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안 하는 기자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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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 기자들이 오바마에게 했어야 할 질문들... 질문 없는 사회와 기자의 책임.

'오바마에게 아무 질문도 못하는 한국 기자들'이라는 '짤방'이 화제다. EBS 다큐프라임 6부작 가운데 5부의 한 대목을 캡처한 이미지들인데 지난 2010년 9월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폐막 연설 직후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는 장면이다.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드리고 싶군요. 정말 훌륭한 개최국 역할을 해주셨으니까요. 누구 없나요?"

그 순간 기자회견장에는 정적이 흐른다. 오바마가 다시 말한다.

"한국어로 질문하면 아마도 통역이 필요할 겁니다. 사실 통역이 꼭 필요할 겁니다."

청중이 웃음을 터뜨리고 한 기자가 손을 들자 오바마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런데 그는 중국 기자였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지만 저는 중국 기자입니다. 제가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을 던져도 될까요?" 그러나 오바마는 그의 말을 자른다.

"하지만 공정하게 말해서 저는 한국 기자에게 질문을 요청했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그때 중국 기자가 다시 오바마의 말을 자르면서 "한국 기자들에게 제가 대신 질문해도 되는지 물어보면 어떻겠느냐"고 묻고 오바마가 "그건 한국 기자들이 질문하고 싶은지에 따라 결정된다"면서 "아무도 없나요?"라고 두 차례 묻는다. 잠깐의 정적, 오바마는 난감한 듯 웃고 결국 질문권은 중국 기자에게 돌아갔다.

실제로 이 사건은 당시에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오바마는 가뜩이나 중국과 환율전쟁을 치르고 있는 민감한 상황에서 중국 기자의 질문을 받기가 껄끄러웠을 것이다. 오바마는 한국 기자들이 질문을 해야 한다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정작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한국 기자들의 무난한 공치사를 기대했던 것일까. 중국 기자의 공격적인 질문에 오바마는 당황하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루이청강 CCTV 기자는 "최근 미국 정부가 내놓은 여러 대책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오바마를 몰아붙였다. 오바마가 가장 듣고 싶어하지 않았을 질문이었고 한국 기자들이 감히 꺼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중국 구글에서는 루이청강이란 이름이 순식간에 인기 검색어로 떠올랐고 루이청강의 웨이보에는 4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오바마의 콧대를 눌러 시원하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국내에서는 "한국을 속국으로 아느냐", "한국 기자에게 질문권을 줬는데 가로채는 건 예의가 없다"며 중국 기자의 무례함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한국 기자들을 겨냥해 "오바마를 바보로 만들고 한국의 국격을 떨어뜨렸다"며 기자들의 무능함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한국 기자들이 왜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또는 하지 못했을까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오바마가 질문을 받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상황이었고 무슨 질문을 할까 고민하던 순간, 갑자기 중국 기자가 나서서 질문권을 가로채 끼어들 기회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의 눈과 귀가 집중된 자리에서 미국 대통령에게 돌발 질문을 던진다는 중압감과 함께 좀 더 직접적으로는 영어 울렁증이 더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오늘도 2박3일의 G20 서울정상회의를 현장에서 취재했지만 나는 이날 폐막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상당수 기자들이 그랬겠지만 이날 폐막식은 형식적인 결과 보고와 연설과 박수로 마무리되는 자리라고 생각했고 기사 마감에 바빠 후배들을 대신 보내고 기자실에서 귀에 통역기를 끼고 현장 중계를 지켜봤다.

만약 오바마의 연설 현장에 있었다면 나는 질문을 던졌을까. 상황에 따라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다른 기자들처럼 잠깐 생각을 가다듬느라 망설였을 거고 만약 중국 기자가 끼어들지 않았고 3초쯤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내가 손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잠깐 머뭇거리느라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은 두고두고 안타까울 일이다.

EBS 다큐프라임의 기획 의도는 질문하지 않는 교육 환경을 돌아보는 것이었지만 이날 기자들은 질문을 안 던졌다기 보다는 못 던졌다고 보는 게 맞다.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를 앞두고 이명박 정부는 한국의 국격을 드높일 기회라며 정권 홍보에 앞장섰다. 한국무역센터는 G20 경제효과가 450조원, 취업유발 효과가 242만명이라는 황당무계한 분석은 내놓았고 검찰은 G20 포스터에 낙서를 한 대학 강사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며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지 말라고 당부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해마다 두 차례씩 돌아가면서 개최되는 회의가 얼마나 국격을 드높일 것인지도 의문이었지만 온 나라가 들썩 거리면서 마치 장학사 방문을 앞둔 초등학교를 연상하게 하는 분위기였다.

언론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직후 미국이 양적완화를 남발하면서 세계적으로 환율전쟁을 촉발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고 아예 노골적으로 미국의 들러리를 섰다. 프랑스와 독일 등은 급격한 자본 유출입을 막기 위해 금융거래세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한국은 아무런 의제도 제안하지 못했다. 수천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지만 국내 언론은 이 글로벌 이벤트를 단순 중계하는데 그쳤다. 사상 초유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선진국과 신흥국의 갈등을 중재하고 발전적 대안을 제안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떠안고 있었지만 하나마나한 합의에 과도하게 의미부여를 하는 데 그쳤고 의장국으로서 아무런 존재감도 보여주지 못했다.

(관련 기사 : 외신조차 비웃는 'G20 호들갑' 국제 망신)
(관련 기사 : "팍스 아메리카나는 끝났다...새 질서 절실한 때")
(관련 기사 : 언제까지 정부 언론 플레이에 놀아날 건가)

이날 폐막식 현장에서 대다수 기자들은 질문을 갖고 있지 않았다. 2010년 한국은 정부나 언론이나 G20 의장국이라는 근거없는 자아도취에 들떠서 정작 이 떠들썩한 이벤트의 본질을 깊게 따지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은 바다 건너의 일이고 언론이 개입할 영역을 넘어서거나 국내 언론의 비판이 가 닿지 않는 영역이라고 선을 긋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두 유 노 싸이(Do you know PSY)?"나 하다 못해 "퇴근 이후 백악관에서 뭐하시느냐"는 질문이라도 던지지 그랬느냐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기자들은 애초에 질문을 갖고 있지 않았고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이 국가적 행사에 찬물을 끼얹을 용기도 없었다. 아마 기자들은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다른 언론이 어떻게 반응할까를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는 타박을 받거나 국격을 떨어뜨렸다는 비난을 받게 되지 않을까 염려했을 것이고 이런 자리에서는 영어로 유창하게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을 것이다.

이날 중국 기자의 질문은 돌발적이었지만 시의적절했고 부끄럽게도 한국 기자가 했으면 더 좋았을 질문이었다.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환율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미국이 싼 똥을 왜 다른 나라들이 치워야 하느냐"고 물었으면 세계적인 스타 기자가 됐을 수도 있다. 좀 더 나가서 환율전쟁을 촉발한 건 미국인데 왜 중국을 압박하는가, 위안화 절상도 필요하지만 지금 미국의 위기는 위안화 절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 금융규제 강화와 투기 억제, 금융거래세 도입 등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오마바 당신이 먼저 제안할 생각은 없는가 등등을 물었어야 했다. 통역이 있는데 영어 좀 못 하면 또 어떤가. 의장국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한국어로 묻는 걸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왜 질문을 하지 않느냐는 EBS의 문제제기도 시의적절하다. EBS는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5부에서 "자신의 입을 통해 묻고 설명함으로써 자신이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분명해지고 자신의 진짜 생각이 키워진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기자는 늘 질문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게 수습기자 시절부터 받는 교육이지만 최근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보듯이 질문하기를 포기하는 기자들도 많다. 기자들이 다른 기자들의 눈치를 보거나 답변의 내용 보다는 내가 한 질문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순간 질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기자는 대신 질문하는 사람이다. 기자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지만 질문이 사라진 사회에서 기자들의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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