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왜 판교에 침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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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만 열심히 하면 뭐하냐고. 기사를 안 쓰는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헌동 본부장의 이야기다. "도대체 이유가 뭐요. 기사를 쓰면 위에서 안 실어줍니까. 광고 때문에 그런 거요?"

그건 사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부동산 문제를 취재하면서 나는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피가 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왜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 언론은 왜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김헌동 본부장은 내게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묻더니 아예 한 달만 자기네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부동산 문제를 제대로 공부해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배우고 간 기자들이 벌써 여럿이라고 했다. 그런데 기사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내게 부동산 문제를 심층적으로 취재해보라고 제안하면서 우리 사회에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런데 취재를 하고 막상 기사를 쓰려고 보니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막연하게 알고 있지만 진실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놀랄만한 이야기지만 별 수 없이 식상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기자들의 탓도 있겠지만 독자들의 탓도 크다고 볼 수 있다.

5월 4일, 9428명의 판교 청약 당첨자가 발표됐다. 분양가는 대한주택공사 아파트의 경우 평당 1099만원, 민간 건설업체 아파트의 경우는 1176만원이다. 33평형이라면 33평형이라면 3억6267만원과 3억8808만원이 된다. 한 달에 100만원씩 저축한다고 해도 30년 이상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도 매력적인 건 주변의 다른 아파트들과 비교하면 최소 2억원 이상 싸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변 아파트 값을 끌어올린 주범이 판교라는 사실이다. 판교 개발 소식이 주변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리고 주변 아파트 덕분에 판교 당첨자들은 일확천금을 챙긴다. 판교나 판교 주변의 집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졌다. 집이 없는 사람들만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졌다.

판교의 시세차익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언론은 거의 없다. 판교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전매제한이 걸려있다. 지금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싸게 보이는 것일 뿐 입주 시점이 2009년이니까 길게는 2019년까지 실현할 수 없는 이익인 셈이다. 그러나 과연, 그때 가서도 판교는 매력적일까. 실제로 2억원 이상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을까. 이런 사실을 지적하고 경고하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다들 판교의 신화를 부풀리는 데 앞장섰을 뿐이다.

언론이 비판적인 기사를 쓰지 못하거나 쓰지 않는 건 무엇보다도 독자들이 그런 기사를 읽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판교 투자로 대박을 터뜨리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하지 판교의 거품과 부당한 시스템 대한 이야기에는 큰 관심이 없다. 시스템이야 어떻든 이 시스템 안에서 돈을 벌기만 하면 된다는 천박한 욕망이 언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침묵하고 시스템에 순응하는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아파트 값은 왜 이렇게 오르는 것일까. 최근 한국토지공사 자료에 따르면 5년 동안 평당 택지 조성원가는 20만원이 올랐는데 건축비는 200만원 이상 올랐다. 30평형이라면 6천만원이 오른 셈이다. 5년 전보다 건축비가 6천만원 이상 오를 이유가 무엇일까. 분양가가 그렇다는 이야기고 실제 아파트 값은 훨씬 더 올랐다. 건설업체들은 폭리를 챙겼다. 너무나도 뻔한데 정부의 대책은 늘 변죽만 울리고 있다.

참고 : 도대체 아파트 값은 왜 이렇게 비싼가. (이정환닷컴)

피가 끓는 그 느낌을 기사에 담아내기가 쉽지 않다. 마치 거대한 벽을 두드리는 것 같다. 그래서 김헌동 본부장과 통화를 했다.

"독자들은 이런 기사를 읽고 싶어하지 않아요. 집을 살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모두 판교의 꿈을 꿉니다. 언젠가는 다들 내 집을 마련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집값이 떨어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죠. 독자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어요."

김 본부장은 아니나 다를까 독설을 쏟아냈다.

"그럼 지금처럼 평생 벌어서 집값에 쏟아붓고 건설회사들 배만 채워줄 겁니까.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10%도 안 됩니다. 나머지 90%는 당장 살 집이 필요한 거고요. 그 사람들이 집을 사려면 집값이 지금보다 훨씬 떨어져야 됩니다. 판교의 꿈을 꿀 게 아니라 그 꿈에서 깨어나야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건설회사들과 건설교통부의 유착, 토공과 대한주택공사의 구조적인 폭리, 정보의 왜곡,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의 정책적 의지의 문제다. 문제는 뻔히 드러나 있는데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집이 있는 사람들은 집값이 떨어지기를 바라지 않고 집이 없는 사람들은 부질없는 꿈일지언정 꿈을 잃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판교와 우리 시대의 집값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더 오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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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독자들이 읽고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 게다가 '무엇보다도'라는 수식어까지 발견하게되고 보면 뭐랄까 좀 묘한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크게 두가지입니다.

우선 우리나라 건설업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부분은 정치와 언론이 아닐까 합니다. 말하자면 '정언건 복합체'라는 표현도 가능할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거기에서 독자+수요자+소비자들은, 그 '판'에서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언론을 중심으로 한 (복합체의) 홍보체제에 의해 유도당하는 '호구'의 측면이 강하면 강했지, 말씀하신것 처럼 그 반대방향의 작용은 아닌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이긴 합니다만, 서울중심적 시각을 좀 느낄수 있었습니다. 코멘트라 이정도로 줄입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독자들 탓도 크다는 걸 지적하고 싶었을 건데요. 좀 지나친 표현을 썼습니다. 일단 취재를 좀 하고 제대로 써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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