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정환
2002/5/28(화)
조회: 454
비정규직 노동자를 생각함.  

당신과 똑같은 일을 하고 가끔 당신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당신의 동료는 당신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월급을 받고 있다. 당신의 동료는 언제라도 잘릴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당신은 당신의 동료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당신은 아마 당신의 동료를 못본척하고 싶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물론 당신도 그럴듯한 거대 담론을 마냥 늘어놓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막상 부딪히고 보면 당신의 그럴듯한 거대 담론은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현실은 냉정하다. 그리고 우리는 매우 이기적이다.

현실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만든다. 현실에 부딪힐 때 우리는 매우 무기력하다. 어차피 노동의 소외는 세계적인 흐름 아닌가. 몇몇 현장에서 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결국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시대다. 당신은 그에 맞설 논리를 내세울 수 있는가.

현실을 정확히 들여다 보자. 비정규직 노동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람들을 자르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리면 회사는 돈을 번다. 한국통신이나 한국전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의 논리에 맞설 논리를 만들어 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물론 새로운 논리는 필요하다. 언젠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처럼 세계를 뒤흔들어 놓을 새로운 이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그런 거대 담론을 찾으려고 모인 것이 아니다. 현실성 없는 거대 담론으로 사람들의 눈을 끌어모으려고 모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거대 담론이 아니다. 거대 담론은 현장에 미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흔들어 놓을 작은 논리들이 필요하다. 결국 거대 담론은 그렇게 아래에서 하나하나 만들어 쌓아 올라가는 것 아닌가.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는 논리로는 현실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을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현실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논리와 담론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그치지 않고 거꾸로 따라가면서 그 뿌리를 짚어 보기로 했다.

노동의 소외는 지난 몇년 사이에 더욱 심각해졌다. 과거의 우리는 지금처럼 이기적이지 않았다. 지금처럼 잔인하지 않았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일까.

1971년 전태일은 노동법을 부르짖기라도 했지만 지금 2002년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그 알량한 노동법조차도 없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도 우리를 설득하지 못한다. 다들 서로 못본척하고 멀찌감치 물러서 있을 뿐이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는 노동자를 이렇게 쉽게 자를 수 있게 되었는가. 자본의 논리에 맞서 노동자를 보호하던 울타리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노동의 가치는 언제부터 이렇게 땅에 떨어졌는가.

우리는 노동법이 개정되고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로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앉던 1997년을 되돌아 보기로 했다. 사회와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가 살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잊혀진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노동의 최소한의 가치가 인정되던 시절의 잊혀진 기억들 말이다.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Copyright(c) Jeong-hwan Lee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