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천박한 노동관, 받아쓰기 바쁜 언론.

| 10 Comments | 6 TrackBacks .

정부가 은행의 해외 차입에 지급 보증을 서기로 했다. 세계적으로 금융 불안이 확산되면서 달러 가뭄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당장 정부가 보증을 서주기만 해도 외채 상환 연장 등에 숨통이 트이게 된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엉뚱한 데서 생색을 냈다. "국민들 세금으로 혜택 받는 은행들이 고임금 구조를 유지한 채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21일 청와대 국무회의 자리에서다.

이 대통령은 "옛날처럼 받을 임금 다 받고 문제가 생기면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이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면서 "은행의 자구적 대응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천박한 노동관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모습은 안쓰러움을 넘어 한심하고 참담할 정도다. 22일 상당수 언론이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비중있게 전달하면서 비판은커녕 대통령의 발언을 거들어 은행에 임금 삭감을 주문하고 있다.

일단 이번 지급 보증은 일시적인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말 그대로 외화 차입에 보증을 서는 것뿐이다. 일부 언론이 과장된 보도를 내보내긴 했지만 당장 혈세가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은행들이 상환을 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이를 물어줘야 하고 막대한 혈세를 쏟아 붓게 되겠지만 은행이 망하거나 세계 경제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치닫지 않는 이상 그럴 가능성은 낮다.

물론 당장 혈세가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 해도 특혜는 특혜고 자칫 도덕적 해이를 방치 또는 조장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이 삐걱 거릴 때마다 기업들의 경영 실패를 정부가 해결해 줄 수는 없는데 자칫 툭하면 너도 나도 정부에 손을 벌리게 될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짚고 넘어갈 부분은 과연 이런 도덕적 해이의 주체가 누구냐다. 은행의 경영진인가. 아니면 은행의 주주들인가. 아니면 은행의 노동자들인가.

도덕적 해이의 주체는 극단적인 탐욕으로 세계 경제를 수렁에 빠뜨린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가들이다. 이들과 이해를 같이 하는 우리나라 금융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나서서 부실 채권을 사들이고 은행들에 지급보증을 하고 외환보유액을 풀고 세금을 깎아줘 가면서 주가를 끌어올리고 온갖 대책을 쏟아내 이 고장 난 시스템을 다시 굴러가게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이들의 부실은 결국 국민들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좀 더 정확히 구분을 짓는다면 정부가 나서서 자본가들의 실패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덕분에 이 거대한 착취 시스템은 이제 지구적인 규모로 가동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비난하고 임금이 많다고 비난하는 것은 엉뚱하기도 할뿐더러 도대체 최소한의 논리적 설득력도 없다. 지금의 위기가 은행 노동자들이 임금을 많이 받아서 촉발된 것인가.

만약 이 대통령이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경고할 생각이었다면 자산 건전성을 확보할 것을 주문하고 금융 규제를 강화할 것을 검토했어야 한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의 교훈을 일깨워 극단적인 자유방임 시장 원리를 넘어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수 있는 사회적 통제 시스템을 고민했어야 한다. 정부 지원을 받았으니 임금을 깎으라고 말할 게 아니라 정부 지원을 받았으니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하라고 강조했어야 한다.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한들, 설령 정부가 은행에 지급 보증을 섰다고 한들, 노사 자율로 결정할 임금 문제를 간섭하고 나선 것은 매우 부당하고 주제넘은 일이다. 임금을 많이 받는 것이 온당치 못한가. 우리는 누구나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원하고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더 잘 사는 나라를 원한다. 그게 대통령이 할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나서서 임금이 많다고 타박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고 꼴 사나운 일이다.

더 한심한 것은 언론 보도 태도다. 중앙일보는 "월급 많이 받아가면서 또 손 벌리나"라는 선정적인 제목을 내걸었다. 이 신문은 "정부 지원을 받게 된 만큼 뭔가 '피 흘리는 모습'을 보이라는 압박이 은행에 가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매일경제는 "환란 아픔 잊었나… 은행 모럴 해저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임금을 향유하는 은행들이 위기상황이라고 정부 지원을 받는 관례가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와 경향신문, 서울신문 등은 주요 은행들 평균 임금을 비교한 표를 게재하면서 이 대통령의 발언을 거들었다. 한겨레 역시 "은행들 눈총 피하기 대책 부산"이라는 기사에서 "외환위기 뒤 공적자금을 받아 연명한 은행권 임직원들이 고액의 급여를 받고 있다는 따가운 눈길을 받고 있어 시늉으로라도 자구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고 지적하는 등 별다를 게 없는 논조를 펼쳤다.

이들의 임금을 깎으면 그 돈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세금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고객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익이 늘어나겠지만 그리 큰 규모는 아니고 주가가 조금이나마 오를 것이고 주주들 배당도 조금이나마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임직원들 임금을 깎는 것이 정부 지원을 받는 은행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일일까.

6 TrackBacks

TrackBack URL: http://www.leejeonghwan.com/media/mt-tb.cgi/1251

그건 그렇고 도대체 재산헌납은 언제? Read More

대통령의 천박한 노동관, 베껴쓰기 바쁜 언론. - 이정환닷컴! 이런 블로그가 지금 존재한다는게 감사히 느껴지는 그런 글. Read More

대통령의 천박한 노동관, 받아쓰기 바쁜 언론. - 이정환닷컴!. 이명박 대통령은 노동자들 사이를 이간질한다. IT가 고용을 줄인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 Read More

대통령의 감성 마케팅 : 모든 국민에게 몇백만원의 쿠폰을 주고 그 수입은 산삼뉴딜으로 충당하겠다는 허경영이랑 다를 게 뭔지 모르겠군. Read More

SweetCrop의 생각 from sweetcorn's me2DAY on October 22, 2008 10:37 PM

일단 너부터 줄이고 말해라 이놈아. Read More

실패의 탓을 근로자에 돌리는 천박한 대통령과 그를 뽑은 한국 국민. 여전히 한국 국민의 30%는 그를 지지하고 있다. Read More

6 TrackBacks

TrackBack URL: http://www.leejeonghwan.com/media/mt-tb.cgi/1251

그건 그렇고 도대체 재산헌납은 언제? Read More

대통령의 천박한 노동관, 베껴쓰기 바쁜 언론. - 이정환닷컴! 이런 블로그가 지금 존재한다는게 감사히 느껴지는 그런 글. Read More

대통령의 천박한 노동관, 받아쓰기 바쁜 언론. - 이정환닷컴!. 이명박 대통령은 노동자들 사이를 이간질한다. IT가 고용을 줄인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 Read More

대통령의 감성 마케팅 : 모든 국민에게 몇백만원의 쿠폰을 주고 그 수입은 산삼뉴딜으로 충당하겠다는 허경영이랑 다를 게 뭔지 모르겠군. Read More

SweetCrop의 생각 from sweetcorn's me2DAY on October 22, 2008 10:37 PM

일단 너부터 줄이고 말해라 이놈아. Read More

실패의 탓을 근로자에 돌리는 천박한 대통령과 그를 뽑은 한국 국민. 여전히 한국 국민의 30%는 그를 지지하고 있다. Read More

10 Comments

저도 그 발언을 들으면서, 언론들의 지원 사격을 보면서 갸우뚱 했습니다. 도대체 철학이나 상황 분석 능력, 본질을 보지 못하고 늘 엉뚱한 방향에 대고 남탓하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구조적인 문제를 말초적인 언사와 대중영합적인 압력으로 어떻게든 땜질 처방하기에 바쁘니... 걱정이 커지네요. 국민을 상대로 가장 낮은 차원의 리더십 실험만 거듭하고 있으니...어이가 없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건설업체들의 부실 방만한 운영으로 인해 국민 세금 6조원이 들어가는건 괜찮다고 보는가보네요. 저런 떡고물 주워서 확대 재 생산할 생각이나 하고 -ㅁ-

이정환님 씀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의 교훈을 일깨워 극단적인 자유방임 시장 원리를 넘어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수 있는 사회적 통제 시스템을 고민했어야 한다"

-> 연봉상한제 같은 제도도 위에서 말씀하신 '통제 시스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저런 기사들이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다른 노동자들과 구직자, 실업자들에게는 실제로 먹힐 것이며, 노동자들 간의 질시와 분열을 조장한다는 점이겠지요...

과거의 외환위기 당시 IMF가 요구했던 것들이 오히려 정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정부나 세계 각국에서 내놓는 처방책은 단기적이고... 결국에는 더 큰 부실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네요.

이 건은 대통령의 노동관을 언론이 받아쓰는게 아니고, 국민다수의 노동관을 대통령과 보수언론(한.경을 포함한)이 반영하고 있는거죠. 그 다수의 노동관이 '천박'하다면 천박한거고요. 아무튼.

문제는 저런 식의 논조가 국민들에게는 먹힌다는 거죠.

우리 국민들은 자신들보다 많이 받는 노동자들, 예를 들어 현대차라던가 아님 공기업 노동자들에게 뿌리깊은 질시를 가지고 있고, 이를 자본이나 보수언론들이 이용하는거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고소득자에 대한 감세를 통한 소위 '낙수효과' 보다는 현대차나 공기업처럼 다른 노동자들보다 많이 받는 노동자들이 존재함으로써 따라서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올라가는 '낙수효과'가 더 많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저도 대기업에 근무하는데, 공기업등이 더 좋은 근로조건을 제공하고 그 때문에 신입사원들이나 후배들이 그쪽으로 빠져나가면서, 회사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많이 좋아지는 것을 실제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국민들의 천박한 인식이 저런 지도자를 배출하고 저런 언론관을 키워놓았습니다.
해방이후 반공과 발전만 부르짖으면서 우리 모두가 너무 천박하고 어리석어
진 결과라고 봅니다. 돈만 되면 다른거 다 필요없다는 식의 사고가 바로 그 증거라
봅니다. 친일부역자들이 친미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군림하지 못했다면
얘기가 좀 달라졌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국민들 개개인이 거울보고 반성할 타이밍을 한참 놓친것 같습니다.

CEO의 평균 연봉이 근로자들의 약 200배가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신 자유주의의 실체입니다.

Leave a comment

Contact

all@leejeonghwan.com

About this Entry

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이정환 published on October 22, 2008 9:39 AM.

6만개 건설사를 모두 살리는 방법은 없다. was the previous entry in this blog.

대우조선해양 집어삼킨 한화, 배탈날 염려는 없나. is the next entry in this blog.

Find recent content on the main index or look in the archives to find all content.

Recent Entries

Recent Comments

  • toto: CEO의 평균 연봉이 근로자들의 약 200배가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신 read more
  • 紅: 국민들의 천박한 인식이 저런 지도자를 배출하고 저런 언론관을 키워놓았습니다. read more
  • -_-: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read more
  • 행인: 문제는 저런 식의 논조가 국민들에게는 먹힌다는 거죠. 우리 국민들은 자신들보다 read more
  • sok: 이 건은 대통령의 노동관을 언론이 받아쓰는게 아니고, 국민다수의 노동관을 대통령과 read more
  • 필넷: 과거의 외환위기 당시 IMF가 요구했던 것들이 오히려 정답이 아니었나 하는 read more
  • sonofspace: 문제는 저런 기사들이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다른 노동자들과 구직자, 실업자들에게는 read more
  • 날개: 이정환님 씀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의 교훈을 일깨워 극단적인 자유방임 시장 read more
  • 댕글댕글파파: 건설업체들의 부실 방만한 운영으로 인해 국민 세금 6조원이 들어가는건 괜찮다고 read more
  • 그만: 저도 그 발언을 들으면서, 언론들의 지원 사격을 보면서 갸우뚱 했습니다. read more
This blog is licensed under a Creative Commons License.

Information

Powered by Movable Type 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