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슬픔과 기쁨 : 사람으로 다시 읽는 쌍용차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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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읽기 힘들다. 그래도 무거운 의무감에 끝까지 또박또박 마저 읽고 이 글을 쓴다. 이 책을 읽는 게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통과의례가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은 쌍용자동차 파업을 사건으로 접근하지 않고 그 사건을 구성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수많은 뉴스들이 쏟아졌지만 그 뉴스들 사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질문을 끌어낸다. 이 책을 읽어야 우리는 비로소 2009년 5월 평택을 이해할 수 있다.

몇 달 전 정혜윤 PD를 만났을 때 이 책 이야기를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 같은 글이 되겠네요?"라고 물었더니 "아, 맞아, 그거야" 그러더라. '언더그라운드'는 하루키 책 가운데 가장 재미없고 아마도 가장 안 팔렸을 책이지만 사실 나는 언젠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사건의 실체. 쌍용차 노동자 26명을 인터뷰해서 만든 이 책, '그의 슬픔과 기쁨'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유제선의 이야기다. "분노나 모멸감이나 무력감이 주된 동기였을 때는 목적의식을 갖고 싸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분노나 무력감이 동기가 아니니까 목적의식도 오히려 흐릿해요. 내일도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 매일 물어요. 쌍용차 돌아가면 뭐할 건데. 갈등이 많고 목적이 불분명해졌어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돼요."

유제선은 쌍용차 비정규직이었다가 해고됐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비정규직들이 가장 먼저 쫓겨났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상식은 가진 자에 의해서 언제든지 바뀐다는 것을 확인했는데도 만날 노동만 하고 술이나 한잔 하고 연애나 하고 그냥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암만 해도 안 될 것 같고 저는 평생 이렇게 싸우면서 살게 될까 두려워요. 그래야 한다면 그럴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평생 싸우는 사람이 되는 게 두렵습니다."

그러나 김상구의 이야기에서 이들이 겪고 있는 막막한 상황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이걸 왜 해? 이러다가 돌아서서는 내가 안 하면 누가 할 건데? 그런 생각이 들고....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감도 없어요.... 그 뒤로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부정당한 기분, 내가 인정 받았던 것이 다 소용 없어진 것, 내가 스스로에게 해준 칭찬들이 다 사라진 것 때문에 무기력하게 느껴져요."

이 책을 읽고 새삼스럽게 놀라웠던 것 가운데 하나는 정리해고 대상이 아닌 사람들도 상당수 파업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머리말에 끌어다 쓴 걸 보면 정혜윤도 아마 이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이를 테면 윤충렬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였다. 그런데도 파업에 참가했고 끝까지 이탈하지 않았다. "왜 형은 아니고 내가 대상자냐"고 묻는 후배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정혜윤은 그 이유가 궁금해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박호민과 염진영도 산 자였다. 그런 사람들이 200명 정도 됐다고 한다. 박호민은 심지어 어머니께 공장에서 나왔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공장에 남았다. 77일의 옥쇄 파업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지만 이들은 끝까지 남았고 결국 징계 해고가 됐다. 파업이 끝나고 3년7개월 만에 무급 휴직자들이 복귀한 뒤에도 이들은 복귀하지 못했다. 해고 무효 소송도 대법원까지 가서 결국 패소했다.

불의를 참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동료들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을까. 김정운은 "그냥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냥 견딘 거에요. 공장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가면 쪽팔리잖아요. 안 그래요? '우리 이길 수 있다', 이래놓고 나가면 스스로 용납이 되냐고요. 구속됐을 때 집에서 면회 오면 말했어요. '결국 해고될 거니까 나 혹시 해고 안 됐다고 해서 일말의 기대라도 하지 마라. 이미 나는 해고자다.'"

김성진은 구속됐다가 출소한 뒤 한동안 트럭 운전을 하다가 다시 투쟁에 합류했다. 어머니에게는 이제 김치 한 가지만 놓고 밥 먹고 살자고 말했다고 한다. "나 다시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누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일 정리하고 선도투에 합류했어요.... 어쩌면 맘이 불편해서 일을 스무 시간씩 했을지도 몰라요. 나만 돈 버는 게 미안해서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맘이 편해요. 길거리에서 자도 편해요."

77일의 옥쇄 파업이 끝나고 3년 7개월이 지나 무급 휴직자들은 회사로 복귀했지만 해고 노동자들은 아직도 길바닥에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윤충렬은 이렇게 말한다. "이걸 그만 두고 해고를 인정하고 다른 일을 찾아서 한다? 그럼 나는 돌아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하는 거에요." 유제선은 또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정말 그만둬야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그만두려고 하면 동지들 얼굴이 떠오르고 주저앉아요. 이런 갈등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어요."

김남오가 버티는 이유는 또 다르다. "저는 버텨서 투쟁하는 게 아니라 투쟁해서 버티는 거에요. 여기를 관두면 저는 외로워서 못 견뎠을 거에요. 여기서는 저를 놔주지 않아요. 나를 놔주지 못하죠. 제가 죽을까봐. 지금도 가끔 혼자 있으면 생각을 하죠. 죽을까.... 내 진짜 꿈은 5년 전으로 되돌려서 이 5년이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고 싶어요. 아무도 죽은 사람 없이 아무도 우는 사람 없이, 라인에서 일하다 소주 한 잔 하고 퇴근하고...."

고동민의 이야기는 이들의 투쟁이 단순히 5년 전 일자리를 되찾는 걸 넘어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우리가 기계처럼 여겨지는 그런 삶을 더 살고 싶지 않아요. 만약 어느 날 정말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다른 삶을 꿈꾸면서 살겠지만 오늘만 버티면 장땡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5년이 지났는데도 한 치의 변화도 없는 그런 공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살려고 했어요. 살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새로운 사람이고 싶어요. 지난 5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잊지 않는 새로운 사람이고 싶어요. 공장 복귀하면 5년 동안 내가 했던 이야기나 생각이나 행동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양 살고 싶지 않아요. 이 경험들이 내 평생을 관통하면서 살아 있으면 좋겠어요. 77일 파업이 5년 투쟁을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었다면 지금 보낸 5년이 내 삶을 이끌어갈 원동력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의 인터뷰이들 상당수가 가장 힘들었던 경험으로 동료들의 이탈을 꼽는다. 그리고 산 자들과 대립했던 경험을 꼽는다. "살면서 두 번 다시 그런 고통을 받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은 바로 배신감이었어요. 신뢰가 깨지는 것이 제일 마음 아팠어요....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 마음의 밑바닥을 보는 것이었어요. 왜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 정말로 고통스러웠어요." 이현준의 이야기다.

"어제까지 나랑 같이 일했던 사람인데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려서 한쪽은 '같이 살자'하고 한 쪽은 '내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하는 것도 고통스러웠고.... 산 자들도 오긴 했는데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고 미안한 거죠. 하지만 나중에는 서로 새총을 겨누게 됐어요. 회사가 '죽은 자 때문에 산 자들까지 다 죽을 것'이라는 소문을 낸 거죠. 그래서 산 자들이 '너희들 너무한 것 아니냐, 다 죽자는 이야기냐'고 묻게 된 거고요." 최기민의 이야기다.

한상균의 이야기도 놀랍다. "정말 묵묵히 일만 하고 가정만 지키려고 왔다 갔다 했던 친구들이 남았어요. 1000명 중에 이탈하는 사람들에도 순서가 있는데 일반 조합원이 아니라 방귀깨나 뀌었다던 활동가들이 더 빨리 빠져 나가요.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은 싸워서 될 게 아니라는 정세 판단을 하고 먼저 백기를 드는 거죠.... 평상시에는 도덕·염치·양심 이런 것들이 다 있어요. 그런 것들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많이 무너져 버려요."

"저는 희망을 확인하면서 끝내야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 희망은 소박합니다. 일상을 찾는 겁니다. 길바닥에서 농성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다 바친 공장에서 다시 공구 들고 땀 흘리며 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퇴근길이 있고 동료가 있고 이웃을 맘 편히 확인하고 자식의 아빠이자 노모의 아들로 최소한의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시간을 보충해 가는지 확인하는 것, 그것이 제 희망입니다."

"이 투쟁을 운동과 계급에 의해서 했던 사람은 그 생각 안 할 겁니다. 일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동지들, 썩어빠지게 일만 했던 동지들, 운동이 뭔지도 팔뚝질이 뭔지도 모르는 동지들이 남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어느새 '쌍차 투쟁이 이 나라 정리해고의 문제, 노동자들의 문제다', 이렇게 말할 정도가 됐어요. 그럼에도 (H-2000 프로젝트처럼) 또 만들고 싶다고 해요. 그것은 가슴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일상이 먼 곳의 풍경처럼 보인다"는 이갑호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지금도 놀러가긴 해요. 주말엔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들하고 어울려요. 그래도 뭔가 기분이 달라요. 놀고 있는 사람들 보면 부러워요. 저 사람들은 저게 일상이구나, 똑같이 노는데도 나는 그것이 특별한 일이고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나의 일상은 차라리 투쟁인 것 같아요. 고생한 사람들이 고생한만큼 남은 인생 동안 잘 풀렸으면 좋겠어요."

"저는 연대 오는 분들과 좀 거리를 뒀어요. 복직 돼도 갚을 자신도 없었고 그분들만큼 열심히 살 자신도 없었어요. 그런데 강정에서 앞 사람의 등판을 보고 걷다 보니 등판이 되는 것만으로도 또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염진영의 이야기다. 이창근도 등판을 이야기한다. "저는 사람들 등을 오래 본 거 같아요.... 그 빛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어요. 빛이 꺼지면 도망가겠지만 빛이 안 꺼져서 도망을 못 가요."

이 사람들은 왜 싸웠고 왜 아직도 싸우고 있을까. 무겁고 긴 이야기를 읽고 나서도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면서도 이미 싸우는 게 일상이 됐다. 소모적인 노동과 퇴근 후의 소주 한 잔, 나른한 주말 오후, 그리고 집에 가져갈 몇 백만원의 월급, 일상이란 게 얼마나 소중하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허물어지기 쉬운가. 그 일상이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투쟁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지난 2월 부당해고 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승소했다. 법원은 쌍용차가 정리해고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해 2009년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다행히 다시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딱히 쌍용차 노동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많은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잘려나가고 다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들 대부분은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한국 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가 살인이 아닌 사회는 해고가 없는 사회가 아니라 해고가 되더라도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지지 않는 사회다. 이런 세상에서는 누구나 살기 위해 공장을 점거하거나 크레인이나 송전탑에 오르는 수밖에 없지만 그걸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는 투쟁 못지않게 최소한의 기본소득과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투쟁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이들의 투쟁은 그래서 언뜻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까치도 둥지를 틀지 않는다는 고압 송전탑에 올랐을 때 복기성과 문기주와 한상균은 서로를 감시했다. 언제라도 울컥하고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극한의 절망 가운데서도 이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게 의지일 수도 희망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의 슬픔과 기쁨 /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펴냄 /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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