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현장에 개발자들이 부족할까.

"손에 흙만 안 묻혔지 이건 완전히 '쌩 노가다'에요. 야근을 날이면 날마다 밥 먹듯이 하는데, 야근 수당도 전혀 없고 그렇다고 연봉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이 생활에는 아무런 비전이 없어요. 저는 누가 개발자 하겠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릴 겁니다." 올해로 경력 7년이라는 한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푸념이다. 연봉 3500만원, 적지 않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직업에 불만이 많았다.

에어컨 바람이 흘러나오는 쾌적한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일하면서도 이들은 스스로를 막노동 일꾼에 비교한다. 첨단 정보기술의 현장에 있지만 딱히 전문성에 대한 자부심도 없다. 요즘 소프트웨어 업계가 유례없는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도 이들의 이런 상대적 박탈감과 무관하지 않다.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언젠가부터 실력 있는 개발자들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게 됐다. 개발자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보면 건강은 건강대로 나빠지고 아랫배도 나오고 허리도 아프고 주변에 보면 치질 걸린 사람들도 많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쏟아져 나오는데 자기 계발은 고사하고 가족이나 친구들하고 어울릴 시간도 없어요. 이러니 누가 개발자를 하려고 하겠어요. 다들 기회만 되면 하루라도 빨리 이 바닥을 떠나려고 하죠." 경력 7년 이상의 베테랑 개발자들도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한 중소기업은 최근 자바 개발자를 채용하면서 이력서만 내면 경품을 주는 이벤트를 내걸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력서 구경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2년 동안 채용 공고를 내고 있지만 아직도 충원을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초급 개발자도 부족하지만 특히 5년 이상 경력의 중급 개발자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실력 있는 개발자 찾기가 어렵기도 하고 그만큼 이직이 잦다는 이야기도 된다.

"워낙 개발자가 부족해서겠지만 요즘은 이력서 집어넣으면 바로 연락이 옵니다. 몇 군데서 동시에 연락이 오기도 하는데 연봉이 다들 거기서 거기라도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주는 데로 옮겨가게 되죠." 경력 3년이라는 개발자의 이야기다. 역시 중소기업에 다니는 그는 이번 기회에 대기업으로 옮겨갈 생각으로 기회를 노리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더욱 심각해진다.

"좀 일할만 하다 싶으면 대기업에서 쏙 빼가 버리니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늘 인력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붙잡아 두려면 연봉을 올려주고 노동 조건도 개선해야겠지만 그게 어디 쉽습니까. 사람이 부족하니 일이 많고 일이 많으니 힘들어서 떠나게 되고 그래서 노동 조건이 더 열악해지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겁니다." 익명 처리를 요구한 한 시스템 통합 회사 사장의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이런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개발자들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건 갑을 관계도 아니고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면서 갑을병정, 심지어 무까지 내려가면 몸값이 형편없이 떨어지게 됩니다. 말도 안 되는 헐값에 팔려 다니는 거죠. 그렇게 보면 개발자 정년이 35세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죠. 저도 경력이 좀 되면 프리랜서로 빠지거나 아예 관리나 영업 쪽으로 옮겨가려고 합니다. 이 짓을 언제까지 하겠습니까."

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2004년을 기준으로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종사자는 20만명, 이 가운데 개발자는 71%인 14만명 정도다. 또 이들의 73%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올해부터 2010년까지 숙련도를 기준으로 초급 수준의 개발자의 경우 1200명의 여유가 있지만, 중급 개발자의 경우 2000명이 부족하고, 고급 개발자는 55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우려된다. 얼추 9천명 가까이 수요 불균형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소프트웨어 전반적으로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특히 자바 개발자들의 수요 불균형이 두드러진다. 국민은행을 비롯해 금융권 대부분이 차세대 프로젝트를 자바 기반으로 구축할 계획인데 정작 이를 개발할 자바 개발자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대형 프로젝트에 최소 1천명 이상이 달라붙는다는 걸 감안하면 앞으로 자바 개발자 인력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인피언컨설팅의 양수열 과장은 "앞으로 한동안 자바가 헤게모니를 장악할 텐데 세계적으로 자바 개발자들이 늘어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피언컨설팅은 최근 인도 출신 자바 개발자를 채용하기도 했다. 당장 일손이 급한데 애를 태운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양 과장은 "이러다가는 시장의 상당 부분을 인도나 동남아시아 출신 개발자들에게 내주게 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이승은 과장은 좀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대학에서는 실무에 쓸 수 있는 기술을 전혀 가르치지 않습니다. 교수들이 현장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대학생들이 학원을 다니면서 한 학기에 수백만원씩 하는 실무 교육을 받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어설픈 초급 개발자들은 많은데 중급 개발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가르치면서 쓰는 수밖에 없는데 비용이 부담스럽게 되는 것이죠."

자바커뮤니티협의회 옥상훈 회장은 "우리나라에는 성공한 개발자의 모델이 없다"고 지적한다. 본받을 만한 역할 모델이 없기 때문에 개발자를 기피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35세 이상이 되면 프로젝트 매니저가 개발자보다 나이가 더 어리게 됩니다. 회사에서도 고급 개발자 한 명보다 중급 개발자 두 명을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고요.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기술 습득이나 자기 계발은 꿈도 꾸지 못하죠."

결국 일에 쫓긴 개발자들은 "대충 돌아가게만 만들자"는 식으로 단순 코딩에만 매달리게 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중급이나 고급 개발자를 키워내는 것은 물론이고 초급 개발자들의 수급도 여의치 않게 된다. 옥 회장은 "대학교에 전산 관련 학과들 커트라인이 낮아진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생들의 관심이 멀어진다는 것은 개발자 공급 부족 현상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소프트웨어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개발자들의 임금은 미국이나 일본의 3분의 1 수준 밖에 안 된다. 2003년 기준으로 일본의 초급 개발자는 연봉 4600만~5300만원, 중급 개발자가 6100만~7700만원, 고급 개발자가 7600만~1억원을 받는다. 미국은 컴퓨터 보조원의 경우에도 4314만원, 시스템 매니저는 9596만원까지 받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상위 25%라고 해봐야 3천만원 수준에 그쳤다.

하위 25%는 1560만원, 월급으로 따지면 1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중급 개발자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월 평균 임금이 203만원, 미국은 653만원, 일본은 599만원으로 나타났다. 소프트웨어진흥원 관계자는 "소득 수준을 감안해도 우리나라 개발자들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며 "기껏 고생해서 중급이나 고급 개발자가 돼도 임금 수준이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대기업 시스템 통합 업체들의 시장 독점과 계열사 부당지원 관행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있다. 한 시스템 통합 업체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삼성전자와 거래를 했는데 언젠가부터 삼성SDS를 통하라고 하더군요. 삼성SDS에서 2차 하청을 받는 구조가 된 건데 결국 같은 일을 하면서 인건비만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 겁니다. 중소기업에 돌아갈 인건비의 일부를 자기네 계열사에 몰아주는 것이죠."

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 조사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시스템 통합 업종 종사자들의 평균 연봉은 2376만원이었다. 대기업 계열사 개발자의 평균 연봉이 3410만원인 반면, 하도급 업체 개발자들의 연봉은 2300만원 수준, 갑을병정무까지 내려간 5차 하도급 업체 직원의 연봉은 2078만원으로 조사됐다. 연봉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근무시간도 대기업은 51시간, 하도급 업체들은 70시간까지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근속연수도 대기업은 3.4년, 하도급 업체들은 1.5~2년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직회수도 대기업은 평균 2회, 5차 하도급 업체는 평균 4회로 집계됐다. 응답자의 10%가 4개월 이상의 장기 체불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도 충격적이었다. 소프트웨어진흥원에 따르면 전체 수주물량의 72%를 10대 대기업 시스템 통합 업체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특히 삼성SDS와 LGCNS가 6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정보기술 강국의 현실은 이렇게 초라하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오늘도 열악한 노동조건을 묵묵히 감당하면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들에게 탈출구라면 그나마 먹이사슬의 상층부에 있는 대기업으로 옮겨가거나 하루 빨리 이 바닥을 뜨는 것뿐이다. 소프트웨어진흥원에 따르면 개발자들의 70% 이상이 중소기업 종사자들이다. 이들이 이 먹이사슬의 바닥에서 비전을 찾지 못한다면 한동안 소프트웨어 산업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참고 : 3년 만에 20배 이익, 삼성SDS의 성장 비결은? (이정환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