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일련의 사진들은 중국 커뮤니티 사이트에 떠돌아다니는 해외 뉴스 사이트 캡쳐 화면이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이 화면이 본문의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의 주석이다. 중국인들은 화면 속의 군인들이 중국 군인이 아니라 네팔이나 인도 군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티베트 자치구 라싸의 독립 시위나 무력 진압과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앰뷸런스를 중무장 군대라고 표기한 사진 캡션의 고의적인 실수를 지적하는 글도 눈에 띤다.

물론 이들의 지적은 상당 부분 옳다. 티베트 학살이라고 보도된 사진 가운데는 라싸가 아니라 네팔이나 인도 등의 티베트 자치구 사진이 많다. 해외 언론의 취재가 원천 봉쇄된 탓이지만 일부 사진들은 명백히 잘못된 엉뚱한 사진들도 있다.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네팔 시위 진압장면을 라싸 상황으로 잘못 보도한 독일 RTL TV가 사과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를 근거로 "해외 언론이 달라이 라마 폭도 집단의 확성기 역할을 하면서 객관성을 상실한 고의적 왜곡보도로 세계를 속이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중국인들의 반응이다. 내부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지만 상당수 중국인들은 해외 언론의 왜곡 보도에 격앙하는 분위기다. 중국의 대표적인 커뮤니티 사이트 텐야(www.tianya.cn)에서는 해외 언론 보도와 관련, 부당한 내정 간섭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 언론은 오히려 폭도들의 과격 시위를 비판하고 오히려 경찰의 피해를 부각시키고 있다. 중국내 여론도 표면적으로는 상당 부분 이들 언론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인민일보는 26일 사설에서 모터사이클을 탄 한 남자를 공격해 죽게 만든 라싸의 폭도들에 대한 캐나다 언론 보도를 인용하기도 했다. 인민일보는 "인권과 윤리의 수호자인 척하는 서방 언론에게 과연 지구상의 어떤 법치국가가 이처럼 벌건 대낮에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두들겨 패고 불을 지르는 이런 과격한 시위를 용인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한편, 신화통신은 30일 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질 당시 영국 수상의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루즈벨트가 "왜 티베트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처칠이 "티베트는 황제 시절부터 중국의 영토였고 지금은 중국 공화국의 영토"라며 "영국은 이에 관해 아무런 권리도 없다"고 답변했다. 신화통신은 이를 근거로 미국과 영국이 일찌감치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티베트 사태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언론은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 독재 정부의 끔찍한 학살에 침묵했고 철저하게 정보는 차단됐다. 해외 언론 보도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눈과 귀가 막힌 국민들은 광주 시민들의 희생을 폭도들의 난동 정도로 받아들였다. 진실이 온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고 광주가 남긴 교훈을 다시 고민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좀 더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지만 중국인들의 해외 언론에 대한 불만과 분노, 그리고 티베트 문제와 관련한 정부에 대한 암묵적인 지지는 다분히 정보의 부족 또는 왜곡과 객관적인 시각의 부재에서 비롯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티베트 대량 학살의 책임은 일차적으로는 중국의 제국주의에서 비롯하겠지만 중국 정부의 여론 조작과 무엇보다도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론이 정부를 비판하지 않거나 동조하고 국민들은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것으로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 : 惊!西方媒体竟然是这样做西藏事件新闻的! (텐야)
(언론의 여론 조작은 여전히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천명한 이명박 대통령은 대대적인 규제 완화와 공공부문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성장률 재고와 경쟁력 확충, 일자리 창출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결국 보수 기득권 계층의 주머니를 불려주는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 언론은 이명박 정부의 성장 이데올로기를 아무런 비판 없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국민들은 과반수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아마도 비슷한 지지율로 한나라당을 밀어줄 가능성이 크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웹서핑하다가 티벳 문제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한 가지 소개하면서, 이에 대한 이 기자님의 견해를 듣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트랙백 걸려다가 계속 안되서 실패하고, 댓글로 달아요 ~ ^^
결국 저는 일종의 '동굴의 우상'이 아닌가 싶어요. 중국인들은 나름대로의 강한 민족(우월)주의적인 성향때문에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내부집안단속에 대해 참견하는 것, 특히나 저렇게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으로 참견하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고 서양은 서양 나름대로 중국은 원래 인권후진국에 공산국가(?)니까 그들의 잘못된 행위는 고쳐줘야 한다는 일종의 선진세계로서의 사명감(?)같은 것이 깔려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둘다 자존심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고집불통들이잖아요.
거기에다 티베트에 대한 서양인들의 다소는 편향된 선입견도 한 몫 한다고 봅니다. Common Dreams에서 어느 필자가 지목했지만 중국내에서도 위그로 지방도 거의 티베트와 같은 양상이지만 서구에서는 이들을 테러리스트 급으로 분류하고 관심도 가지지 않는 다더군요. 결국 티베트는 헐리우드가(특히 리처드 기어가) 이미지메이킹에 상당부분 조력한 측면이 있다네요.
다시 티베트 저항운동으로 돌아가서... 저는 한편으로 중국인들이 이런 심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파리에서 인종폭동이 일어났을 때 프랑스 당국의 진압에 항의한다면서 무슨 국제적 보이콧 행동이 있었는가 왜 우리만 갖고 이러는가 하는...
중언부언했는데 결국 저도 티베트의 자결에는 지지를 하지만 이를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자의 사태오도에는 현혹되지 않으려고 주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네요. 저도 결국 동굴 속에서 사는지라.. ^^
어반님, 꼼꼼히 읽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푸그님, 저도 사실 동굴의 우상이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뭐, 우상을 깨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중국인들에게 티베트가 동굴의 우상이라면 우리 역시 그에 못지 않은 깜깜한 동굴에 갇혀 있는 사안이 한두가지가 아닐 텐 말이죠. 그나저나 티베트 문제는 좀 더 공부를 해봐야겠습니다. 저도 좀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티벳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보는 데는 무리가 많습니다.
티벳의 시위대는 폭도나 다름없었죠.
불지르고 사람죽이고 때려부수고.
중국의 티벳에 대한 시각 만큼이나
서구의 티벳 분리 독립운동에 대한 환상도 극심하죠.
이들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극렬폭력이 존재하죠.
티벳의 시위대가 누구를 향해 창을 겨누고 돌을 던졌는지 잘 살펴보시지요.
중국인(한족)에게 이 사태 이야기를 했다가 분위기가 이상해진적이 있습니다.
자기나라 땅에 불법거주하는 소수민족이 문제를 자주 일이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더군요. 그사람은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상해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제가볼때 나름 오픈마인드의 소유자입니다.
병합당시에 정치적이유로 침묵하던 자들이 같은 유로 지금 떠들고 있는데,
이는 자부심이 과해 나타나는 참견, 혹은 견제라 볼수있을 것도 같고.
중국이 예전과 달리 일반인의 의식속에 크게 자리잡았다는 반증도
될것 같습니다.
저또한 원칙적으로 티벳의 분리가 정당하다고 보며 폭력시위는 일반적현상이라고
봅니다. 간디가 아닌이상... 이미 불리한 자들의 저항법은 폭력,암살이 아닌
평화적 방법이 선택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괜히 말이 길어졌는데 중국인들의 의식속에 티벳은 '원래 중국' 땅이고
그동네 사람들은 유태인이나 팔레스타인인 처럼 은근슬적 들어와서 불법으로
거주하는 사람정도로 인식되는것 같습니다.
얼마전 상해에 사는 후배가 같은 이유로 제게 물어왔습니다.
원래 티벳이 중국땅 아니지 않냐고 물어보더군요. 거기 있으니
자기가 잘못 알고 있는 느낌이 든답니다.
중국인들의 객관적 연사인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보입니다.
(다 마찮가지지만서도.....)
글 잘 읽고 갑니다. 아직 제가 이런 정보나 뉴스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수준이 되지 않아서.........여튼 정보 감사드립니다.
저는 중국국민입니다.티벳사건에 관하여 저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뉴스에서 보니 한국의 많은 종교인사분들은 티벳독립자들을 지지하고 여러 한국국민께서도 티벳을 해방시켜야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더라고요.
그중 주요한 언론은 "티벳은 50년전에 독립의 국가였었는데 중국정부에서 강제적으로 중국국토로 갖추었다"하는것 같습니다.저는 우선 이에 대하여 평판하진 않겠습니다.그냥 제가 얘기해드리고 싶은것은 한 지역의 주권문제를 의논하기전에는 그 지역의 역사를 잘알아야된다고 봅니다.혹시 어느분께서는 "넌 중국사람이니까 중국이 엮은 역사만 알거다.그건 진실한 역사가 아니다"라고 생각할수있겠죠.
역사가 정치적인 도구로 쓸수있다고 저도 승인합니다.헌데 완벽한 역사기제와 유물이 남겨있는 역사사실은 그 누구도 질문할수 없는것입니다.
티벳과 중국의 진실한 역사관연은 이러합니다.
1.우호적인 거래의 시작: 당나라때 티벳은 토번왕조시기였습니다.토번의 왕 송잔감보는 티벳을 통일시킨후 당나라의 문성공주를 왕비로 받아 당나라와 문화,정치,경제상으로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기원822년 당시의 토번왕 치르바금의 요청에 따라 당나라와 토번은 "장경회맹"을 맺었습니다.그중 토번과 당나라는 "친인과 같은 한집안이다"라고 성명했습니다.상기 글이 적혀진 비문이 지금도 티벳의 절에 보관되고있습니다.
2.중국의 영토로된 시점:1247년 티벳은 몽골국의 관할구역이였고
1279년 티벳은 정식으로 당시 중국원나라의 행정구역으로 되었습니다.그뒤 중국은 왕조 교체가 많았지만 티벳은 계속 중국의 관할이였습니다.
3.달레라마의 형성: 지금 티벳독립을 주장하는 달레는 미안하지만 1368년 중국의 명나라가 건립되서야 형성된 종교단체입니다.티벳이 중국땅인지 거의 100년 세월이 지나서입니다.명나라는 티벳에 “卫指挥使司"와 “俄力思军民元帅府”를 설치하여 그 지방을 관리하였습니다.청나라때 달레5세는 북경에서 당시의 순치황제를 만나 책봉을 받고 지방정부로 티벳지역을 관할할 권한을 얻었습니다.
4.50년전의 티벳: 글쎄 "50년전에 티벳은 독립한 나라였다"고 하신 여러분들,700여년이나 중국의 지역이였던 티벳이 왜 갑자기 "독립"되였을까요~~ 해방전(1949년전)중국이 왜국의 침략을 받고 있다는것은 알고 계실거죠.그당시 티벳도 왜국군대의 침략을 받고있었거든요, 군사적인 근거지를 만들려고 서방**나라들이 그곳을 독립시키려고 했다구요.하여 달레를 부축시키고 티벳과 중국정부간의 모순을 이르켰습니다.많은 사실적인 증거가 있지만 다 하자면 말이 너무길게 되내요.한마디로 지금의 티벳분렬활동이 그때부터 시작한것입니다.
여기서 중국국민들의 티벳에 관한 주요 관점으로 글을 맺겠습니다.
첫째,"티벳독립분자"와 "티벳주민,특히 소수민족주민"은 다른것입니다.중국국민은 티벳을 중국의 땅으로 볼뿐만아니라 티벳인민들도 역시 우리의 한가족이라고 봅니다. magnumopus님이 "중국인들의 의식속에 티벳은 '원래 중국' 땅이고
그동네 사람들은 유태인이나 팔레스타인인 처럼 은근슬적 들어와서 불법으로
거주하는 사람정도로 인식되는것 같습니다." 라고 얘기하신 말씀은 중국사람으로써 생각지도 못한 웃으운 관점입니다.
둘째,중국국민들은 이러저러한 결함이 많지만 객관적인 사실을 분별하지못할만큼 아둔하지는 않습니다.중국국민의 분노와 자존심은 중국정부의 어론조작등으로 불러일으킨것이 아니라 자신역사에 대한 요해와 존중,그리고 자신땅에 대한 사랑때문입니다.티벳폭란때 많은 한족과 당지의 소수민족이 친인을 잃었습니다.심지어 전가족이 동시에 살해된것도 있습니다.프랑스 올림픽성화전달운동에서 티켓독립분자들은 중국의 여자불구운동선수가 갖고 있는 성화를 빼앗기위하여 반항능력이 없는 여자불구운동선수를 때리고 했습니다.이것이 "평화를 사랑하는"티벳독립분자들이 한 행위입니다.
셋째,티켓문제는 중국의 내부문제이고,올림픽은 비정치적인 성사입니다.중국과 중국국민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이 글을 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공네티즌의 말:
"티벳과 중국의 진실한 역사관연은 이러합니다.
1.우호적인 거래의 시작: 당나라때 티벳은 토번왕조시기였습니다.토번의 왕 송잔감보는 티벳을 통일시킨후 당나라의 문성공주를 왕비로 받아 당나라와 문화,정치,경제상으로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기원822년 당시의 토번왕 치르바금의 요청에 따라 당나라와 토번은 "장경회맹"을 맺었습니다.그중 토번과 당나라는 "친인과 같은 한집안이다"라고 성명했습니다.상기 글이 적혀진 비문이 지금도 티벳의 절에 보관되고있습니다."
반론:
당시 토번-당나라는 독립국가와 독립국가의 관계였고, 선비족의 당나라는 한족을 식민통치하던 선비왕조였다. 따라서 당시 정부가 없던 한족이 당나라의 한족지배를 이용하여 현재의 티베트-중공관계를 설명할 수없다.
"2.중국의 영토로된 시점:1247년 티벳은 몽골국의 관할구역이였고
1279년 티벳은 정식으로 당시 중국원나라의 행정구역으로 되었습니다.그뒤 중국은 왕조 교체가 많았지만 티벳은 계속 중국의 관할이였습니다."
반론: 지나땅 ("중국"이라고 잘못 알려진 지나대륙)은 외족 또는 달로(오랑캐)라고 매도된 몽골인의 통치하에 있었고, 티베트는 원조에 어느정도 종속적이기는 하나, 독립된 정부를 가진 국가 였다. 반면, "중국인"이라고 잘못 알려진 "한인(한족)"의 지나인들은 정부,나라가 없는 민족이었다. 몽골인들은 근세기의 일본점령통치자들과 같았다. 이때문에 지나의 한족들은 일본 및 몽골인들을 가장싫어한다. 따라서, 설사 원나라가 티베트를 일부 통치했더러도, 한족의 중공이 이를 근거로 티베트통치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명의 주원장은 몽골을 쫓아낼 때, 중국인이 아닌 외적이라고 하며 쫓아 냈다.
"3.달레라마의 형성: 지금 티벳독립을 주장하는 달레는 미안하지만 1368년 중국의 명나라가 건립되서야 형성된 종교단체입니다.티벳이 중국땅인지 거의 100년 세월이 지나서입니다.명나라는 티벳에 “卫指挥使司"와 “俄力思军民元帅府”를 설치하여 그 지방을 관리하였습니다.청나라때 달레5세는 북경에서 당시의 순치황제를 만나 책봉을 받고 지방정부로 티벳지역을 관할할 권한을 얻었습니다."
반론:
명나라는 일부 간섭을 하면서도 티베트왕들의 독립국왕들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4.50년전의 티벳: 글쎄 "50년전에 티벳은 독립한 나라였다"고 하신 여러분들,700여년이나 중국의 지역이였던 티벳이 왜 갑자기 "독립"되였을까요~~ 해방전(1949년전)중국이 왜국의 침략을 받고 있다는것은 알고 계실거죠.그당시 티벳도 왜국군대의 침략을 받고있었거든요, 군사적인 근거지를 만들려고 서방**나라들이 그곳을 독립시키려고 했다구요.하여 달레를 부축시키고 티벳과 중국정부간의 모순을 이르켰습니다.많은 사실적인 증거가 있지만 다 하자면 말이 너무길게 되내요.한마디로 지금의 티벳분렬활동이 그때부터 시작한것입니다."
반론: 당시 국왕이었던 달라이 라마는 1949년 12월 유엔에 사신을 보내어 중공이 침략했으니 도와달라고 했고, 남미의 수개나라등 당시 유엔회원국들이 군사적개입을 고려했다. 그때 중공은, 위글을 쓴 중공시민과 같은 말로, 대사를 유엔에 보내서 티베트는 원나라 이래로 중국의 일부이다고 강변했다.
"여기서 중국국민들의 티벳에 관한 주요 관점으로 글을 맺겠습니다.
첫째,"티벳독립분자"와 "티벳주민,특히 소수민족주민"은 다른것입니다.중국국민은 티벳을 중국의 땅으로 볼뿐만아니라 티벳인민들도 역시 우리의 한가족이라고 봅니다. magnumopus님이 "중국인들의 의식속에 티벳은 '원래 중국' 땅이고
그동네 사람들은 유태인이나 팔레스타인인 처럼 은근슬적 들어와서 불법으로
거주하는 사람정도로 인식되는것 같습니다." 라고 얘기하신 말씀은 중국사람으로써 생각지도 못한 웃으운 관점입니다.
둘째,중국국민들은 이러저러한 결함이 많지만 객관적인 사실을 분별하지못할만큼 아둔하지는 않습니다.중국국민의 분노와 자존심은 중국정부의 어론조작등으로 불러일으킨것이 아니라 자신역사에 대한 요해와 존중,그리고 자신땅에 대한 사랑때문입니다.티벳폭란때 많은 한족과 당지의 소수민족이 친인을 잃었습니다.심지어 전가족이 동시에 살해된것도 있습니다.프랑스 올림픽성화전달운동에서 티켓독립분자들은 중국의 여자불구운동선수가 갖고 있는 성화를 빼앗기위하여 반항능력이 없는 여자불구운동선수를 때리고 했습니다.이것이 "평화를 사랑하는"티벳독립분자들이 한 행위입니다.
셋째,티켓문제는 중국의 내부문제이고,올림픽은 비정치적인 성사입니다.중국과 중국국민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이 글을 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론: 위의 말들은 중공정부가 하는 상투적인 변명과 같다. 따라서 그 상투적 선전을 여기서 되풀이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중공네티즌의 말과 반론:
"여기서 중국국민들의 티벳에 관한 주요 관점으로 글을 맺겠습니다.
첫째,"티벳독립분자"와 "티벳주민,특히 소수민족주민"은 다른것입니다.중국국민은 티벳을 중국의 땅으로 볼뿐만아니라 티벳인민들도 역시 우리의 한가족이라고 봅니다."
반론: 티베트는 "중국의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중공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티베트 사태는 이번 만이 아니라 과거에는 더욱 큰 규모로 여러번 벌어졌었었고, 몇개만 빼고, 수십만개의 이름답고 유서깊은 사찰들이 불타고 파괴되었고, 또 지난 50년간 수만, 수십만명이 이 투옥,살해되었다. 가족에 대해 이러는 것이 중공, 한족의 대우방법인가? 그렇다면, 일제때 일본사람들은 중공사람들을 정말 가족으로 대했나보다.
"magnumopus님이 "중국인들의 의식속에 티벳은 '원래 중국' 땅이고
그동네 사람들은 유태인이나 팔레스타인인 처럼 은근슬적 들어와서 불법으로
거주하는 사람정도로 인식되는것 같습니다." 라고 얘기하신 말씀은 중국사람으로써 생각지도 못한 웃으운 관점입니다."
반론: 중공사람들이 일본(일제)이나, 만주족(청), 몽골족(원)을 쫓아낼때, 손문, 장개석, 모택동, 주원장등은 "중국인을 위한 중국"을 위해 외족을 쫒아낸다고 했다. "티벳인을 위한 티베트는 없는가?" 역사를 왜곡하여 원나라때부터 중공의 땅이라고 거짓말하고서는 은근슬적 5만명의 중공(소위 해방)군을 군사력 3,4만의 평화적 불교국가 티베트에 투입하여 강점한 것이 50년 남짓이다. 이런 거짓말에 속아넘어가리라고 중공 네티즌이 여기서 말함은 우스운 일이다.
"남이 내땅과 가족을 뺏으면 나쁘고, 내가 그러면 원래 괜찮은 일이다"라는 것이 주공의 한족의 사고이다". 지금 동북공정 역사왜곡을 보라! 고조선, 고구려 역사가 중공의 역사이니, 곧, 북한 남한땅까지 내것이다라고 할것이다. 중공인들은 기껏 800년도 안되는 티베트-원나라관계를 활용하여 이런 소리를 한다면, 2100년전의 한나라의 고조선 침략, 1400년전의 수당의 고구려 침략은 한반도 침략점령에 활용하기에 더욱 좋을 것이다.
"둘째,중국국민들은 이러저러한 결함이 많지만 객관적인 사실을 분별하지못할만큼 아둔하지는 않습니다."
반론: 중공국민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밖에 모른다. 남을 존중할줄을 모른다. 그래서 아둔하다고 한다.
"중국국민의 분노와 자존심은 중국정부의 어론조작등으로 불러일으킨것이 아니라 자신역사에 대한 요해와 존중,그리고 자신땅에 대한 사랑때문입니다.티벳폭란때 많은 한족과 당지의 소수민족이 친인을 잃었습니다.심지어 전가족이 동시에 살해된것도 있습니다."
반론: "자신의 역사"에 대한 요해는 커녕, "자신의 땅"이 아님을 모르기에 생긴 무지몽매함이다. 지난 50년간 죽고 다친 수십만명의 티베트인의 숫자를 모르기 때문이다.비교해보라!당지의 소수 민족이 친인척을 잃었든 소식은 들은적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의 점령은 중공인에 대한 해방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올림픽성화전달운동에서 티켓독립분자들은 중국의 여자불구운동선수가 갖고 있는 성화를 빼앗기위하여 반항능력이 없는 여자불구운동선수를 때리고 했습니다.이것이 "평화를 사랑하는"티벳독립분자들이 한 행위입니다.
반론: 티베트에서 비무장한 티베트인들을 총,탱크,칼, 겁탈등으로 수십만명을 죽인것이 나쁜가? 아니면 티베트여성이 중공의 불구운동선수에게서 성화를 뺏은 것이 나쁜가? 어느쪽이 평화를 사랑하는 행위인가?
"셋째,티켓문제는 중국의 내부문제이고,올림픽은 비정치적인 성사입니다.중국과 중국국민은 평화를 사랑합니다.이 글을 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론: 티베트 문제는 원래부터 "국제문제"이다. 이를 모르는, 혹은 알면서도 국내문제라고 하는 뻔뻔함이 밉다. "독립분자"가 있는 것은 원래 "독립국"이었기에 있는 것이다. 그같은 사람들이 한족중에 없었더라면, 중공의 일본제국주의, 만주족(청), 몽골(원), 선비(오호십육국, 북위, 북제, 북주), 터키족(5대시대의 3대)으로부터의 독립도 없었을 것이다. 이글을 보고 반성해주기 바란다"
저위의 중공분은 다음을 보는게 좋겠네요.
성화영웅이 중공의 조작임에 대한 보도.:
"中 당국, ‘성화 영웅’까지 조작(종합2보)"
http://blog.daum.net/myblog-suki/14523780
1.반론:
"당시 토번-당나라는 독립국가와 독립국가의 관계였고, 선비족의 당나라는 한족을 식민통치하던 선비왕조였다. 따라서 당시 정부가 없던 한족이 당나라의 한족지배를 이용하여 현재의 티베트-중공관계를 설명할 수없다. "
1.설명:당시의 토번과 당나라는 확실히 서로 독립인 국가였습니다.헌데"선비족의 당나라는 한족을 식민통치하던 선비왕조였다."? ? 당고조이원(李渊)의 조상은 십육국시대의 서량국의 한족 李暠입니다.그뒤 이씨가족은 선비족여성을 받아들여 후대양성한적이 있었습니다.하여 당고조이원은 한족과 선비혈통이 모두있습니다.그렇다고 당나라가 선비의 왕조라고 할수있나요? 북위(당나라전의 조대)때 북방에 거주하고있는 선비족은 한족과 통혼을 많이 하였고 한족의 성씨로 바꾸었으며 한족의 례의와 문화를 배움으로써 민족차이가 크게 없었습니다.수당시대때 선비의 부분적 성씨(独孤、长孙、元)등이 남아있기는 하였으나 이미 한족으로 치불되였습니다.말씀드릴 다른하가지는,"티베트-중공관계를 설명할수없다"는것은 개념이 잘못된 관념이십니다."중국"이라는 개념은 "한족"만 가리키는것이 아님니다.56개민족이 포함된 "대민족"입니다.개념을 혼합하시지 마세요.
2.반론: "지나땅 ("중국"이라고 잘못 알려진 지나대륙)은 외족 또는 달로(오랑캐)라고 매도된 몽골인의 통치하에 있었고, 티베트는 원조에 어느정도 종속적이기는 하나, 독립된 정부를 가진 국가 였다. 반면, "중국인"이라고 잘못 알려진 "한인(한족)"의 지나인들은 정부,나라가 없는 민족이었다. 몽골인들은 근세기의 일본점령통치자들과 같았다. 이때문에 지나의 한족들은 일본 및 몽골인들을 가장싫어한다. 따라서, 설사 원나라가 티베트를 일부 통치했더러도, 한족의 중공이 이를 근거로 티베트통치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명의 주원장은 몽골을 쫓아낼 때, 중국인이 아닌 외적이라고 하며 쫓아 냈다."
2.설명:"이때문에 지나의 한족들은 일본 및 몽골인들을 가장싫어한다."중국사람이나 한족들대신 이러한 언론을 내시는것은~~ 중국사람이 일본인을 싫어하는것은 사실인데요,몽골인들을 싫어한다니요? 어디에서 아셨는지 궁금하네요?? 지금 중국의 소수민족인 몽골인을 원나라때 중국땅을 통치하였다는 이유로요? 지금 한집안인 가족을 두고 "예전에 자네가 집주인 행세한적이있어 자네가 영 싫네."라는 사람이 있을가요?이런 말하시면 중국의 한족이나 몽골족들이 모두 놀라합니다.글쎄 어디서 아신거죠??영 궁금하네요.중국의 "중국인"은 한족뿐아님니다.56개 민족이 "중국인"입니다.개념을 확실히 하세요>-
3. 반론:
"명나라는 일부 간섭을 하면서도 티베트왕들의 독립국왕들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3.설명: 원나라때 선정원을 티벳에 설립하여 그 지역의 군정사무를 관리하였습니다.
선정원하에 지반군사지구 즉“宣慰使司都元帅府”를 설치하여 주민관리를 하였습니다. 명나라 홍무시대때 두개의 도지휘사사(都指挥使司)를 설립하여 종합적으로 군사와 민사사무를 관리하였습니다.명나라때 티베트 당지의 황교가 당지의 가장 큰 종교단체였는데 명나라 영락시기 황교의 세가(释迦)가 서울북경에 와서 대국사
(大国师)라고 책봉받았습니다.
상술행적기구의 관부인원들은 세족제를 실시하였으나 중요한 관직의 임명은 황제의 허락과 인장이 적힌 공문이 필요되였습니다.
4.반론:" 위의 말들은 중공정부가 하는 상투적인 변명과 같다. 따라서 그 상투적 선전을 여기서 되풀이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4.설명: 저도 중국관청의 일부 관방적언론은 크게 호감은 없습니다.헌데 위에 적힌 말들은 중국사람의 진심적인 생각입니다.평화를 사랑한다는 말이 의미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이에대하여 제가 그냥 웃을수밖에 없네요.
어떠한 역사기재를 알고있든,역사를 정확히 아시든 모르든, 역사의 각도로 여기서 글을 남기신분들은 저는 존중합니다.헌데 그냥 감정적으로 중국과 중국사람들을 적대시하는것은 자신의 수준을 낯추는격밖에 되지않습니다.다른사람을 존중하는것은 자신을 존중하는거죠.
1.반론:
"당시 토번-당나라는 독립국가와 독립국가의 관계였고, 선비족의 당나라는 한족을 식민통치하던 선비왕조였다. 따라서 당시 정부가 없던 한족이 당나라의 한족지배를 이용하여 현재의 티베트-중공관계를 설명할 수없다. "
1.설명:당시의 토번과 당나라는 확실히 서로 독립인 국가였습니다.헌데"선비족의 당나라는 한족을 식민통치하던 선비왕조였다."? ? 당고조이원(李渊)의 조상은 십육국시대의 서량국의 한족 李暠입니다.그뒤 이씨가족은 선비족여성을 받아들여 후대양성한적이 있었습니다.하여 당고조이원은 한족과 선비혈통이 모두있습니다.그렇다고 당나라가 선비의 왕조라고 할수있나요? 북위(당나라전의 조대)때 북방에 거주하고있는 선비족은 한족과 통혼을 많이 하였고 한족의 성씨로 바꾸었으며 한족의 례의와 문화를 배움으로써 민족차이가 크게 없었습니다.수당시대때 선비의 부분적 성씨(独孤、长孙、元)등이 남아있기는 하였으나 이미 한족으로 치불되였습니다.
설명에 대한 반론:
서량왕 이호(李暠)는 "호족(오랑케족속)"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으며,당고조 이연은 따라서 아버지쪽으로 조상대대로 "호인"(오랑케라는 말로 몽골, 투르크족을 가라킴)의 혈통이며, 어머니 역시 선비족의 독고씨 였다. 따라서 당조는 몽골-투르크계의 왕통이 원시한족을 통치하던 시기이다. 즉, 원시한족은 식민지 인민이었다. 따라서 당-티베트관계는 호족당왕조와 티베트의 관계이지, 중국(사실은 중공)과는 관계없다.
그들의 일부가 나중에 한화되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선비족은 지금도 살아남아, 몽골과 우즈베키스탄등 중앙아시아의 국가로 남아있다. 따라서, 티베트와 당조의 관계는 티베트와 몽골,중앙아시아국가들과의 관계이다.
"한족"은 청말 양계초와 손문이 "달로"(오랑케라는 되나라말)라고 불리던 "만주족"에서부터 독립,해방되기위한 투쟁가운데 만들어진 민족칭호에 불과하다. 한족이란말을 딴 북조 및 수당시 "한인"은 피지배층의 족속을 의미했다. 지배층은 자기를 "선비인"으로 불렀다.
중국네티즌: 말씀드릴 다른하가지는,"티베트-중공관계를 설명할수없다"는것은 개념이 잘못된 관념이십니다."중국"이라는 개념은 "한족"만 가리키는것이 아님니다.56개민족이 포함된 "대민족"입니다.개념을 혼합하시지 마세요.
설명에 대한 반박:
당신이 쓰는 "중국"은 "중공" 즉, 중화인민공화국을 의미하는데, 중공은 당시 역사상의 "중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별개의 것임을 모르고 있다. "중공"은 "중국"이 아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역사상 존재 한적이 없고, 사실상 존재한 것은, 수,당,원,청등의 나라이고 중국은 그저 상대적 칭호였다. 중국의 뜻은 수, 당, 원...등의 실체가 주변나라에 대해 자기나라를 높여서 쓸 적에 중앙의 나라라는 뜻으로 쓴 곳으로 그 반대 개념은 "속국, 하국, 변방국"등등 다양했다. 조선, 알본, 심지어 청나라때에는 서양의 열국과 미국까지도 "속국, 하국, 변방국"으로 불렸지만, "속국, 하국, 변방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한 것이 있는가? 또, 현재 한국, 일본, 미국이 중공의 속국,하국, 변방국인가?
56개 민족이라는 개념은 중국이 아닌, "중공"이 49년에 들어선 이래 1957-1962년경에야 인구조사를 마친후 83개이상의 신청족속을 56개로 줄여 만든개념이고 그전에는 없던 개념이다. 참고로, 손문, 양계초, 장개석은 청나라의 만주족을 일컬어 "동북의 오랑캐(달로)인 외족이 우리 중국에 쳐들어 와서, 우리 중국인의 토지를 빼았고, 여자를 간음하여 더럽히고, 오랑캐의 말로 국어를 삼고, 개돼지와 같은 짐승의 도로서 우리를 더럽혓으므로 이들을 쫒아내고 한인은 독립해야한다" "중국인을 위한 중국을 한족중심인 18개성에다 세우자"라고 했다. 만주족은 현재 천오백만 이상이지만, 개혁개방이후에도 만주족적을 회복한 사람은 천만이 안된다."
2.반론: "지나땅 ("중국"이라고 잘못 알려진 지나대륙)은 외족 또는 달로(오랑캐)라고 매도된 몽골인의 통치하에 있었고, 티베트는 원조에 어느정도 종속적이기는 하나, 독립된 정부를 가진 국가 였다. 반면, "중국인"이라고 잘못 알려진 "한인(한족)"의 지나인들은 정부,나라가 없는 민족이었다. 몽골인들은 근세기의 일본점령통치자들과 같았다. 이때문에 지나의 한족들은 일본 및 몽골인들을 가장싫어한다. 따라서, 설사 원나라가 티베트를 일부 통치했더러도, 한족의 중공이 이를 근거로 티베트통치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명의 주원장은 몽골을 쫓아낼 때, 중국인이 아닌 외적이라고 하며 쫓아 냈다."
2.설명:"이때문에 지나의 한족들은 일본 및 몽골인들을 가장싫어한다."중국사람이나 한족들대신 이러한 언론을 내시는것은~~ 중국사람이 일본인을 싫어하는것은 사실인데요,몽골인들을 싫어한다니요? 어디에서 아셨는지 궁금하네요?? 지금 중국의 소수민족인 몽골인을 원나라때 중국땅을 통치하였다는 이유로요? 지금 한집안인 가족을 두고 "예전에 자네가 집주인 행세한적이있어 자네가 영 싫네."라는 사람이 있을가요?이런 말하시면 중국의 한족이나 몽골족들이 모두 놀라합니다.글쎄 어디서 아신거죠??영 궁금하네요.중국의 "중국인"은 한족뿐아님니다.56개 민족이 "중국인"입니다.개념을 확실히 하세요>-
설명에 대한 반론:
56개민족의 다민족 일국가 개념은 위를 참조하시고, 미안하지만, 나는 수많은 "중국인"(중공인)들로부터 이를 들었으며, 몽골인들에게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한어(중공의 한족어)웹사이트에도 많은 그런 글들이 있으므로 당신 스스로가 체크 해볼 수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필요하면, 나중에 웹주소를 여기에 몇개만 올려주겠다.
3. 반론:
"명나라는 일부 간섭을 하면서도 티베트왕들의 독립국왕들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3.설명: 원나라때 선정원을 티벳에 설립하여 그 지역의 군정사무를 관리하였습니다.
선정원하에 지반군사지구 즉“宣慰使司都元帅府”를 설치하여 주민관리를 하였습니다. 명나라 홍무시대때 두개의 도지휘사사(都指挥使司)를 설립하여 종합적으로 군사와 민사사무를 관리하였습니다.명나라때 티베트 당지의 황교가 당지의 가장 큰 종교단체였는데 명나라 영락시기 황교의 세가(释迦)가 서울북경에 와서 대국사
(大国师)라고 책봉받았습니다.
상술행적기구의 관부인원들은 세족제를 실시하였으나 중요한 관직의 임명은 황제의 허락과 인장이 적힌 공문이 필요되였습니다.
설명에 대한 반론:
고구려사를 외곡하는 바와 같은 방식의 설명인데, 외교적인 사후승인은 지금도 현대국제정치의 한 관행이고, 이를 영토의 일부로 확대해석 하지말라. 중공도 1972년까지는 유엔에서 국가승인을 하지 않았고 중화민국(대만)이 지나의 정식 대표였다. 책봉은 국가승인 또는 정부승인에 불과하다. 즉 외교관계를 개설하는 고대적 표현양식이었다. 또, 명나라 왕조 역시 한족의 왕실이 아니라 주원장과 그의 고려인아내와 사이에 난 위대한 영락황제의 씨앗이 지속한 왕조이다. 따라서 이역시 저확한 의미에서는 한족의 역사가 아니다.
4.반론:" 위의 말들은 중공정부가 하는 상투적인 변명과 같다. 따라서 그 상투적 선전을 여기서 되풀이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4.설명: 저도 중국관청의 일부 관방적언론은 크게 호감은 없습니다.헌데 위에 적힌 말들은 중국사람의 진심적인 생각입니다.평화를 사랑한다는 말이 의미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이에대하여 제가 그냥 웃을수밖에 없네요.
어떠한 역사기재를 알고있든,역사를 정확히 아시든 모르든, 역사의 각도로 여기서 글을 남기신분들은 저는 존중합니다.헌데 그냥 감정적으로 중국과 중국사람들을 적대시하는것은 자신의 수준을 낯추는격밖에 되지않습니다.다른사람을 존중하는것은 자신을 존중하는거죠.
설명에 대한 반론:
"중공"의 한족들은 항상 피지배계층에 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기타 민족이나 종족을 이유없이 얕보자고하는 노예근성이 있다. 계속 당하니까 이제는 자기들도 남들을 지배해보자는 식의...또, 그들은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세상을 거꾸로 보는 습성이 있다. 자신이 최고고, 자신만이 진실을 안다는, 따라서 남은 바보라는 그런식의...그러나, 그것은 어린아이의 사고 방식이고, 다른 사람, 민족들은 사실 자기보다 더욱 잘알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인정할수가 없다. 하지만 어린아이도 언젠가는 클 것이다. 나라가 크다고 사람이 큰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나라가 작다고 민족이 작은 것도 아니다. 당신의 "평화"가 진정한 평화가 되기위해서는 남에게도 "평화"가 되어야한다. 당신만을 위한 평화는 타인의 노예상태의 지속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당신의 입장을 바꾸어 보겠는가?
Anonymous님,이것은 전에 저에게 추천하신 소위"성화영웅 조작"의 뉴스주소에 대한 대응입니다.
http://news.qq.com/a/20080420/000144.htm
중국말을 아시는지도 모르고 이것을 올려서 미안하지만 이 뉴스에는 중국의 프랑스대사관 대사의 말이 씌여졌습니다.대략적으로 파리 성화전달중 불구자 운동선수 김경을 습격한 사람이 이미 체포되였고, 김경에 대하여 미안의 뜻을 표달한다는것입니다. 한국뉴스에서 볼수있을지*** 중국뉴스에서 프랑스대사대신 이러한 언론을 조작할수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저는 이에 대하여 다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추천하신 뉴스에 올려진 사진을 다운받아서 보았는데요,다른 사진은 몰라도 세번째 사진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앞에선 중국국기를 가진 여자애와 뒤의 여러사람과 비교해보세요.분명히 컴퓨터로써 두사진을 한사진으로 만든것입니다.
서량왕 이호는 호족이다?????
답: 이연의 조상: 서량왕 이호======이호의 조상: 한나라 한족장군이광(이호는 이광의 16대 자손임), 이광묘는 이미 감숙성 경내에서 발굴됨.
"명조는 주원장과 고려아내의 아들인 위대한 영락황제의 씨앗이 지속된 왕조이다, 하여 명나라와 티벳의 관계는****** "
의문: ..... 하여 명나라는 고려의 시대이고 명나라와 티벳의 역사관연은 고려와 티벳의 역사이라는뜻인가요....... 중국에서도 영락황제가 마황후의 아들이 아니라 고려아내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저도 이것을 많이 믿지만, 위대한 영락황제가 어떠한 혹독한 방식으로 자신이 마황후의 넷째아들이라는것을 세상사람에게 알려주었는지는 아시는지요.
한족은 몽골족을 싫어한다??????
답: 그렇게 말을 많이 들어셨다구요.... 몽골족도 접촉해보시고.... 저의 고모집의 두 녀동생이 중국의 내몽골에서 6년간의 중학교생활을 했고 저 자신도 북방인인데 예전에 몽골족들과 접촉도 해봤어요.저 대학교에서 후배중에도 몽골족이있었고.저의 대학교에서는 어느애가 소수민족이라는것이 알려지면 벌써 많은 애들이 그애 주위를 몰려서 호의를 표합니다. 호기심에 그러한것도 많지만 적어도 선의적인 감정입니다.보셨다는 웹을 주셔도 괜찮구요, 저도 궁금하네요.여러가지를 알아보는것도 좋은 일이죠뭐.
저의 견해들을 반론하는데 한가지 생각이 집요하게 많은 글들에서 나타나더라구요.즉, 제가 나열한 중국역사에서 티벳과 관계있는 조대들은 지금의 "중국"과 관계없다고...............
그중의 원인을 보면 대략 : 1. 그 조대의 어는한 황제는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 이거나 (제가 인정한것은 아닙니다.) 소수민족혈통을 가진 사람이다.
2."중국"이라는 나라는 역사상 실제로 있어본적이 없다. 하여.... 지금 중국이라는 나라는 옛여러조대들과 상관이없는 나라이다.하여.... 지금의 중국도 티벳과 관계가 없다.
후유......
한 문제에 대하여 지식을 많이 아는것도 중요하지만,제가 보기엔 어떠한 사고방식을 갖고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석하는것이 더 중요하죠.
한 나라,한조대는 령도자나 황제만의 나라나 조대가 아닙니다. 인민의 나라와 조대,인민의 역사이기도 하죠.그 나라에서 거주한 구체적인 사람들뿐만아니라 인민들이 창조한 역사와 정신적,물질적 문화도 포함되죠. 지금 중국땅에서 살고있는 13억 인민들이 외계인들인가요?? = =!! 지금 중국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문자(갑골문부터 지금의 한자간체에 이르기까지)와 내용이 풍부하고 다양한 중국문화가 어디서 온거죠?? 중화인민공화국이 50년 역사만 지닌 과거도 없는 고립된 나라인가요?? 그저 역사상 어느 조대가 소수민족통치의 시대였거나 어느 황제가 소수민족 혈통이 있었다는 이유로요???
미안하지만 제가 여기까지 설명해야된다는것이 저 자신도 한심하네요.어떠한 한국분들은 한국은 단일 민족의 나라여서 민족의 "순혈통"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는가 봐요. 중국은 상황이 많이 다름니다.한족도 염황시기때의 화하족부터 지금까지 많은 소수민족과 융합되면서 생겨진 민족입니다. 전에는 "한인"이라 불리웠고 1912년 중화민국 성립되여서 여러민족과 구분하기위하여 "한족"이라고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명칭"뿐이고 그뒤에는 몇천년간의 민족형성과 번영시기가 있습니다.
"중국"이라는것은 Anonymous님이 얘기하신것과 같이 역사상의 어느한 나라가 아님니다.중국사람들도 그것을 잘알고 있습니다. 역사상 "중국"은 나라개념이 아니라 "지역적"인 개념입니다. 역사의 변화에 따라 가르키는 지역범위도 작은데로부터 큰것으로 많은 변화를 거쳤습니다.나라적인 개념은 중화민국시기부터 인데요, 글쎄 이것이 뭐가 문제인지..... "한국"의 나라명칭은 "대한민국"성립된후부터죠? 제가 한국의 역사출판물을 봤는데 한국의 역사는 구석기시대부터 쓰졌든데요?
Anonymous님, 중국이 다른 소수민족이나 나라를 이유없이 얕잡아 보고 뭐 다른사람을 지배하고싶은 노예근성이 있다구요.정 그렇게 생각하시면 저도 어쩔수 없죠.그동한 중국에 대하여 많이 화나셨는가 봐요. 아신바 화를 많이 내면 몸을 상하기에 진정하시죠.: )
그리구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다른사람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라고 하셨죠.... 좋은 말씀인데요..... 당신이 알고계시고 회복시키려는 "평화적인" 달레통치하의 티벳의 역사를 시간봐서 올릴게요. 오늘은 이만큼 하겠습니다.
이 글을 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중국군민의 견해 said:
Anonymous님,이것은 전에 저에게 추천하신 소위"성화영웅 조작"의 뉴스주소에 대한 대응입니다.
http://news.qq.com/a/20080420/000144.htm
중국말을 아시는지도 모르고 이것을 올려서 미안하지만 이 뉴스에는 중국의 프랑스대사관 대사의 말이 씌여졌습니다.대략적으로 파리 성화전달중 불구자 운동선수 김경을 습격한 사람이 이미 체포되였고, 김경에 대하여 미안의 뜻을 표달한다는것입니다. 한국뉴스에서 볼수있을지*** 중국뉴스에서 프랑스대사대신 이러한 언론을 조작할수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저는 이에 대하여 다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추천하신 뉴스에 올려진 사진을 다운받아서 보았는데요,다른 사진은 몰라도 세번째 사진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앞에선 중국국기를 가진 여자애와 뒤의 여러사람과 비교해보세요.분명히 컴퓨터로써 두사진을 한사진으로 만든것입니다.
답변: 선생이 말씀하시는 것은 웹에 게제된 사진이 서방언론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이고, 반대로 서방언론의 웹기사는 성화를 봉송하는 데 생긴 사건 자체가 중공스파이에 의해 티베트에 대한 나쁜 이미지 조성을 위해 조작되었다는 주장인데, 이에 대한 우리끼리의 공박보다는 한가지 사실을 주목하면 어느것이 사실인지를 알 수있을 것 같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1달 이상기간동안 이러한 티베트인이 했다는 이 성화봉송사건이 일어나기전까지 중공은 인터넷을 퉁한 및 모든 외부보도를 차단했다는 사실이다. 즉 중공사람들은 티베트에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재외중공인들이 국내로 전화하는등을 통해 이일이 차츰 알려지고 이일이 일어나자 중공은 대대적으로 티베트 사태를 보도하기시작했다. 여러 다른 서방보도에 따라 100-500명이 죽었다는 심각한 티베트 사태가 계속되는 동안 중공인들은 아무 것도 모르다가 갑자기 이 작고 작은 사건이 생기자 알게된 것은 왜일까?
April 20, 2008 7:31 PM
한 중국군민의 견해 said:
서량왕 이호는 호족이다?????
답: 이연의 조상: 서량왕 이호======이호의 조상: 한나라 한족장군이광(이호는 이광의 16대 자손임), 이광묘는 이미 감숙성 경내에서 발굴됨.
선생은 중공학자들이 상투적으로 말하는 당고조 이연, 당태종 이세민의 가계를 되풀이 말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수준이 그것이니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광은 한서에 의하면, 한(漢)나라의 장군으로 흉노(匈奴=선비=몽골,투르크)정벌에 나섰다가, 오히려 사로잡혀 흉노땅에서 죽은 사람이다. 그는 흉노여자와 결혼했으며, 자손을 남겼다. 한나라가 친구를 사신으로 보내 그를 돌아오라고 했지만 자신은 "나는 이미 흉노의 옷으로 바꿔입었다"하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한서에는 한나라 황제가 "아내 및 자식을 포함, 그의 삼족을 멸했다"고 하니,과연 그의 죽어 없어진 자손이 선비족 호인 "이호,이연,이세민"의 조상일수가 있는가? 또, 그가 흉노정벌을 갈때, 한나라에 살던 호인(흉노)인들을 같이 보냈으니, 이광 자신도 흉노인이었을 것이다. 마치 임진왜란때 명(明)나라가 이여송을 총지휘관으로 보내어 중공,한국인들은 그를 명나라의 되인(漢族)으로 알고 있으나, 그는 사실 요녕의 심양지방에 살던 고려인이었다. 이와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설사 역사에 실수로 적히지 않은 살아남은 자식이 지나땅에 있었더라도 그는 원래 "흉노인 이광"의 자식이고, 또는 나중에 흉노의 땅에서 600후에 돌아온 이광의 자손이 당나라의 개창자가 되었다면, 흉노선우의 딸과 이광사이에서 나서 600년동안 흉노족이었던 자손들이 돌아온 것일 뿐이다. 600년간의 시간동안 한족이 흉노땅에서 흉노와 결혼하고 살았더라면 그는 흉노인가, 한인(한나라사람의 족속)인가? 생각해보기 바란다.
중국네티즌:
"명조는 주원장과 고려아내의 아들인 위대한 영락황제의 씨앗이 지속된 왕조이다, 하여 명나라와 티벳의 관계는****** "
의문: ..... 하여 명나라는 고려의 시대이고 명나라와 티벳의 역사관연은 고려와 티벳의 역사이라는뜻인가요....... 중국에서도 영락황제가 마황후의 아들이 아니라 고려아내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저도 이것을 많이 믿지만, 위대한 영락황제가 어떠한 혹독한 방식으로 자신이 마황후의 넷째아들이라는것을 세상사람에게 알려주었는지는 아시는지요.
답변: 중공이 현재 진행중인 한국역사왜곡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의 논리에 따르면 그렇다. "기자(님)이 중국에서 왔으니, 고조선의 기자조선은 중국역사이다" 하는식의...또는 "고주몽(님)께서 염,황(신농염제, 황제)의 문화를 이었으므로, 그들의 자손이고 따라서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이다"고 하는 식의 논리에 따르면 대답은 "그렇다"이다. 왜 중공의 입장에서 하는 논리는 맞고, 똑같은 논리를 다른나라사람이 쓰면 틀리는가? 그래서 중공인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아둔하다":위 참조)라고 하는 것이다.
또, 청(清)나라때 주장대신, 즉 서장이라고 중공말로 불리는 티베트에 주재하는 청의 대신=외교관?)의 존재에 근거하여 중공은 자주 티베트 복속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청나라는 지금의 북한 함경도에서 기원한 여진족으로써 독립할때까지 "청(清)태조 누르하치"의 조상대대로 조선의 속민이었고, 그의 5대조 할아버지 맹 첩목아(멘 테무르)를 비롯하여 조선조정에 사시사철 때도없이 와서 지방관의 정부내 회의에 견줄 수있는 조정회의에 "우리조정, 우리 임금님"하며 왔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중공의 논리에 따르면, 어찌 티베트와 조선이 서로 관계없겠는가? 조선민인 여진이 지나로 가서 한족들을 통치한 것이 청의 역사인 것이 사실인데.
한족은 몽골족을 싫어한다??????
답: 그렇게 말을 많이 들어셨다구요.... 몽골족도 접촉해보시고.... 저의 고모집의 두 녀동생이 중국의 내몽골에서 6년간의 중학교생활을 했고 저 자신도 북방인인데 예전에 몽골족들과 접촉도 해봤어요.저 대학교에서 후배중에도 몽골족이있었고.저의 대학교에서는 어느애가 소수민족이라는것이 알려지면 벌써 많은 애들이 그애 주위를 몰려서 호의를 표합니다. 호기심에 그러한것도 많지만 적어도 선의적인 감정입니다.보셨다는 웹을 주셔도 괜찮구요, 저도 궁금하네요.여러가지를 알아보는것도 좋은 일이죠뭐.
답변: 한국에 있는 몽골공화국사람의 수가 거주인 3만을 비롯하여 유학생,여행자까지 하면 5만가까이된다고 한다. 동대문시장주변에는 가게와 식당등은 물론 집단 거주지가 있다.한번 가서 얘기해보기 바란다. 그들이 어떤 말을 하는가? 참고로 한 한국사람이 내몽골사람한테 물어본결과, 그는 내몽골의 70%이상의 몽골인들이 몽골말을 못하고, 그들 전통의 유목초지도 한족에게 빼았겨, 삶을 포기하고 도시에 와 막노동을 한다고 한다. 그는 곧 "몽골족은 한족에 의해 사라질 것같다"고 분통해 했다고 한다.
답변:
주제와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긴 하지만, 선생이 북방인이라고 하니까, 사실 당신한테 호감이 간다. 아마도 조선족이거나, 한족(漢族)이라도, 우리고대의 조선민(고조선, 고구려, 발해, 고려등)의 한화(漢化)된 후예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비록 중공이 소수민족을 없에기 위해 족보 죄다 파괴했지만, 혹 남아있으면, 혹은 할아버지등을 통해 조사해보라. 역사공부에 도움이 된다.
중공네티즌:
저의 견해들을 반론하는데 한가지 생각이 집요하게 많은 글들에서 나타나더라구요.즉, 제가 나열한 중국역사에서 티벳과 관계있는 조대들은 지금의 "중국"과 관계없다고...............
그중의 원인을 보면 대략 : 1. 그 조대의 어는한 황제는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 이거나 (제가 인정한것은 아닙니다.) 소수민족혈통을 가진 사람이다.
2."중국"이라는 나라는 역사상 실제로 있어본적이 없다. 하여.... 지금 중국이라는 나라는 옛여러조대들과 상관이없는 나라이다.하여.... 지금의 중국도 티벳과 관계가 없다.
후유......
답변: 중공은 예를 들어 한국역사왜곡때에 고조선, 고구려, 고려등은 서로 다른 민족이나, 다른 지역에서 나온 사람들이 만들었기에 역사적으로 서로 상관없는 왕조들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물론 고조선, 고구려, 고려는 모두 같은 말을 쓰고, 크게는 같은 지역에서 나왔으며,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고 믿는 한가지 민족이 이은 나라들이다. 그러므로 중공의 논리는 얼토당토 않다. 그러나, 이는 놓아두고, 중공의 논리를 지나의 왕조에 적용해보면, 지나의 왕조중 몇개만 빼고 거의 모든 왕조는 한족과 관계없다. 왜, 중공의 논리를 한반도와 만주에 적용하면 맞고, 이를 중공에 적용하면 틀린 말이 되는가? 아둔하다는 말을 다시 할 필요는 없지만...
중공네티즌:
한 문제에 대하여 지식을 많이 아는것도 중요하지만,제가 보기엔 어떠한 사고방식을 갖고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석하는것이 더 중요하죠.한 나라,한조대는 령도자나 황제만의 나라나 조대가 아닙니다. 인민의 나라와 조대,인민의 역사이기도 하죠.그 나라에서 거주한 구체적인 사람들뿐만아니라 인민들이 창조한 역사와 정신적,물질적 문화도 포함되죠. 지금 중국땅에서 살고있는 13억 인민들이 외계인들인가요?? = =!! 지금 중국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문자(갑골문부터 지금의 한자간체에 이르기까지)와 내용이 풍부하고 다양한 중국문화가 어디서 온거죠?? 중화인민공화국이 50년 역사만 지닌 과거도 없는 고립된 나라인가요?? 그저 역사상 어느 조대가 소수민족통치의 시대였거나 어느 황제가 소수민족 혈통이 있었다는 이유로요???
답변:
내말은 선생의 "사고방식"이란 것이 한쪽만이 맞다는 식의 논리이기때문에 이를 잘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중공네티즌:
미안하지만 제가 여기까지 설명해야된다는것이 저 자신도 한심하네요.어떠한 한국분들은 한국은 단일 민족의 나라여서 민족의 "순혈통"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는가 봐요. 중국은 상황이 많이 다름니다.한족도 염황시기때의 화하족부터 지금까지 많은 소수민족과 융합되면서 생겨진 민족입니다. 전에는 "한인"이라 불리웠고 1912년 중화민국 성립되여서 여러민족과 구분하기위하여 "한족"이라고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명칭"뿐이고 그뒤에는 몇천년간의 민족형성과 번영시기가 있습니다.
답변:
물론 한국민족 또한 "순수한 하나의 민족"은 아니다.따라서 나는 그들과 동의하지 않는다. 많은 한인(한족), 몽골, 여진(만주)인들이 한민족으로 흡수되었고, 지금도 수만명(최근 보도로 매년 4만명 가량), 몇년만에 수십만명의 외국인들이 한국인과 결혼하여, 한국인이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사의 주류는 아니다. 따라서 중공과 전혀 다르다고 할수 없다. 그러나, 지나와 달리, 하나의 민족이 지배계층이 되어 다스린 적은 없다. 일제때마져도 임시정부가 "조선왕조"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지나에서는 외족이 점령, 지배민족이 되어 한족을 다스렸다. 따라서 이는 한민족의 역사와 구별된다.
참고로 선생이 언급한 중공인(한족)들이 자신의 조상이라고 근거없이 믿고 있는 "염제(신농), 황제(헌원)"은 사실상 그들의 후예의 일부가 한족의 조상의 "일부"가 되었을 수는 있어도, 원래 그들은 한족이 아니었음을 알기 바란다. 지나의 주요한 문명과 왕조, 신화는 지금 그들이 1) (중공국경내에 있는 사람일 경우)"소수민족"으로, 2)또 (역사상 그들의 통치자일 때는) "외족"으로, 3) 또 국경 밖에 있을 경우 "외국민족"등으로 부르는 사람들의 조상으로부터 이루어졌다.
요,순임금때부터 쓰여졌다고 말하는 지나에서 가장오래된 기록이라는 "산해경"을 읽어보면, 염제(炎 帝) 신농(神 農)의 직계후예로서는 이른 시기에
1) 조선-한민족(朝鮮-韓民族)의 전신이었던 흑치국(黑 齒 之 國) 및
2) 이 (夷) 또는 호(오랑캐) 부여 (胡-/夷- 不 與), 즉 부여(扶餘)족
3) 그리고 동이(東 夷)족 북제나라(北 齊 之 國)
4) 동이(東 夷)족 치우(蚩尤)
5) 북적(北狄) 공공(共 工 氏)
6) 북적(北狄) 과보(夸 父)
7) 티베트계의 장강족(藏羌族)인 저인의 나라(互 人 之 國, 氐 人 國)
8) 묘족(苗族)계열의 소수민족(少数民族) 즉, 묘(苗)요(瑶),동(侗), 이(彝), 수(水)족등의 전신인 삼묘국(三 苗 國)밖에 없고,
한족의 선조라고 하는 민족이나, 역사적, 신화적 인물은 없다.
황제 역시 마찬가지다.황제(黃 帝)는 고대 조선-한민족(古代朝鮮-韓民族)의 한 갈래였던
1)“백민(白 民)”과
2)“대인국(大 人 國)”
3)동해해신(東 海 海 神:황해) 우호(禺 號), 그 아들인 북해(北 海: 발해=황해의 북부)의 해신(海 神) 우경(禺 京)
4)황제(黃 帝)의 2대후손인 최초의 동이(東 夷) 곤(鯀)이 있고,
5)동이(東 夷)계가 아니지만 형제관계인 북적(北 狄:동몽골)
6)견융(犬 戎:서방몽골)이 있다
말하자면, 역사와 신화시대의 초기(5000-3000년전)에 쓰어진 기록에 의하면, 염제 황제는 조선민족과 몽골민족의 선조였고, 그들 역시 고대 조선족, 몽골족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전국시대와 2100년전 한나라이후 그들의 후예가 남방 즉, 지나의 남방 원시한족지대를 점령하면서, 원시한족들이 그들의 조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중공인들은 이런 역사를 왜곡하여 그들을 자신의 조상이라고 우기고 있다.
중공 네티즌:
"중국"이라는것은 Anonymous님이 얘기하신것과 같이 역사상의 어느한 나라가 아님니다.중국사람들도 그것을 잘알고 있습니다. 역사상 "중국"은 나라개념이 아니라 "지역적"인 개념입니다. 역사의 변화에 따라 가르키는 지역범위도 작은데로부터 큰것으로 많은 변화를 거쳤습니다.나라적인 개념은 중화민국시기부터 인데요, 글쎄 이것이 뭐가 문제인지..... "한국"의 나라명칭은 "대한민국"성립된후부터죠? 제가 한국의 역사출판물을 봤는데 한국의 역사는 구석기시대부터 쓰졌든데요?
답변:
"중국"이 많은 경우 나라개념이 아니라, 지역적개념으로 쓰인 것은 누구나 안다. 조선때 만주족의 청나라가 지나를 점령했을때 조선 사람들은 "중화는 망했다"라고 햿으나, 습관적으로 지나땅을 가라켜 "중국"이라고 불렀고, 지금도 "중공"대신 마찬가지로 중국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중공"은 청나라나, 명나라와 다르다.
나라가 중화민국시대에 있었다면, 그때에 티베트관계가 나라대 나라로써 성립한다. 그러나 그때 두나라간에는 관계가 없었고, 티베트에는 지금의 "달라이 라마"가 젊은 "국왕"이었다.
중국네티즌:
Anonymous님, 중국이 다른 소수민족이나 나라를 이유없이 얕잡아 보고 뭐 다른사람을 지배하고싶은 노예근성이 있다구요.정 그렇게 생각하시면 저도 어쩔수 없죠.그동한 중국에 대하여 많이 화나셨는가 봐요. 아신바 화를 많이 내면 몸을 상하기에 진정하시죠.: )
답변:
내몸을 생각해주신다고 하니 고맙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그렇게 생각않았던 모양이죠?
중공네티즌:
그리구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다른사람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라고 하셨죠.... 좋은 말씀인데요..... 당신이 알고계시고 회복시키려는 "평화적인" 달레통치하의 티벳의 역사를 시간봐서 올릴게요. 오늘은 이만큼 하겠습니다.
이 글을 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
정치적 목표를 위해 편집한 교과서의 반복보다는, 역사기록에 근거해 개관적으로 써주시면 감사하겠고 배움에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저보고 자꾸 하신 말씀이 제가"한족만이 맞다"는 사고방식을 한다네요.
우선 당신의 ID가 무엇이죠...... "중국네티즌"..................
반대로 당신은 중국의 무엇이나모두 틀렸다는것으로 사고하신것은 아닌가요?
자꾸 당신이 하신 정서적으로 공격적인 말을 무시하고 호의적으로 문제를 토론하려고 하였는데요... 자꾸 이렇게 반복하시는것은 당신이 중국에 대하여 적대시하는 편견만 품고있음을 증명하는것밖에 안됨니다.
저는 저의 조폭을 본적이 있음니다. 저의 할아버지께서 잘 챙기시고 있으시니깐요.저의 가족들도 얘기하신 중국정부의 그러한 폭행을 받은적도 없고요.
그리고 한족이 조선의 후대라고요......... 이러루한 언론도 전에 많이 많이 들었어요, 중국고대의 공자, 4대미인중인 서시, 불교창시인 서가모니등등등 들이 조선사람이라는것을요. 염황시기때의 여러 종속갈래가 중국한족의 조상이 아니라 고대 조선,몽골의 조상들이라구요... 상세히 쓰셨든데요, 의문이 있네요. 인류가 형성되면서 여직것 자연을 적응하면서 지역차별로 색종차이, 민족차이 등등이 생겼죠.그중 많이 보는 상황은 한지역의 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서로 영향을 받고 발전한거죠. 그러는중 차이도 생기고 동화도 생기고.... 제가 왜서 이것을 얘기하냐면 인류의 발전은 고립된 상태보다 서로 영향받는 상태가 많아서 민족의 형성도 마찬가지 이랍니다.당신이 얘기하신 염황의 여러갈래 종족들에 대하여 딱히는 모르지만, 그것을 뛰여 문제를 논리적으로 보보시죠. 조선 혹은 몽골의 조상이 염황의 여러갈래 종족들과 혈연관계가 있다고 해서 중국의 한족들이 조선 또는 몽골의 후대들이다....... 중국의 한족,조선족,몽골족이 한부류의 고대민들로 부터 발전하여 각각의 민족을 형성했다고도 볼순 없나뇨? 항상 문제를 절대화 편면화 하신것 같아서 얘기한겁니다.
지금 출장중이라..... 말을 길게 할수도 없구요...... 그냥 제가 올릴 티벳에 관한 재료를 무조건으로 정치적인 선전재료라고만 고않고 편견없이 읽어 주셨으면 천만 감사합니다.
저녁시사하러 가려다가 너무 억울한것을 보았네요."중국이 한국역사를 외곡하여 고구려 조선등등을 서로 다른 나라이고 다른 민족이라고 선전 "했다구요??????
제가 배운 한국,조선, 고구려 등에 관한 역사교과서나 역사서적에는 "종래로"이러한 글들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알다싶이 고구려나 고조선이나 조선이나 지금의 한국이나 ..... 한 민족피줄이였고 한나라의 민족발전사였다는것을...... 후유....(다시) 억울도 어지간한 억울이 아니네요.
제가 얘기한 "단일 민족"이라는것도 조선민족이 여러 민족들로부터 발전형성되였다는것을 부인하는것이 아니라 민족형성후 한민족의 상태로 나라를 꾸리고 나갔다는것입니다. 그뒤의 이민형상은 다른 얘기구요.
잘못된 글을 올린데 관한 성명: 제가 그날에 쓰신 글을 총망히 보다나니 부분적인 글을 잘못보았군요...염황의 문제에 관하여 제가 잘못보아서 "한족이 조선족 혹은 몽골족의 후대"라고 당신이 하셨다고 제가 잘못된 글을 올렸네요. 죄송합니다.
NOTE: Set forth below is about Old Tibet, a land of horrific cruelty and exploitation prior to Chinese liberation. The Dalai Lama, who was Tibet's teenage absolute ruler when China took back control of his feudal domain, has never apologized for the nightmarish conditions that prevailed, including a complete absence of human rights for virtually all Tibetans.
Rich and beautiful Europe experienced a period known as the "Dark Ages" when barbaric methods of torture were used and the inhuman rule that sea-owners had the right to sleep with a female serf before she married her husband was enforced . However similar practices continued to exist in old Tibet for another 400 years.
Despotic Lamas and Nobles
Before 1959, Tibet had long been a society of feudal serfdom under the despotic political- religious rule of lamas and nobles. The masses of serfs in Tibet did not even possess fundamental rights. Serf-owners principally local administrative officials nobles and upper- ranking lamas, accounted for less than 5 percent of Tibet's population but they owned all of Tibet's farmlands pastures, forests, mountains and rivers as well as most of the livestock. The serfs making up more than 90 percent of Tibet's population lived no better than the slaves in the plantations in the southern states of America. The serf-owners could sell or transfer their serfs, present them as gifts, or use them as mortgages payments for debts. They could even ex-change them,molest them or maltreat them. When two serfs got married, the husband and wife still belonged to different owners and their children were fated to be serfs from the moment they were born.
The Weight of a Dead Body
The statutory code of old Tibet stipulated that people were unequal in status by dividing people into three classes and nine ranks. In a peculiar law concerning the value of human life it was written that the lives of people belonging to the highest rank of the upper class such as a prince or leading living Buddha, were calculated to be worth the weight of the dead body in gold whilst the dives of people belonging to the lowest rank of the lower class, such as women, butchers, hunters and craftsmen were worth a straw rope.
The judicial system of old Tibet gave monasteries and serf-owners the right to judge lawsuits. The judicial system itself was characterized by its bloodcurdling system of cruel tortures: punishments issued by the courts were extremely savage and cruel and included gouging out the eyes, cutting off the ears, hands or feet; pulling out tendons; throwing the criminal into water or shutting the criminal into a wooden case lined with nails facing inwards.
These bloody historical facto were displayed in an Exhibition of Tibetan Social and Historical Relics in the Beijing Cultural Palace of Nationalities. Imagine what people thought when they saw the amputated limbs, the flayed human skins and the ghastly torture implemented.
One letter kept in file which attracted much attention. It read:
''Rab Ge:''
A Buddhist ceremony will be held here. We need meat,hearts and blood from all kind of animals 4 human heads, intestines, pure blood, turbid blood, earth from ruins, the menstrual blood of a widow, the blood of a leper, water from beneath the surface of the earth, earth raised in a whirlwind, brambles growing towards the north, excrement of both dog and man and the boots of a butcher. All these should be sent to Tsechykhang on the 27th.
Tsechykhang , the 19th"
From this letter we can imagine how many serfs would have been killed for that single ceremony. In such barbaric and brutal times. Tibet's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was out of the question. The economy in Ti- bet had been at a standstill for a long time and was even declining as was the output of grain. Crude wooden ploughs were the basic tools for agricultural production: the primitive method of herding were causing the deterioration of both the pastoralland and the breeds of livestock disease was epidemic and harmful beasts were rampant. The seas were cruelly exploited. They were forced not only into hard labour but also to bear the heavy burdens of corvee and tax. Living in poverty and starvation, they were struggling for existence on the brink of death all year round. In the 1950s, there were more than 4,000 beggars in the city of Lhasa, out of a opulation of only 37,000. The rate was even higher in Shigatse, the second largest city in Tibet. Because Of the high frequency of uncontrolled epidemics, the average life-span of a Tibetan was only 35.5 years.
在此,我想结束在本网站上的讨论。
首先,我想声明,我的放弃争论,是源于我的无奈----因为我发现在此网站上与我讨论的韩国人对中国的偏见是如此的根深蒂固。除了那些偏激而富有攻击性的言语之外,一直认为我的任何陈述都是站在”中国的就是正确“的立场上,所以我看不出再这样下去有什么意义所在。
我仅是在陈述事实,我承认在我的陈述中有个问题本人也不是很确定,就是对于李渊的血统中国史学家们也有很多不同的声音,且此问题一直没有定论,但是,就算他不是汉族那又怎样呢?YOU INSIST TO PROVE OUT SOME OF THE EMPERORS OF CHINESE DYNASTIES WERE MINORYTIES, AND YOU THINK THE EMPERORS WERE EQUAL TO THE WHOLE TIME OF DYNASTIES, I THINK THERS IS BIG PROBLEM IN YOUR HISTORY CONCEPTION! 我已经说过了,历史不仅是一个王朝,一个皇帝的历史,更是人民的历史 。把讨论集中于一个王朝的皇帝的血统上,继而推论整个朝代与汉族的关系,再次推出今天的中国与历史上此朝代无任何关系============== 这等的逻辑理论是何等的幼稚与自以 为是!
“中国人“不等于“汉族”,汉族只是中国人当中的一员而已; “中国的历史与朝代”不等于“汉族的历史与朝代”,是居住在中国大地上各民族的奋斗发展史。YOU ALWAYS THINK "CHINESE" ONLY MEANS "HAN PEOPLES" , HOW RIDICULOUS IT IS!
此外,在你的言论中总是强调中国在对朝鲜历史进行歪曲, 这种自相情愿的恨与无知只会加深误会。你误认为中国人在宣传古朝鲜历史就是中国的历史, 何等荒谬!!!请你客观全面了解中国历史教科书与各方中国有关朝鲜韩国的书籍后再下结论!
在本站原本的评论中除了对事件现象的报道之外,后续对中国政府和人民的评论充斥着“似乎”“应该”等诸如此类的推测。你们总是一厢情愿地认为中国人应该就是这样想的。IN YOUR COMMENT,YOU ALWAYS CONSIDER THAT "THE CHINESE SEEMS TO THINK LIKE THIS. ..", SO DO YOU THINK SUCH A SUBJECTIVE SAYINGS ARE FAIR TO CHINESE PEOPLE? 在你的陈述中也常提到说:“就像高丽篡改历史一样,你们中国也同样。。。。”“就像何种何种情况一样,你们中国也肯定是。。。。” 你不觉得如此类推是件强行就范的行为么? 如果你认为你这样做是正确的,我只能对这种幼稚的思维方式无语。
我在此承认:我错了。错在不该到这里和某些人讨论此类问题。和一些一开始就以仇视的心态,偏激的理论,荒唐的逻辑来想问题的人,有什么可讲的??毫无意义!
但是我会将此次争论原文译成中文和英文公开在中国和国外的网站上,让大家和时间去评定。请你放心,我会客观地翻译你的言论及说辞,不会无故渲染或歪曲,也不会故意美化我的言论。我承认你说的某些历史是真实的,但是我绝对不敢认同你看待问题的逻辑思维(我很多次都在怀疑我是否在何一个正常人讨论问题),你总是在问:凭什么中国的就是正确的?? 请客观审视一下我以上的回复,我是这种态度么?? 反之,凭什么中国人说什么都是为自己的辩解,凭什么中国做什么都是错的??? 如果很多韩国人都是这么想的,那真是令人震惊!因为这些想法是如此狭隘和偏激,且充满敌视。
我不会再回到此网页上,也不会进行任何回复,在此,再见! 珍重!
한 중국군민의 견해 said:
저녁시사하러 가려다가 너무 억울한것을 보았네요."중국이 한국역사를 외곡하여 고구려 조선등등을 서로 다른 나라이고 다른 민족이라고 선전 "했다구요??????
제가 배운 한국,조선, 고구려 등에 관한 역사교과서나 역사서적에는 "종래로"이러한 글들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알다싶이 고구려나 고조선이나 조선이나 지금의 한국이나 ..... 한 민족피줄이였고 한나라의 민족발전사였다는것을...... 후유....(다시) 억울도 어지간한 억울이 아니네요.
제가 얘기한 "단일 민족"이라는것도 조선민족이 여러 민족들로부터 발전형성되였다는것을 부인하는것이 아니라 민족형성후 한민족의 상태로 나라를 꾸리고 나갔다는것입니다. 그뒤의 이민형상은 다른 얘기구요.
답변: 선생은 지난 6년여동안 온 한국민과 조선인민이 전민족적으로 규탄한 중공의 조선-한국역사 왜곡 사건을 모르고 있으니, 아마도 이를 당신에게 인터넷에서 좀 조사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선생이 중국사회과학원과 동북변강사지연구소등의 그 엉터리 중공학자들이 헛소리 하기 사작하기전에 배웠다는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제가 배운 한국,조선, 고구려 등에 관한 역사교과서나 역사서적에는 "종래로"이러한 글들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알다싶이 고구려나 고조선이나 조선이나 지금의 한국이나 ..... 한 민족피줄이였고 한나라의 민족발전사였다는것을...... 후유....(다시) 억울도 어지간한 억울이 아니네요. )
답변:
억울하다면, 중공의 웹이나, 한국의 웹에 올라 그 엉터리 이론들을 찾아보면 "억울해"할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아마도 선생이 양심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족보를 보았다니 다행인데, 틀림없이 선생은 조선족일 것이다. 그들은 이르 중시하고, 다행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통해 다시 찾아보고 있다. "티베트"운운 도 좋지만, 선생의 조상 및 그 역사에 대해서도 잘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한 중국군민의 견해 said:
NOTE: Set forth below is about Old Tibet, a land of horrific cruelty and exploitation prior to Chinese liberation. The Dalai Lama, who was Tibet's teenage absolute ruler when China took back control of his feudal domain, has never apologized for the nightmarish conditions that prevailed, including a complete absence of human rights for virtually all Tibetans. .......생략...
In the 1950s, there were more than 4,000 beggars in the city of Lhasa, out of a opulation of only 37,000. The rate was even higher in Shigatse, the second largest city in Tibet. Because Of the high frequency of uncontrolled epidemics, the average life-span of a Tibetan was only 35.5 years.
답변:
선생은 출처도 모르는 위글을 통해서, 간단히 말해서 티베트가 중국교과서 티베트관련부분에서 상투적으로 말하듯, "못살고 힘든 봉건왕조 당시의 국왕 달라이 라마(지금의 달라이 라마)로부터 고통을 당해서 해방시켰다"라는 것인데, 그러면, 현재의 중국은 어떤가? 비록 최근 서방자본의 진출과 기술 덕분으로 점차 발전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주변 또는 서방보다 힘들고 어려운 곳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면, 중공이 티베트에 대해서 그렇게 해도 된다면, 서방의 한 나라가 그와 같은 논리로 중공을 무력으로 침공해서 해방시켜도 된다는 이야기인가?
지난세기에 상대적으로 발전된 일본이 후진적인 봉건왕조에서 갓 벗어나려던 지나를 침공하여 "해방"시키려 했을때, 지나인들은 어떻게 했던가? 일본이 지나를 해방시키는것이 옳았던가? 이는 선생이 위에 영문으로 소개한 티베트의 경우와 어떻게 다른가?
그러기에 중공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남에게 나쁜 짓을 해도 그들을 위해 하는 것이지만, 남이 내게 그러면 안된다" 식의 논리.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어린아이들만 13억인" 나라는 장기적으로 발전의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어린아이가 커서, 생각이 바뀌면 물론 이야기는 다르겟지만...
공자님이 한국인의 조상인지 중공인의 조상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한국사람의 조상일 수가 많다고 내가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분이 "기소불욕 물시어인(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는 일을 남에게 저지르지마라)"라고 한 것인데, 이는 최소한 많은 지금의 중공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이라는데 있다.
위대한 성인은 민족과 족속을 떠나서 우리의 스승이자 선조이다. 우리는 인류의 일부이며, 그들은 인류의 스승이다. 거꾸로 한국인이 외국인에 대해 나쁜 짓을 하면, 그는 "한국인"이 아니라 "인류공동체의 적"일뿐이다. 이를 알아주기 바란다.
중공인:
在此,我想结束在本网站上的讨论...
답변:
선생이 예의가 있으면 이를 번역해서 사람들이 알아 먹도록 썼으면 좋겠다. 물론 한어를 잘아는 사람들에게서 선생이 쓴 말의 뜻을 자세히 물어 보겠지만...
그리고, 내가 위에서 제기한 문제는 모두 당신이 먼저 여기에 제기한 문제다. 선생이 제기한 것을 무조건 옿다고 하고, 다른 사람이 그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 무조건 아니라고 하면서 말을 막는 것은 사상의 자유가 없는 "중공식의 사고"일뿐이다. 이세상에는 수많은 민족과 나라와 사람이 있다. 다른 이의 반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토론을 제기할 권리가 있는가? 중공사람 말만 맞고, 다른 나라사람들은 무슨 바보로만 아는가? 물론 모든 중공인들이 다 선생같은 생각을 하리라고는 보지 않지만.
그러나, 선생이 좀 화가 난 모양인데, 좀 진정하시고, 차분히 위에 제기한 반론들에 대한 "선생"의 반론을 제기하여 사람들을 설득해 보기 바란다. "내말 안 믿으면 이야기 끝" 하는 식은 "진 사람의 도망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내생각에 내가 아는 것은 선생에게 가르치고, 선생이 더 잘아는 것은 선생에게서 배우자는 것이다.
한 중국군민의 견해 said:
저녁시사하러 가려다가 너무 억울한것을 보았네요."중국이 한국역사를 외곡하여 고구려 조선등등을 서로 다른 나라이고 다른 민족이라고 선전 "했다구요??????
제가 배운 한국,조선, 고구려 등에 관한 역사교과서나 역사서적에는 "종래로"이러한 글들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알다싶이 고구려나 고조선이나 조선이나 지금의 한국이나 ..... 한 민족피줄이였고 한나라의 민족발전사였다는것을...... 후유....(다시) 억울도 어지간한 억울이 아니네요.
제가 얘기한 "단일 민족"이라는것도 조선민족이 여러 민족들로부터 발전형성되였다는것을 부인하는것이 아니라 민족형성후 한민족의 상태로 나라를 꾸리고 나갔다는것입니다. 그뒤의 이민형상은 다른 얘기구요.
답변: 선생은 지난 6년여동안 온 한국민과 조선인민이 전민족적으로 규탄한 중공의 조선-한국역사 왜곡 사건을 모르고 있으니, 아마도 이를 당신에게 인터넷에서 좀 조사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선 수천가지 글중 아래를 선생이 참조하기를 바란다:
[이덕일 사랑] 마침내 드러난 동북공정의 속셈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09/200609060472.html
여기서 그 글의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최근 동북공정을 주관하는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한꺼번에 발표한 동북공정 18개 연구과제 요약본들이 “한강 유역도 중국 땅”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 같은 우려는 마침내 현실로 전환되었다. 중국의 이런 주장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하는 대한민국 헌법 3조에 대한 근본적 부정이다."
이는 한반도의 티베트화를 추구하는 중공의 의도를 제대로 본 것 같다.
모택동도 티베트 진입 직전 "서장은 원나라이래 우리 역사의 일부이며, 우리 영토의 불가양도의 일부이다"라고 했다. 이제 곧 중공은 한반도도 해방하려 하는가? 우습다.
지나(현제의 중공땅)야말로 폴란드동부에서, 러시아, 아라비아, 페르시아, 우즈벡, 카작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등을 정복한 몽골족의 4한국의 하나인 "원나라"의 일부가 아니었던가? 따라서 지나땅은 몽골공화국 또는 위의 여러나라들의 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또, 당시 4한국의 큰집뻘인 "원나라"는 "고려"와 "사돈국가"였고, 정부나 나라가 없는 "중화인(한인)"들은 대대로 원나라 황제들을 낳은 "고려"여인들(황후들, 예컨데 기황후)의 아들들, 즉 "원나라 황제님들"의 통치하에 있었으므로 우스게 소리로 해보건데, "조국 고려"의 품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은 아닌가?
티베트는 남송보다 일찌기 몽골에 의해 연합된 이후 지나의 한족의 나라라는 남송이 점령되었으므로, 지나인들은 "티베트-몽골 연합국"의 통치하에 있었던 것이 그 진실한 역사이었던 것은 아닌가?
한번 생각해보자.
한 한국인의 견해:
선생이 쓰신 중공어로 무슨 뜻인지 되말(한어)을 잘아는 친구한테 물어 보니 대략 내용은 다음과 갇다는데, 일부는 위에서 한 이야기의 중복이겠지만, 그래서 여기에 싣겠소. 혹 잘못 알고 쓴게 있으면 바루어 주시고.
한 중국군민의 견해 said:
1. 首先,我想声明,我的放弃争论,是源于我的无奈----因为我发现在此网站上与我讨论的韩国人对中国的偏见是如此的根深蒂固。
2. 此外,在你的言论中总是强调中国在对朝鲜历史进行歪曲, 这种自相情愿的恨与无知只会加深误会。你误认为中国人在宣传古朝鲜历史就是中国的历史, 何等荒谬!
한국인의 답변:
1. 한국인과 중공인들 사이에 이렇게 편견의 깊이가 깊을 줄 몰랐다는데, 중공정부의 황당한 조선 침략 발판을 위한 역사왜곡이 하나의 편견의 원인도 되었다고 생각하니, 한국사람의 편견을 어린아이 같이 욕하지 말고, 애그런 편견이 생겼는지, 또, 한번 "우리정부가" 한국, 북조선을 위해 무엇을 했던가를 생각해 보시죠. 물론 안하겠지만. 하면 중공사람이 아니지.
2. 그리고 한국어는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지난 6년 동안 전 북조선 인민과 한국 국민을 화나게 한 역사 왜곡에 대해 몰랐다는 당신의 변명은 중공인들이 아니면 할수있는 말이겠는가. 그런 헛된 변명은 세계최고의 역사를 가졌다는 선생들 족속끼리 하시고.....
한 중국군민의 견해 said:
“中国人“不等于“汉族”,汉族只是中国人当中的一员而已; “中国的历史与朝代”不等于“汉族的历史与朝代”,是居住在中国大地上各民族的奋斗发展史。
한국인의 답변:
중국인과 한족은 갇지 않다. 한족은 중국인의 일부이다, 각민족의 분투의 역사라고 헀는데, 물론 부정하지 않소. 그러나 한번 언제부터그랬는지 한번 자신 있으면 여기서 한번 토론해 봅시다. 그리고 중공의 포로가 된 그 각소수민족들을 이용하여, 영토나, 역사를 훔치려는 중공의 속셈도 잘 이해하고 있으니, 한번 토론해 봅시다. 역사적 실증을 가지고.
한 중국군민의 견해 said:
我在此承认:我错了。错在不该到这里和某些人讨论此类问题。和一些一开始就以仇视的心态,偏激的理论,荒唐的逻辑来想问题的人,有什么可讲的??毫无意义!
한국인의 답변:
중공의 티베트 정책이 옳다고 한국사람한테 선전해 보겠다고 시작한 당신의 조국에 대한 그 깊은 충성심을 알아 뫼시겠쏘.
그런 생각을 한 당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 것은 그래도 양심은 있나 하겠지만,
그다음 제 이야기가 황당하다니, 황당하다면 왜 도망하시는가? 한번 왜 틀렸는지를 여기서 선생이 쓰겠다던 중공의 영토의 일부이 티베트와 원,명,청 현대까지 한번 써보시지요! 배우겠으니까.
한 중국군민의 견해 said:
我承认你说的某些历史是真实的,但是我绝对不敢认同你看待问题的逻辑思维(我很多次都在怀疑我是否在何一个正常人讨论问题),你总是在问:凭什么中国的就是正确的?? 请客观审视一下我以上的回复,我是这种态度么?? 反之,凭什么中国人说什么都是为自己的辩解,凭什么中国做什么都是错的??? 如果很多韩国人都是这么想的,那真是令人震惊!因为这些想法是如此狭隘和偏激,且充满敌视。
한국인의 답변:
제가 위에 말한 어떤 것들은 사실이지만, 제가 보는 관점과 논리를 절대 받아 들일 수없고 황당하다는데, 선생이 제기한 위의 질문들에 대해 충분히 대답을 드릴 것이니, 도망만 치지마시죠!
한 중국군민의 견해 said:
我不会再回到此网页上,也不会进行任何回复,在此,再见! 珍重!
한국인의 답변:
더이상 여기에 글을 안쓰겠다고 한 것은 지금까지 선생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여기서 시작했다는 반성인지 도망인지?
한 중국군민의 견해 said:
但是我会将此次争论原文译成中文和英文公开在中国和国外的网站上,让大家和时间去评
定。请你放心,我会客观地翻译你的言论及说辞,不会无故渲染或歪曲,也不会故意美化我的言论。
한국인의 답변:
선생이 열받아서 여기서의 토론을 영문과 되말로 중공내는 물론이고 전세계의 웹사이트에 올리겠다는 내용이라는데, 완성되면 한번 꼭 연락 바랍니다. 꼭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기쁘게 기다릴 테니...
그것이 세계의 인구의 4.5/1을 가졌다는 무서울것없는 6-7백만의 정규군대와 수천개의 핵무기를 가진, 경제적으로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고 자신 하는 중공인들(다는 아니겠지만)의 도망하는 모습이라면, 나는 감히 그들이 겁나지 않다고 생각하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큰 땅덩이와 인구, 전쟁쳐서 남의 나라 내것 수십번 만들수있을 정도로 군대와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위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자신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한번 해볼까! 하다가 지레 망할수도 있지요. 지나의 역사가 이는 잘 증명해주고 있으니까, 필요하면 다시 글써드리죠.
선생, 나라는 작더라도 사람이 크면 큰 나라이고, 큰 나라인데 사람이 크면, 그것은 더욱 큰나라입니다.
http://www.fileupyours.com/view/171605/Tibet_Discussing.doc
이 글 읽어보면 모든것이 명백해 집니다...
한 중국인의 말:
중국이 아직 잘 살지 못하는것만은 사실입니다. 한국분들 잘 사신지 이제 몇해나 된다고 그 난리들인지 참 이해 못하겠군요. 자기 나라에도 굶주리는 노인들을 두고 친지들을 관심하는데는 인색하고 남을 깎기에는 항상 앞서더라구요.자기 일이나 잘 처리하세요. 민족단합은 뭐라해도 중국인한테서 배울게 많다구요.자기 동포라고 하면서도 그들이 사는 중국은 헐뜯고 한국에 가서 일하는 중국동포를 업신여기거나 한국수속한다면서 동포한테 사기치고 다 한국분들 한 일이 아니십니까?남의 나라 역사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말이나 다 하고있네요. 한국인들 낙천적이고 열성적인것은 좋지만 너무 뽐낸다는 말을 잘 듣습니다.자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