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7일 38면에 실린 정규재 논설위원의 칼럼 "시장상인이 웃을 집단지성론"은 보수진영의 광장 공포증과 더욱 거세진 민주주의의 요구에 대한 불안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정 위원은 이 칼럼에서 "뜨거운 시위현장이 아니라 조용한 투표소야말로 집단지성의 정치적 출생 장소이며 개인들이 이익을 다투는 시장이야말로 대중의 지혜가 응집되어 나타나는 장소"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집단지성에 대한 비판인 셈인데 정 위원은 도축장의 소 무게 알아맞히기 게임을 집단지성에 비유하고 있다. "800명이 써낸 평균값은 도축 전문가들의 추정치보다 훨씬 정확했다"면서 "소비 대중이 역으로 전문가들의 과업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은 레고 등 장난감 회사에서부터 최근에는 첨단 제품의 제조 과정에까지 적용되고 있는 새로운 방식"이고 "위키피디아도 그런 사례"라고 설명했다. 정 위원은 "지혜로운 대중은 열정으로 들끓는 시위현장이나 슬로건으로 뒤덮힌 군중집회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정 위원은 "대중의 선택이 지혜롭기 위해서는 도축장의 사례처럼 다수를 이루는 개인들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자신의 선호를 표현해야 하고 충분히 분산되어 있어야 하는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면서 "우리는 시위군중의 그 어디에서도 독립적이며 분산적이어야 한다는 지혜의 조건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나의 의견만이 지배하는 곳이며 선동과 흥분 속에 열정적 동의만이 거품처럼 부풀려 올려지는 곳에 대중의 지혜라니 당치 않다"는 이야기다.
정 위원은 시위군중의 독립적인 선호, 다시 말해 자발적인 의지를 부정한다. "나 혼자만의 장소인 투표소에 들어가 조용히 한 표씩을 던질 때 우리는 그것의 중앙값을 통해 비로소 대중의 지혜를 드러내는 것"이고 "특정 기업의 주식가격을 사회적 합의나 시위를 통해 결정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특정 상품의 가격을 군중집회 아닌 개인선택을 통해 만들어 내는 것처럼 분산 고립된 개인들이 의심과 회의 속에서 내리는 선택들이 종합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대중의 지혜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라고 집단지성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기도 했다.
집단지성을 만드는 것은 다수의 협력과 경쟁이다. 그런데 정 위원은 '혼자만의 장소에서 조용히 표를 던지라'고 주문한다. 도축장의 사례 또한 적절치 않다. '중앙값'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건 집단지성이 아니라 개별지성의 평균일 뿐이다. 집단지성은 단순히 평균에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지적능력을 더하면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소 무게 알아맞히기 따위를 집단지성에 비교하는 것은 집단지성에 대한 얕은 이해 수준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투표는 현실적인 합의수단이지만 집단지성의 사례라고 보기 어렵다. 정 위원이 강조하는 "분산 고립된 개인들이 의심과 회의 속에 내리는 선택"은 집단지성이 아니다. 오히려 분산 고립된 개인들이 의심과 회의를 넘어 소통하고 논쟁하고 격렬하게 부딪힐 때 집단지성이 발현된다. 물론 일방적인 선전·선동이나 시위현장에서 맹목적인 군중심리는 경계해야겠지만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투표에 의존하는 간접 민주주의를 보완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정 위원은 "자신의 상품을 소리높여 외치는 남대문 시장에서조차 결코 다른 상인의 좌판을 뒤엎지 않는다"면서 "지금 일부 과격세력이 자신의 이념상품만 강매하려 드는 것은 저자거리의 깡패와 다를 것이 없다"고 지적했지만 실제로 다른 사람의 좌판을 뒤엎고 상대의 이념을 부정하는 쪽은 정 위원이다. 정 위원은 광장을 폐쇄하고 합법시위를 짓밟는 이명박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정 위원은 "지성을 독점하려는 이들의 시도가 실로 우습다"고 개탄하고 있지만 다양성을 부정하는 쪽은 역시 정 위원 자신이다.
"분산 고립돼서 의심과 회의 속에 내리는 선택"을 하고 싶으면 그건 정 위원 당신의 자유다. 당신이나 실컷 그렇게 하시라. 그러나 다른 사람들까지 분산 고립시키고 의심과 회의 속에 가둬둘 권리는 당신에게 없다. 그건 폭력이다. 그걸 집단지성이라고 부른다면 시장상인 뿐만 아니라 '초딩'들도 웃을 일이다. 이런 맥락이라면 "시장상인이 웃을 집단지성론"이라는 이 칼럼의 제목은 시장상인들을 폄훼할 소지도 있다. 솔직히 말씀해 보시라. 집단지성이 두려운가. 그렇다면 공부부터 하시라.

컬럼 링크: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70635711
from Collective intelligence, Wikipedia
잘 읽었습니다.
그 칼럼은 좀 황당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트위터에 남긴 글이 있어서 한 자 남깁니다.
트위터에 남긴 글:
시장상인이 웃을 집단지성론 http://bit.ly/pz8c 내가 놀란 건 논설위원 경제교육연구소장의 입에서 터져나온게 이런 궤변질이다.당신의 논리라면 신부가 경찰한테 얻어터져도 입 꾹 처닫고 그딴 소리나 하는게 집단지성이겠네?말로 깡패질은 님이 하네
less than a minute ago from bit.ly http://twitter.com/thinklogically/status/2507124245
칼럼은 써야겠고, 아는건 없고 하니까
위키노믹스 책의 앞부분만 조금 읽어보고 쓴 글 같습니다.
집단지성의 조건 중 필수적인 것이 '상호작용'인데, 분산되고 독립된 개인의 자유를 집단지성의 요건으로 보는 건 상당히 이상한 생각이군요. 그냥 꾹 참고 찌그러져 있어라, 라는 소리로 들리네요. ^^
ㅎㅎ 제임스 서로위키의 대중의 지혜를 보고 쓴 글 같군요.
독립성이 보장 되어야 한다는 가정은 집단지성 발현의 조건이라고 제임스 서로위키는 말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저런식의 독립성 보장은 말이 안되죠. 책에서의 독립성 보장은 서로 꺼리낌 없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조건과도 같은데, 칼럼 저자는 그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시장 가격이 과연 집단지성의 결과인가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있는데 좀 더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빼놓았습니다.
유정식 님의 말씀이 정답이네요. Kaorw 님과 고감자 님의 말씀대로 책 앞부분만 대충 읽어보고 글을 쓴 게 티가 나네요.
갈수록 종이 매체의 권위가 엉망이 되는 배경에는 저런 현상도 한 몫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마추어 블로거들도 저런 짓은 잘 안하는데 말이죠.
킁.. 초딩이란 닉네임을 바꾸던가 해야겠어요..
트랙백이 안 먹어요 ㅠ
http://seoulrain.net/1392
첨에 욕 나오다가,
어이 없는 웃음만 나오네요.
아전인수도 한계가 있지 =_=
설마 미디어오늘에 실린 건 아니겠지요.
집단지성에 대한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정규재씨가 맞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고립과 분산에 이상한 모럴을 가미해서 생각하는 듯 한데... 정규재씨가 말한 고립과 분산 역시 '사람들이 고립 분산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오성에서 집단지성으로 확산되는 인식의 발전과정의 한 전제로 '인식의 natural한 고립 분산성'을 말한 거지요. 예를 들어 블로그 주인장이 이 글을 쓸 때 나름대로의 고립 분산성을 유지하며 쓴 거 아닙니까. 하나하나 다른 사람과 논의하면 쓴 거 아닐겁니다. 그렇지만 고립분산적으로 쓴 이글이 다른 블로거들과 소통하면서 혹은 논쟁하면서 조금씩 집단지성화되어 과정이 있는 거지요. 물론 정규재씨가 시장이론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만.. 이 게시물은 틀린 전제를 가지고 비교적 옳은 정규재의 이야기를 비웃고 있습니다.
ㅉㅉㅉ님의 글에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게시물에 대해 정면으로 배치되는 비판하는 글을 쓴다면 최소한 가장 기본적인 글의 순서라도 지켜서 썼으면 좋겠습니다. 주장, 이유1, 이유2... 이런 순으로 써주면 글을 읽는 사람이 읽기가 편합니다. 그리고 좀 글 좀 제발 제대로 쓰세요.(맞춤법을 말하는 것이 아님.)
애독자님께 사과드립니다. 이 블로그 공지를 못 봐서, 주인장과 다른 의견이나 의사를 표명하는 경우엔, 주장-이유1-이유2-이유3-결론이나 기승전결로 각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또 태클을 걸고 싶을 때는 글머리에 예의상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은 주거도 없습니다'라고 전제를 달아야 하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점 주인장과 애독자님께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리고, 이런 투명한 공론의 장에 다시 들리거나 제대로 못 쓰는 더러운 글을 올리지 않을 것을 약속 드립니다.
ㅉㅉㅉ 님이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좀 이상하고, 정규재 기자가 말하는 건 더 이상하군요.
시위에 나가면 고립 분산성이 약화되나요? 시위에 나가기 까지 고립 분산성을 유지한채 각자 판단하는 건 고립 분산성이 없는 것입니까? 고립 분산성이란 단어의 애매한 정의에만 골몰하여 "집단지성"을 정의내리려 하는 시도는 그리 설득력이 없네요. 고립분산성이 그리 고매한 집단지성의 특성이라면 고립분산성에 대한 정의를 좀 더 자세하고 명쾌하게 내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비꼬는 꼴이 그리 곱지는 않군요.
요즘 이곳에 애xx님 같으신 지능적 안티가 많이 보이시네요.
정규재 컬럼에서 말하는 투표소에서의 집단지성을 실현할려면 거의 매일 매시간 투표할 수 있다면 완벽해질 수 있겠군요. 누군가는 매우 두려워할만한 사설인데요? :)
정규재 컬럼에서 말하는 투표소에서의 집단지성을 실현할려면 거의 매일 매시간 투표할 수 있다면 완벽해질 수 있겠군요. 누군가는 매우 두려워할만한 사설인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