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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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가.  

"부르조아는 세계시장 착취를 통해 모든 나라의 생산과 소비를 세계화(cosmopolitan)하고 있다. 자급자족의 시대가 끝나고 국가간 상호 연관과 의존이 시작됐다. 한마디로, 부르조아는 자신의 모습대로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1848년, 칼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가운데.

"자본가들은 농민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며 농업을 내팽개치려고 한다.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2004년,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장.


농민들의 분노와 슬픔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16일, 칠레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두 나라는 관세 없이 자유롭게 수출과 수입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칠레에 자동차와 휴대전화, 컴퓨터 등을 더 싼 가격으로 더 많이 팔 수 있게 됐고 칠레도 닭고기와 감자, 포도와 복숭아 등을 우리나라에 더 많이 팔 수 있게 됐다.

자동차나 휴대전화, 컴퓨터 등을 직접 만들 능력이 없는 칠레는 여러나라에 경쟁을 시켜서 가장 싸고 좋은 걸 사다쓰면 되니까 딱히 손해볼게 없다. 억울한건 하루아침에 생존기반을 잃게 된 우리나라 농민들이다. 감자가 수입되면 우리나라 감자 생산 농가들은 다른 살 길을 찾아봐야 한다. 여름 땡볕 감자밭에서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고생고생하면서 자식들 대학까지 보내셨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불쌍한 농민들만 제쳐놓으면 FTA 체결을 놓고 한국과 칠레 두 나라 국민들은 모두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냉정하게 따지면 이 치열한 세계화 시대에 생산성 없는 산업이야 도태돼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이른바 비교우위 이론 아닌가. 기를 쓰고 감자밭을 일구지 않아도 다른 나라에서 사다 먹는게 더 싸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자. 더 비싸더라도 버릴건 버리고 이왕이면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하자. 맛이 크게 다르지 않고 농약으로 범벅을 하거나 유전자 조작 따위 장난을 치지만 않았다면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따져보면 신자유주의니 세계화니 앞뒤 안가리고 반대할 일이 아닌 것도 같다. 다국적 기업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착취한다고 비난하지만 어떤 나라 사람들에게 나이키 공장은 최고의 직장이다. 우리에게 한끼 밥값도 안되는 임금을 받으면서 하루종일 신발 상자를 포장하더라도 말이다. 어린아이들까지 공장에서 일을 시킨다고 나무랄 수도 있지만 일을 시키지 않으면 그 아이들은 굶어죽을 수도 있다. 가난한 나라들은 그렇게 부자 나라가 던져준 떡고물을 먹고 자란다. 자메이카는 1992년 미국에게 우유 시장을 개방했다. 그 결과 낙농업계는 와르르 무너졌지만 그 나라 어린이들은 그때부터 훨씬 싼 값에 미국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됐다. 그때도 미국과 자메이카는 모두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매력은 제법 짜릿하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이제 칠레에서 훨씬 싸게 감자나 복숭아를 사먹을 수 있게 됐다. 어릴 때 침흘리며 구경만 했던 바나나를 이제 노점상에서 2천원에 한송이씩 원없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처럼 개방하면 개방할수록 과일 가격이 낮아질지도 모른다. 내친 김에 쌀 시장까지 개방하면 가난한 서민들 가계 부담이 훨씬 줄어들지도 모른다. 중국 쌀은 1kg에 300원, 20kg 한포대에 6천원 밖에 안한다.

힘들고 돈 안되는 농사는 집어치우고 나라 전체가 반도체와 TFT-LCD, 휴대전화만으로 먹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까운 세금을 물지 않고도 마음껏 수출을 할 수 있는 신나는 환경이 됐으니 말이다. 모든 언론이 입을 모아 FTA를 통과시키라고 노래를 부르고 모두가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 쓰러져 가는 농업을 살리겠다고 잘 나가는 자동차나 휴대전화 산업을 죽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정부는 FTA 체결에 힘입어 칠레에 대한 무역수지가 연간 3억2천만달러 늘어나고 덕분에 국내총생산도 0.005% 이상 늘어날거라고 장밋빛 전망을 마냥 늘어놓는다.

그러나 FTA는 감자와 휴대전화의 문제가 아니다. 우유와 나이키공장의 문제도 아니다. 칠레와 맺게 될 FTA는 시작일뿐이다. 우선 일본과 FTA 협상이 진행중이고 중국과 함께 3자간 FTA를 맺는 협상도 추진되고 있다. 이밖에도 싱가포르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인 아세안이나 유럽 연합과 FTA를 맺는 계획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FTA는 대세다.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EAFTA나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FTAA(자유무역지대)를 비롯해 세계는 이미 자유무역의 소용돌이에 빠져든지 오래다.

이제 세계는 하나의 큰 시장이 된다. 자본은 국경을 넘고 모든 규제와 보호를 넘는다. 계산기를 두들겨 가면서 칠레와 이해득실을 따질게 아니라 본격적인 세계화와 자유무역 시대의 생존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우리가 농민들을 버린 것처럼 세계 여러나라에서 자본은 영세한 산업을 몰락시키고 힘없는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몬다. 성장의 이면에서 약자는 철저하게 희생되고 부는 편중된다. 농민들이 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얼마든지 노동자와 여성과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짓밟는 논리로 확산될 수 있다. 자본의 논리 앞에서 더이상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제 곧 온다. FTA는 그 출발일뿐이다.

칠레에서는 제법 이익을 볼 것 같은가. 그러나 머지않아 피해를 볼게 뻔한데도 다른 나라와 FTA를 맺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언젠가 쌀 시장도 울며겨자먹기로 개방해야할지도 모른다. 자동차와 휴대전화라고 언제까지나 승승장구할 수 없다. 이미 국경은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세계화의 배후는 미국도 칠레도 그 어느 국가도 아닌 자본이다. 개방된 시장에서 가난한 나라들은 경쟁력을 잃고 더욱 가난해진다. 착취당하는걸 알면서도 시장을 열어주고 그나마 남아있는 자원을 송두리째 내준다.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시장의 자유고 자본의 자유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본의, 침탈의 자유다. 자본은 세계를 넘나들면서 먹을게 남아있는 제3세계 국가들을 쥐어짜고 악착같이 이익을 챙긴다. 시장을 개방하고 부지런히 일하는데도 세계의 빈곤은 더욱 확산된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빈곤층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8억명에 이른다. 반면, 억만장자 360명의 수입이 전 세계 인구 수입의 45%를 차지한다. 이 상반된 비율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와 휴대전화를 팔기 위해 그 틈에 잽싸게 끼어들려고 한다. 신중하게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따져보자. 분명한 것은 노동자가 팔 수 있는건 빈약한 노동력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자본에게 자유를 허용할 때 국가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그 귀결은 참혹하다.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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