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이건희 매부는 정말 5312억원을 삼성에 기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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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차명 재산, 과연 드러난 게 전부일까... 삼성생명 통한 우회 지배, 계속되는 삼성전자 차명주주 의혹

2006년 10월, 삼성화재 회장을 지냈던 이종기씨가 일본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자살이었다. 향년 70세. 삼성그룹 창업자 고 이병철씨가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머물던 그 호텔이었다. 이종기씨는 이병철씨의 넷째 사위다. 처남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말년은 비참했다. 그는 2000년 은퇴 이후 대외 활동을 접고 해외로 떠돌면서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중앙일보 대표이사 부회장까지 지냈던 그의 죽음이 중앙일보에 한 줄도 실리지 않은 것도 아이러니했다. 그의 죽음은 두 달 동안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그해 12월 이씨가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지분 4.7%를 삼성생명공익재단에 기부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로 뒤늦게 밝혀졌다. 4.7%면 당시 시세로 5312억원 규모다. 물론 공익재단이기 때문에 한 푼의 증여세도 내지 않았다. 부인과 자녀가 둘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한 주도 물려주지 않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종기씨의 부인 이덕희씨가 최근 이 회장의 형 이맹희씨가 낸 상속 재산 분할 소송에서 상속인 명단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맹희씨가 낸 소장에는 이병철씨의 부인인 고 박두을씨가 유산의 27분의 6, 이창희, 이건희, 이순희 등 미혼 남매가 27분의 4씩, 그리고 출가한 상태였던 이인희, 이숙희, 이명희 등이 27분의 1씩 상속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이덕희라는 이름은 없었다.

중앙일보 편집부국장을 지냈던 이용우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종기씨가 넘긴 삼성생명 지분은 1987년 이병철씨가 죽고 난 뒤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차명으로 돌려놓은 재산 가운데 일부였는데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바람에 묶여 있다가 언론 보도 몇 줄로 재단으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종기씨나 유족들은 이 지분을 만져보지도 못했다"면서 "언론이 제대로 추적 보도도 없이 면죄부를 줬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이덕희씨가 첫째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딸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속 소송에서 배제된 것 같은데 이런 대접을 받는 사람이 남편 명의로 돼 있는 5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삼성에 기부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이종기씨가 살아 생전에 유언을 남겼을 수도 있지만 이건희 일가의 차명재산 관리인 역할을 하면서 자신을 비롯해 여러 임원들의 이면 계약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뒤늦게 이종기씨의 지분에 관심이 쏠리는 건 6일 이맹희씨 재판이 마무리되면서 이건희 회장의 차명 재산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모두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이 회장을 변호했던 법무법인 세종의 윤재윤 변호사는 "이번 재판으로 그동안 논란이 됐던 상속 재산의 정통성을 인정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다. 민사 재판이라 추적에 한계가 있었지만 이번 재판은 오히려 더 많은 의혹을 드러내고 서둘러 덮은 성격이 짙다.

이종기씨의 지분을 둘러싼 의혹은 이종기씨 사후 2007년 삼성 비자금 특별검사 때도 제기됐다. 특검은 이건희 회장이 1998년 이종기씨를 비롯해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들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거래된 사실을 확인하고 삼성생명의 배당금이 이 회장의 차명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밝혀냈다. 특검은 이종기씨를 제외한 35명의 전현직 임원들이 보유한 지분이 모두 이 회장의 차명재산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회장과 에버랜드가 사들인 삼성생명 지분 34.4%는 이 회장이 차명으로 상속받은 재산이라는 게 특검이 내린 결론이었다.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아버지 이병철씨 지분을 임원들 명의로 넘겨받았다가 헐값에 사들였다는 이야기다. 특검은 실제로 자금 이동 경로를 밝혀내는 데 실패했지만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에 따르면 이 임원들은 명의만 빌려줬을 뿐이고 주식 매매 대금은 그대로 삼성 계좌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이종기씨가 기부한 지분이 차명 주식이었을 가능성은 여러 경로로 확인된다. 삼성물산 회장 출신의 현명관씨는 특검에 출석해서 1988년에 삼성생명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하게 됐다고 실토한 바 있다. 이병철씨가 세상을 떠난 건 1987년, 현씨가 보유한 지분이 차명으로 보유한 이 회장의 상속 재산이라는 특검의 주장에 모순이 생긴다. 이종기씨 보유 지분과 현씨 지분의 차이를 특검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재벌 문제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건희 회장의 숨겨진 차명 재산이 더 있을 거라고 본다"면서 "특검이 면죄부를 주고 난 뒤 제대로 된 검증이나 비판이 없었다"고 말했다. 상장기업의 경우 5% 이상 지분 거래를 금융감독원에 신고하도록 돼 있지만 비상장 주식을 쪼개서 사고 팔 경우 추적이 쉽지 않다. 실물 주식을 현금으로 거래하는 경우 매입 경로를 파악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 회장 등은 임원들이 개인적으로 보유한 주식이라고 주장하다가 특검 수사 도중 말을 바꿨다. 특검은 "이 회장 등이 이종기씨를 제외한 삼성생명의 개인 주주 지분 전체가 1987년부터 차명인 상태로 이 회장이 상속받은 것임을 인정했다"면서 "1998년 12월31일까지 차명 지분을 신고하면 증여세를 면제 받을 수 있었지만 차명 재산의 존재가 약점으로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러워 매매의 형식으로 사실상 실명화 절차를 밟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이미 공익재단으로 넘어온 이종기씨 지분만 차명 재산이 아니라는 삼성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삼성이 자진납부 형태로 제출한 차명 재산 목록을 그대로 인정해 결과적으로 임원들이 보유한 주식을 이 회장 소유로 명의 전환하도록 돕고 면죄부를 부여하는 결과가 됐다. 김 교수는 "추가로 차명 재산이 드러난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회장의 차명 재산에 대한 법적인 문제는 모두 정리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검 이후 이 회장은 2008년 말과 2009년 초에 걸쳐 486명 명의의 1199개 계좌에 분산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삼성SDI 주식 등 4조5373억원 상당의 차명 재산을 모두 명의 전환했다. 특검 이후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4.54%에서 20.76%로, 삼성전자 지분은 보통주가 1.85%에서 3.38%로, 우선주 0.05%를 더하면 전체 지분은 1.61%에서 2.94%로 늘어났다. 삼성SDI 지분도 0.88% 확보했다.

삼성생명 주식은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었던 상속 재산이라는 게 이 회장의 주장인데 삼성전자와 삼성SDI 주식 등은 자금 출처나 매입 경로가 확인된 바 없다. 상속 재산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룹 차원에서 조성한 비자금이라는 의혹도 있었지만 특검 덕분에 고스란히 합법적인 이 회장의 재산으로 전환됐다. 울고 싶은 아이 뺨을 때려준 격이고 삼성 입장에서는 뒤늦게 일부 세금을 내긴 했지만 거의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다.

특검은 이 회장의 자백을 받아들여 삼성 전현직 임원 명의 차명 주식을 확인하고 결과적으로 실명 전환의 명분을 만들어줬지만 임원들 이외에 차명 계좌가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교수는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연결 고리가 끊기면 이 회장 일가의 지배력이 약화될 텐데 대비가 있었을 거라고 본다"면서 "숨겨진 차명 주식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최근 이맹희씨 재판에서 이씨의 변호인단은 1987년 삼성전자 주요 주주 184명의 명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차명주주로 의심되는 68명이 보유한 131만여주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4.7% 규모다. 이들이 이병철 사망 직후 갑자기 한꺼번에 주주 명부에 오른 데다 주권의 일련 번호가 연결돼 있다는 게 차명 주식이라는 주장의 근거였다. 이씨의 주장이 맞다면 특검이 밝혀내지 못한 차명 재산이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씨가 밝혀냈다고 주장한 131만주는 1987년 기준으로 추산하면 393억원 규모다. 삼성 임원들 월급이 300만원이던 시절 1인당 평균 4억5000만원 상당의 주식을 실물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씨는 임원들 명의로 숨겨진 차명 상속 재산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상속 재산이라고 볼 근거가 부족하고 빈번한 거래로 상속 재산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논리로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삼성그룹은 이종기씨 지분과 관련, 이미 일단락된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특검 수사 결과 이종기씨 지분은 차명 주식이 아니고 상속 재산과도 무관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면서 "더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만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 제기된 추가 차명 재산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가 끝났고 법적으로도 정리가 된 사안"이라고만 말했다. 삼성그룹은 이맹희씨 재판 관련해서도 별도의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삼성생명은 특검 이후 드러난 차명 주식이 이 회장 명의로 실명 전환된 뒤 2010년 주식시장에 상장한다. 미리 짜놓은 각본처럼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의 골격이 확립됐다. 상장 차익 배분 문제를 두고 논란이 많았지만 삼성생명은 상장에 대비해 단계적으로 유배당 상품을 정리한 뒤라 상장 차익은 고스란히 주주들 몫이 됐고 보험 계약자들은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 이 회장과 에버랜드의 상장 차익은 8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미숙 보험소비자협회 대표는 "삼성생명이 계약자들 등을 쳐서 돈을 벌면 그 돈이 고스란히 이건희 일가에게 돌아가는 구조"라며 "과도한 사업비 차익이나 턱없이 적은 해지 환급금 등은 한국 보험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인데 제대로 감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유배당 상품이 사라지면서 변액보험이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운용자산이 특별계정으로 분류돼 이익 보다는 손실을 떠넘기는 구조라고 보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주가가 오르더라도 삼성생명 보험 계약자들은 아무런 혜택을 볼 수 없다. 삼성생명이 일반계정으로 보유한 주식에서 이익이 나면 고스란히 주주들의 몫이 되고 사차(수입 보험료와 지급 보험금의 차액)나 비차(사업비 지급 차액) 등에서 이익이 나도 보험 계약자들에게 돌려주는 일은 없다. 사내 현금 유보로 남거나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돌아간다. 물론 이 과정은 모두 합법적이다.

이 회장 일가가 삼성생명 계약자들이 낸 보험료로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지만 이 회장은 정작 삼성전자 지분이 3.4% 밖에 안 된다.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가 0.7%,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0.6%, 다 해도 4.7% 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이들 가족이 삼성전자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6%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고 이밖에 삼성물산이 4.1% 등 특수 관계인 지분을 모두 더하면 17.6%에 이른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회장의 차명 재산이나 우회 지배 문제 등은 이미 법원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에 도의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 문제 삼기는 어렵게 됐다"면서 "법원이 이미 면죄부를 줬기 때문에 삼성그룹은 이제 어떻게 상속세를 최소화하면서 아들·딸들에게 지배권을 넘겨주느냐의 문제만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특히 삼성생명 지분 처리 과정에서 계약자들 권리 침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본격적인 인구 고령화가 시작되면서 생명보험사들의 재무 건전성이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도 어떤 식으로든 정리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생명 계약자들의 돈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순환출자 구조가 끊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전 교수는 "국가 경제에 미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계열 분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연구원은 "이번 재판 결과 특검이 얼마나 부실한 수사를 했는지 드러나긴 했지만 삼성생명 차명 주식 문제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일단락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삼성생명의 경우 오랫동안 비상장 상태로 있으면서 지분 변동 과정이 비교적 잘 드러나 있지만 삼성전자의 경우 드러나지 않은 이 회장의 차명 지분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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