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아, 사회책임투자가 해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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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세웠던 구호다. 대선 후보들은 너도 나도 경제를 이야기한다. 보수·경제지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문제는 경제라고 떠들어대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이냐다.

펀드의 의결권 행사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우리 경제 시스템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27일 자산운용협회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서는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핵심은 주주 가치를 극대화 하되, 기업의 적대적 M&A(인수합병) 방어 조항에는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의결권 내용을 사전 공시하도록 한 제도를 폐지하고 외부 기관에 의결권 행사를 위탁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한국경제는 28일 27면 <펀드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논란>에서 "기관의 의결권 남발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기관의 의결권 행사가 국내 기업들의 적대적 M&A로부터의 방어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소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머니투데이는 14면 <"펀드 의결권 지침 현실 무시">에서 "국내 기업지배구조의 현실을 무시한채 영미형 권고를 과잉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법상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이 금지된 상황에서 가이드라인에서조차 이를 반대하는 내용을 담을 경우 경영진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자산운용업계 관계자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경향신문은 19일 15면 <펀드 자본주의의 빛과 그늘>에서 "펀드가 추구하는 기업 가치 제고에 따른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며 "펀드와 기업의 이해가 상충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향은 증권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 "펀드가 기업의 수익을 신규 투자나 성장동력 확보에 사용하기 보다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늘리는데 집중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사업부문에 대해 외국계펀드 등 기관 투자자들이 집요하게 사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대기업 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매일경제 장용성 주필은 1일 칼럼 <펀드 의결권 행사 규제는 시기상조>에서 "기관 투자자들은 자신들에게 돈을 맡긴 신탁자들을 대신해서 투자기업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영향력을 행사해 기업과 신탁자들의 수익을 높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 주필은 그러나 "국민연금은 다른 경우"라며 "현행과 같은 관치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하면서 경영권 개입을 하면 정부의 경영 개입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이 이른바 펀드 자본주의를 보는 관점은 일관성이 없다.

주식 투자자나 자산운용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때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라며 펀드의 의결권 행사를 인정하면서도 기업이나 경영진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때는 의결권의 남용을 우려한다. 특히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투자만 하고 경영에는 간섭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주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모순을 보이기도 한다. 펀드가 경영에 간섭하게 되면 단기 실적에 메이게 되고 장기적인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더 직접적으로는 외국계 펀드의 공격으로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 부진의 원인을 주주 자본주의에서 찾는 관점도 있다.

사모펀드에 대한 입장도 이율배반적이다. 론스타펀드나 칼라일, 뉴브리지캐피털 등 외국계 사모펀드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반발하지만 정작 국내 사모펀드의 활성화에는 적극 찬성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남이 하면 투기, 내가 하면 투자라는 이상한 자기 합리화다.

경제개혁연대(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이나 장하성 펀드를 보는 관점도 다분히 자가당착적이다. 소액주주운동은 주주 자본주의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운동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 주식시장에서는 1인 1표가 아니라 1주 1표의 원칙이 적용된다. 소액주주를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주식 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간다.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효율적인 시스템이지만 자칫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는 명분에 휘둘려 단기 실적에 매몰될 우려도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좋든 싫든 투자자로 주식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너도 나도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고 있고 직장에서는 우리사주를 매입하거나 스톡옵션을 받기도 한다. 퇴직연금의 주식투자도 확산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주식투자 비율을 늘려가고 있고 투자금액이 불어나면서 해외 주식투자까지 눈을 돌리고 있다. 천문학적인 외환보유액을 운용할 한국투자공사 역시 해외 주식시장에 투자를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이제 노동자면서 동시에 주주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주주의 권리는 철저하게 박탈돼 있다. 내가 투자한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 못하거나 알 수 없도록 배제돼 있다는 이야기다. 내가 투자한 돈이 노동조합을 착취하는 기업이나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업에 흘러들어갈 수도 있다. 내가 투자한 돈이 국민들 인권을 유린하는 나라의 자원 개발에 동원될 수도 있다. 과정이야 어떻든 그냥 돈만 벌면 그만인 것일까.

해답은 사회책임투자(SRI, Social Responsibility Investment)다. 주주의 자격으로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단기 실적에 매몰되지 않도록 주주 자본주의를 경계해야 하고 동시에 안정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수익을 내는 것이 목표다.

이를테면 영국의 스탠더드생명보험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투자 원칙을 갖는다.

먼저 배제적 기준으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기업이나 동물 실험을 하는 기업, 유전자 조작 또는 배양을 하는 기업, 집약 농업을 하는 기업, 국민의 정치적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나라에서 활동하는 기업, 포르노그래피를 제작 또는 배포하는 기업, 무기를 생산 또는 판매하는 기업, 원자력 관련 기업, 주류나 담배를 생산하는 기업, 도박 관련 기업들에는 투자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또 포함적 기준으로 환경에 대한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기업과 바람직한 노사정책을 고수하는 기업,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지역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원칙이다.

최근 출간된 <사회책임투자>(러셀 스팍스 지음, 홍성사 펴냄)에는 "보편적 소유주"의 "선관주의(fiduciary) 이해관계"라는 개념이 나온다. 펀드가 투자자들의 보편적인 이해를 대변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러셀 스팍스는 사회책임투자가 단순히 윤리적인 투자를 넘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주도하는 주주 행동주의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정적인 배제가 아니라 적극적인 선택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모든 사람이 환경오염 같은 공적 비용의 감소에 관심을 갖는데 이 과정에서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특정 개별 펀드가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에 투자를 한다면 단기적으로 수익이 줄거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혜택은 그 펀드의 투자자들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돌아간다.

러셀 스팍스는 펀드의 선관주의 의무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개별 기업만 놓고 보면 환경오염물질을 그냥 배출하고 비용을 외부로 전가하는 것이 이익이겠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오히려 비용이 늘어난다. 결국은 투자자들, 주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투자자들과 주주들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정 기업의 단기 실적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성장을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긍정적인 외부 효과를 장려하자는 이야기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책임투자는 경제개혁연대의 소액주주운동과 다르다. 소액주주운동은 철저하게 주주의 이해를 대변하지만 사회책임투자는 주주의 범위를 사회 전반으로 확장한다. 사회책임투자가 추구하는 기업지배구조의 다섯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세 번째 원칙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주주의 권리를 보호할 것, 둘째, 소수민족과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주주를 공정하게 대우할 것, 셋째,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권리를 인식할 것, 이를테면 일자리와 지역사회, 공급업체, 환경 같은 사안에 기업과 주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넷째,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정확히 제때 공개할 것, 다섯째, 경영진을 감시하는 이사회의 책임을 분명히 할 것 등이다.

해답은 사회책임투자다. 해외 사례를 보면 사회책임투자펀드는 사회적 책임 기준이 없는 일반 펀드보다 수익률이 낮지만 상대적으로 더 적은 리스크를 갖는 것으로 검증됐다. 사회책임투자펀드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회계 부정을 비롯한 경영진의 일탈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보하는 최선의 선택이다. 펀드는 좀 더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하고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 주주의 권리를 찾되 다만 끊임없이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야 한다. 주주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추동해야 한다.

투자자(주주)들이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시대, 진정한 경제민주화는 사회책임투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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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더드생명보험의 투자원칙이 인상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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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이정환 published on November 28, 2007 11:55 AM.

삼성은 경제지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was the previous entry in thi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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