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투쟁, 패배를 속단하기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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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수도도 전기도 식량 공급도 끊긴 컴컴하고 무더운 공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끝에 얻어낸 것은 마지막까지 공장을 지킨 640명 가운데 42%인 269명을 살린다는 것. 이미 1600명 이상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떠난데다 중간에 이탈했던 337명도 무급휴직 또는 희망퇴직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초라한 성과였다.

끝까지 버텼던 이들 가운데 371명은 결국 회사를 떠나야 한다. 살아남은 269명 역시 무급휴직과 영업직 전직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한다. 가까스로 무급휴직 대상에 포함된 사람은 모두 500여명. 언론에는 노조가 생떼를 부리고 상당한 양보를 얻어낸 것처럼 보도됐지만 결국 사쪽은 당초 구조조정 목표 2646명을 모두 채웠다. 막판까지 무급휴직 규모를 놓고 목숨을 건 줄다리기를 했지만 사쪽은 이미 얻을 걸 모두 얻은 상태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쌍용차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투쟁은 몇 가지 성과와 교훈을 남겼다.

첫째,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보여줬다. 지금 당장은 패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론도 극도로 악화돼 있지만 이들은 76일 가까이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목숨을 내걸고 싸우면서 노동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자본과 자본의 편에 선 정부가 절망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을 짓밟는 걸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정의가 무엇인가를 다시 고민하게 됐다. 적어도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둘째, 노동자 계급 전반에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쌍용차 노조에 쏟아지는 가장 흔한 비판이 당신네만 망하는 게 아닌데 왜 국민들 세금을 쏟아부어가면서 당신들을 살려줘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오히려 조직화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뿐만 아니라 노동자 전반으로 문제의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음 차례는 당신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사회에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

셋째,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조정이 과연 최선인가 하는 질문을 남겼다. 노조는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했는데 사쪽은 이를 거부하고 손쉽게 3분의 1을 잘라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덕분에 쌍용차는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은 잘려나간 3분의 1의 눈물과 좀처럼 치유하기 어려울 그들의 상처를 기억한다. 우리는 선택되지 못한 해답을 이미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넷째, 극단적인 금융 자본주의를 반성하고 성장의 방식을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다. 쌍용차의 몰락은 시세차익을 노리고 경영권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기업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단기 이익에 매몰될 때 그 최종 부담은 결국 사회가 질 수밖에 없다. 노조가 임금 투쟁을 넘어 자본주의 시스템과 맞서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섯째, 산별노조 강화와 사회적 연대, 정치적 투쟁의 필요성을 일깨워줬다. 현대차와 기아차 노동자들이 남의 일처럼 한발 물러나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가 뒷받침됐다면 쌍용차 노조는 이처럼 무력하게 물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노동운동이 임금 투쟁을 넘어 정치 세력화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 집단 이기주의를 넘어 일상적으로 시스템과 맞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직 쌍용차 투쟁의 패배를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쌍용차 노조는 끝까지 잘 싸웠고 쫓겨나면서도 당당했다. "함께 살자"는 이들의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유효할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사회에 절실한 과제다. 쌍용차 투쟁은 여러 한계를 드러냈지만 오히려 덕분에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목표를 가능하게 한다. 쌍용차 투쟁은 달리 보면 거대한 투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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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사회#1 극과 극을 달리는 한국의 꼬라지#1 from 아라의 글로벌 마인드 칼럼..think globally on August 8, 2009 11:26 PM

그 글을 올린 사람보고 뭐라고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노동절이 바로 며칠 전이었고, 시위자들이 몽둥이로 두들겨맞고, 112명이나 연행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소개되어 있다. 한국의 국민과 노동자를 실컷 부려 먹고, 자신의 뱃속만 잔뜩 채우더니 세계화의 물결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국내보다는 외국에 공장을 차린 것이 아주 자랑스러운 짓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이 넘의 사회가 얼마나 막장으로.. Read More

쌍용차 파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시민이 태반이다. 그러니 노조가 잘못한 것이니 그들을 때려잡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것도 모르면서 입으로 만행을 규탄한다고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수밖에 없다. 왜? 사건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쌍용차 파업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지 않고, (아시다시피 내 블로그는 99.99%의 조사 자료로 모두 팩트에 근거한 글이다. 즉, 내 블로그의 기준이지 다른 블로그의 기준이 아.. Rea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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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충분한 사람들은 더욱 돈을 탐하고, 정치는 점점 자기들의 득실에 따라 타락해져 가고,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닌 사안에서는 점점 무심해져 갑니다. 제 머리에서는 나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들" 속에 빨리 들어가야 하는데... 늦으면 조금이라도 늦으면 나도 이들처럼 될거야... 라는 메아리가 제 머리를 계속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하지만 말입니다. 왜 제 눈에 눈물이 고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알지만 행동하지 못 하는 제 자신이
미워지지만 금방 잊고 다시 현재 환경에 적응하는
제 자신을 또한 보게 되는군요.

몇백만원으로 시작해서
몇억의 자신이 생겼지만,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더욱 악착같이 돈 벌고, 노력하고, 근검절약하는
제 자신을 또한 생각합니다.

진짜 있을때 정말 잘해야 겠다는 생각 뿐 입니다.

이거 하나만은 확실해진듯
mb가 막장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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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이정환 published on August 8, 2009 4:15 AM.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was the previous entry in this blog.

뉴욕타임즈에 실린 쌍용차 사람들 이야기. is the next entry in thi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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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독자: 돈이 충분한 사람들은 더욱 돈을 탐하고, 정치는 점점 자기들의 득실에 rea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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