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살게 해달라는 요구가 황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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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속 2교대제를 보는 보수·경제지들의 불편한 시선.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였다. 더 적게 일하고 더 잘 살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1840년대 영국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15세였고 이들의 노동시간은 14~16시간이나 됐다. 하루 8시간 노동은 1886년 5월 1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시작된 총파업 투쟁의 성과였다. 경찰과 군대의 발포로 6명의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체포되고 이 가운데 5명은 결국 사형까지 당했지만 이들의 희생은 절대 빈곤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됐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1970년 11월13일 분신 사망한 전태일 열사는 10시간 노동을 요구했다. 그 무렵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하루 15시간씩, 일주일이면 거의 100시간씩 일했다. 다음은 그가 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부분이다.

"평균 연령 15세의 어린이들이 하루에 70원 내지 160원의 급료를 받으며 1일 15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5시간의 작업 시간을 1일 10시간으로 단축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때도 이미 근로기준법 50조에는 노동시간을 휴식시간 빼고 하루 8시간, 1주일에 48시간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 법은 2003년에 개정돼 주 40시간으로 줄어든다. 노동시간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일터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 산하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 노조)가 임금조정 없는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주야 맞교대로 10시간씩 일하고 있다. 주간조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50분에 퇴근하면 야간조는 저녁 9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8시에 퇴근하는 방식이다. 노조의 요구는 주야 맞교대를 주간 2교대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오전조가 아침 6시40분에 출근해서 오후 3시20분에 퇴근하고 오후조가 오후 3시20분에 출근해서 저녁 12시에 퇴근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경우 노동시간이 '10+10'에서 '8+8'로 줄어들게 되고 생산물량에 차질을 빚게 된다는데 있다. 사용자 측의 요구는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임금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고 노조 측의 요구는 임금 감축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산 차질은 어떻게 할 것인가. 노조는 공장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11일 한국경제는 "현대차 노조 '황당한 요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을 소개하고 있다. 기사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쓰였지만 제목에서는 이를 '황당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신문은 현대차 협력업체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노조를 비판한다. "주간 연속 2교대제는 4500여개 부품업체의 영향과 파급 효과를 고려할 때 한국 자동차산업 전반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국가 경쟁력 차원의 면밀한 연구와 검토가 이뤄진 뒤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현대차 근로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겠지만 근로 조건이 열악한 중소 부품업체들은 생활난이 더 가중될 것"이라며 "근무 형태 변경을 현대차 노사만의 이해관계 중심으로 풀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신문은 교묘하게 논점을 벗어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애초에 신규 투자와 고용 확충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 공장 신설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신문은 노동시간을 줄이면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되고 협력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현대차 노동자들만 혜택을 누린다'는 주장 역시 논점을 흐트러뜨린다.

중앙일보는 "2교대제 근무·파업은 안 돼/현대차 협력업체 살려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예 협력업체 협의회 관계자의 인터뷰를 비중있게 실었다. 이 관계자의 주장은 역시 "노동시간을 줄이면 생산물량이 줄고 당장 협력업체들은 납품 매출 감소라는 타격이 온다"는 것. 생산물량 감축 없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발전적인 고민을 배제하는 주장이다. 이 신문은 "노조는 '근무시간은 줄이면서 임금은 깎이지 않겠다', 회사는 '임금을 깎지 않으려면 16시간 근무로 20시간분 생산량 보장하라'고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인간답게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건강을 무너뜨리고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가정생활까지 위협하는 심야 노동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길다. 심야 노동이 평균 수명을 13년 이상 앞당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노동시간 단축의 유일한 해법은 공장을 신설하고 고용을 늘리는 것이다. 그만큼 이윤이 줄어들겠지만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 말고 이윤을 늘릴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인간답게 살게 해달라는 요구,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이런 요구가 황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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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학주니 said: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생산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아무래도 공장자동화 등의 자동화겠죠. 기계가 알아서 다 해주고 필요한 인력은 관리자들 뿐일테니까요.
그런데 또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이 많이 필요없게 되니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될테고 말이죠.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이정환 said:

생산성을 높여서 인력을 줄이고 그 인력을 다른 산업에 배치하면 됩니다. 기업에게는 부담스러운 도전이겠지만 그래야 산업 구조개편이 되겠죠. 재취업이 가능한 사회보장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할 거고요. 생산성 향상 없이 낮은 임금으로 버티려면 중국이나 인도, 베트남, 좀 더 있으면 아프리카와 경쟁을 해야할 겁니다.

강정수 said:

'생산성' 향상 노력은 결국 해당 기업의 '경쟁력' 향상, 나아가 새로운 산업 형성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예: 일본의 thin production, 독일의 자동자 공장 설비 기술 등). 현대차의 경우, 노동자들의 '희생'만큼 '가격 경쟁력' (이도 '환율 변동' 아래 종속 변수지만요)을 얻고 그 만큼의 '기술/잠재적 경쟁력'을 읽어버리고 있겠죠. 한경과 중앙의 논조는 이런 점에서 70, 80년대 보수주의 시각에 머물러있다 볼 수 있습니다. 딱히 저가 노동력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보수적 관점(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 ^.^)에서도 딱한 소리죠.

심장원 said:

다른 건 다 떠나서 주야 맞교대제는 사라져야 합니다.
제가 하루 3교대제에서 일해 봐서 아는데 그거 사람이 할 짓이 못 됩니다.
주간 2교대는 이정환 님 말 그대로 인간답게 살게 해달라는 요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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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이정환 published on July 11, 2008 10:32 AM.

초등학생도 웃고 갈 촛불시위 피해 계산. was the previous entry in this blog.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보내온 메일. is the next entry in thi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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