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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덜 내게 돼서 좋습니까… 세금폭탄론의 함정.

Written by leejeonghwan

August 15, 2013

“세상에서 분명한 것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죽음이고 하나는 세금이다.” 벤자민 플랭클린의 말이다. 나폴레옹도 비슷한 말을 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세금도 마찬가지다.”


세금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런데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멍청한 말을 했다. “한 달에 1만3000원 정도인데 이 정도는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느냐.” 이런 말도 했다. “거위에서 고통 없이 털을 뽑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했던 게 세제 개편안 정신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기름에 불을 붓듯,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세제 개편안 논쟁에 등장한 통계를 살펴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팩트를 제대로 들여다 보고 말하는 언론이 많지 않다.

1. 기획재정부는 8일 발표 때 연봉 3450만원 이상만 세금을 올리겠다고 했다. 놀라운 사실은 연봉 3450만원이면 근로소득자 가운데 상위 28%에 든다는 사실이다.

2. 기획재정부는 12일 증세 기준을 연봉 5500만원 이상으로 올리기로 했다. 그럼 근로소득자 상위 13%만 세금이 늘어나게 된다. 5500만~7000만원까지도 증세 규모를 줄여주기로 했다. 연봉 7000만원 이상이면 상위 7% 안에 든다. 이 정도면 비로소 부자 증세라고 부를 수 있을까. 28%의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자던 개정안이 수정안에서는 13%의 부자들로 좁혀졌다. 15%의 부자들이 세금을 더 안 내게 되면서 4400억원 가량 세금이 덜 걷히게 됐다.

3. 기획재정부는 “총급여 5500만원 이하는 세 부담 증가 없다”는 자료를 냈다. 이걸 보고 좋아할 사람은 누굴까. 연봉이 3450만~5500만원 사이에 있는 229만명은 세금이 안 올라서 좋아할 수도 있다. 5500만~7000만원 사이에 있는 95만명도 세금이 덜 오르게 돼서 좋아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과연 서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연봉이 3000만~4000만원인 사람의 경우 1년에 고작 1만원을 더 낼 뻔 했던 걸 안 내게 됐다. 연봉 4000만~5000만원인 사람은 16만원을 더 낼 뻔 했던 걸 안 내게 됐다.

4. 결국 민주당이 세금폭탄이라고 들고 일어나고 새누리당도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맞장구를 치니까 청와대가 물러선 모양새다. 조중동 등 보수 언론도 월급쟁이가 봉이냐며 반발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조금씩 비판의 결이 다르다. 조중동은 월급쟁이들을 내세웠지만 사실 이 신문들은 모든 종류의 증세를 반대한다. 복지재원? 복지를 줄이라고 난리법석인 신문들이다. 민주당이 세금폭탄이라고 비판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과연 집권 의지가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손잡고 보편적 증세를 후퇴시켰다고 할 수 있다.

5. 이번 개편안에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기로 한 건 진보진영에서도 환영하는 대목이다.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잘 한 건 잘 했다고 하자”고 말한다. 법인세나 금융거래세에 손을 대지 않은 건 비판해야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계속 요구하면 되는 것이고 보편적 증세가 맞는 방향이라는 이야기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실장은 “이번 개편은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이 증가하는 누진적 증세”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을 겨냥해서는 “보편적 복지를 지향한다는 정당이 무시무시한 세금 폭탄론을 꺼내다니 복지국가에 대한 기본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6. 실제로 소득세만 놓고 보면 연봉이 많을수록 세금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연봉 5000만~6000만원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16만원만 더 내면 되지만 연봉 1억~1억100만원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1065만원을 더 내야 한다. 상위 0.1%, 연봉 3억원이 넘는 1만6000명은 1억8465만원을 더 내야 한다. 이 정도면 증세 한 번 할 만하지 않은가.

7. 연봉 2000만~3000만원인 사람은 17만원을 내던 게 6만원으로 줄어들게 됐다. 연봉 1000만~2000만원인 사람은 5만원 내던 걸 한 푼도 안 내게 됐다. 연봉 1000만원 미만인 사람들은 원래 세금을 안 냈다. 소득세만 놓고 보면 이번 개편안 원안은 72%의 근로소득자들이 환영하는 정책이다. 개정안에서는 87%의 근로소득자들이 환영하는 정책이 됐다. 이거야 말로 포퓰리즘이 아니고 뭔가.

8. 아마도 날마다 신문을 보고 뉴스를 읽고 분노하는 그럴 듯한 직장에 다니는 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번 개정안 수정안으로 혜택을 보게 되는 연봉 3450~7000만원 사이, 상위 7%와 28% 사이, 나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비교적 학력 수준이 높고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보편적 증세의 그물에서 빠져나가게 됐다는 이야기다.

9. 물론, 부자들에게 더 거둬라, 나는 한 푼도 더 못 내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부자 증세를 철회하고 법인세를 올리는 게 우선이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세금 더 걷는 꼴을 못 보겠다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건 마치 KBS의 TV 수신료 인상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박근혜 정부에서 보편적 증세를 하지 못하면 어떤 다른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서도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보수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보편적 증세를 하겠다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국민들 혈세를 4대강 따위에 쏟아붓지 않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어쨌거나 박근혜 정부도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하고 재원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증세 없이는 복지도 없다는 사실이다. 박근혜가 하더라도 보편적 증세는 해야 한다.

10. 그리고 몇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더 있다.

첫째,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 대비 소득세 비중은 2010년 기준으로 3.6%,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 8.4%와 비교해서 매우 낮다. 그러니까 소득세를 올려야 한다? 우선 비과세·감면을 줄이고 34%에 이르는 면세자 비율을 낮춰야 한다. 조금이라도 내고 많이 버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내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근로소득세 최고 세율 38%를 낮추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이번에는 근로소득세만 건드렸지만 금융과 부동산 거래로 얻은 소득에 세금을 늘릴 필요가 있다.

둘째, GDP 대비 법인세 비중는 3.5%로 OECD 평균 2.9% 보다 높다. 그러니까 법인세를 올리면 안 된다? 이것도 오래된 통계적 착시현상이다. 법인세 비중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세율이 낮다는 사실을 빼먹으면 안 된다. 최저 세율이 10%로 OECD 평균 17.1% 보다 매우 낮다. 과표 기준 2억원 이하는 10%, 2억~200억원은 20%, 그 이상은 22%가 적용된다. 최고 세율은 2002년 28%에서 27%로, 2005년 25%로, 2009년 22%로 계속 인하됐다. 그나마 대기업에 적용되는 온갖 세액공제 혜택이 많아 삼성전자의 경우 실효 세율이 16.7% 밖에 안 된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은 실효세율이 각각 31%와 28.1%였다.

셋째, 외국은 다들 감세하는 추세다? 하나마나 한 소리다. OECD 나라들은 높은 세율을 깎는 추세고 우리나라는 낮은 세율을 높여가는 추세다. 우리나라 조세 부담률은 지난해 기준으로 20.2%, OECD 평균은 24.6%다. 사회보장부담률을 더한 국민부담률은 26.8%인데 OECD 평균은 36.3%(2010년 기준)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2000년 대비 2011년 법인의 가처분소득은 532.9% 증가한 반면 개인의 가처분소득은 86.4% 증가에 그쳤는데 같은 기간 법인이 낸 세금 증가율은 151.0%, 개인소득세 증가율은 141.5%로 거의 비슷했다. 대기업들은 비과세·감면 혜택과 지속적인 법인세율 인하 정책으로 세금 부담이 크게 줄었는데, 애꿎은 월급쟁이들 호주머니만 턴다는 비판이 거센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선 소장은 “연간 수십 조원의 세수를 마련할 수 있는 대기업과, 부유층, 고액 자산가 등에는 거의 손대지 않고, 2조원 가량의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유리알 지갑’을 터는 세제개편을 단행했다”고 비판한다.

한겨레는 “중산층 월급쟁이들의 불만의 핵심은 십수만원의 세금 부담 때문이 아니라, 대기업과 자산가, 고소득 자영업자와의 조세 형평과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지적했는데 언론이 때로는 국민들을 계도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할 때도 있다.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니까 문제다라는 논리는 곤란하다.

소득세보다 법인세를 올리는 게 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소득세를 올리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니다. 우선 순위의 문제는 있지만 법인세 인상이 보편적 증세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것도 아니다. 소득세도 인상하고 법인세도 인상해야 한다. 이걸 하면 다른 걸 못하는 것도 아니다. 세금폭탄과 보편적 증세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 보편적 증세의 핵심은 누진 과세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세금폭탄이 될 수 있겠지만 그래서 필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그건 나는 못 내겠으니 부자들에게나 거둬라가 아니라 나도 낼 테니 나 보다 더 부자인 사람들에게 더 거둬라가 돼야 한다.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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