으면 처벌을 받겠지만 후회는 없다.

최규백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불구속) :
시켜서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 (구속) :
대출 아무런 문제 없었다. 그때만 해도 현대상선은 우량한 회사였고 충분히 상환 능력이 있다고 봤다.

박상배 전 산업은행 영업1본부장 (불구속) :
대출 아무런 문제 없었다. 그때만 해도 현대상선은 우량한 회사였고 충분히 상환 능력이 있다고 봤다. 시켜서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여기서 일단 한번 더 정리를 해보자. 김운규, 최규백, 박상배, 이 세 똘마니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지들 빠져나가기에 바쁜 놈들이다. 엉뚱하고 억울한 놈들, 일단 제외.

정몽헌 = 대출 받아서 북한에 보낸 놈.
임동원 = 대출 도와주라고 지시한 놈.
이기호 = 대출해주라고 압력을 넣었거나 아니면 그냥 대출 좀 해줘라고 슬쩍 말만 해준 놈.
이근영 = 대출해준 놈.
박지원 = 잘 알 것 같은데도 잘 모른다고 우기는 놈.

마지막으로 박지원 이야기를 들어보자. 박지원은 논리정연하게 힘을 주면서 이야기한다. 당연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구속) : 이근영, 박상배 이런 애들 나는 잘 모른다. 만난 적도 없다. 현대가 북한에 돈을 보내기로 했다는 건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한꺼번에 그렇게 큰돈을 보낸다는 건줄은 몰랐다. 별로 관심도 없었다. 정몽헌이 어렵다고 도와 달라고 하길래 돕고 싶지만 경제 담당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현대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은 했다. 현대가 망가지면 정말 큰일 아닌가. 대충 그 정도였고 구체적인 지원 방법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뒤로 잊고 있었다. 현대에게 정부의 1억달러를 대신 내라는 이야기 한적 없다. 전혀 모르는 이야기다.


결국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정부가 보낸 1억달러의 성격은 무엇일까. 알려진 것처럼 그 1억달러는 과연 정상회담의 대가였을까. 또 다른 의문은 정부가 보내기로 했던 그 1억달러를 왜 현대 그룹이 떠맡았느냐다. 알려진 것처럼 그 1억달러를 떠맡아주는 대신 정부는 산업은행에 압력을 넣어 말도 안되는 대출을 받게 해줬던 것일까.

오늘 임동원은 반대심문을 하다 난데없이 "햇볕 정책은 선이후난(先易後難), 선민후관(先民後官), 선경후정(先經後政), 선공후득(先功後得)의 기본 원칙에서 출발했다"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왠 뚱딴지 같은 소린가. '선이후난'이란 당장은 쉬운 일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이고 '선민후관'이란 정부가 나서기 보다는 민간차원에서 대북 협력의 물꼬를 트겠다는 뜻이다. '선경후정'이란 정치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경제 교류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이고 '선공후득'이란 당장 성과를 보기 보다는 앞날을 내다보고 꾸준히 투자를 쏟아부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북한에 돈 좀 보냈으면 어떤가. 돈을 빼돌려 엉뚱한 데 쓴 것도 아니고 북한에 보내줬는데 그걸 두고 왠 야단들인가. 박지원은 오늘 "북한은 외국이 아니다"는 논리를 내세워 자신은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헌법 13조에 보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규정돼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그 영토에 사는 사람들이다. 북한에 돈을 보낸 걸 두고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라니, 정말 웃기는 일이다. 어디 한번 물어보자. 그 돈이 그렇게 아까운가. 이 말도 안되는 재판의 끝이 나는 궁금하다. 뭘 밝혀낼 수 있을까. 누구를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까.


대북송금 사건 일지

2000년.
6. 15. 남북정상회담.

2002년.
9. 25.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 4천억원 대북지원 의혹 제기.
10. 14. 감사원, 산업은행 감사 착수.

2003년.
1. 18.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검찰에 소신 수사 주문.
1. 23. 검찰, 정몽헌 회장 등 출국 금지.
1. 30.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
2. 5. 김대중 대통령, 송금 공개에 반대입장 표명.
2. 9. 오마이뉴스 "송금 5억달러 현대 사업대가 명목" 보도.
2. 14. 김 대통령, 대국민해명 회견.
2. 26. 특검법 국회 본회의 통과.
3. 4. 북한 조평통, "특검 도입 때는 남북관계 동결."
3. 14. 노 대통령, 특검법안 공포.
3. 17. 여야 법안 수정협상 시작.
3. 24. 대한변협, 특검후보 발표.
3. 27. 노 대통령, 송두환 변호사를 특별검사로 지명.
4. 17. 특검수사 개시, 박상배 전 산은 총재 자택 압수수색.

'장화, 홍련'은 무섭다기 보다는 예쁜 영화였다. 열다섯살 무렵 여자아이들의 불안과 두려움이 눈이 아플만큼 선명한 붉은 빛깔로 기억에 남았다. 어딘가 쓸쓸하고 처연한 빛깔이었다.

수미와 수연은 계모가 싫다. 아빠가 젊은 여자를 집안에 끌어들이면서 행복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고 엄마는 결국 옷장에서 목을 매 죽었다. 엄마가 죽고 난 뒤, 젊은 여자는 계모가 됐다. 엄마는 계모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다.

계모도 수미와 수연을 미워한다. 계모는 수미 몰래 만만한 수연을 괴롭힌다. 때리기도 한다. 계모와 수미와 수연은 날마다 무서운 꿈에 시달린다. 계모는 소리를 지른다. "정말 무서운게 뭔지 알아? 그건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야."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앞으로 볼 생각이라면 여기까지만 읽으세요.)

생리대를 훔쳐 나오다 들킨 수미에게 계모는 묻는다. "어머, 너도 생리하니?" 수미는 차갑게 대답한다. "나 말고 수연이." 그러나 사실 생리는 수연이 아니라 수미가 한다. 그만큼 수미는 수연을 가깝게 느낀다. 그러나 계모와 수미는 모르고 있다. 수연은 아주 오래전에 죽었다. 남아있는 건 수연의 기억 뿐인데, 그런데도 기억은 현실을 짓누르고 가끔 심각하게 뒤틀어 놓는다.

수연은 죽어서도 늘 계모와 수미의 곁을 맴돈다. 수연은 아마도 두사람의 죄의식이 빚어낸 망상일 것이다. 어느날 계모는 아빠가 밖에 나간 사이 수연을 죽인다. 집안은 온통 붉은 피로 물든다. 뒤늦게 돌아온 아빠는 수미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지른다. "수미야, 정신차려. 수연이는 오래 전에 죽었잖아. 수연이는 이 세상에 없어." 이상한 일이다. 수연이는 어디로 간 걸까. 그럼 계모가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 프로이트.

억압(repression) : 의식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고 충격적이어서 무의식속으로 억눌러 버리는 것.억압은 다른 방어기제나 신경증적 증상의 기초가 된다. 반면 의식적으로 생각과 느낌을 눌러 버리는 것은 억제(suppression).

투사(project) : 자신의 심리적 속성이 타인에게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자기가 화가 나 있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자기에게 화를 냈다고 생각하는 것.

합리화(rationalization) : 현실에 더 이상 실망을 느끼지 않으려고 그럴 듯한 구실을 붙이는 것. 먹고는 싶으나 먹을 수 없는 포도를 보면서 '신포도는 안 먹겠다'고 말하는 경우.

반동형성(reation formation) : 미운놈에게 떡 하나 더준다. 무의식적 충동과 정반대의 것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 실제로 자기를 학대하는 대상인데도 그 대상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

부정(denial) : 고통스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배신을 인정하려들지 않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

승화(sublimation) :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형태와 방법을 통해 충동과 갈등을 발산하는 것. 정육점 주인이나 외과의사로서의 직업선택에는 공격적 충동이 승화가 작용할 수도 있다.

퇴행(regression) : 초기의 발달단계나 행동양식으로 후퇴하는 것.동생을 본 아동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응석을 부리는 것.

전위(displacement) : 욕구충족 대상에 접근할 수 없을 때 다른 대상에게 에너지를 돌리는 것. 교수에게 꾸중을 들은 학생이 대신 동료에게 화를 낸다.

그렇다면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자. 계모는 쓰러진 옷장에 깔려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수연을 보고 놀라 도망쳐 나온다. 그러다가 뒤돌아 서는 순간, 수미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한다. "당신 방은 아래층이잖아. 여기 올라오지 마."

계모는 망설인다. "넌 언젠가 네가 방금 한 말을 후회하게 될 거야." 수미는 망설이지 않고 답한다. "후회 안해." 두사람의 눈빛이 부딪힌다. 계모는 싸늘하게 돌아 나오고 그렇게 수연은 죽어갔다. 수미는 계모가 수연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계모는 수미도 수연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계모와 수미는 수연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연은 이미 죽었지만 두 사람의 기억에 남아 끊임없이 다시 죽는다.

계모와 수미, 두사람은 끊임없이 수연을 다시 죽이고 괴로워한다. 이 영화는 그래서 슬프면서도 무섭다.

" 장안평을 지날 때였어요. 새벽 세시쯤이라 거리에 차도 거의 없었고 다들 신나게 밟고 있었죠. 마침 신호가 바뀌고 사거리를 가로 질러 커다란 트럭이 한대 오고 있었어요. 끼이익 하고 멈춰서는데 거울을 보니 뒤에서 택시가 한대 달려오고 있더라고요."

신도통운 택시기사 김태원씨는 그때 그 택시가 자기가 몰고 있던 택시와 부딪힐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 저렇게 달려오면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겠구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김씨는 아주 느리게 그 장면 장면들을 기억한다. "안돼!"하는 생각과 함께 곧이어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밤하늘을 찢듯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곧 캄캄한 어둠, 김씨는 정신을 잃었다.

김씨의 택시는 뒷쪽부터 절반 이상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김씨에게 부딪힌 택시도 완전히 망가져 뚜껑은 10미터쯤 뒤로 날아가고 엔진은 운전석까지 튀어나왔다. 뒷쪽 택시의 기사와 손님은 무릎이 완전히 부서졌다고 했다.

김씨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충격으로 확 재껴진 의자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혔다. 사람들이 달려와 말을 걸었지만 잠깐 정신이 들고 나서도 아득하기만 했다. 김씨는 끌어 내려져 한동안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있었다. 사람들이 잘못 만지면 어디 부러질 수도 있으니 내버려두라고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구급차 소리를 들으면서 김씨는 다시 정신을 잃었고 병원에 실려가 사흘 뒤에 깨어났다. 김씨는 아직도 가끔 그날의 충격을 떠올리고 몸서리를 친다. 사고를 겪은 뒤로 기억력도 크게 떨어졌다. 가끔 머리 한가운데 짙은 구름이 끼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나중에 들으니 뒷쪽 택시의 기사는 신호가 막 바뀌던 참이라, 김씨가 멈추지 않고 사거리를 그대로 통과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씨가 멈춰서는 걸 보고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운명처럼, 택시는 곧바로 달려서 김씨의 택시를 들이 받았다. 택시 두대는 모두 폐차장으로 갔다.

그런 기억 탓일까. 김씨는 답답할만큼 운전을 조심스럽게 했다. 건널목의 신호선 앞에 정확하게 멈춰섰고 신호가 바뀔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렸다. 죽거나 크게 다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김씨는 앞을 내다보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2001년 기준으로 한해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모두 26만579건, 사망자수는 8097명이다. 하루 평균 713.9건이 발생하고 이 사고로 하루 평균 22.2명이 죽는다. 해마다 인구 10만명에 542.6명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10만명당 16.9명이 죽는다. 교통사고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전체 교통사고 가운데 개인 승용차 사고가 12만5847건, 택시 사고는 2만2141건이다. 택시 가운데서도 법인 택시가 훨씬 사고를 많이 낸다. 법인 택시와 개인 택시는 2001년 한해 각각 1만8453건과 3688건 사고를 냈다.

말 많은 택시 기사는 조금 부담스럽다.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는 더욱 그렇다.

개인택시를 모는 한상용씨는 내가 자리에 앉자 마자 뭔가 말을 걸고 싶은 눈치였다. 개인택시 면허를 받고 새 차를 뽑아 나온 첫날, 내가 오늘 일곱번째 손님이라고 했다. 둘러보니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나는 새 차다. 한씨는 택시 운전을 17년 동안 했다고 한다. 17년 운전 끝에 개인택시 면허를 받았으니 신바람이 날만도 하다. 개인택시 면허란 게 좀 받기 힘든가.

서울시는 지난달, 500대의 개인택시 면허를 새로 내줬다. 한씨의 택시도 그 500대 가운데 한대다.

서울시는 1999년 개인택시 면허 신청을 받아 근속 연수와 무사고 기록 등을 감안해 3665명의 보충면허 예정자에게 번호표를 나눠줬다. 서울 시내에 돌아다니는 택시는 모두 7만대로 묶여 있다. 서울시는 7만대 총량에 못미치는만큼 찔끔찔끔 면허를 내줬다. 1999년에 511대를 내준 것을 마지막으로 2000년에는 48대, 2001년에는 47대, 2002년에는 34대, 올해 들어서는 5월까지 5대에 그쳤다. 개인택시 면허 한번 받으려면 10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씨도 1999년에 번호표를 받았다. 근속 연수가 12년 밖에 안됐던 한씨의 번호표는 600번이 조금 넘었고 결국 아슬아슬하게 미끄려졌다. 그리고 5년을 더 기다린 끝에 무사고 운전 17년만에 개인택시 면허를 받게 됐다. 서울시에서 공식적으로 내주는 개인택시 면허 말고 다른 사람의 면허를 돈 주고 사려면 적어도 7천~8천만원은 줘야 한다. 그런 면허를 당당하게 받아냈으니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할만도 하다. 자그마치 17년을 기다려 받은 면허 아닌가.

한씨는 잔뜩 꿈에 부풀어 있었다. 지난달, 2003년 6월의 끝무렵이었다. 택시는 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청계고가를 날듯이 달려갔다. 달나라까지도 날아갈만큼 택시는 가벼웠다.

택시가 와닿자 한씨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은데 어딘가 아쉬운 눈치였다. 기분을 띄워주려고 1만원짜리를 내밀면서 잔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운전 잘 하시고 돈 많이 버시라고 덕담까지 해줬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2005년까지 6개월에 한번씩, 500대씩 개인택시 면허를 더 내줄 계획이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렸던 3010명에게 모두 면허를 내주는 2005년이 지나면 더이상 개인택시 면허 신규 발급은 없다.

유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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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는데 검찰청 앞마당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예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아득하게 장미 향기가 났다. 유민이었다. 여기는 왠일이냐고 물었더니 최근에 마무리된 고소 사건의 무혐의 처분 증명을 떼러 왔다고 했다. 아마 마음 고생이 심했을 거다. 뭔가 기쁘게 해줄 말을 찾았는데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인을 해달라고 했더니 쑥스러운듯 활짝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운 눈으로 쳐다봤다. 놀랍기도 하겠지. 나도 정말 믿기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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