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30(토)
조회: 470
야학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점쟁이인 친구의 아버지를 만났다가 재미삼아 점을 봤다. 얼굴을 한참 들여다 보더니 "왜 어려운 길을 골라서 가느냐"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린가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더니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고 제법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차라리 권력을 잡으면 크게 이름을 날릴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 넘기고 말았지만 그날 저녁 나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울었다. 제깟 점쟁이 놈이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지?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도대체 내가 왜 그딴 놈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는 내 자신이 한심해 보여서 나는 밤새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스물다섯살, 1997년 4월의 일이다.

돌아보면 대학교 4학년의 봄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직장을 갖고 싶지도 않았고 돈을 벌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평화롭고 아늑한 학교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도서관 구석으로 숨어 책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늘 하늘 흩날리는 목련꽃잎이 그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걸 그때까지 나는 몰랐다. 맑은 바람도 아프고 아름다운 음악도 아프고 눈길이 닿는 모든 것과 따뜻한 햇볕과 스치는 꽃 내음까지도 아팠다. 아무려면 어떠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는 하루종일 도서관에 숨어 살았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모두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많은 글을 썼지만 아무런 울림도 갖지 못했다. 여물지 못한 생각들이 땅바닥에 버려졌다. 시간은 무관심하게 흘러갔고 나는 꽉 닫혀 있었다.

친구들이 취업원서를 쓰러다니는 동안 나는 사회에 시위라도 하는 기분으로 야학을 찾아갔다. 너희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아. 싼 값에 아무렇게나 나를 내다 팔고 싶지 않아. 나는 내 갈 길을 갈 거야. 나는 완벽하게 혼자였다. 날마다 나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야학은 나에게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나를 열어보이고 내 생각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처음으로 나를 돌아보고 사회와 사람들을 돌아봤다. 엉터리였지만 그 수업들 가운데에서 나는 조금씩 사회와 소통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방법을 배웠다.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가르쳐라. 느리지만 한발자국씩 정확히 내디뎌라."

그 1년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살 것인가. 변혁은 어설픈 논리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운동가는 섣부른 구호만으로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야학은 사회와 소통하는 통로였다. 나는 참여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소외를 이겨내고 변화의 큰 흐름을 앞장서서 이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대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새로운 실험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 야학에서 공동학습의 문화, 가르침과 배움으로 서로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었다. 사람들의 생각을 모아 대안 이데올로기를 만드는데 나의 모든 젊음을 바치기로 했다. "대안의 모색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과정이다. 민중은 이제 가치의 선택과 판단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소외를 넘어 민중은 보다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보다 정치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고 제도와 구조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늘 맑게 깨어 있을 것, 머무르지 않고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갈 것, 가르치고 배울 것. 나는 대안 이데올로기를 찾는 두가지 방법으로 공동학습과 대안언론을 생각했다. 공동학습이 야학에서 주어진 과제라면 대안언론은 내 돈벌이에 주어진 과제였다. 공동학습이 우리를 일깨우는 작업이라면 대안언론은 사회를 일깨우는 작업이었다. 두가지 모두 내 삶의 목표와 맞닿아 있었다. 목표가 명확하면 흔들릴 이유가 없다.

야학은 감상적이고 퇴폐적인, 얼치기 지식인이었던 나를 운동가로 바꾸어 놓았다. 야학은 내게 삶의 목표와 열정을 가져다 주었다. 야학 때문에 나는 타협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변화의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지켜냈다. "대안 이데올로기는 민중의 힘으로 정립될 것이다. 결국은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모두가 희망하는 대로 사회는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4월이면 야학에 들어온지 딱 5년이 된다. 나는 그동안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나는 아직 자신감과 열정을 잃지 않았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도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느리지만 멀리 내다보고 한 걸음씩 정확히 앞으로 내디디면 된다.

나는 아직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람만이 희망인가. 물론, 사람만이 희망은 아니다. 아직 나는 이론의 힘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이론은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 아닌가. 사람들을 넓게 끌어안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변화의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곳에 소통의 문화를 심어야 한다.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내 삶의 목표가 야학의 목표와 맞닿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야학에서 내 꿈을 이루고 싶고 야학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싶다. 끊임없이 가르치고 끊임없이 배우는 삶을 살고 싶다.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넓게 열려 있고 싶다. 늘 새롭게 새롭게 깨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변화의 중심에 서고 싶다. 머리 보다는 가슴으로 살고 싶다. 사회와 사람들을 넓고 깊게 사랑하고 싶다.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탄탄히 지켜나가고 싶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더 많은 실험을 해야 한다. 다시 피를 토하듯이 글을 쓰고 밤을 새워서 책을 읽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 끊임없이 문제를 던지고 토론을 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게으름을 떨쳐내고 씩씩하게 부딪혀야 한다.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들을 세워야 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Copyright(c) Jeong-hwan Lee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