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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재산 사건, “검찰 증거 흠결 있지만 그래도 유죄.”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8, 2013

북한의 김정일 주석을 만나 교시를 받고 반국가 단체를 결성해 국가 전복의 음모를 꾸몄다? 이른바 왕재산 사건. 그런데 1심 재판부는 왕재산이라는 반국가 단체를 결성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인정했다. 여전히 왕재산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의 핵심은 김아무개씨 등이 북한의 대남 공작을 전담하는 255국에서 지령문을 받아 활동했느냐 여부다. 김씨 등은 검찰이 증거로 내민 문건을 처음 본다고 반발하고 있다.

피고가 혐의를 부정한다면 그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다. 검찰은 피고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이 파일을 찾았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 파일이 피고의 하드디스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 왕재산 사건은 애초에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출발했지만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산됐다. 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법원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대부분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해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하고, 같은 혐의로 기소된 임아무개씨 등 3명은 징역 4~5년 및 자격정지를, 가담정도가 비교적 가벼운 유아무개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1심에서 9년, 임씨 등은 7~5년, 유씨는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는데 2심에서는 형량이 조금 낮아졌다.

재판부는 “북한은 평화통일을 위한 대화의 상대지만 잇따른 무력도발로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면서 “김씨 등이 누설될 경우 북한의 대남 공작과 선전 등에 사용돼 국가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정보를 탐지·수집하거나 북한 공작원들과 회합한 행위 등은 국가의 안보와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실질적 위험성이 있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함에 있어 피고인들이 억울한 점이 있을까 상당한 시간을 살펴보면서 변호인들의 주장에 귀 기울였다”면서도 “수집한 국가기밀이나 배포한 이적표현물이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정도로 중대한 것으로 볼 수는 없어 형량을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흠결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증거능력을 부정할 정도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이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한 증거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변호인단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USB 메모리 등의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압수수색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봉인도 없었고 무결성도 입증되지 않았고 동영상도 제출되지 않았다며 증거를 부정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재판부는 일부 디지털 사진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 대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 증거들에 기초해 유죄를 인정했다.

변호를 맡았던 이강철 변호사는 재판 결과에 대해 “결과적으로 변호인단이 제기한 증거능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나도 받아주지 않은 셈인데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고 목숨까지 빼앗을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의 흠결을 그렇게 가볍게 여겨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피고인들이 북한에 넘겼다는 국가 기밀이 국가 안보에 실질적인 위해를 줬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는데 그럼 국가 기밀이 아닌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의 판결은 뜨거운 얼음과도 같이 성립될 수 없는 논리”라면서 “법원이 직접 판단하기 어려우면 변호인단이 냈던 위헌법률 심판 청구를 받아줘서 헌법재판소에 판단하도록 해야 할 텐데 기각됐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가능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종북’이라는 단어 때문”이라면서 “대법원에 상고해서 다시 판단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는 “최근에 한 신문에 ‘법원에 정의를 구하지 마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는데 정말 갈수록 암담해진다”면서 “박근혜 당선인이 당선되는 순간 선고 결과를 예감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피고인들이 작성한 바도 없고 본 적도 없다는 북한 지령문의 실체를 검찰은 입증하지 못했고 지령문이 담긴 USB 메모리를 압수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박 이사는 “만약 증거주의에만 철저하게 입각하여 판단을 한다면 이는 당연히 입증 책임이 있는 검찰이 이를 입증하지 못했으므로 증거로 인정될 수 없고, 그렇다면 피고인들의 간첩 혐의는 입증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는 “중국에서 북한 225국 사람들 만나는 장면을 찍었다는 사진에서도 실제로 북한 사람들을 만나는 장면은 없다”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증거로 유죄를 선고한다면 법원에 뭘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재판 과정에서 자문단으로 참석했던 김인성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증거 능력에 문제가 있다면 그 증거는 당연히 폐기돼야 한다”면서 “그건 디지털 증거라고 해서 다르지 않고 국가보안법 사건이라도 해도 마찬가지”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결국 종북이라는 딱지만 붙이면 증거 능력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이라면서 “왕재산 사건 재판 결과는 향후 비슷한 사건에도 적용될 텐데 굉장히 안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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