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정환
2006/2/25(토)
조회: 882
'세계는 평평하다'를 읽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지난해 펴낸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경제성장과 자유무역이 세계적으로 빈곤을 퇴치하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1990년에 중국에는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극빈층이 3억7500만명이었다. 그런데 2001년에는 이 숫자가 2억1200만명으로 줄어들었고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015년에는 1억6천만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인도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같은 남아시아 지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세계화가 지체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극빈층이 더 늘어났다. 1990년 2억2700만명에서 2001년에는 3억1300만명으로, 2015년에는 3억4천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 통계는 세계은행에서 나온 것이니 충분히 믿을 만해 보인다. 프리드먼은 이를 근거로 “더 개방적이고 경쟁적인 시장만이 국민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지속가능하고 유일한 성장엔진”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는 “누구도 이 점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프리드먼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과 인도의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도에는 회계학을 전공한 대학 졸업자가 해마다 7만명씩 배출된다. 이들은 한 달에 100달러를 받으면서 바다 건너 미국 회계법인에서 의뢰받은 기초적인 회계업무를 도맡아 한다. 100달러는 이들에게 절대 적은 돈이 아니다. 미국 기업의 콜센터에서 일하는 인도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가 평생에 걸쳐 벌었던 만큼을 한 달 만에 벌기도 한다. 이들은 미국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뺏으면서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다.

프리드먼의 이 책은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즈'가 선정한 ‘올해의 비즈니스 도서’로 뽑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말 번역 출간된 이래 줄곧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만약 프리드먼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굳이 스크린 쿼터 폐지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할 이유가 없게 된다. 세계는 이미 평평해졌고 앞으로 더 평평해질 테니까. 도대체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프리드먼의 주장은 마치 종교적 계시 같다. 세계화를 받아들여라. 그러면 모두가 가난을 벗어나고 행복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해질 것이다.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정성진 교수는 지난해 12월 열렸던 한국사회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해외 진보진영 학자들의 논문을 인용해 프리드먼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거들을 제시한 바 있다. 뒤늦게 정 교수의 주장을 다시 소개하는 것은 프리드먼의 책이 우리 사회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된 데다 그의 주장이 제대로 된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프리드만의 책은 흥미로운 사례로 가득하지만 그 사례들의 해석은 지나치게 과장됐거나 논리적으로도 많은 모순을 담고 있다.

세계적 양극화 문제를 논의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나라별 소득을 비교하려면 시장환율을 적용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구매력의 차이를 고려해 구매력평가지수 환율을 적용하는 게 좋을까. 여기에 첫 번째 함정이 있다. 불평등 정도를 측정하려면 지니 계수를 쓰는 게 좋을까. 10분위 소득 배율을 쓰는 게 좋을까. 여기에 두 번째 함정이 있다. 이밖에도 국민계정이나 가구소비 지출통계 가운데 어떤 것을 쓸 것인가, 그리고 인구 규모 가중치를 반영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예를 들면 쉽다. 미국에서 1달러로 살 수 있는 식품을 인도에서 30루피에 살 수 있다고 하자. 또한 미국에서 1달러로 살 수 있는 서비스(이를 테면 이발이나 구두닦이)를 인도에서는 3루피에 살 수 있다고 하자. 후진국일수록 서비스가 재화보다 더 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매력 평가 환율에 따라 1달러를 대략 10루피로 잡는다고 하자. '1달러=10루피'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셈인데 실제로 인도 사람들은 10루피로 미국 사람들이 1달러를 주고 살 수 있는 식품의 3분의 1밖에 못 사게 된다.

이런 구매력 평가 조정은 흔히 가난한 사람들이 버는 돈의 대부분을 먹는 데 쓴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 사람들은 이발도 하지 않고 구두도 닦지 않는다. 구매력 평가 조정은 이처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과대평가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나라 사이의 교역에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구매력이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부유한 나라 사람들의 구매력은 상대적으로 낮게 왜곡된다. 이게 '세계는 평평하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선진국의 1달러와 후진국의 1달러는 같지 않다.

프리드먼은 세계은행의 통계를 근거로 인도를 세계화의 성공사례로 꼽았지만 인도의 국내총생산 대비 무역의 비율은 11%밖에 안 된다. 반면 온두라스는 이 비율이 42%나 된다. 그런데 1990년대 인도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6.9%인 반면 온두라스는 -1.2%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더 세계화한 나라와 덜 세계화한 나라의 구분도 엉터리고 실제로는 더 세계화한 나라의 경제가 오히려 더 뒤쳐졌다는 이야기다. 프리드먼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결과인 셈이다.

구매력 평가 환율이 아니라 시장 환율로 계산할 경우 세계적으로 양극화는 오히려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가장 부유한 30개 나라 대비 가장 가난한 30개 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의 비율은 1980년 17배에서 2002년에는 27까지 늘어났다. 평균화된 지니계수가 아니라 10분위 소득 배율을 사용할 경우 역시 불평등 정도가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배율은 1980년 23.1배에서 1998년에는 40.0배로 늘어났다. 반면 상위 50%와 하위 50%의 배율은 8.4배에서 5.5배로 줄어들었다.

정 교수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이 또 다른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중국을 제외할 경우 세계의 불평등 정도는 1980년 이래 크게 심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구매력 평가 조정을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2004년 기준으로 미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소비 비율이 71%인 반면 중국은 42% 밖에 안 된다. 국내총생산의 상당 부분이 중국 사람들의 생활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 수출의 35~40%가 미국에 대한 수출이었다는 사실도 중국 경제성장의 의미를 다시 고민해보게 한다.

프리드먼은 중국과 인도에서 일어난 변화를 세계가 평평해지고 있다는 근거로 들었지만 정 교수는 자유무역이 모든 나라들을 동등하게 경쟁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선진 기술을 사용하는 선진 자본은 초과이윤을 기술혁신에 재투자해 초과이윤을 얻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만 후진 자본은 적은 이윤을 얻고 기술적 열위를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정 교수는 "슘페터의 기술혁신은 시간적으로는 호황기에 집중되고 공간적으로는 선진국에 집중된다"고 지적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은 더 높은 이윤을 좇아 이윤율이 낮은 선진국에서 이윤율이 높은 후진국으로 이동하는데 결국 그 과정에서 잉여가치는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이전된다. 결국 세계화 시대의 경쟁은 비교우위가 아니라 경쟁우위의 원리에 따르게 되고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격차는 갈수록 더 커진다는 게 정 교수의 논리다. 정 교수의 논리에 따르면 프리드먼이 주목했던 중국과 인도의 변화는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 단편이었을 뿐이다.

한편 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는 "역사적으로 선진국의 경제발전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무역과 보조금, 각종 특허와 지식재산권 보호에 기초했다"고 지적한다. 선진국들이 충분히 경제적 우위를 확보한 이후에야 자유무역의 기치를 내걸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최근 세계화의 논의는 결국 선진국의 기업들에게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기 위한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이런 움직임을 일찌감치 '사다리 걷어차기'에 비유한 바 있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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