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 기사와 택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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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인가 성남 분당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혼자 돌아오던 때였다. 새벽 1시, 마지막 좌석버스가 막 출발하고 없었다. 정류장에는 서울 택시들이 줄지어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딱 봐도 대리운전 기사처럼 보이는 아저씨들이 구부정하게 서서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택시를 타면 3만원 넘게 나올 텐데.' 망설이던 참에 한 아저씨가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서울 갈 거면 같이 타고 갑시다."

"네?" 어리버리 서 있는데 그 아저씨가 곧바로 택시 기사와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대리 기사들인데 3천원에 강남 갑시다." 택시 아저씨는 한참 투덜투덜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까지 포함해서 네 명의 대리 기사들이 택시를 탔다. 물론 그 가운데 한 명은 가짜 대리 기사였다. 다들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어서 나도 핸드폰을 들여다 보며 뭔가 문자를 확인하는 척해야 했다. 택시는 미터를 꺾지 않고 동부 간선도로를 쏜살같이 내달렸다.

택시 안은 '띵동' '띵동' 콜 들어오는 소리로 계속 시끄러웠다. 대리 기사 아저씨들은 어디가 콜을 많이 준다느니, 어제는 몇 탕을 뛰고 얼마를 벌었다느니, 어디서 어디 왕복 코스로 뛰는 게 좋다느니 하는 노하우를 서로 교환하기도 했다. 택시 아저씨가 뭐라고 거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나는 묵묵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술을 마셨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입을 굳게 다물어야 했다. 어쩐지 미안하기도 했다.

한 아저씨가 먼저 양재동 꽃 시장 앞에서 내렸다. 양재동에서 다시 분당으로 돌아가는 콜을 잡았다고 했다. 다른 두 명은 콜이 많이 들어온다는 뱅뱅 사거리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나보고 어디서 내릴 거냐고 하길래 같이 내리겠다고 했다. 수고하시라고 인사를 건네고 나니 새벽 2시, 뱅뱅 사거리는 취객들과 그들을 찾는 대리 기사들로 가득했다. 분당에서 강남까지 3천원, 싸게 오긴 했지만 어딘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택시 기사들과 대리 기사들의 동병상련이라고 할까. 택시 기사 입장에서는 대리 기사들이 자신들 밥줄을 위협하는 존재겠지만 따지고 보면 넓은 의미의 동종 업계인데다 빈 차로 돌아오느니 3천원씩이라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3천원에 택시를 타게 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특권이랄까. 다들 먹고 살겠다고 하는 일 아니냐는 유대감이라고 할까. 서울과 경기도에만 4만여명의 대리 기사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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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mont furniture from fremont furniture on December 11, 2011 8:0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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