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의 600억원 증자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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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이 600억원의 대규모 유상 증자를 계획하고 있다. 이 신문은 3월 17일 이사회를 열고 이 같은 계획을 확정했다. 최대 주주인 현대자동차가 180억원을 내고 삼성과 LG, SK그룹이 각각 120억원을 내기로 했고 이밖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원사들도 100억원 가까이 내놓을 계획이다.

이 회사 권해근 관리국 부국장은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고 몇년 전부터 숙원 사업으로 추진해왔던 증자가 올해 들어 구체화된 것"이라며 "최종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큰 무리없이 성사될 걸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확한 증자 규모와 기업들 분담 금액은 오는 4월 31일 주주총회를 통해 결정된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29.6%의 지분을 들고 있는 현대자동차다. 그밖에 삼성과 LG, SK 그룹 계열사들이 각각 9.6%씩, 그리고 전국경제인연합회 131개 회원사가 나머지 40% 정도의 지분을 나눠갖고 있다. 우리사주조합의 지분 비율은 2% 정도다. 이번 증자가 계획대로 마무리되면 이 회사의 자본금은 623억원에서 1200억원 이상으로 두배 가까이 늘어난다.

권 부국장의 말대로 유상증자는 이 회사의 최대 숙원사업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이 회사의 부채 총계는 무려 1712억원에 이른다. 부채의 상당 부분은 1997년에 지은 충정로 사옥에서 비롯했다. 지하 6층, 지상 18층 규모의 이 사옥의 건축 비용은 무려 1200억원에 이른다. 그때도 기업들을 동원, 300억원 규모의 유상 증자를 실시했지만 나머지 부족한 비용은 모두 빚으로 남았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경제신문의 부채비율은 494.6%에 이른다. 이 회사는 그동안 끊임없이 자금 압박에 시달려왔고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 자금을 끌어왔다. 이번 유상증자도 그런 무리수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600억원 유상 증자 이면에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관련 기업들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 회사가 그동안 어떻게 돈을 끌어다 썼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억울한 건 현대건설이다. 사옥 신축에 시공사로 참여했던 현대건설은 아직까지 239억원에 이르는 건축비용을 받지 못했다. 워크아웃(기업구조 개선작업) 상태에 있는 현대건설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벌써 8년이 다 돼 간다.

오죽했으면 현대건설은 2003년 10월, 한국경제신문과 거래하는 광고대행사들을 상대로 광고비 지급금액에 가압류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광고비 예상 매출까지 모두 담보로 잡혀 대출이 나가 있는 상태였고 현대건설은 결국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건물을 경매에 부쳐 간단히 해결했겠지만 상대가 언론사다 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광고비 예상 매출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과정도 석연치 않다. 대출을 받으려면 건물이나 토지를 담보로 잡겠지만 이 회사의 건물과 토지는 이미 모두 담보로 잡힌 상태다. 그래서 앞으로 들어올 광고비 예상 매출을 담보로 대출을 내줬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재무구조가 탄탄한 기업이라도 보통 기업이라면 도무지 말도 안되는 파격적인 대출 조건이다.

그렇게 받은 대출 금액이 무려 205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이 회사 당기 순이익 15억원의 13배를 넘어서는 규모다. 게다가 이 회사는 2003년까지 계속 적자를 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3년에는 83억원, 2001년에도 248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냈다. 2002년에만 겨우 6억8118억원의 흑자를 냈을 뿐이다.

지난해 당기 순이익 15억원도 뜯어볼 필요가 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현대건설과 채무 재조정에 합의하면서 발생한 특별 이익이 무려 32억원에 이른다. 이 특별 이익은 서류 상에만 있는 이익이다. 결국 이 32억원을 빼면 이 회사는 지난해 오히려 17억원의 적자를 낸 셈이다. 2002년의 흑자도 1996~1999년의 법인세 환급액 10억원 덕분이다. 역시 이를 빼면 그해에도 적자를 냈다.

보통 기업이라면 은행 문턱도 밟기 어려울 재무 상태다. 다시 정리하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돈을, 그것도 마땅한 담보도 없이 앞으로 발생할 매출을 담보로 대출해줬다는 이야기다. 이런 말도 안되는 대출을 해준 데가 바로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정상적인 대출 절차를 밟았다"고만 밝힐뿐 구체적인 언급을 꺼렸다.

살펴보면 우리은행과 이 회사의 관계는 꽤나 오래 전부터 돈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99년 한빛은행 시절, 이 은행은 일본수출입은행에서 들여온 차관 가운데 수십억원을 한국경제신문에 대출해줘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 차관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중소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들여온 것으로 대출 대상이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으로 한정됐다.

더 많은 기업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대출 금액도 한 기업에 10억원 미만으로 한정됐다. 정확한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무렵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매일경제신문이 200여억원, 한국경제신문이 수십억원을 대출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려운 중소기업에게 가야할 대출을 언론사가 가로챘다는 이야기다.

외상으로 건물을 짓고 그 건물을 담보로 돈을 끌어다 쓰고 그래도 부족하면 앞으로 발생할 매출까지 담보로 잡힌다. 정부 정책 자금도 있는대로 당겨다 쓴다. 그 엄청난 대출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 아무런 대안도 없다. 부채는 계속 불어나고 현대건설의 사례에서 보듯 못 갚으면 배 째라는 태도로 나온다. 광고로 상계 처리하거나 뒤로 미루면 그만이다.

그래도 부족하면 기업들을 끌어들여 대규모 유상 증자를 받으면 된다.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돈을 갖다 바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취임한 신상민 사장이 취임 직후부터 기업들을 돌며 끊임없이 로비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이번 유상 증자는 한국경제신문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과제였다는 이야기다.

한국경제신문의 절박한 상황 판단은 지면에 그대로 드러난다. 유상 증자 문제를 논의한 3월 17일 이사회를 앞두고 이 신문은 노골적으로 현대자동차 띄워주기에 나선다. 최대주주인 현대자동차가 나서야 다른 기업들도 나설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을까. 상대적으로 차분한 매일경제신문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3월 3일 이 신문은 1면에 "현대·기아차 고속 질주"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신문을 펴든 독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현대자동차가 국제축구연맹의 공식 후원사로 나서기로 했다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기사가 1면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에서 판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내용도 전혀 새롭지 않았다.

기사는 3면과 13면으로 이어진다. 3면에는 지면의 3분의 2 이상을 통틀어 "대형차 시장에서도 승부하겠다"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FIFA 공식 후원의 의미"라는 해설 기사까지 실렸다. 13면에는 "현대차 TG 첫선, 렉서스·BMV·아우디 등과 전면전"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실렸다. 이날은 신문 전체가 현대자동차 홍보로 도배된 듯한 분위기였다.

그날 이후로도 이 신문의 구애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3월 7일 1면에는 미국 컨슈머리포트를 인용, "쏘나타, 가장 결함없는 차"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13면, 정몽구 회장의 사진과 함께 "MK, '품질 안되면 내놓지 말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어진다. 신문인지 현대자동차 사외보인지 모를 정도로 노골적인 홍보가 이어졌다.

이튿날인 3월 8일에는 증권면을 이용, "현대·기아차 거침없이 달린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현대자동차의 탄탄한 영업 실적을 감안하더라도 이 기사들의 논조는 이미 객관성을 상실했다. 주식시장의 상반된 전망 가운데 입맛에 맞는 전망을 골라내는 이런 식의 기사는 이 신문 뿐만 아니라 경제신문의 고질적인 수법이다. 흔히 이런 기사는 본문보다 제목이 훨씬 과장된 경우가 많다.

한국경제신문의 600억원 증자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쟁 상대인 매일경제신문과 노골적인 지면 전쟁으로 비화하는 양상도 보였다. 매일경제신문은 이런 관측을 부정했지만 실제로 두 신문의 보도 태도는 전혀 딴판이었다.

3월 23일 한국경제신문은 증권면에 "현대·기아차, 시총 GM 눌렀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신문은 "영업이익률이 도요타와 함께 최고수준이고 자기자본이익률이 도요타나 혼다 등에 뒤지지 않아 주가 수준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매일경제신문은 전혀 다른 어조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신문은 17면, "외국인 현대차 19일째 매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회사가 "복잡한 상호지분 구조와 후계 상속을 위한 인위적인 움직임들이 외국인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신문은 이어 3월 31일 "현대차 투자의견 놓고 삼성-메릴린치 2라운드"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데 이어 4월 9일에는 "환율·유가 자동차주 발목잡나"라는 제목의 부정적인 기사를 연달아 내보냈다. 4월 6일에는 "현대·기아 차값 기습 인상"이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물론 한국경제신문은 침묵했다.

이날 이 신문은 현대자동차의 투싼 스포티지가 해외서 인기 폭발이라며 "주문적체 4만여대 '없어 못판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매일경제신문은 14일 "포스코·현대차 '제자리'"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독자들은 재테크 기사가 이 신문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어떻게 편집되는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기사도 마찬가지다. 한국경제신문은 3월 12일 현대자동차의 계열사인 건설회사 엠코가 분양한 인천 삼산동 엠코타운를 소개하면서 "현대차 엠코 '화려한 데뷔'"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신문은 "엠코가 인천 동시분양에서 돌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4703가구 모집에 3955명이 신청해 경쟁률이 평균 0.84대 1에 그쳤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이 모든 비극은 이 신문의 소유구조에서 비롯한다. 몇몇 기업들이 절대적인 지분을 소유하고 그 기업들에게 돈을 타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이 신문은 태생적으로 기업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밖에 없다. 이해를 대변하는 정도를 넘어 지면을 그 기업들 홍보하는데 남용하기도 한다. 이 신문에게 사실 보도의 원칙은 뒷전이다. 이 신문과 이 신문이 대변하는 기업들의 이해가 최선의 편집 원칙이 된다.

이 신문은 그래서 틈만 나면 '강경 노조'를 비난하고 노동 유연화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요구한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위기를 강조하고 사실을 가감하고 편집한다. 이 신문의 유상 증자는 기업과 언론의 공생 관계가 만들어내는 사실의 왜곡과 의제의 독점, 이런 악순환이 더욱 악화된다는 걸 의미한다. 굳이 이 신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신문은 특히 위험하다. 물론 이 신문을 신문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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