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001 Archives

대중교통이 발달돼 있지 않은 인도에 서는 오토릭샤라고 부르는 세바퀴 오토바이가 택시처럼 널리 쓰인다. 조금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신나게 경적을 울려대면서 먼지 흩날리는 뒷골목을 누비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깝게 붙어 앉으면 세명까지 탈 수 있는데 요금은 그야말로 껌 값도 안된다.

오토릭샤꾼들은 보통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 100루피 정도 번다고 한다. 45루피가 1달러 정도니까 우리 돈으로 치면 3천원이 채 안되는 셈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오토릭샤를 몰아도 한가족 살림을 꾸려나가기에는 빠듯할 수밖에 없다. 연봉으로 따지면 700달러가 넘는 오토릭샤꾼들은 그나마 형편이 좀 낫다. 아직도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은 515달러밖에 안된다.

건널목에 차가 멈출 때면 거지들이 우루루 몰려와 손을 내미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동전이라도 집어주고 싶어도 한둘이 아니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길 안내를 맡아준 이삼성인디아의 카필은 그때마다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저으면서 유리창을 올리곤 했다. 거리 구석구석에서 거지들이 배고픔에 지쳐 죽어가고 있는데 카필은 차에 더러운 얼룩이 묻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우리나라로 치면 부장 정도 되는 직책을 맡고 있는 카필은 한달에 10만루피, 우리 돈으로 300만원 정도를 받는다. 불쌍한 오토릭샤꾼보다 무려 300배 이상을 버는 셈이다. 물론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심지 방갈로르 같은데 가면 카필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인도는 이처럼 노동력의 가치가 100배 이상 차이나는 나라다. 오토릭샤꾼들은 길거리 노점상에서 5루피짜리 빵으로 점심을 해결하지만 카필은 깨끗한 레스토랑에 가서 500루피짜리 정식을 먹는다. 카필이 갑부라서가 아니다. 인도에 는 5루피짜리 빵을 먹는 계층과 500루피짜리 정식을 먹는 계층이 명확히 나누어져 있다. 비린내 나는 수도물을 그냥 마시는 계층이 있고 수도물을 마시면 큰일 나는 것처럼 기를 쓰고 생수를 사서 마시는 계층이 있다. 서로 생활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많은 인도 사람들은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견디기 어려운 더위만큼이나 가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넘을 수 없는 빈부의 차이는 체념과 무기력을 낳았다. 창문 너머로 손을 내미는 거지들에게 동전 몇푼 던져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도 무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당신들은 왜 이렇게 가난한가. 이런 엄청난 빈부의 차이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다른 사람들의 가난에 무관심한 카필에게 물었다. “가난도 운명이다. 우리는 아무런 욕심도 없다. 다들 다음 세상에서는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을 뿐이다.”

카필은 다른 사람의 가난을 운명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스스로는 끊임없이 운명에 맞서 왔다. 10억 인구 가운데 카필처럼 500루피짜리 점심을 먹고 하인을 두고 자가용을 끌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3천만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나머지 9억7천만명과 다르다. 변화는 느리지만 사람들 의식은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당신의 삶을 바꿔드립니다!(We change your lives!)”

거리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컴퓨터 학원 압텍의 광고 간판이다. 압텍은 엔아이아이티와 함께 오늘날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일궈온 주역으로 손꼽힌다. 인도에는 이런 크고 작은 컴퓨터 학원이 1천여개가 넘는다. 동네마다 조금만 뒤져보면 압텍의 빨간 간판이나 엔아이아이티의 파란 간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도 사람들에게 컴퓨터 학원은 운명에 맞서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학원에서 실무교육을 받고 나면 방갈로르에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신분과 빈부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인 셈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잠자고 있던 인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 동네마다 컴퓨터 학원이 들어섰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소프트웨어를 배우러 몰려들었다. 해마다 13만명의 소프트웨어 전문인력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회사들은 아직도 사람을 못 구해서 야단이다.

지난 1981년 단돈 250달러로 시작한 소프트웨어 서비스 회사 인포시스는 지난해 인도 소프트웨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올라갔다. 컴퓨터 한대로 시작한 구멍가게 같은 회사가 20년만에 매출 2억달러에 시가총액 250달러의 거대한 기업으로 커버린 것이다. 인포시스의 나랴야나 머시 회장은 10억달러의 갑부가 됐다. 100만달러 이상을 거머쥔 임원들도 200명이 넘는다. 이만큼 확실한 인디안 드림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까지 인도의 어떤 회사도 이만큼 놀라운 성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인도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도 당연하다. 숙명처럼 짓누르고 있던 가난을 떨쳐내는 길을 소프트웨어 산업 쪽에서 찾은 것이다.

인도 소프트웨어 기업 협회, 나스콤에 따르면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은 지난해 57억달러 규모까지 커졌다. 이 가운데 수출이 40억달러로 70%를 차지한다. 인도 전체 수출의 10.5%에 이르는데 이 비율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국 경기가 주춤하면서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성장성은 여전하다. 이 시장은 지난 5년동안 해마다 평균 55.2%씩 몸집을 불려왔다. 나스콤은 올해 시장 규모를 82억달러, 수출을 62억달러로 내다보고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인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산업이다. 인도의 모든 미래가 여기에 걸려있다.

인도의 경쟁력은 무엇보다도 값싼 인건비에서 비롯한다. 오토릭샤를 몰면 한달에 고작 60달러를 벌지만 인포시스에 들어가면 첫 월급으로 500달러를 받을 수 있다. 인도 사람들에게는 깜짝 놀랄만큼 파격적인 대우겠지만 그래봐야 미국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된다. 임금은 필리핀이나 중국과 비슷한 수준인데 실력은 이스라엘이나 싱가포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국에게 인도가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미국과 인도는 정확히 12시간의 시차가 난다. 미국 회사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인도에 서는 그 일을 그대로 넘겨받아 밤새도록 마무리를 지어준다. 체계만 잘 잡혀있으면 굉장히 효율적인 업무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른 바 소프트웨어 서비스라는 개념인데 직접 제품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미국 기업들이 하다가 조각조각 떼내어 건네준 작업을 메꿔주기만하면 된다. 큰 밑그림을 들여다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이쪽에서는 무슨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주어진 조각을 시키는 대로 꿰어맞추기만 하면 된다.

언뜻 별다른 경쟁력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이미 포츈 선정 500대 기업 가운데 185개 기업이 인도 기업들에게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맡기고 있다. 인건비만 터무니 없이 치솟지 않는다면 이같은 즐거운 공존공생 관계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정보기술의 거품이 빠지면서 호된 시련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인도 사람들은 아직도 정보기술, 무엇보다도 소프트웨어 산업에 절대적인 희망을 걸고 있다. 시장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고 값싼 인건비의 우수한 인력은 얼마든지 넘쳐난다. 어떤 나라도 이쪽 분야에서 인도만큼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인도를 오랜 체념과 무기력에서 깨우고 계급과 계층을 아래서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운명에 맞서는 힘, 인디안 드림이 몰고 온 변화는 느리지만 분명하다. 중국만큼 폭발적이지 않지만 우리는 인도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정환 기자 jlee@dot21.co.kr


그래프, 막대그래프로 해주세요.
인도 소프트웨어 산업 매출 현황(단위 : 백만달러)
/내수/수출
1995년/350/485
1996년/490/734
1997년/670/1083
1998년/950/1750
1999년/1250/2650
2000년/1700/4000

기획안
1회.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 -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대충 훑어볼 겁니다. 이삼성인디아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인도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2회. 인도의 경쟁력 - 나스닥에 상장한 대표적 기업 인포시스와 잔사, 인도소프트웨어산업협회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3회. 인도의 한계와 과제 - 오늘날 인도를 만든 교육 산업의 경쟁력과 비결을 엿보고 새로운 움직임을 살펴봅니다. 막 첫걸음을 시작하고 있는 벤처캐피털 이야기도 여기서 할 겁니다. 성장성 뿐만 아니라 한계와 과제를 짚고 넘어갈 계획입니다.

(이 기사를 쓸 때까지만 해도 포항제철이 공식 명칭이었다. 포스코로 이름이 바뀐 것은 2002년부터다.)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포항제철 TV 광고 가운데 ‘소리없이’라는 말이 유독 눈에 띈다. 세상을 움직여 왔다는 자부심과 함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한 굴뚝 기업의 소외감이 묻어난다. 세상을 움직여 왔는데 왜 알아주지 않느냐는 불만이 담겨 있는 것도 같다.

“포항제철은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끌어왔다. 포항제 철이 없었으면 자동차 회사나 조선 회사나 외국에서 값비싼 철강 재료들을 수입해다 써야 했을 것이고 지금 같은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펄펄 끓는 용광로 앞에서 만난 직원들도 이렇게 ‘세상을 움직이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한때 포항에서 포항제철에 다닌다는 건 대단한 자랑거리였다. 작업복 차림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건 물론이고 작업복을 맡겨 놓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직원들 사이에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주역,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넘쳐났다. 포항제철 직원들은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혔다. 그러나 지금 포항제철의 위상은 옛날과 크게 다르다. 한수 접고 내려보던 인천제철이 지금은 더 많은 월급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힘들고 위험한 굴뚝산업이라는 인식까지 겹치면서 포항제철에 다닌다는 게 더이상 큰 자랑거리가 아니게 됐다. 이제 거리에서는 포항제철의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들 ‘소리없이’ 묵묵히 일할 뿐이다.

회사 밖을 보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자부심이 무색하게 크고 작은 철강회사들과 아웅다웅 밥그릇 다툼을 하는 처지다. 지난 몇년 동안 이어왔던 성장세가 올해 들어 크게 꺾이고 있다. 4조 3교대로 모든 설비를 100% 가까이 돌리고 있지만 매출액과 순이익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쟁쟁한 철강회사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가까운 일본만해도 손해를 보면서 팔고 있는 철강회사들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에서 만든 싸구려 철강재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포항제철의 몫까지 넘보고 있다. 이래 저래 포항제철은 지금 성장성의 한계를 맞고 있다.

포항제철의 상반기 실적은 이러한 위기를 그대로 드러낸다. 생산량은 1400만톤으로 지난해보다 30톤 가량 늘어났지만 매출액은 5조5790억원으로 2840억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영업이익도 7350억원으로 3200억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지난 7월25일 상반기 경영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유상부 회장은 “철강업계 사상 초유의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탓에 전망이 빗나갔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포항제철은 지난 4월에 이어 또 한차례 올해 실적 전망을 크게 낮춰 잡았다. 포항제철의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1조2천억원과 1조5760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지난해보다 각각 4.2%와 24.9%가 줄어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지만 지금 같아서는 이런 전망도 불확실하기만 하다. 포항제철의 위기는 자못 심각해 보인다.

철강 산업은 이미 지난 1990년부터 포화상태를 넘어섰다. 지난해 전세계 철강회사에서 만들어낸 철강제품은 모두 8억4400만톤. 수요가 주춤한 가운데 공급이 넘쳐나면서 1억8500만톤 가량의 설비가 남아돌고 있다. 공장 열개 가운데 두개가 놀고 있다는 이야기다. 포항제 철의 주력상품인 열연강판과 냉연강판의 수출 가격은 지난 2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1990년만 해도 1톤에 405달러를 받았던 열연강판은 올해들어 절반에도 못미치는 193달러까지 떨어졌다. 냉연강판 가격도 565달러에서 296달러까지 내려갔다. 유 회장은 “제조원가는 밝힐 수 없지만 포항제철은 아직 이윤을 남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 철강산업 전문 연구기관인 WS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포항제철의 냉연강판 제조 원가는 톤당 315달러로 추산된다. 미국이나 일본 업체들보다 100달러 이상 낮다고는 하지만 역시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수지 타산을 맞추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좀처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기 회복도 불투명하고 무엇보다도 공급 과잉 문제가 뚜렷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6개 철강회사가 문을 닫았다. 베들레헴스틸 같이 한때 이름을 날렸던 철강회사도 1억달러 가까이 적자를 내고 주가가 반토막났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원료 가격까지 크게 뛰어올라 가뜩이나 어려운 철강업체들 목을 죄고 있다. 올해 들어 철광석은 4%, 석탄은 10% 이상 뛰어올랐다.

우리나라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지난 1996년만해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내는 냉연강판은 820만톤에 지나지 않았는데 설비투자가 부쩍 늘어나면서 지난해 1475만톤에 이르렀다. 포항제 철은 물론이고 현대하이스코나 동부제강 등이 잇따라 냉연강판을 만들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수요가 크게 따라주지 않았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냉연강판은 다해서 789만톤 밖에 안됐다. 나머지 686만톤을 외국에 팔아야 했다는 이야기인데 수출도 결코 쉽지 않았다. 손익분기점이라는 톤당 300달러는 이미 무너진지 오래고 미국은 한국 철강제품을 덤핑이라고 제소한데 이어 여차하면 긴급 수입 제한 조치까지 발동할 계획이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냉연강판의 재료가 되는 열연강판은 공급이 달려서 걱정이다. 냉연강판 공장만 서둘러 지었지 열연강판 공장을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업체들이 일본에서 열연강판을 수입해다 쓰는데 가격이 워낙 비싼 탓에 요즘 같으면 기껏 만들어도 남는 게 없다. 현대하이스코가 포항제철에게 열연강판을 공급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보조기사 참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철강업체들 사이에 전략적 제휴와 합병이 이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규모를 키워서 수익성을 높이고 대외 협상력을 갖추자는 전략인 셈이다. 유럽의 유시노스틸과 아베드스틸, 일본의 NKK제철과 가와자키제철이 서로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의 합병이 성사될 경우 생산량이 각각 4400만톤과 3400만톤으로 세계 1, 2위 규모가 된다. 합병은 철강업체 뿐만 아니라 철강 원료 업체나 수요 업체도 마찬가지다. 철광석 업계에서는 이미 상위 3개 업체가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자동차 업계에서도 상위 6개 업체가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면서 시장지배력이 없는 영세한 업체들은 명함도 내밀기 어렵게 됐다. 포항제철도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제휴를 모색하는 등 대안을 찾고 있지만 이래저래 힘겨운 도전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철강업체들 사이에서는 감산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조금씩 생산량을 줄여 가격을 하락을 막아보자는 논리다. 그러나 다들 앞으로는 감산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뒤로는 생산량을 늘리는데 바쁘다. 많은 제조업이 그렇듯이 철강산업도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제조원가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감산을 통해 당장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할만한 업체는 없다. 뾰족한 대책 없이 철강산업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유 회장은 “철강산업은 이제 성장기에서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옛날처럼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어려운 계절을 지내고 나면 수많은 철강업체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깔릴지도 모른다. 포항제철의 딜레마는 생산량을 늘려도 오히려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 그나마 이제는 생산량도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머지 않아 만들어도 팔 데가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포항제철의 고민은 깊고도 깊다.

많은 굴뚝기업들처럼 포항제철은 지금 성장성의 한계라는 벽에 부딪히고 있다. 성장성의 한계를 넘는 해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사업 다각화로 매출 기반을 확대하는 것, 다른 하나는 업무 혁신으로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다.

유 회장이 여러차례 밝혔듯이 포항제 철이 잡고 있는 사업 다각화의 두 방향은 에너지와 정보통신이다. 그러나 에너지 사업을 추진해왔던 자회사 포스에너지는 제대로 일을 벌여보지도 못한채 최근 문을 닫았고 통신 쪽으로는 SK텔레콤과 IMT-2000 사업 말고는 더이상 신규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최근에는 생명공학 쪽이나 환경 쪽으로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짙은 안개 속이다. 무분별하게 신규 사업을 벌였다가 낭패를 본 외국의 철강업체들 짝이 나지 않을까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유 회장은 무엇보다도 업무 혁신 쪽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업무 구조를 뜯어 고쳐 제조원가를 낮추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빠르고 정확한 생산 체계를 갖춰 다른 철강업체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신규 사업은 신규 사업대로 가져가지만 승부는 주력사업인 철강 쪽에서 보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마침 지난 2년반 동안 1950억원을 쏟아 부어 만든 업무 혁신 프로젝트가 지난 7월2일 첫선을 보였다. 4조7천억원 이상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결국 포항제철의 미래는 신규 사업과 업무 혁신, 이 두가지 축에 달려 있다.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여왔던 굴뚝기업 포항제철이 다시 한번 성장성에 날개를 달 수 있을까 주목된다.

이정환 기자 jlee@economy21.co.kr


보조박스

제목 : “25년 노하우 그냥 넘겨줄수 없다”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유상부 회장의 단호한 목소리로 보아 포항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분쟁은 더이상 절충점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분쟁은 지난 1월 현대자동차가 자동차용 냉연 강판을 직접 만들겠다고 나서면서 불거졌다. 그동안 포항제철에서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구입해왔던 현대자동차가 포항제철과 거래를 끊고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와 손을 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제는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만드는데 필요한 열연코일을 만드는 회사가 우리나라에서는 포항제철 밖에 없다는 데서 비롯한다. 현대하이스코가 열연코일을 팔라고 했을 때 포항제철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한해 100만톤 가까이 냉연강판을 사갔던 현대자동차가 갑자기 등을 돌린데다 직접 냉연강판을 만들테니 원료만 팔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코카콜라를 직접 만들테니 원액을 팔라고 하는 것과 같다. 25년 동안 개발해온 노하우를 어떻게 송두리째 넘겨줄 수 있겠는가.” 포항제철 최광웅 전무의 이야기다. 포항제철 사람들은 분쟁이란 말 자체가 기분 나쁘다는 투다. 한해 2840만톤을 만드는 포항제철과 180만톤을 만드는 현대하이스코가 경쟁이나 되겠느냐는 이야기다.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포항제철 밖에 없다는 자부심도 깔려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판결이 불리하게 나온다면 포항제철은 울며 겨자먹기로 현대하이스코에 열연코일을 팔아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포항제철은 그동안 현대하이스코가 사주었던 냉연코일을 팔 다른 수요처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는 것이다.
포항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문제는 설비 과잉에서 비롯한다. 원료가 되는 열연코일 설비도 갖추지 않은채 무분별하게 냉연강판 공장만 늘려지은 탓이다. 1995년만해도 우리나라 냉연강판 공장은 944만톤 정도 생산할 수 있었는데 지난해까지 1372만톤으로 45% 가량 부쩍 늘어났다. 냉연공장이 늘어나면서 값비싼 열연코일 수입은 1998년 80만톤에서 2000년에는 440만톤까지 늘어났다. 그 결과 이제는 기껏 만들어놓고도 팔 데가 없는 상황이 됐다. 한해 200만톤 이상이 남아돈다. 규모는 부쩍 늘어났지만 별반 이익은 없는 답답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냉연강판 공장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정환 기자 jlee@economy21.co.kr


포항제철의 아슬아슬한 사업다각화.

“당사의 대우자동차 인수설은 사실무근임을 알려드립니다.” 지난달 25일 증권거래소의 공시요구가 나오자 마자 포항제철이 서둘러 내보낸 공시다. 이미 여러차례 나왔던 이야기가 다시 흘러나온 것은 이틀 전인 23일,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가 포항제철의 대우자동차 인수가 유력하다는 기사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기사의 요지는 GM의 대우자동차 인수에 포항제철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박태준 명예회장이 깊이 관련돼 있다는 이야기였다. 포항제철은 이 모든 가능성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왜 가만있는 회사를 건드리느냐는듯 짜증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포항제철의 사업 다각화는 이처럼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다. 여기 저기 찔러보는 가운데 근거 없는 소문들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속시원한 밑그림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유상부 회장도 지난달 25일 상반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에너지와 정보통신 쪽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을뿐 구체적인 전략을 밝히지는 않았다. 말꼬리를 흐리는 모양으로 보아 아직은 가능성을 암중모색하고 있는 단계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엄청난 돈을 싸짊어지고 있으면서도 쓸 데가 마땅치 않은 형편이다. 무분별하게 사업을 벌였다가 쓴맛을 보고 물러난 외국 철강업체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신중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에너지 사업 쪽 가능성을 타진해왔던 포스에너지는 지난달 결국 문을 닫았다. 포스에너지는 원래 광양지역에 석탄 화력 발전소를 지을 계획이었으나 환경 오염을 우려한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을 접어야 했다. 석탄발전소 건설이 어려워지면서 한국전력과 맺은 전력 수급계약도 해지됐다. 대안으로 내세웠던 액화천연가스 발전소도 2005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포스에너지는 사업역량을 완전히 잃게 된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포항제철은 포스에너지의 자본금을 450억원으로 늘리고 한국전력의 자회사를 인수하겠다고 밝히는 등 본격적으로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계획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포항제철 최광웅 전무는 포스에너지는 접었지만 에너지 사업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이미 포항제 철은 2396MW에 이르는 18기의 발전설비를 자체 보유하고 있다. 양쪽 제철소에서 필요한 전기 보다 훨씬 많은 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셈이다.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정보통신 쪽도 아직 뚜렷한 밑그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유 회장은 통신 쪽에는 더이상 추가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SK텔레콤에 6.5%, SK-IMT 2000에 12% 지분 참여한 것만으로 충분하다. 경영권을 장악하거나 주도권을 행사할 계획은 없다.” 파워콤을 인수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무 과열 경쟁으로 치닫고 있어 조금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동기식 IMT-2000 컨소시엄이나 한국통신 인수에도 참여하지 않을 계획이다.

최근에는 생명공학 쪽으로도 눈길을 돌리고 있다. 포항제철은 포항공대 안에 자리잡은 생명공학연구센터에 모두 1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생명공학연구센터에는 450명의 연구인력이 모여 감염 유전자 백신이나 유전자 칩을 개발하는 등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포항제철은 생명공학연구센터를 지원하기 위해 따로 신사업추진팀을 만들었다. 생명공학연구센터의 기술력과 포항제철의 사업추진능력을 활용해 시너지 효과를 낳자는 전략인 셈이다. 연구 성과물이 사업화에 성공하면 포항제철과 생명공학연구센터, 개발자가 각각 일정비율로 수익을 나누어 갖게 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포항공대 환경공학부와도 업무제휴를 맺고 있다. 포항제철은 환경부문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에 앞으로 5년 동안 3조원 이상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과 손잡고 개발하고 있는 새로운 철강 제조 기법은 이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파이넥스라고 불리는 이 기법은 값이 싼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일반 유연탄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생산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설비 투자비도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파이넥스 기법을 성공적으로 개발할 경우 전세계 철강업계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술 및 설비 수출로 새로운 수익을 낳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대기업 출자제한 조치다. 2002년 3월까지 포항제 철은 8천억원 규모의 투자자산을 줄여야 한다. 자회사 지분을 줄이거나 자사주를 매각하는 등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래저래 어려움이 많다. 이 문제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이상 신규사업 진출은 크게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6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포항제철의 사업 다각화를 곱지 않는 눈길로 바라본다. 이들은 무리하게 사업 다각화를 벌이기 보다는 철강 쪽에 사업역량을 집중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철강산업은 이미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사양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성장성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질문에 유 회장은 “성장성이 유망한 신규사업을 발굴해 중점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움직임은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럽기만 하다. 철강산업에서 쌓아올린 기술력과 막대한 자본을 풀어놓을 데가 생각만큼 찾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정환 기자 jlee@economy21.co.kr


일본 철강업체들의 교훈.

일본의 철강업체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사업 다각화에 발벗고 나섰다. 에너지나 환경, 엔지니어링 등 관련 사업은 물론이고 반도체나 PC, SI(시스템 통합) 등 새로운 사업도 이것 저것 벌렸다. 이제와서 결과를 놓고 보면 수직적 사업 다각화는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수평적 다각화는 거의 실패했다. 포항제철이 참고할만한 몇가지 교훈이 있다.

첫째, 그동안 쌓아왔던 기술을 충분히 활용해라. 신일본제철과 가와사키제철의 SI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생산관리에서 축적된 운영체제 기술을 그대로 이어받은 신일본제철정보통신은 일본에서 가장 뛰어난 금융시스템을 만드는 회사가 됐다. 한해 매출만 1200억엔에 이른다. 내년에 동경 증권거래소에 상장할 계획이다.

둘째, 첨단기술에 도전하지 마라. 상대적으로 의사결정이 느리고 기술발전 속도가 느린 철강산업의 특성상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신일본제철의 반도체 사업이나 PC 사업의 실패가 그 사례다.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다가 98년과 94년에 사업을 접었다.

셋째, 가망없는 경쟁을 피해라. 가와사키제철은 1985년 대만의 UMC그룹과 손을 잡고 주문형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생산을 모두 UMC그룹에 위탁해 대규모 설비 투자와 자금 부담을 벗고 가망 없는 경쟁을 피할 수 있었다. 독자적인 시장을 개척해 지금은 일본의 10대 주문형반도체 회사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포항제철이 파워콤 인수를 포기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과당경쟁을 이겨낼 뾰족한 묘안이 없는 이상 통신사업자로서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무분별한 사업 다각화를 벌였다가는 일본 철강업체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정환 기자 jlee@economy21.co.kr

참고 : 포항제철, 4조7천억원의 실험. (이정환닷컴)

(이 기사를 쓸 때까지만 해도 포항제철이 공식 명칭이었다. 포스코로 이름이 바뀐 것은 2002년부터다.)

회의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넘쳐 흘렀다. 비디오에서는 어제 저녁 TV 뉴스의 카메라 고발 녹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다. 카메라는 프로판 가스 용기 제조 공장을 비추고 있다. 기자가 망치를 들고 가스 용기를 몇번 두들기니 어처구니 없게도 쩍하고 쪼개진다. 다른 가스 용기들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가스 용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뭔가 잘못됐나 보다. 기자는 미리 밝혀졌기 망정이지 만약 가스가 담겨져 그대로 팔려 나갔으면 어쩔뻔 했느냐고 반문했다. 자칫 엄청난 참사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던 섬짓한 사건이었다. 이 회사에 냉연강판을 팔았던 포항제철로서는 생각만해도 가슴 철렁한 일이었다.

다들 유상부 회장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잠깐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흐르고 유 회장이 입을 열었다. “훌륭하군, 훌륭해.” 유 회장은 뜻밖에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부터 이 비디오 테잎은 수백개씩 복사돼서 공장과 사무실 곳곳에서 틀어졌다. 변화를 찾기 앞서 먼저 포항제철의 한계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게 유 회장의 생각이었다. “봐라.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철을 만들어 낸다는 포항제철에서도 곳곳에서 비효율성이 넘쳐나고 있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뜯어고치지 않으면 언젠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도 저렇게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날이 올 것이다.”

회의 때 못 다한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많은 야학들이 아직 검정고시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청솔야학이 말하는 것처럼 과연 교육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게 야학의 목적일까요. 야학의 목적이야 아무렇든 상관 없는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적이 명확하고 그에 따르는 개념들이 정확하게 정리돼야만 방향이 제대로 설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찬숙이 누나도 그렇고 다른 야학 사람들도 그렇고 어쩌다 만나면 '성광야학은 다시 검정고시만 하기로 했다면서요?'하고 묻습니다. 검정고시를 하지 않겠다고 한참 떠들더니 결국 포기하고 검정고시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 타협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패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저는 우리 야학이 이런 문제에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어느 정도 다들 동의하고 있다고 봅니다.

간단히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수업이라는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는 건 검정고시 교육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난 98년의 실험을 치르면서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검정고시만 가르치겠다는 건 아니고 검정고시를 넘어서려면 검정고시 교육부터 제대로 마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깐 옆길로 샙니다. ^^ 김용옥 선생님이 언젠가 하신 말씀인데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말의 공부(工夫)를 중국에서는 '쿵푸'라고 읽습니다. 말의 뿌리를 알면 재미있습니다. '쿵푸'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중국 무술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에서 '쿵푸'는 실력을 쌓아 자신을 키워나간다는 의미로 널리 쓰입니다. 무술 '쿵푸'는 거기서 갈라져 나온 말이죠.

우습게도 공부(study)를 뜻하는 말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다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공부를 '勉强'이라고 쓰고 '벵쿄스루'라고 읽습니다. '勉强', 우리말로 면강은 뭔가 억지로 시키거나 한다는 의미죠. 중국에서는 공부를 '念書'라고 쓰고 '니엔수'라고 읽습니다. '念書', 우리 말로 염서는 말 그대로 책을 생각한다는 의미죠.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공부의 말 뿌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옛 할아버지들의 공부론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공부가 '勉强'도 아니고 '念書'도 아닌 '공부'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겠죠. 우리나라의 '공부'는 억지로 시키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멍하니 앉아 책의 내용을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공부는 실력을 쌓아 자신을 키워 나가는 거지요.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나가는 거지요. 쿵푸와 비슷합니다.


태권도와 비슷하겠지만 쿵푸도 기본 자세를 건너뛰고 기왓장 깨기를 먼저 배울 수는 없을 겁니다. 오랜 시간을 걸려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나가면서 실력을 쌓아나가야 하겠지요. 우리는 혹시 기본 자세를 빼놓고 기왓장 깨기를 먼저 가르치려고 하는 건 아닐까요. 검정고시와 어설프게 타협하고 있으면서 검정고시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하는 여러 과정들을 건너 뛰고 있지는 않나요. 여러가지를 함께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다시 검정고시로 돌아온 건 이런 아픈 깨달음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수업 시간에 가르칠 수 있는 건 국어나 영어나 수학이나 과학, 사회, 윤리 따위 우리가 오랜 시간 배웠던 것들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기왓장 깨기를 가르칠 능력도 자격도 안됩니다.

그래서 성광야학은 수업과 세미나를 나누고 있습니다. 수업이 지배이데올로기의 학습이라면 세미나는 대안이데올로기의 학습입니다. 수업은 칠판 앞에서 이루어지지만 세미나는 원탁에서 이루어집니다. 수업에서 강학은 가끔 강압적으로 외우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세미나에서 강학의 목소리는 다른 강학들이나 학강들과 동등합니다. 수업에서는 한쪽 방향으로만 가르침이 흐르지만 세미나에서는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얽히고 설키게 됩니다.

우리는 수업에 담아낼 수 있는 게 있고 담아낼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던 겁니다. 강학의 역량이 부족한 탓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수업에서 담아낼 수 없는 어떤 종류의 배움과 가르침을 공동학습으로 담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업과 세미나는 그렇게 상호 보완적입니다. 세미나는 수업의 발전된 단계이기도 하고 수업에서 못다한 목소리들이 오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들 느끼고 있는 바겠지만 공동학습(세미나)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학강들을 억지로 세미나에 앉혀놓아봤자 지금은 서로 소통하지 못합니다. 소통의 방법도 문제지만 많은 부분 개념의 차이에서 비롯합니다. 그런 개념의 차이는 수업을 통해 넘어설 수 있습니다. 검정고시 수업도 충분합니다.

학강들과 함께 하는 세미나를 만들기 앞서 우리는 수업에서 학강들에게 생각하는 힘과 자신감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검정고시 교과과정은 입시 중심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담고 있지만 대체로 이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 혹은 가장 보편적인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강들은 그것들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고 능숙하게 이차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동사의 수동태를 이해해야 합니다.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점령한 나라의 순서를 외워야 하고 그걸 중심으로 그때 역사를 다시 구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해가 앞서야 하겠지만 가끔은 공식을 외워서 물체의 낙하속도와 낙학 시간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글과 문장에 익숙해져야 하겠지만 자음동화와 구개음화 따위도 가끔은 외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공부들이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과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밟아야 할 과정이라고 봅니다. 단계를 건너뛰고 해답만을 던져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우리는 수업을 철저하게 효율적인 방향으로 끌고 나가려고 합니다. 그 가운데 강학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겠지만 우선은 가능하면 빨리 고등학교 졸업생 수준의 '지식'을 쌓는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지식을 쌓는다는 건 개념들을 이해하고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과정을 익힌다는 걸 의미합니다. 언뜻 무의미해 보이는 지식들이 꾸준히 쌓여 생각하는 힘과 자신감을 만들어 줄 겁니다.

많은 야학들이 검정고시를 부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검정고시를 버리지 못하고 있지요. 우리는 검정고시를 버릴 수 없다면 검정고시를 적절히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 가운데 검정고시는 최선은 아니지만 적절한 학습의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검정고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으면 검정고시에 휘둘리지 않고 두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업을 통해 담아내고 싶은 것들을 담아내는 것과 학강들에게 검정고시 합격증을 주는 것 두가지 말입니다. 어차피 검정고시 교육이 필요하다면 그걸 잘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검정고시와 어설프게 타협하지 말고 검정고시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미나에 대한 생각은 옛날 글을 그냥 옮겨오는 걸로 대신하겠습니다. 어제 회의 때 상균이가 쪽지로 물어보던데 우리 야학의 목표라면 저는 '학습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사회 변화'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수업과 세미나는 그 과정입니다. 수업과 세미나가 자리 잡혀 가면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들을 찾아나갈 계획입니다. 조급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멀고 아득해 보이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동안의 세미나는 왜 실패했을까요.

학강들과 강학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세미나를 살펴봅시다. 학강들과 강학들은 언어가 달랐습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문제인식은 같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부딪혀보니 그렇지 못했습니다. 누가 지적한 것처럼 야학의 학강들 가운데는 신문조차도 읽지 않는 분들이 많지요. 학강들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쉽게 다가갈수 있는 주제를 골랐는데도 학강들은 머뭇거렸고 작은 모임 가운데서도 이내 소외되곤 하셨지요.

공부라는 건 크고 작은 개념들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개념들이 모여서 한사람의 가치관을 만들게 되는 거겠죠. 우리가 중고등학교를 지나오면서 10여년동안 배워왔던 많은 개념들을 우리 학강들은 불과 1년만에 배우려고 합니다. 검정고시를 통과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단정짓기 어렵지만 그만큼 사고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현실을 비판하고 재해석하기보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익숙하게 됩니다. 어쩌면 사회는 밑바닥 민중의 그런 맹목성을 딛고 서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그렇게 다수의 희생에 뿌리를 박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야학운동은 배움을 통해 민중의 힘으로 변화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스스로 극복하지 않으면 소외는 계속 되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을 넘어서려면 우선 현실을 정확히 알아야 하겠죠. 현실을 정확히 알려면 이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이루고 있는 개념들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겠죠.
제가 국어수업의 중요성을 매번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의 국어수업은 그런 무거운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을까요.
여러가지로 새로운 학습 방법을 찾아보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결국 많은 텍스트를 읽고 해석해보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년은 너무 짧지요. 국어만 놓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야학의 많은 수업들이 텍스트 해석을 큰 축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훈련이 결국 사회라는 큰 텍스트를 이해하는 틀을 만들어줄 테니까요.
검정고시 수업은 너무 가볍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검정고시 수업에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합니다. 무척이나 어려워 보이지만 딱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굳이 해답을 검정고시 바깥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자칫 가볍게 흐르기 쉬운 수업 가운데 크고 작은 개념들을 꾸준히 쌓아나가야 합니다. 어떻게든 한 번에 해답에 다다를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다시 세미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결국 서로의 언어가 다르다면 동등한 입장으로 함께 세미나를 끌고 나갈 수 없습니다. 샘터야학의 세미나처럼 또 하나의 수업이 되고 말겠지요. 샘터야학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제는 그런 수업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 토크쇼의 진행자처럼 능수능란하게 회의를 끌고 나갈 자신도 없고 전지전능한 하느님처럼 그럴듯한 결론을 내려줄 자신도 없습니다. 학강들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세미나라면 영원히 그 높이를 벗어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가장 이상적인 건 일정 과정의 수업을 마치고 나면 세미나에서 강학들과 어느정도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만큼 인식의 폭이 넓어지는 거죠. 결국 수업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수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학강들과의 세미나는 계속해서 겉돌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학들끼리 모여서 세미나를 꾸리기로 했습니다. 학강들과 함께 하려고 했던 세미나가 실패하기도 했고 우선은 강학들부터 서로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강학들이 먼저 공동학습의 틀을 다져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 세미나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강학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접근 방법도 피상적이고 가벼웠습니다. 사례에 접근하지 못하고 원론에만 머물렀지요. 병수가 지적한 것처럼 매력적인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일 겁니다. 너무 큰 주제였을지도 모릅니다.

올해 세미나 계획을 잡을 때가 됐습니다. 올해도 벌써 석달이나 지나버렸지요.
우리는 '일년이 지나도 달라진게 없다'는 병수의 지적을 새겨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년에 성광야학은 어떤 모습일까요. 10년 뒤의 성광야학은 어떤 모습일까요. 지난해 우리가 제자리 걸음을 했다면 그것은 세미나의 부진과 관련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지난해에는 열번도 채우지 못했지요. 논의는 쌓이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부스러져 버렸지요. 대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러한 논의들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야학은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다시 세미나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언젠가 동훈이는 학강들과 지역신문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야학을 맘놓고 떠날 수 있다고 말했지요. 그렇게까지 되려면 수업이 그만큼 알차야 하고 논의가 활성화 돼야 하겠지요. 수박 겉핥기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현실에 참여하고 현실을 바꾸어 나가야 하겠지요. 세미나에서 우리는 야학과 수업의 이론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대안을 찾아가는 공동학습의 실험은 세미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우리나라 민중은 혁명을 이루어본 경험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던데요. 야학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성취의 경험들이 쌓이면 그때는 자신감이 생기겠지요. 더 이야기해봐야겠지만 올해 세미나는 보다 현실적인 주제를 잡을까 합니다. 생활에 뿌리를 두고 구체적인 해답을 찾아나갈 수 있는 세미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 강학들과 학강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방향을 잡겠습니다. 다음주에나 세미나 준비모임을 한번 갖겠습니다.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의정부 백병원 신경외과 의사인 정경훈(37)씨는 미국에서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정씨가 1천원에 200계약 사들인 60.0 풋옵션은 다음날 50만4천원까지 뛰어올랐다. 그대로 들고 있었으면 무려 504배의 수익을 올렸겠지만 지레 겁을 먹은 정씨는 일찌감치 17만원 언저리에서 팔아치우고 빠져나왔다. 그래도 무려 170배에 이르는 수익이 났다. 단돈 20만원으로 3400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까무라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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