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크기 안테나 수천만개, 지상파 몰락 앞당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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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아닌 다른 어느 건물 옥상에 TV 안테나를 설치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안테나로 받은 방송을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으로 집에 있는 TV로 본다고 생각해 보자. 이게 합법일까 불법일까. 지상파 방송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 안테나만 달면 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다. 그 방송을 녹화해서 재생하는 것도 당연히 사적이용에 해당돼 합법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돈을 받고 이런 서비스를 대신해준다면 어떨까.

미국에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에어리오가 그런 서비스다. 한 달에 8달러를 내면 32개 지상파 채널을 스트리밍 방식으로 볼 수 있고 20시간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버 공간도 준다. 올해 1월 기준으로 가입자가 3000만명을 넘어섰고 일부 지역에서는 품절 사태를 빚을 정도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저작권 침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데 재판에서 1심과 2심 모두 에이리오가 승소했고 오는 4월22일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다.

2012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에어리오는 독특하게도 가입자마다 별도의 안테나를 설치하는 방법으로 저작권법을 우회하고 있다. 하나의 안테나로 방송을 수신해서 여러 가입자들에게 뿌린다면 재송신료를 물어야하겠지만 에어리오의 안테나는 엄지손톱 정도의 크기다. 가입자들에게 두 개씩 안테나를 나눠주고 개별적으로 각자의 안테나에 접속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에어리오는 방송 서비스가 아니라 안테나와 수신장비를 빌려주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에어리오는 손톱 크기의 안테나를 수천만개를 보유하고 있다. 안테나를 두 개씩 주는 건 한 채널을 보면서 다른 채널을 녹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두 채널을 동시에 녹화할 수도 있다. 녹화된 파일이 에어리오의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역시 가입자마다 별도의 서버 공간을 할당하기 때문에 중앙 서버는 없다. 월 8달러면 20시간, 12달러면 40시간 분량, 연간으로는 80달러를 내면 40시간 분량의 클라우드 서버를 받게 된다.

에어리오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안테나를 설치한다. 실제로 뉴욕에서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가 바로 건네다 보이는 곳에 에어리오 안테나 센터가 있다. 한국 같으면 남산 송전탑 바로 근처에 안테나를 갖다 두고 여기서 직접 수신한 지상파 방송을 인터넷으로 내보낸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지상파 직접 수신이 안 되는 곳에 살더라도 인터넷만 된다면 깨끗한 방송을 볼 수 있다.

정보기술 뉴스 사이트 기가옴에 따르면 3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서비스를 하려면 가입자 한 사람에 8000달러 가까운 비용이 들었겠지만 이제는 20달러 수준으로 낮아졌다. 1TB의 데이터 저장 공간도 과거에는 100만달러 이상 비용이 들었겠지만 이제는 100달러 미만으로 낮아졌다. 에어리오의 창업자 체트 카노지아가 "가입자가 100만명만 돼도 손익 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벌써 3000만명을 넘어섰다.

정보기술 잡지 PC매거진 등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들은 2012년 3월 법원 고소장에서 에어리오 서비스는 돈을 받고 가입자들에게 지상파 신호를 수신해서 전환, 재전송하는, 승인받지 않은 인터넷 전송 서비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에어리오가 지상파 방송을 수신해서 가입자들에게 공급하는 게 아니라 가입자들의 안테나로 수신한 것을 가입자들에게 다시 전송하는 방식이라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에어리오의 경쟁력은 낮은 수신료에 있다. 미국의 케이블 방송 수신료는 저가형 상품이 월 19.99달러, 웬만한 채널을 포함하면 월 100달러에 육박한다. 에어리오는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모든 지상파 채널을 볼 수 있다. 코드컷팅 열풍을 불러왔던 넷플릭스가 월 7.99달러로 수십만편의 동영상을 제공하지만 지상파 실시간 재송신이 안 된다는 한계를 에어리오가 보완해줄 수 있다.

에어리오는 아직까지 별도의 셋톱박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지만 맥이나 윈도우즈 기반 컴퓨터에서 웹브라우저로 접속하거나 애플 iOS 기반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구글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이나 스마트TV 등에서 에어리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집밖의 모바일 디바이스에서도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애플TV와 로쿠박스에서도 접속이 가능하다. 로쿠는 넷플릭스와 경쟁하고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다.

실시간 지상파 방송을 에어리오로 보고 주문형 비디오를 넷플릭스로 보는 조합도 가능하다. 그래도 월 수신료는 20달러가 채 안 된다. 애초에 케이블 수신료가 너무 비싸다는 지적과 함께 에어리오가 코드컷팅 현상을 부추길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에서는 케이블 수신료가 지난 10년 동안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여전히 ESPN 같은 유료 채널을 보려면 케이블에 가입해야 하지만 시장이 양분될 가능성이 크다.

에어리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모으면서 품절 사태까지 빚자 지상파 방송사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케이블로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이 에어리오로 옮겨가면 당장 재송신 수수료를 못 받게 된다. 미국의 지상파 방송사들이 유료방송 사업자들에게 받는 재송신 수수료가 전체 매출의 10% 정도를 차지하는데 에어리오 가입자들이 늘어나는 만큼 재송신 수수료 매출이 줄어들게 된다.

CBS와 FOX 등은 에어리오가 최종 승소한다면 아예 지상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한국 같으면 SBS가 지상파 송출을 중단하고 tvN처럼 케이블 송출만 하겠다는 것처럼 극단적인 발상이다. 광고 수입은 조금 줄어들겠지만 재송신 수수료보다 제휴 수수료가 더 비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사들이 가입자당 1~2달러를 재송신 수수료를 받는데 ESPN은 5.54달러 정도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대법원에서도 에어리오가 승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지만 최근 미국 법무부가 에어리오의 서비스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며 파기환송심을 요구하는 서면 답변서를 보낸 사실이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백악관을 상대로 강력한 로비를 벌인 결과라는 관측이 지배적인데 에어리오와 유사한 서비스들이 예비적 금지 명령을 받은 사례도 있어 대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영신 SK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에어리오 서비스가 적법하다는 결론이 나면 유료방송 플랫폼에 의존하던 지상파 방송사들은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텐데 지상파 방송사들과 유료방송 사업자들과 관계가 예전보다 느슨해지는 반면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OTT) 사업자들과의 결속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지상파 방송사와 넷플릭스, 유료방송과 에어리오의 대립 구도가 형성될 거라는 이야기다.

박성철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연구원은 "국내에서도 IPTV와 위성방송을 결합한 KT의 DCS 서비스가 논란이 됐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다이렉TV가 2007년부터 비슷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원은 "새로운 혁신의 출현이 모두에게 반가운 것만은 아니고 기존 시장을 차지하고 있던 사업자들에게는 위협이 되거나 치명적일 수도 있다"면서도 "이러한 혁신의 등장을 외면할 경우 순식간에 환경의 변화에 뒤처지고 만다"고 지적했다.

한은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저렴한 온라인 서비스들과 경쟁에서 유료방송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킬러 콘텐츠의 지속적 확보와 함께 서비스 및 요금체계의 개선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한 연구원은 "에어리오와 같은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인터넷이 방송 콘텐츠 전송 및 시청의 주요 수단이 되어가고 있는 변화된 방송환경에서 전통적 방송사업자들이 어떻게 대처해갈지에 관한 시대적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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