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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바이드,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다.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27, 2019

1. 뉴스의 재발견, 오늘은 어떤 주제인가요?

= 어제 한국은행에서 지급결제보고서라는 게 나왔는데 몇 가지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습니다. 특별히 제가 주목했던 건 모바일 뱅킹 이용 현황을 살펴봤더니 60대 이상에서는 13.1%만 모바일 뱅킹을 이용해 봤다고 답했다는 겁니다. 8명 가운데 한 명 꼴인 거죠. 고령층이 디지털 환경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모바일 뱅킹 규모가 하루 평균 7200만 건, 이용 금액도 5조2000억 원에 이릅니다. 인터넷 뱅킹은 53조28억 원. 인터넷 뱅킹 이용자의 3분의 2만 모바일 뱅킹 이용.)

1-1. 다른 연령대는 어떤가요?

= 50대만 해도 51.8%나 됩니다. 모든 연령에서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추세인데 아무래도 높은 연령으로 갈수록 이용률이 낮죠. 30대가 89.3%로 가장 높은데 그래도 여전히 10명 중에 1명은 모바일 뱅킹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게 스마트폰에 익숙한 사람들도 오랜만에 써보면 쉽지가 않습니다. 40대는 77%, 20대는 80% 정도네요.

2. 금융 소외라는 말도 나오겠네요.

= 은행은 이제 더 이상 가는 곳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미래학자 브렛 킹의 말인데요. 이미 금융 거래의 90% 이상이 비대면 거래로 옮겨갔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은행 점포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충남 태안군 지역 주민들이 국민은행 본사까지 찾아와 지점을 폐쇄하지 말아달라고 시위를 벌였는데 결국 폐쇄된 적도 있습니다.

= 17개 은행 점포 수를 살펴봤더니 지난해 6월 기준으로 6768개로 5년 전보다 11.6% 줄었습니다. (은행 직원 수도 많이 줄었죠. 2년 동안 9.2%가 줄었습니다.) 또 다른 통계도 있는데요. 상위 8개 은행 지점 가운데 서울과 수도권, 광역시에 78%가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금입출금기, ATM도 많이 줄었습니다. 2년 동안 3300대가 줄었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불편을 못 느끼겠지만 모바일 뱅킹을 쓰지 못하시거나 은행 창구를 이용했던 어르신들은 곤란을 겪겠죠. 아무래도 이용자가 적은 곳부터 먼저 폐쇄할 테니까요.

3. 사실 시골에 계신 분들에게 은행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 말이죠.

= 소득 수준에 따른 차이도 있습니다. 수익성만 따지면 가난한 동네에 지점을 둘 이유가 없겠죠. 서울에서도 동네마다 차이가 큰데요. 노인 1만명에 은행 점포가 몇 개 있는지 살펴봤더니 강남구는 24.3개, 은평구는 2.6개로 거의 10배 차이가 납니다. 경기도에서도 성남시는 5.8개, 양평군은 0.3개로 차이가 크고요.

3-1. 지점 폐쇄를 막을 방법은 없나요?

= 금융감독원이 특별히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인구 1000명당 점포 수와 ATM 개수 등을 따져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방안이 거론됐지만 구체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금융은 보편적 공적 서비스인 데다 우리은행 같은 경우는 사실상 정부가 소유한 은행이죠.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들도 있었지만 입법화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4.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이 취약 계층의 소외를 만드는 이런 현상을 디지털 디바이드(devide, 격차)라고 하죠?

= 가장 대표적인 게 요즘 기차역에 가면 어르신들이 줄을 서 있는 걸 볼 수 있죠. 젊은 사람들은 다들 앱으로 기차표를 미리 예매하는데 어르신들은 역에 와서 표를 끊으려 하니까 표를 못 구하거나 입석으로 가게 되는 경우도 많고요. 저희 외할머니는 기차를 타기 며칠 전에 미리 역에 가서 표를 구입하신다고 합니다. 앱을 설치해드리고 방법을 알려드릴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어르신들은 쉽지 않죠. (한국은 가뜩이나 결제나 인증 절차가 복잡해서 이런 격차를 키우는 것 같습니다.)

= 인터넷 금융 상품이 창구 거래보다 이자율이 더 높거나 우대 서비스도 많습니다. 단순히 점포 관리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취약 계층을 차별한다고 볼 수도 있죠. 은행 점포가 없어지면서 뱅킹 디바이드라는 말도 나옵니다.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장애인, 북에서 내려온 새터민(탈북자), 결혼 이민자 등도 해당할 수 있겠죠.

5. 디지털 디바이드를 해소할 방법이 어떤 게 있을까요?

= 현실적으로 서울에서도 줄어드는 은행 점포를 지역에 남겨두라고 강제하는 게 맞는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점포수가 많은 은행이 농협은행이죠. 그나마 다행인 게 농협은행은 여전히 점포수를 크게 줄이지 않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민은행이 1위였는데 점포수를 줄이면서 순위가 바뀌었습니다.

= 좀 더 근본적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금융이라는 개념이 필요할 텐데요. 시각 장애인이나 청각 장애인이 ATM 기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처럼 디지털 취약 계층에게도 최대한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창구에서도 시력이 약한 분들에게 돋보기를 제공하거나 글씨를 잘 못쓰는 분이 있으면 대신 써드리는 게 은행의 책무죠. 점포를 없앨 거라면 음성이나 화상으로 은행 창구처럼 거래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거나 방문 교육을 하거나 보안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쉽게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죠.

6. 어르신들이 피싱 사기도 많이 당하시는데요.

= 금융 거래 패턴을 분석해서 이상 신호가 발생할 때는 거래를 중단한다거나 하는 것도 은행의 책무입니다. 고령층의 계좌는 한 번 더 안전장치를 둔다거나 직접 통화를 하게 한다거나 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겠죠. 소비자 보호를 제대로 못해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는 은행에 책임을 지우는 방법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거고요.

= 일부 은행에서는 보이는 ARS라는 서비스도 내놓고 있습니다. 앱을 실행시키기 어려워하시니까 그냥 전화를 걸면 메뉴를 띄워서 보여주고 필요한 메뉴를 고르면 상담원을 연결해 주거나 잔액을 보여주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전문 상담원을 배치하거나 종이 통장 중단 시점을 유예하는 은행도 있습니다. 은행 뿐만 아니라 마을회관이나 동사무소 등에서 스마트 디바이스 교육을 진행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7. 디지털 디바이드와 뱅킹 디바이드, 스마트폰 시대의 사각 지대라고 할 수 있겠네요.

= 핵심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부당한 차별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으니 금융 거래를 못하게 돼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받아들일 게 아니라 창구를 열어둬야 한다는 거죠.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 결국 의지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 빠르고 편리한 것도 좋지만 속도 경쟁에서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단순히 인터넷 뱅킹 뿐만 아니라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사업자들이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인 것 같습니다. 디지털이 오히려 물리적 제약을 없애줘야 할 텐데 새로운 차별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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