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무력화 기도 시작됐다.

| | Comments (2) | TrackBacks (1)

국민연금의 딜레마는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연금을 받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데서 비롯한다. 평균 수명만큼만 살아도 평생 내는 보험료보다 나중에 받게 될 연금 총액이 더 많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적자 부분을 메워야 한다. 국민연금은 애초에 적자 재정일 수밖에 없고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우리는 우리 다음 세대가 내는 돈으로 연금을 받게 된다. 이를 부과식이라고 한다.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국민연금 고갈은 끔찍한 재앙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고갈될 수밖에 없고 고갈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은 인구 고령화의 초반이기 때문에 내는 돈이 받는 돈 보다 많을 수밖에 없고 적립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내는 돈 보다 받아가는 돈이 더 많아지게 되고 적립금이 줄어들다가 결국 고갈되고 그 뒤에는 젊은 세대가 내는 돈을 나이 든 세대에게 그대로 전달하게 된다. 핵심은 고령화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젊은 세대가 내는 보험료로 나이 든 세대의 연금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 균형을 맞추는데 있다.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됐던 1988년만 해도 소득의 3%를 내면 60세 이후 평균 소득의 70%를 주겠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그러다가 10년 뒤인 1998년 보험료를 9%로 높이고 소득 대체율을 60%로 낮췄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보험료는 그대로 두되, 소득 대체율을 다시 40%로 낮췄다.

지난해 국민연금법 개정은 다분히 임시 방편이었다. 고갈을 늦추기 위해 소득 대체율을 줄이긴 했지만 정작 보험료율을 높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해법은 결국 누군가가 더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부담을 줄이려면 우리 세대가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들 반발을 우려해 보험료율을 높이지 않았다. 고갈 시점을 2047년에서 2061년으로 늦추긴 했지만 정작 가뜩이나 용돈 수준의 연금이 더 줄어들게 됐다. 그동안 노무현 정부를 비판해 왔던 한나라당 역시 해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는 최근 소득 대체율을 40%에서 20%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국민연금 개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보험료율을 9%로 유지하되, 소득 대체율을 40%에서 20%로 낮추고 보험료 상한제를 폐지, 낸 만큼 돌려받는 비례연금제도로 바꾼다는 것이다. 또한 기초노령연금을 실시, 노인 80%에게 평균소득의 20%를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인수위 계획에 따르면 기초노령연금으로 월 34만 원 정도, 여기에 국민연금으로 평균 소득의 20%를 받게 된다. 기초노령연금은 별도의 보험료를 받지 않고 정부 재원으로 지급된다. 이 경우 국민연금의 고갈을 늦출 수 있겠지만 연금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기초노령연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노후 생계유지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문제는 기초연금의 경우 재원이 수십 조 원에서 장기적으로는 수백 조 원이 필요할 텐데 정작 이에 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데 있다. 자칫 기초연금 도입을 빌미로 국민연금을 축소한 뒤 다음 정부와 다음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기초연금의 재원을 간접세로 충당할 경우 오히려 역진적인 복지제도가 될 우려도 있다.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기초연금 도입을 주장해 왔다. 노무현 정부와 대통합민주신당에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나라당의 기초연금 도입은 민주노동당에서도 일부 동의하는 부분이다. 물론 재원 마련과 급여 수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크다.

한나라당은 이제 당장 집권당으로서 국민연금의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국민들 반발을 무마하면서 국민연금을 해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바로 기초연금이다. 주목할 부분은 인수위가 국민연금의 보험료 상한을 폐지하겠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보험료 상한이 폐지되면 고소득 계층도 내는 만큼 연금으로 돌려 받게 된다. 이 경우 적게 내는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좀 더 많은 연금을 돌려주고 많이 내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좀 더 적게 받는 국민연금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 무력화하게 된다.

정치권은 국민들의 눈치를 보고 언론은 그런 정치권을 추동한다. 노후를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에서 탈출하기를 바라고 그들이 여론을 주도한다. 그러나 핵심은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이 더 많은 부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용기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보수 기득권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오히려 그들의 주머니를 불려주는 대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인수위와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크다. 연금의 금융화는 세계적인 연금 개악의 과정이기도 하다. 많이 내는 만큼 많이 받아가는 구조는 고소득 계층에게 유리하겠지만 저소득 계층에게는 연금이 무용지물이 된다. 분명한 것은 고소득 계층의 부담 없이는 연금 개혁의 해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세대가 부담하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의 고통이 배가된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론의 국민연금 관련 보도는 이런 맥락을 모두 빠뜨리고 있다. 국민연금 무력화 시도는 이미 진행 중이다. 인수위와 한나라당의 국민연금 개편에 숨은 의도를 제대로 읽어내는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1 TrackBacks

Listed below are links to blogs that reference this entry: 국민연금 무력화 기도 시작됐다. .

TrackBack URL for this entry: http://www.leejeonghwan.com/media/mt-tb.cgi/972.

적어도 인수위 내에서는 금산분리 완화 조치가 당연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언론은 금감위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자신들의 몇 개월 전의 강경한 금산분리 철폐 반대 입장에서 선회하여 금산분리 완화에 찬성하였다는 보도를 흘렸다.1 경제신문은 금산분리 완화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철폐”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그것이 가지는 함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인수위 측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금산분리 철폐의 궁극적... Read More

2 Comments

foog said:

저도 아침에 이 기사를 보고 시나리오대로 착착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초연금과 비례연금제.. 두가지 상반된 떡밥을 섞었는데 어떤 것 하나는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일텐데 말이죠.

사필귀정 said:

이정환기자님 정말 실망입니다.

"국민연금은 고갈될 수밖에 없고 고갈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구요? 국민연금의 실체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길래 감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묻고 따지지 않을 수가 없군요.

국민연금의 고갈은 분명 "재앙"입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가리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 2003년 재정재계산 결과에 의하면,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에 무려 407조원의 적자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적자의 규모는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적자를 메우려면 현재 9%인 국민연금보험료가 33% 이상으로 인상되어야 합니다.

이 적자를 이정환 기자님이 다 메워주실 게 아니라면, "고갈은 당연하다"는 발언은 철회해주시기 바랍니다. 왜 대한민국 국민들이 유럽의 털끝에도 못미치는 복지를 위해 유럽만큼의 세금을 부담해야 됩니까?

게다가, 현행 국민연금제도에 소득재분배기능이 없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국민연금이 저소득자에게 더 가혹하다는 연구보고서가 이미 국내외 기관에서 숱하게 발표되었습니다. 필요하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처럼 국민연금에는 애초에 소득재분배기능이 없었으므로, 이기자님이 지적하시는 소득재분배 기능의 무력화는 일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국민연금은 세대간에 서로 연대하여 고령화에 대비하겠다는 "사회적 합의"없이 지도층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시행된 "잘못된 제도"입니다.

이정환기자님은 젊은 세대가 내는 보험료로 나이 든 세대의 연금을 충당하는 제도라고 국민연금을 이해하고 계시지만, 실제로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자신이 내는 보험료로 나이 든 세대에게 연금을 주는 데에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인 사회복지정책에 "사회적 합의"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지요.

"사회적 합의"가 없는 강제 징수는 "도둑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국민연금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은 것도 바로 이때문입니다.

게다가, 참여정부는 허울좋은 사회복지를 내세워 실상은 그 돈을 가지고 한국형 뉴딜이다 뭐다 해서 수십조원 규모의 이명박식 토목공사를 벌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기초연금과 비례연금제는 서로 상호보완적인 제도로 국민연금을 대체할 유력한 대안으로 일찌감치 검토되어온 제도이며, 이미 호주와 같은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오로지 국민연금만이 우수한 제도이고,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제도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동일한 형태를 취하는 공적연금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답니다.


긴 글 다시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 국민연금은 "사회적 합의"가 결여된 제도입니다.
○ "사회적 합의"가 없는 강제 징수는 "도둑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 국민연금에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없습니다.
○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으려면, 고소득자가 손해를 봐야 하는데, 현행 국민연금제도 하에서는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율이 아닌 금액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가져가는 금액은 고소득자가 훨씬 많습니다.

● 국민연금 고갈되면 큰 재앙이 일어납니다.
○ 해마다 쌓이는 수백조원의 적자는 대한민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이 되어야지, 정권의 쌈짓돈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 기금을 적립하지 않고, 바로바로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 그리고 개인의 사유재산이 되어 국가가 기금운용에 관여할 수 없는 비례연금은 현재 정권의 이익을 위해 잘못 운용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유력한 대안입니다.

※ 저 역시 한나라당의 기초연금+비례연금제가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고령화의 늪에서 구해내기 위해선, 현행 국민연금의 구조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안을 제 블로그(http://8secrets.net/8)에 올려놓았으니 반론이 있으시면 방문한번 해주시기 바랍니다.

Leave a comment

E-mail Address

이메일 주소.

About this Entry

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이정환 published on January 7, 2008 9:33 AM.

'토건국가'와 '작은 정부', CEO 대통령의 딜레마. was the previous entry in this blog.

보험사에 뒤통수 맞지 않으려면. is the next entry in this blog.

Find recent content on the main index or look in the archives to find all cont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