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관세화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부쩍 늘어났다. 우리나라는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2004년까지 쌀 시장 개방을 유예 받은데 이어 다시 2014년까지 개방 시점을 미뤄둔 상태다. 그런데 쌀 관세화를 도입하자는 건 관세를 물리되 시장을 개방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2004년 쌀 시장 개방을 10년 뒤로 늦추는 대신 해마다 수입물량을 2만2천톤 이상 늘려야 한다. 2014년이 되면 국내 전체 쌀 소비량의 7.96%인 40만8700톤까지 수입물량이 늘어난다. 쌀 시장을 개방하자는 주장은 의무적으로 수입을 늘리기 보다는 차라리 관세를 높게 물리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최근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해 쌀 값이 1톤에 1천달러 이상으로 뛴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관세화를 해도 국내 농가에 큰 충격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17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쌀 관세화는 농민에게도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장 장관은 "우리나라에 쌀이 남아돌아도 2014년 이후 매년 40만8천톤씩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한다"며 "그러나 지금 관세화를 할 경우 의무 수입물량을 30만여톤만 들여오면 된다"고 말했다. 장 장관은 또 "전문가들의 전망으로는 앞으로도 쌀의 국제 가격이 계속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높은 국제가격에 400%가량의 높은 관세를 붙인다면 국내에 수입해도 가격 경쟁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바람을 잡은 곳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었다. 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지난 2월 열린 토론회에서 "쌀 수입을 관세화로 전환할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향후 10년 동안 2천억~4천억원의 수입쌀 도입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연구원은 "관세화로 전환할 경우 수입 쌀 공급물량이 줄어들어 쌀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 압력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이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두고두고 우려먹으면서 쌀 관세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조선일보는 8일 사설에서 "의무 수입물량이 이대로 계속 늘어나는 것보다는 지금이라도 높은 관세를 붙여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게 국가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주장했고 서울경제는 지난달 18일 사설에서 "사정이 이렇다면 쌀 수입 관세화를 미룰 이유가 없다"면서 "일찍이 쌀 수입에 대해 관세화로 전환한 일본과 대만 등의 경험은 관세화가 꼭 불리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도 9일 칼럼에서 "의무 수입물량을 최소화하고 환율과 국제 쌀 가격을 최악의 조건으로 놓고 따져도 10년간 1800억∼37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을 소개하면서 관세화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뒀다. 헤럴드경제는 10일 칼럼에서 "방향은 정해졌다"면서 "조기 개방이 해답"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관세화 유예로 치러야할 대가와 고나세화 개방에 따른 국익을 냉철히 비교 분석, 적극적인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세화를 찬성하는 언론의 논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차피 의무 수입물량이 2014년이면 40만8천톤이나 된다. 차라리 관세화를 하면 수입이 그보다 줄어들 수 있다.
둘째, 국제 쌀 값이 올라서 개방을 해도 수입이 많지 않을 것이다. 개방을 하고 관세를 높게 물리면 된다.
셋째, 개방을 하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쌀을 사들일 필요가 없으니 비용도 절감된다.
언론은 이미 쌀 시장 개방 공론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반대 논리를 펼치는 곳은 한겨레 밖에 없다. 송기호 변호사는 10일 한겨레 기고에서 "만약 한국이 의무 수입물량을 늘리지 않으려고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하면 미국은 당연히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쌀을 포함시키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일본이 지금 미국에 600% 수준의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는 것은 일본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쌀을 조기 개방하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의 주장은 일단 관세화를 받아들이고 나면 처음에는 높은 관세를 물린다고 하더라도 결국 관세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국내 농업을 초토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최경림 외교통상부 자유무역협정 정책국장은 반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쌀에 관한 관세 감축의무가 없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농업경영인협회 관계자는 "언론이 쌀 시장 개방이 공론화됐다는 제목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농어업 선진화 위원회에 의제로 채택되지도 않은 사안"이라면서 "정부나 언론이 자칫 여론을 조성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사안을 올바로 판단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쌀 관세화를 둘러싼 답답한 논란의 본질은 애초에 2004년의 협상이 터무니없는 졸속이었던 데서 비롯한다. 그때도 농민들 반발이 거셌지만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전면 개방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의무 수입물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는 수동적인 태도로 협상에 나섰고 2014년까지 40만톤 이상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협정을 맺었다. 애초에 쌀이 식량주권의 문제며 다른 수출산업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원칙을 포기했다.
쌀 시장을 개방하자고 주장하는 일부 언론의 논리를 뒤집으면 다음과 같다. 애초에 이건 상식의 문제다.
첫째, 당장 의무 수입물량을 줄이기 위해 관세화를 도입하자고 주장하지만 관세율이 낮아질 경우 수입을 늘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둘째, 국제 쌀 값이 올라서 국내 농가가 경쟁력이 있다고 하지만 환율이 내려가고 국제 곡물시장 상황이 바뀌게 되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국내 농업이 무너지고 나면 아무리 비싼 값이라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셋째, 10년 뒤가 아니라 30년 뒤, 100년 뒤를 내다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당장 몇천억원 더 이익을 보는 문제가 아니다. 한번 개방하고 나면 이를 뒤집기는 훨씬 더 어렵다. 한번 무너진 농업을 다시 살리기는 더욱 어렵다.
참고 : 쌀 시장 개방 비준안, 누가 통과시켰나. (이정환닷컴)
참고 : 열린우리당의 무력감, "쌀 시장 개방, 피할 방법이 없다." (이정환닷컴)

살짝 뜬금없는 이야기인데, 작년초인가 국제 쌀가격이 엄청나게 뛰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몇주만에 몇배 수준) - 그런데 거래되는 쌀은 저희가 먹는 찰진 쌀이 아닌 japonica 품종이 아닌 indica인가 하는 안남미인가 하지 않나요? 실질적으로 수입한다는 japonica 품종의 최근 몇년간의 가격과 변동성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japonica 수출하는 나라는 그리고 미국밖에 없나요?
그거 한번 취재해 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렇잖아도 궁금하더라고요.
식량분야는 산업이라기 보다는 전략적 가치의 영역이라고 봅니다.
자유주의자들이 좋아하는 미국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시장에 맡겨서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것보다 보조금을 지급해서라도
적어도 현상유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할수 있다면.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의 주장을 보고 있으면 삐라에서 보여주던
북한의 유토피아적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치 모 종교단체가 나눠주는
선전물의 그것과 같은.
밀농사도 다시 시작해야 할때가 한참 지난듯 합니다.
쌀 문제에 관심이 있어 찾아와 읽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댓글에 대해 제가 아는 만큼만 말씀드리면...
쌀은 원래 밀이나 옥수수에 비해서는 무역량이 적고 내수 비중이 큽니다. 저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도 있고, 가공보다는 그냥 밥해서 먹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교역을 위한 상품으로서는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태국이나 베트남처럼 쌀 수출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들이 있으니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밀과 옥수수처럼 직접 낟알을 먹는 것보다 가공 원료로 더 많이 이용되는 곡물에 비하면, 그리고 주요 생산국에서 자기가 소비하는 양의 몇 배를 수출하는 곡물에 비하면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그 중에서도 자포니카는 교역이 더욱 제한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포니카를 배타적 주식으로 삼는 나라는 거의 일본과 한국 뿐이고요, 대만은 식민지시기 자포니카가 전래되었습니다만 꼭 자포니카만을 고집하지는 않습니다(그리고 쌀만을 주식으로 하지도 않지요). 일본, 한국, 대만 모두 그냥저냥 내수를 충족할 정도이고, 일본과 한국의 경우 보조금 부담때문에 증산은 커녕 감산을 유도하고 있지요. 대만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밖에 이탈리아/이집트/이란 등의 일부 지역에서 자포니카를 경작하기는 합니다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닙니다.
따라서 쌀의 국제 교역은 대부분 인디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말씀대로 인디카 위주로 형성된 국제 시세로 한국쌀의 앞날을 가늠하는 것은 명백한 에러지요.
물론 한국도 인디카를 약간 수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밥쌀용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요, 가공용으로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입쌀이 밥상에 올라간다면 자포니카인데, 미국산 아니면 중국산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고급 일본쌀도 수입되어 잘 팔리고 있지만, 금액은 높아도 시장 규모는 제한되어 있지요.
그렇게 본다면 국제 시세를 좌우할 정도의 규모로 수출용 자포니카를 경작하는 나라는 미국(캘리포니아)과 중국 일부(동북지방)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이 한국 쌀 시장을 열어 놓으면 우리가 차지할 수 있다"는 전략으로 한국 시장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가격 추이까지는 모르겠네요. 취재해 주시길 기다릴게요. ^^;;;
거의 완벽한 설명을 해주셔서 제가 뭐 따로 취재하고 말고도 없을 것 같은데요. 고맙습니다. 이럴 때 블로그 하는 재미를 느낍니다. 내 등은 도화지 님도 고맙고요.
우와 정말 살(쌀)신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