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사장 해임… 28년 전의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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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사회가 8일 오전, 정연주 사장의 해임 제청안을 가결했다. 이를 위해 경찰 병력이 본관까지 투입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일부 기자들이 강제 연행되기도 했다. 이날 이사회의 해임 제청은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기 위해 대통령의 면직 규정을 없앤 통합방송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사회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정 사장을 해임할 권리가 없다.

이명박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언론장악 음모는 시계바늘을 20년 전으로 돌린 듯 엄혹하고 암울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 포인트=언론인 출신 앞잡이들.

이명박에게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나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있다면 전두환에게는 허문도 정무수석 비서관이 있었다. 최시중과 신재민은 각각 동아일보 부국장과 조선일보 정치부장 출신이다. 허문도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다.

허문도는 12·12 군사쿠데타 직후 전두환을 찾아가 언론을 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고 비서실장으로 발탁된다. 그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언론분과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언론 정화라는 명목으로 700여명의 언론인을 강제 해직시키고 5공화국 출범 이후에는 대규모 언론 통폐합을 강행한다. 전두환의 언론 통폐합은 세계 언론사를 통털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신아일보가 경향신문에 흡수통합됐고 지방지도 1도1사 원칙에 따라 도마다 1개씩만 남기고 통폐합됐다. 통신사도 동양통신과 합동통신을 연합통신으로 통합하고 시사통신과 경제통신, 산업통신 등 군소통신사들도 모두 흡수통합했다. 방송사도 동양방송을 KBS에 통폐합시켜 KBS2 TV를 신설했고 TBS라디오도 흡수, KBS 2FM으로 개편했다. 정부 비판에 앞장섰던 동아방송도 KBS가 흡수, 라디오서울로 개칭했다. CBS는 보도기능을 일체 없애고 종교방송만 하도록 했다. 또한 MBC는 주식 65%를 KBS에 넘기도록 해 모든 방송이 사실상 KBS로 일원화되도록 했다. KBS는 MBC뿐만 아니라 서울신문 주식의 99%, 연합통신 주식의 30% 등을 소유하도록 했다.

이명박에게는 최시중과 신재민 뿐만 아니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 등도 있다. 각각 동아일보 정치부장과 조선일보 인터넷뉴스부 차장 출신이다. 이들은 모두 이명박과 오랜 친분을 쌓았거나(최시중) 대선캠프 시절부터 일찌감치 줄을 선 사람들이다. '아는 놈이 더 무섭다'더니 이들은 특정 언론에 정부 광고를 빼겠다며 협박을 하거나(신재민) 툭하면 보도유예나 비보도 협정을 남발하기도 하고(이동관) 기사를 빼주면 은혜를 갚겠다는 청탁을 하기도 하고(이동관) 부정적인 여론을 확산시키는 포털 사이트를 협박하는(진성호) 등 언론장악의 선봉을 자처하고 나섰다.

두 번째 포인트=언론사에 낙하산 인사 투하.

대규모 언론 통폐합으로 어용 언론을 만드는데 앞장 선 사람이 전두환 시절 허문도였다면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한 사람은 이원홍과 이진희였다.

이원홍은 한국일보 편집국장 출신으로 박정희 시절 문화공보부 일본 공보관장을 맡고 있다가 전두환 정부 출범 이후 KBS 사장으로 옮겨온다. 이른바 땡전뉴스도 그의 작품이다. 땡전뉴스는 뉴스 시간 45분 가운데 30분을 전두환의 동정에 할애할 정도로 MBC와 낯뜨거운 충성경쟁을 벌였다.

이진희는 서울신문 주필 출신으로 일찌감치 국보위 시절부터 전두환에게 줄을 섰다. 대통령 중심제가 옳지 않다는 칼럼을 써서 신군부의 등장에 명분을 실어줬고 육사 동기라는 인연으로 전두환 정부 출범 이후 MBC 사장을 거머쥐게 된다. 취임 직후 그는 간부 이하 전 직원들의 사표를 받아 90명 이상을 내보냈다.

이명박이 전두환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하고 있음은 최근 YTN이나 KBS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MBC 보도본부장 출신 구본홍은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방송총괄본부장을 맡았던 공로를 인정받아 YTN 사장으로 임명된다.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에 부딪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는 6일 새벽 사장실에 잠입, 8일까지 2박3일 동안 나오지 않고 있다. 그가 언제까지 사장실에서 나오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사장으로서의 명분을 확보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은 YTN 뿐만 아니라 아리랑TV와 스카이라이프, 한국방송광고공사 등에 자신의 대선캠프 방송담당 특보 출신들을 임명했고 최근에는 박래부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에게도 사퇴 압력을 넣고 있다. 무엇보다 압권은 정연주 KBS 사장을 내쫓으려는 시도다. 8일 이사회에서 해임 제청안이 가결되면서 이제 공은 이명박에게 넘어간 상태다. 정부는 이날 이사회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상 최초로 KBS 본관에 경찰 병력을 투입하기도 했다.

세 번째 포인트=저항하는 기자들과 침묵하는 기자들.

5공 때와 차이라면 이미 상당수 신문들이 제대로 저항도 없이 정부에 줄을 섰고 정부의 이데올로기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의 여론통제와 언론장악을 기꺼이 거들고 나섰다는 점이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1975년 박정희 정부의 신문검열에 항의해서 강제해직된 뒤 동아투위를 만들어 힘겨운 투쟁을 10년 이상 계속했다. 동아일보는 한때 정부의 광고 탄압에 맞서 백지광고를 내면서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이내 변절했다.

전두환이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보도지침을 강제했을 때 한국기자협회는 강력히 저항했고 이를 주도했던 기자들은 끝까지 굴하지 않고 해직을 감수했다. 기자들은 용공이나 유언비어 살포 혐의로 수사기관에 불려가기도 했고 해직 이후에도 취업에 불이익을 받았다. 해직언론인 가운데 상당수는 1988년에 창간한 한겨레신문이나 국민일보로 옮겨갔다. 정연주 KBS 사장이나 표완수 전 YTN 사장, 고영재 전 경향신문 사장, 정남기 전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김언호 한길사 사장 등이 대표적 해직기자들이다.

그러나 2008년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정부가 공영방송의 사장을 갈아치우려 하는데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신문이 일제히 침묵하고 있다. 여론통제나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도 아무런 비판이 없다. 방송통신심의위가 방송의 논조를 문제 삼아 PD수첩에 시청자 사과를 명령한 것에 대해서도 이들 신문은 오히려 PD수첩을 문제 삼고 나섰다. 그 논조에 동의하느냐 여부를 떠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중대한 사건이었지만 이들 신문은 기꺼이 정부의 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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