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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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확산시키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자유무역과 개방이 결국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중국과 인도의 눈부신 성장,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굶기를 밥 먹듯 했던 나라 사람들이 전문직 일자리를 갖고 렉서스를 몰고 삼성전자 LCD TV가 있는 번듯한 아파트에 살게 됐다는 등의 사실만 돌아봐도 세계화의 매력을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을 것처럼 보인다. 세계화 예찬론자들은 '세계는 평평하다'고 선언하면서 이제 누구라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다. 더 많이 개방할수록 더 잘 살게 된다는 극단적인 논리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의 조기 비준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발견된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는 이런 세계화의 허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책이다. 캘리포니아대학 역사학 교수인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성장 없는 도시화의 문제를 파고 든다. 코트디부아르, 탄자니아, 가봉, 앙골라 같은 나라들은 경제 성장률이 해마다 2~5%씩 줄어드는데 어떻게 도시 인구가 4~8%씩 늘어날 수 있을까. 루안다에서는 전체 가구의 4분의 1의 하루 소비가 1인당 75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1993년 기준으로 유아 사망률은 1천명당 320명에 이른다. 세계화 시대에 이처럼 슬럼이 확산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슬럼(slum)'은 '사기'를 뜻하는 속어였는데 19세기 중반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를 뜻하는 단어로 변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세계화의 이면, 도시의 슬럼화 현상에 주목한다. 제3세계에서는 지금 도시가 급속도로 팽창하지만 GDP(국내총생산)은 오히려 후퇴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농촌이 붕괴하면서 도시로 몰려든 농민들은 거대한 슬럼을 구축한다. 도시는 슬럼을 착취하고 극단적인 양극화 구도를 형성한다. 착취 구조는 특정 나라와 특정 도시를 넘어 세계적으로 확산된다.

에콰도르에서는 1980년대 경제 위기의 여파로 불완전 고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과야킬과 키토에서는 노동력의 절반이 불완전 고용으로 추산됐다. 인디오과야스에서는 남편들이 임시직 노동자로 전락해 집에서 빈둥거리자 여성과 아이들이 일거리를 찾아 나서게 됐다. 여성의 노동 참여율은 40%에서 52%로 늘어났지만 공장 고용이 감소하면서 노점상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됐다. 이곳 아이들의 80%가 영양실조 증상을 보이고 있다. 75만명의 아동 노동자가 있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아이들이 버는 돈은 여성의 절반, 남성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이집트에서는 12세 이하 어린이들이 전체 노동력의 7%를 담당한다.

저 멀리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우리나라를 돌아보면 그리 낯선 상황도 아니다. 마이클 데이비스는 말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식 직업이 재편되면서 불안정한 고용이 일반적인 고용 형태가 됐다는 점이다. 직장이 안정성을 잃고 시간제 고용이 흔해지고 소규모 공장과 외주 계약이 관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노동자와 피고용자들은 직장을 잃지 않으려면 좀 더 많이 일하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2004년에 나온 UN 인력개발보고서에 따르면 46개 나라 사람들이 1990년보다 더 가난하게 살고 있다. 25개 나라 사람들은 10년 전보다 더 많이 굶는다. 세계화가 굶는 사람을 줄여줄 거라는 기대가 터무니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IMF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은 높아졌지만 비정규직은 크게 늘어났고 소득 격차도 더욱 확대됐다.

20세기 말 기준 세계적으로 지니계수는 0.67에 이른다. 세계 인구 가운데 하위 3분의 2가 소득이 0이고 상위 3분의 1이 모든 것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제3세계 전역에서 국가에 의한 고용과, 국내 제조업, 내수 농업이 급속도로 붕괴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경우 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1980년대 40%에서 2004년 15%로 떨어졌다.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체결한 뒤 극빈층 비율이 1992년 16%에서 1999년 28%까지 늘어났다. 이집트는 5년간 경제가 성장했지만 빈곤가구는 줄지 않았고 1인당 소비는 오히려 하락했다. 알제리에서도 230개 공장이 민영화되고 13만명의 국가 노동자가 해고되면서 빈곤율이 1988년 15%에서 1995년 23%로 치솟았다.

콩고의 수도 칸샤사의 1인당 평균 소득은 100달러 이하다. 인구의 3분의 2가 영양실조에 걸려있고 성인 5명 가운데 1명이 HIV 양성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진료를 받을 방법이 없어 대부분 토착 신앙과 주술에 의존하고 있다. 아이들은 군대에 끌려가거나 매춘 전선에 나서거나 여성들은 장기 매매로 생계를 유지한다.

콩고는 32년의 독재를 거치면서 광산산업을 담보로 세계은행에서 돈을 빌려다 썼다. 대출금의 대부분이 독재정권의 스위스 은행 계좌로 흘러 들어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이후 IMF가 들어왔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시장을 개방하고 외환 규제를 풀고 공공부문을 축소하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다이아몬드 수출을 늘렸다. 그 결과 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통화체계가 붕괴됐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의 확산이 세계은행과 IMF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중국과 인도의 화려한 고속 성장 그 이면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UN에 따르면 1996~2001년까지 중국의 국영 제조회사 수는 40%나 줄었고 3600만명의 실업이 발생했다. 중국의 도시 실업은 8~13%로 추산된다. 중국의 도시 빈곤은 371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다. 수천만명의 임시 해고 고용자와 여전히 농민의 범주에 들어가는 1억명의 망류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인도에서도 전체 인구의 70%가 살고 있는 농촌지역의 평균 소득 증가율은 1980년 3.1%에서 2000년에는 1.8%까지 줄어들었다. 농업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2% 이상 하락했다. 슬럼의 성장 속도는 인구 증가 속도의 2배에 이른다.

세계화 예찬론자들은 방갈로르에서 인도의 미래를 찾지만 마이크 데이비스는 방갈로르 변두리 슬럼을 주목한다. 마이크 데이비스에 따르면 방갈로르 변두리는 도시 빈민을 처리하는 쓰레기장이다. "도시 경제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이들의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최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놓아야 한다." 방갈로르에는 넝마주이와 떠돌이 아이들이 9만명에 이른다. 10개 슬럼에 사는 주민이 10만2천명인데 화장실은 19개 밖에 안 된다.

UN에 따르면 슬럼 인구는 해마다 2500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주변 중의 주변,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들의 생존 조건을 "반죽음 상태"라고 규정한다. 도시의 확산과 그 이면의 슬럼의 확산, 구조화된 착취 구조와 극단적인 양극화. 이게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현실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글로벌 착취 구조의 다른 이름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노동 유연화라는 구호 아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슬럼으로 밀려난다. 슬럼은 방글라데시와 에콰도르, 콩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서울에도 존재한다. 세계적인 민중의 연대가 절실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 /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 김정아 옮김 / 돌베개 펴냄 / 1만5천원.

참고 : '세계는 평평하다'를 읽다. (이정환닷컴)
참고 : 궤변으로 점철된 공병호의 장하준 비판. (이정환닷컴)
참고 : '한국경제 새판짜기' Vs. '쾌도난마 한국경제'. (이정환닷컴)
참고 :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다.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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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슬럼이라는 도시 주변에 오히려 도시 규모를 능가할 정도로 확산되는 이 문제는 제가 있는 영국에서도 새롭게 등장하는 이슈입니다. (물론 영국 내에 그런 슬럼이 있다는 것이 아니고 국제 이슈 부분에서 말이죠.)

얼마전 채널4뉴스에서 메가슬럼에 대한 특집을 봤는데 그 생활 수준이나 상태가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옆에서 같이 보던 아내가 속이 불편하다고 채널돌리면 안되겠냐고 사정할 정도였으니까요.

꼭 세계화 결과에 따른 폐해라는 지점보다는 새롭게 등장한 새로운 위협요소(risk)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선 그 어마어마한 규모면에서 이를 대처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사태로 귀결될지 모른다는 (오히려 도시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죠.

얼마전에는 새로운 전염성 질병이 창궐한다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확산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본적이 있습니다. 전염병 창궐에 거의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메가 슬럼이 그 핵심 이유중 하나였지요. 결국 세계적인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지구 온난화 등과 함께 국제적으로 대응해야할 과제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아무튼 계속 국내에서는 매우 소홀한 국제적인 이슈를 많이 소개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보롱이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결국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려면 노동자 민중도 세계적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게 되는데요. 공부가 많이 부족합니다. 세계적인 민중의 연대라는 게 모호하고 까마득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몇가지 계획을 갖고 있으니 좀 더 지켜봐 주세요.

저의 의견은 잘 모르고 쓰는 것이니까 이상한 논리라도 너무 무시하지 말아주십시요^^ 유럽연합은 일종의 세계화 아닙니까? 세계화가 빈부격차를 늘리는 것은 사실이자만 또한 성장을 올리는 효과도 있는 것은 아닐까요? 또 기술화로 인한 세계적 빈부격차가 더 크다고 알고 있는데 아닐까요?

스웨덴같은 경우 세금전 소득에서는 우리보다 더 지니계수가 높지만 세금후 소득에서는 지니계수가 우리보다 더 작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

즉 세계화는 어쩔수 없는 대세이고(그렇다고 한미fta를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세계화를 국내적인 정책으로 수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즉 세계화를 피해가는 것이 가능할수 있냐는 말입니다.
즉 많은 국민들(특히 중도적 사람들)이 세계화는 우리가 피해가고 싶다고 피해질수 없는 문제라는 의식을 많이 접하고 저도 그런사람입니다...

즉 세계화는 어쩔수 없는 현상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내적 정책(즉 높은 세금이나 복지적 혜택)으로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아니냐는 의문이 있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세계화가 가져온다는 성장이 사실은 착취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남미나 아프리카를 착취해서 우리나라가 더 잘 살 수 있다면 좋은 것일까요? 제3세계를 착취하면서 내부적으로 복지정책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고 말이죠. 다분히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는 발상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이런 착취 구조가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도 정착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슬럼의 확산은 남미나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 대한민국 서울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닐까요? 한미FTA를 밀어붙이는 사람들은 성장을 위해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성장이 과연 모두를 위한 성장일까요.

SF영화에서 나오는 디스토피아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대안이 뭔가요? 전 세계적 민중이 연대하여 또 다시 혁명?
아니면 중국이나 인도애들한테 가서 TV보지 말고 고기 먹지 말고 차사지 말고 쇼핑하지 말라고 할까요?

바로 위에분과 같은 의견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들 달려 가는데, 우린 그냥 이상을 이야기 하면서 이대로 머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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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이정환 published on February 19, 2008 11:1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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