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전'을 읽다.

| 7 Comments | 2 TrackBacks

동생이 이 책을 20권 넘게 사서 주변에 나눠줬다고 한다. 나는 동생에게 빌려서 봤는데 다 봤다고 했더니 가져가 버렸다. 생각나는대로 간단히 정리한다.

동생은 무엇보다도 안식일에 대한 해석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7일째 되는 날 하느님이 쉬었으니 우리도 쉬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왜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내렸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이 쉰 것처럼 일주일 동안 힘들게 일했던 사람들을 쉬게 하라는 이야기다. 당신도 쉬고 당신의 노예와 가축도 쉬게 하라는 이야기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사람들을 배려하라는 이야기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보다 더 어렵다"는 말은 흔히 부자가 천국에 가려면 훨씬 더 깊은 믿음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김규항은 "부자는 아무리 믿음이 깊어도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김규항은 빈부격차는 죄악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 역시 하느님 보시기에 옳지 않다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가난해지지 않는 이상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바리새인에 대한 해석도 독특하다. 우리는 흔히 바리새인을 율법을 강조하는 위선주의자들로 단정짓고 비난하지만 김규항은 이들을 양심적인 지식인 계층으로 평가한다. 이들은 적당히 잘난 척하고 대중을 계몽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에 우쭐해 하지만 정작 치열하게 싸우기 보다는 "현실의 외피를 덜 추악하게 만드는 일에 머문다". 김규항은 '바리새인을 욕하지 마라, 한발 물러나서 세치 혀로 현실을 재단하는 당신이 바로 바리새인 아니냐'고 묻는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갖다대라"는 비폭력주의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오른뺨을 맞는다는 건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맞았다는 말인데 이는 예수가 살던 시절에는 상대를 모욕하는 행위였다. 왼뺨을 갖다대라는 건 때릴 거면 제대로 때리라고 반발하라는 의미다. 당신에게 모욕당할 이유가 없다, 나도 너와 똑같은 존엄한 사람이라는 저항의 의미라는 이야기다.

김규항은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수천명을 먹이거나 절름발이를 걷게 하거나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는 등 예수가 보여준 여러 기적을 단순히 비유로 해석하거나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혁명가로서의 예수를 구체화한다. 예수는 성전 앞 장사치들의 좌판을 뒤엎고 주류질서를 조롱하고 가장 낮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면서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몸소 실천했다.

예수는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 등 우리가 쉽게 잊고 지내지만 가장 근본적인 가치들을 강조했다. 가난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을 껴안으면서 부당한 차별에 함께 맞섰고 부자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경고하면서 거짓 율법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그는 군대를 끌고 오지도 않았고 하늘을 가르거나 벼락을 내리지도 못했고 결국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었지만 지배계급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됐다.

김규항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사람들은 한 평범한 시골청년이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로 여겨지게 됐는지를 보지 않고 하느님 아들의 인간 흉내 쇼를 보고 감동한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천박한 신앙도 이런 오해에서 비롯한다. 예수의 삶을 본받기 보다는 그가 불러올 기적을 기대한다. 예수가 뒤집어 엎었던 성전 앞의 좌판은 오늘 한국 기독교에도 여전히 펼쳐져 있다.

예수가 꿈꿨던 혁명은 하느님 보시기에 올바른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나라는 하느님의 아들딸들, 누가 봐도 올바른 나라여야 한다. 당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짓밟지 않는 그런 나라여야 한다. 혁명이란 게 거대한 이론이 필요한 게 아니다.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 이를테면 "사람이 사람 꼴을 갖추고 사람과 사람 관계를 회복하는데서 출발하자"는 이야기다. 그게 예수가 2000년을 넘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예수전 / 김규항 지음 / 돌베개 펴냄 / 1만3천원.

2 TrackBacks

TrackBack URL: http://www.leejeonghwan.com/media/mt-tb.cgi/1596

“예수의 삶을 본받기 보다는 그가 불러올 기적을 기대한다. 예수가 뒤집어 엎었던 성전 앞의 좌판은 오늘 한국 기독교에도 여전히 펼쳐져 있다.” Read More

서평 보고 적는 한줄 서평 “아는 만큼 보인다.” & “무식하면 용감하다.” RT lifepolitics님: http://is.gd/35RMi 이정환 닷컴 B급 좌파 김규항의 예수전 서평 약간 의견을 달리함 막스베버의 청부론을 지지하기 때문임. … Read More

7 Comments

펼치신, 위의 글에서, 상당히, 흥미있게 책을 읽으셨던 것 같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김경호 목사(들꽃향린)의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 시리즈를 권하고 싶습니다.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성서와 기독교에 대한 해석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메일 드렸는데 확인을 안 하셨드라구요^^

출판사 21세기북스 구요, 출간제안 메일 드렸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구요,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031-955-2707
wjdrb81@naver.com

안창환님, 한번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김정규님, 답장은 드렸는데 그 뒤로 또 보내셨나요? 혹시 스팸함에 있나 찾아보세요. 제 연락처도 적어드렸으니 전화를 하셔도 됩니다.

간만에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구매할 책이 한권 늘었는걸요
소개글만봐도 흥미진진할것 같습니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갖다대라"

새로운 해석이 참 멋있군요. ^^;

안녕하세요 뉴우스에 이정환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강제)해임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혹시 이정환 사장의 블로그가 있는지 찾아보다가 우연히 같은 이름의 이정환닷컴에 들리게 되었네요. 어쨋던 반갑습니다. 위에 써놓은 글처럼 예수님이 온 이유가 결코 잘먹고 잘살게 하려는 것이 아닌데 욕심에 들뜬 돼지들이 성경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가는군요. 어쨋든 글을 읽은 후 저의 짧은 소견을 표현하자면, 저도 예수님을 한사람의 사회변혁적 혁명가라고 보긴 힘든것 같습니다. 사실, 그가 사회운동가로서 별로 한게 없거든요. 기득권과 물리적인 투쟁을 벌인 적도 한번 없고. 군중들을 몰고 다녔던 것은 그의 가르침에 군중이 감동되었다기보다는, 그당시 기득권층이 그나라 민족의 정서를 대변해주지 못하고 (마치 우리나라처럼) 로마와 결탁한것도 아니고 대항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앉아 지들끼리 서로 세력다툼만 하고 있었던 때라,군중들은 강력한 통치정부를 세울 수 있는 메시아를 원했기에 예수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뭉쳐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때가 아니다, 라는 말만 남겨놓고 군중을 피해 도망다녔습니다. 막판엔 기득권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저항도 없이 죽었구요. 따라서 그에겐 사회변혁적 혁명을 일으킬 의지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위선과 불의한 시대에 나타나, 하나님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하나님은 힘없고 약한 자들의 편에 서있을뿐 아니라 힘세고 교만한 무리를 미워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집단보다는 한 개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보여주었으며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서 거리낄것 없이 잘나가고 오만했던 사람은 때가 되면 반드시 자기 죄의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했지만 겸손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인정하겠단 것을 몸소 실천한게 바로 예수의 삶이라 봅니다. 저도 사회 정의에 대하여 애타는 마음을 품고 있지만 이 세상은 정화 불가능한 온갖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차있지 않습니까? 못된 사람이 착취하여 돈을 더 많이 벌고 아프리카 꼬마들은 날때부터 굶주릴 운명으로 태어났으며 프리메이슨이란 정신나간 집단이 온 세계를 거머쥐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하루하루를 불안한 마음을 지니고 삽니다. 때문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예수가 정말로 사회변혁가이자 구원자라면 이 세상 말고 또 다른 세상이 있어야 한다는 염세적인 결말을 말하고 싶습니다. 권선징악은 고전동화에만 있는게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럼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안녕하세요, 랜덤하우스코리아 홍보마케팅팀 김형식입니다.

이번에 롱테일 법칙으로 큰 관심을 모았던 크리스 앤더스의 신작 “FREE” 가 출간되었습니다.
흥미있게 읽으실 만한 책이라 생각되어 먼저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유가 되셔서 활동하시는 블로그 등에 서평을 올려주실 수 있으시면, 저희가 책을 준비하여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바쁘시겠지만 내일 (11/19, 목)까지 책을 받아보실 곳의 주소, 우편번호, 연락처와 성함을 보내주시면 책을 준비하여 보내드리겠습니다.

불쑥 연락드려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김형식 올림.

T. 3466-8875, hskim@rhk.co.kr

Leave a comment

E-mail Address

About this Entry

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이정환 published on September 7, 2009 1:50 AM.

'양치기' 노동부와 언론의 아전인수. was the previous entry in this blog.

"부동산 대폭락 전조 은폐하는 언론의 검은 유착." is the next entry in this blog.

Find recent content on the main index or look in the archives to find all content.

Recent Entries

Recent Comments

  • 랜덤하우스코리아: 안녕하세요, 랜덤하우스코리아 홍보마케팅팀 김형식입니다. 이번에 롱테일 법칙으로 큰 관심을 모았던 read more
  • 박용하: 안녕하세요 뉴우스에 이정환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강제)해임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혹시 이정환 read more
  • anonymous: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갖다대라" 새로운 해석이 참 멋있군요. ^^; read more
  • 마나각: 간만에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구매할 책이 한권 늘었는걸요 소개글만봐도 흥미진진할것 같습니다 read more
  • 이정환: 안창환님, 한번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김정규님, 답장은 드렸는데 그 뒤로 또 read more
  • 김정규: 안녕하세요. 메일 드렸는데 확인을 안 하셨드라구요^^ 출판사 21세기북스 구요, 출간제안 read more
  • 안창환: 펼치신, 위의 글에서, 상당히, 흥미있게 책을 읽으셨던 것 같습니다. 관심이 read more

Powered by

Creative Commons License
This blog is licensed under a Creative Commons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