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래 농락하는 조중동의 뻔뻔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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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2년만 지나면 정규직 된다."

8년 전인 2006년 12월1일 동아일보 1면 머리 기사 제목이다. 기간제 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비정규직법이 통과된 다음날 기사였다. 이때만 해도 민주노총 등은 비정규직법이 노동자들을 2년 쓰고 버리는 법이 될 거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동아일보는 "545만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법의 보호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비정규직법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합작품이었다. 민주노동당이 단상을 점거하면서 거세게 반발했지만 임채정 국회의장이 끝내 직권상정을 강행해 표결 처리했다. 중앙일보는 "계약직 2년 넘기면 정규직 채용 의무화"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비정규직으로 2년 동안 실컷 쓰다 버리라는 법을 이 신문들은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인 것처럼, 2년 뒤에 모두 정규직이 되는 것처럼 포장했다.

비정규직법은 이듬해 7월1일부터 시행됐고 우려했던 것처럼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이 반으로 깎인다거나 심지어 오전에 희망퇴직으로 나갔다가 오후에 비정규직으로 다시 입사해 같은 일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 2년이라는 제한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기업들이 일단 비용을 줄이고 2년 뒤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숙련된 노동자들을 2년마다 해고하고 새로 뽑기에는 기업 입장에서도 번거롭고 비용도 더 든다. 실제로 비정규직법 시행 2년째인 2009년이 되자 이 신문들은 2년 제한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기업들은 100만 해고 대란설을 흘리기 시작했다.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던 약속은 뒷전이고 해고 당하기 싫으면 비정규직으로 더 일하라는 전형적인 '악어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해고 대란은 없었다. 비정규직법 시행 3년째인 2010년 7월,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사용기간 2년이 지난 기간제 노동자 가운데 정규직 전환은 16.9% 밖에 안 됐지만 해고된 비율도 16.2%에 그쳤다. 나머지 66.9%는 정규직 전환이 안 된 상태에서 계속 비정규직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하지만 기업들은 법을 무시했고 정부도 제대로 단속을 하지 않았다.

기간 연장은 자본과 보수 언론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2009년 7월, 비정규직법 개정에 실패하자 중앙일보는 "법 못 고쳐 비정규직 일자리 잃는다"고 정치권을 비난했고 한국일보도 "비정규직 피마르건 말건... 밤새 네탓 공방에 협상 제자리", "무능 넘어 구제불능 국회"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정규직 중심 양대 노총 자기희생은 안 하고 대안없는 비판만 (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5년 뒤 다시 비정규직 개정이 또 쟁점으로 떠올랐다. 22일 정부가 확정한 비정규직법 개정안에 따르면 35세 이상 계약직 근로자가 본인이 원할 경우 최장 4년까지 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2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데 그걸 합법적으로 4년으로 늘린다는 이야기다. 말이 본인이 원할 경우지 원하지 않으면 잘리는 수밖에 없다.

언론의 거짓말은 모두 기록으로 남아있다. 처음 이 법을 도입할 때는 2년만 비정규직으로 살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고 했다가 2년이 다 돼 가자 기간을 늘리지 않으면 모두 해고될 거라며 엄살을 떨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뒤에도 그대로 해고하지 않고 그대로 채용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정규직 전환이 안 된 채 비정규직으로 남아있는 '무늬만 정규직'이라는 기묘한 말장난을 시작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적당히 쓰다가 버리는 일회용품 취급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 기업은 2년이 지나도 이들을 해고하지 못한다. 애초에 기간제에 적당한 업무가 아니라 단순히 기간제라는 핑계로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기간제 비정규직 고용을 남발하고 있다. 자본과 보수 언론이 2년 기간 제한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싸게 오래 부려먹고 언제든 해고하고 싶기 때문이다.

"2년 만에 해고된다"는 것도 "2년을 4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오래된 거짓말이다. 실제로 상당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년만에 해고되는 게 현실이지만 상당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변칙적인 형태로 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남아있다. 핵심은 2년 이상 고용할 정도로 상시적인 업무라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차별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하는 언론이 거의 없다.

일부 언론에서 이 법을 드라마 '미생'에 빗대어 '장그래법'이라고 부르자 "2년 단그래에서 4년 장그래로 바뀐 것 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원인터내셔널에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한 장그래는 2년 계약이 끝나자 실직자가 된다. "장그래가 뒷목 잡고 쓰러질 법"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죽을 만큼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느냐"는 드라마 대사에 빗대어 "죽을 만큼 2년 더 일하게 해 준다"는 비판도 나온다.

청년유니온은 "장그래법은 '희망고문'을 연장하는 법"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는데 그나마 35세 이상이 대상이라 20대 대졸 신입 사원인 장그래는 대상도 안 된다. "본인이 원할 경우"라는 표현도 기만적이다. 잘릴 것인지 2년이라도 더 다닐 것인지를 묻는데 잘리는 걸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YTN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장그래법이 아니라 안그래법"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진정으로 이 땅의 수많은 장그래를 위한다면 애초에 2년 기간 제한이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2년이라도 일할 수 있게 해주니 좋은 거라고? 4년으로 늘려주면 더 좋은 거 아니냐고? 핵심은 2년이든 4년이든 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비정규직을 쓸 이유가 없는 업무에 비정규직을 채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엄격하게 적용하는 게 비정규직 보호의 핵심이 돼야 한다.

비정규직법은 자본과 보수 언론이 합작한 대국민 사기극이다. 2년만 참으라더니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불법을 수수방관하더니 이제는 4년만 참으면 된다고 말한다. 분명한 건 2년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처럼 4년을 참고 기다려도 달라질 건 없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법의 취지는 온데 간데 없다. 조중동 기자들은 장그래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난 8년 동안 당신네가 쓴 기사들을 다시 들춰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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