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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병원 뒤에 누군가가 있다.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6, 2019

1. 국내 최초의 영리병원 도입이 무산됐습니다. 오늘 뉴스의 재발견에서는 원인과 전망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동안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해주시죠.

= 복잡한 사건입니다. 중국의 뤼디 홀딩스란 기업이 있는데 (뤼디가 우리 말로 읽으면 녹지입니다.) 중국 최대의 부동산 개발 업체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매출이 2474억 위안, 42조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투자나 하던 회사가 한국에 들어와 제주도에서 병원을 하겠다고, 그것도 영리 병원을 하겠다고 들어온 것이죠. 그런데 병원 허가를 받았는데 개원을 안 해서 어제 최종적으로 허가가 취소됐습니다. 허가를 받으면 90일 안에 개원해야 하는데 안 한 거죠.

2. 내국인도 진료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안 받아들여졌다고 하던데요.

= 애초에 어떻게 허가가 났는지도 의문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에 승인이 나서 건물을 지었죠. 그런데 당시 사업계획서를 보면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 관광객을 대상으로 성형·미용·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국내 최초로 영리 병원이 허용된 건데요. 이제 와서 내국인 환자도 받게 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3. 원래 중국인 대상으로 영업을 할 계획이었던 모양이죠?

= 네. 제주도에 중국인 관광객이 많기도 하고 한국으로 의료 관광을 오는 사람이 많으니 그 시장을 노리면 될 텐데, 지금은 이대로는 못하겠다고 손을 놓아버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3-1. 누가 말을 바꾼 건가요?

= 일단 한국 정부가 사업 계획을 승인을 해준 건 맞습니다. 2016년 4월에 착공해서 건물을 다 지은 건 2017년 7월이고요. 의사와 직원들도 채용했습니다. 그런데 반대 여론이 늘어나니까 제주도가 제주 주민들 의견을 듣기로 했습니다. 공론화 위원회를 만들었고 이 위원회에서 영리병원은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게 지난해 10월인데요. 그런데 원희룡 지사가 그렇다면 외국인 환자만 받으라고 조건부 개설 허가를 내준 겁니다.

= 2015년에 낸 사업계획서를 보면 내국인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국내 보건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국인을 받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건강보험 적용을 안 할 거란 이야기인데요. 박근혜 정부가 내국인 영업을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승인을 해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4. 안종범 수첩에도 녹지병원이 언급됐다던데요.

=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었는데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돼 지금 구속돼 있죠.) 2015년 5월에 “VIP 지시 사항”이라는 메모에 “제주도 외국인 영리법인, 국내 자본 이동”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건 외국인이 투자한 게 아니라 국내 자본이 들어가 있다면 우회적으로 영리병원을 허용한 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녹지병원의 총괄 대표가 국내 의료법인 관계자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외국인이 투자해서 외국인 환자를 받는 영리 병원이 아니라 한국 돈이 들어가서 한국 환자를 받는 영리 병원인 건데요.

5. 영리-비영리, 이게 왜 논란이 되는지도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한국의 모든 병원은 비영리 병원입니다. 병원이 돈을 벌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돈을 벌어서 그걸 병원 밖으로 빼내 가면 안 된다는 겁니다. 병원이 투자 대상이 돼서는 안 되고 병원이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챙겨주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그래서 병원이 돈을 벌면 그걸 병상을 늘리고 의료 장비를 구입하고 환자들을 위해서 써야 된다는 게 한국 의료법에 명시돼 있는 겁니다. 그걸 하라고 건강보험으로 병원비를 지원하고 있는 거고요.

= 부자들은 돈 좀 더 내고 좀 더 실력있는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할 텐데요. 지금은 삼성병원을 가든 대학병원을 가든 진료비는 똑같습니다. 입원실 비용이 다를 뿐이죠. 그런데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이 병원은 건강보험을 안 받게 되겠죠? 그럼 병원비를 마음대로 높여 받을 수 있게 되고요. 부자들은 고급 병원으로 가고 실력 있는 의사들도 영리 병원으로 옮겨가면서 의료 양극화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6. 그러니까 녹지병원이 영리병원 도입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죠?

= 녹지병원은 병상이 47개 밖에 안 됩니다. 사실 규모는 크지 않은데 이런 게 생기기 시작하면 금방 무너질 거라는 거죠. 그래서 녹지병원 뒤에 좀 더 큰 누군가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습니다. 하나만 뚫리면 계속 뚫릴 테니까요. 이걸 무너뜨리려는 세력은 많죠.

= 그래서 기껏 병원을 지어놓고(병원에 800억 원, 헬스타운에 6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고 하죠.) 보이콧하고 있는 것도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돕니다. 중국인들 대상으로 영업을 하면 될 텐데, 왜 안 하는 걸까요?

6-1. 그래서 ISD 소송을 걸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죠.

= ISD라는 게 투자자 국가 소송인데요. 외국인 투자자가 정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손해를 입으면 국제 중재를 신청하는 겁니다. 이 재판은 1심으로 끝나는데 보통 투자자들에게 우호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박근혜 정부의 결정을 문재인 정부가 뒤집었다는 쪽으로 간다면 한국 정부가 손해 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중국 자본에 특혜를 주고도 뺨 맞는 상황이 됐다는 말도 나옵니다.

7. 언론 보도도 논조가 제각각이던데요.

= “영리병원 하나로 건강보험이 통째로 무너질 것처럼 과장하는 좌파 시민단체, 이에 영합하는 무소신의 정치가 새로운 의료 서비스 싹을 죽이기 일보 직전”, 매일경제 사설인데요.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보수 경제지들이 대부분 이런 논조입니다. 의료 관광 산업 물꼬를 터야 한다(동아일보), 원희룡 지사 판단이 옳다(국민일보) 등등 본질을 벗어난 주장이 넘쳐납니다.

= 한겨레는 애초에 내국인 진료 제한이라는 조건을 허용한 것부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경향신문은 논조가 좀 꼬였는데요. 해외 환자를 유인하자는 취지에 동의한다, 제주도의 사정도 이해는 한다는 사설을 낸 적 있습니다.

= 하지만 보수 신문들도 거론하듯이 병원이 진료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게 한국 의료법입니다. 외국인 병원이니까 내국인 환자를 안 받는 것도 안 되고 한국에서 건강보험을 안 받는 병원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거죠. 결국 모든 병원은 내국인 외국인 구분 없이 비영리로 운영하고 건강보험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8.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 허가가 취소된 상태니까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일단 외국인 대상으로 허용한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외국인이든 아니든 한국에서 영리병원은 안 된다는 원칙을 허물어서는 안 되고요.

= 정부가 말을 바꿨다는 비판을 오히려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봅니다.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면 하더라도,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는 데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고요. 적폐 청산의 비용이라고 할 수 있겠죠.

= 그리고 녹지병원 승인 과정에서의 문제도 조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중국의 뤼디 그룹은 그냥 부동산 투자 회사인데 얼굴 마담만 했을 수도 있고요. 누군가가 녹지병원과 그 배후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혜를 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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