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정환
2006/5/20(토)
조회: 897
'아이언 트라이앵글(철의 삼각지대)'를 읽다.  

퇴직 정부 관료들을 끌어들이면 많은 일들이 손쉽게 된다. 댄 브리오디가 밝혀낸 칼라일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문제는 이게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먼저 칼라일의 역사를 간단히 다시 정리해보고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해 보기로 한다. 퇴직 관료들에게 도덕성을 요구할 게 아니라 쉽지 않겠지만 이들이 재직하는 동안 얻은 정보와 영향력을 재직 이후 활용할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게 관건이다.

칼라일은 1987년 스티븐 노리스와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이 그들이 자주 모이던 호텔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이들은 알래스카의 부실기업들을 지원하는 특별법을 이용해 우량 기업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방법으로 재미를 봤고 여기서 얻은 이익이 칼라일의 설립 자본금이 됐다. 기회를 잘 잡기는 했지만 이때만 해도 칼라일은 다른 수많은 사모펀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 차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칼라일은 이 사업에 인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그래서 칼라일은 정치권에 줄을 대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결국 성공한다. 이 부분이 칼라일이 다른 사모펀드들과 다른 점이다. 기대 수익이 높으면 그만큼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투자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칼라일은 위험을 피하거나 줄이는 방법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칼라일이 가장 먼저 끌어들인 퇴직 관료는 닉슨 전 대통령의 인사담당관이었던 프레데릭 말렉. 공화당 전국위원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던 그가 닉슨 시절의 스캔들이 뒤늦게 문제돼 물러나자 칼라일은 그를 재빨리 영입한다. 말렉은 그 뒤 칼라일이 케이터에어라는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 회사의 인수는 칼라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의 아들이었던 무렵, 그러니까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으로 재직 중이던 무렵인 1990년, 칼라일은 아들 부시를 케이터에어의 이사로 영입한다. 항공기 기내식을 납품하는 이 회사의 실적은 형편없었지만 칼라일은 이를 계기로 현직 대통령과 그의 아들을 사업 파트너로 끌어들이게 된다. 이들의 인연은 물론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칼라일은 이에 앞서 1989년, 프랭크 칼루치 전 국방부 장관을 영입했다. 칼루치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과 대학시절 룸메이트이기도 하다. 한 사람은 아버지 부시 시절 장관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아들 부시 시절 장관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칼루치는 그 뒤 칼라일이 퇴직 관료들을 끌어들이는 데 다리를 놓은 것은 물론이고 칼라일이 군수산업에 진출하는 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칼라일은 1990년 군수회사인 BDM을 헐값에 사들여 칼루치를 회장으로 앉힌다. 전직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에 납품하는 군수회사의 회장으로 옮겨간 것이다. BDM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칼라일은 1994년 이 회사를 주식시장에 공개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된다. 이밖에도 칼라일은 1992년 파산 위기에 몰린 LTV의 항공 부문을 인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칼라일과 경쟁해서 탈락한 상대는 미국 최대의 군수회사인 록히드마틴이었다.

1993년에는 제임스 베이커 국무부 장관과 리차드 다르멘 예산관리국장이 퇴임하자마자 칼라일로 옮겨갔다. 칼라일은 갑자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됐고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가 칼라일에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칼라일은 이를 떠들썩하게 홍보했고 소로스의 뒤를 이어 씨티그룹과 공무원 퇴직 연금 같은 굵직굵직한 투자자들이 칼라일에 돈을 싸들고 왔다.

칼라일의 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인맥도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영국 수상이었던 존 메이저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박태준 전 국무총리, 필리핀의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 태국의 아델 파냐라춘 전 총리 등이 칼라일에 합류했다. 칼라일은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아들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도 앞장섰고 결국 성공했다. 부회장으로 있던 제임스 베이커는 아예 부시의 선거 캠프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칼라일은 심지어 9·11 테러의 주범으로 꼽히는 오사마 빈 라덴 집안과도 거래를 했다. 9월 11일 아침, 아버지 부시는 샤피크 빈 라덴과 한 자리에 있었다. 칼라일 연례 투자자 회의에서였다. 샤피크 빈 라덴은 오사마의 이복 형제다. 그는 칼라일의 주요 투자자 가운데 한 명이고 아버지 부시는 칼라일의 고문이다.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무기 구입 예산을 크게 늘렸고 칼라일의 자회사들은 덕분에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전직 대통령이 테러리스트와 사업 파트너라는 사실, 그리고 테러와 전쟁 덕분에 이들이 함께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때 칼라일의 자회사에서 일했던 아들 부시는 테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이라크를 공격했다. 이 모든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과 칼라일의 이해가 충돌할 때 이들은 어느 편에 서는 것일까.

칼라일의 투자자산 규모는 13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만들어낸 천문학적인 이익은 결국 대통령을 비롯한 퇴직 관료들의 광범위한 인맥과 영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인지, 그 이면에 더 거대한 음모가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불가능을 모르는 이 엄청난 투자가 완벽하게 합법이고 또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이건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0년 9월 칼라일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미은행을 인수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칼라일은 그해 3월, 금융감독위원회에 한미은행 주식을 사들이겠다고 신청을 냈다가 거절당했다.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걸렸던 것이다. 칼라일은 사모펀드였을 뿐 금융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다. 그런데 그해 9월 칼라일은 금융기관인 JP모건을 앞세워 금감위 승인을 받아낸다.

칼라일은 JP모건과 50 대 50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금감위를 설득했다. 그런데 JP모건이 컨소시엄의 전체 지분 36.6% 가운데 8.2%만 보유하고 있었고 나머지 28.4%는 위장 계열사를 포함한 칼라일의 몫이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진다. 표면적으로는 반반씩 투자한 걸로 돼 있지만 사실상 칼라일이 한미은행의 대주주였다는 이야기다. 금감위는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묵인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하면 후자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칼라일은 아예 홈페이지에 위장 계열사들 지분 비율을 버젓이 공개하기도 했다. 금감위가 이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지만 금감위는 끝까지 침묵했다. 칼라일은 2004년 5월, 보유지분을 모두 씨티그룹에 넘기고 7천억원 이상을 챙겨 유유히 빠져 나간다. 금감위가 침묵해야만 했던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칼라일은 김&장 법률사무소와과 법무법인 세종에 법률 자문을 맡겼는데 2000년 8월 금감위 회의록을 보면 김&장과 세종이 칼라일에 자문해 준 내용이 그대로 인용돼 있다. 외국 금융기관의 관행 등을 고려할 때 칼라일 컨소시엄의 한미은행 인수는 법적으로 타당하다는 논리였다. 칼라일이 내세운 주장을 금감위가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매각을 승인하는 논리로 활용했다는 이야기다.

더 놀라운 것은 이근영 당시 금감위원장이 퇴직 후 세종의 고문으로 옮겨갔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칼라일이 퇴직 관료들을 끌어들였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법률회사들이 법조계는 물론이고 재정경제부와 국세청,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위원회 인맥을 무더기로 끌어들이고 있다. 법률회사들이 왜 이들을 끌어들이는지, 이들이 이곳에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부시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제주도에서 열렸던 칼라일 투자자 회의에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당시 국무총리와 최태원 SK 회장 등을 만나기도 했다. 칼라일이 한미은행 인수를 발표한 것은 제주도 회의 직후였다. 칼라일 고문으로 활동했던 박 전 총리는 김병주 칼라일 아시아 회장의 장인이다. 김병주는 박 전 총리를 비롯해 이헌재 당시 금감원장과 재정경제부 이종구 금융정책국장 등을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부분은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 겸 부총리의 역할이다. 이 전 부총리는 부총리에서 물러난 뒤 김&장의 고문으로 옮겨간다. 이른 바 이헌재 사단이라고 불리는 그의 인맥은 재경부뿐만 아니라 금감원과 금감위, 그리고 금융권 곳곳에서 발견된다. 칼라일과 정부 관료들이 만나는 지점이 칼라일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김&장이고 그 인맥의 그 중심에 이 전 부총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헌재 전 부총리의 인맥은 재경부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과 금융감독위원회, 그리고 금융권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외환은행 매각을 결정하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던 정부 관료들, 변양호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 등도 모두 이헌재 사단의 핵심 멤버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김&장은 이 전 부총리를 비롯해 최경원 전 법무부 장관과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윤동민 전 법무부 보호국장, 김회선 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등 쟁쟁한 검찰 출신 인사들을 영입해 왔다. 한덕수 총리 역시 김&장의 고문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밖에도 원봉희 전 재경부 금융총괄국장, 현홍주 전 주미대사, 구본영 변호사 전 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 서영택 전 건설부장관 등이 김&장을 거쳐갔거나 재직 중이다.

김&장은 칼라일 뿐만 아니라 제일은행의 대주주였던 뉴브리지 캐피털이나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 펀드의 법률자문도 맡았다. 이들이 과연 칼라일이나 뉴브리지, 론스타를 위해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부당한 압력을 넣었을까. 아직까지 명확하게 드러난 바는 없다. 그건 칼라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매우 적절치 못한 자리에 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고문으로 있는 법률회사가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과 관련, 의혹을 불러일으킬만한 거래에 개입돼 있다는 사실이다.

칼라일과 김&장의 인맥, 그리고 그들과 정부의 역학관계는 몹시 비슷하다.

댄 브리오디가 지적한 것처럼 칼라일은 굳이 로비스트를 따로 고용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도 없다. 극단적으로 전직 대통령인 아버지 부시가 현직 대통령인 아들 부시에게 조언하거나 의견을 구하는 것이 로비일까.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드러난다고 해도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퇴직 관료들이 정부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통제 영역 밖이다.

칼라일은 그 틈새를 파고들어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그 어느 사모펀드나 기업도 갖지 못했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장을 비롯해 법률회사들과 회계법인들이 칼라일의 흉내를 내고 있다. 멀쩡한 은행이 부실은행으로 둔갑하고 헐값에 팔려나가기도 하지만 역시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외국 자본 앞잡이 역할을 한다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이들을 통하면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퇴직 관료가 특정 기업의 이해를 위해 일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들의 영향력은 정부와 나라 전체의 이해와 상반되는 방향으로 행사될 가능성이 있고 충분히 그런 정황도 있다. 다만 이들의 움직임은 거의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나더라도 통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칼라일이 두려운 것처럼 김&장이 두려운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법의 구멍이 바로 여기에 있다.

철의 삼각지대 / 댄 브리오디 지음 / 황금부엉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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